332화
군사청장은 정성국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호위대가 새한성 치안 유지 업무에 손을 뗀다라...그럼 예상보다 많은 경비대를 새한성에 배치해야겠군요?”
“그렇지. 못해도 3천 명은 배치해야 할 듯싶은데?”
“생각보다 많군요.”
군사청장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리고 호위대도 증강하고 북미 서해안 지역에도 대대적으로 경비대를 배치했으면 싶어.”
지금까지야 북미왕국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그 지역의 안정을 위해 병력을 배치했었고 덕분에 북미왕국의 병력 대부분이 북미 동해안 지역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북미 동해안 지역의 상황이 불안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제는 북미 서해안 지역에도 충분한 병력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특히 북쪽의 새남포, 새의주 지역이 빠르게 발전, 확장하고 있는 터라 이곳에 배치된 경비대원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병력 증원 요청을 보내기도 했고 조선과의 관계가 나아지며 공식적으로 이주민이 도착하고 이들이 집중적으로 새한성-새나주 구간 철도 노선 인근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인구 밀도가 늘어나 이런저런 잡음이 들려오고 있었고 행정청만으로는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군사청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새한성-새나주 구간 철도 개통 이후 인구가 증가하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좀 늦은 감은 있지요. 헌데 그러면 생각외로 많은 병사를 모집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 내가 계산해보니 올해에 최소 1만 2천 명은 모집해 배치해야 할 것 같은데...가능하겠지?”
북미왕국이 북미 동해안 지역을 장악한 이후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급격히 군사청의 규모를 늘렸을 때보다도 많은 병사를 모집해야 했으나 믿는 구석이 있는 군사청장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어차피 올해부터 북미 동해안 지역에서도 병사를 모집할 생각이었으니까요. 병사들을 일종의 전사로 생각하는 원주민들과 병사들의 대우나 급료가 좋다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잉글랜드인이니만큼 병사를 모집한다고 공고하면 구름같이 몰려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성국은 군사청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지. 그럼 이번에 북미 동해안 지역에서 훈련한 병사들은 북미 동해안 지역 인근에 배치하고 새한성 출신 병사들을 이쪽으로 이동시키게. 아무래도 가족들 근처에서 근무하는 것이 낫겠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헌데 전하. 듣기로는 화승총도 생산할 거라고 들었습니다만...정말입니까?”
이에 정성국은 고민이 많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자네도 알다시피 북미 동해안 지역에 시범적으로 신식 소총을 판매했는데 북미 동해안 지역의 주민들은 오히려 화승총을 선호하더군. 뭐 값싸고 분실해도 신고하면 그만이니 그런 것 같아. 해서 신식 소총을 제작하는 공방에서 화승총까지 함께 생산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네.”
“흐음...하지만 굳이 화승총까지 생산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정성국은 군사청장의 대답에 생각을 멈추고 군사청장을 바라보았다.
“흠. 자네는 화승총 생산에 반대인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북미왕국 백성들의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신식 소총이 보급되는 편이 낫습니다.”
“...그거야 그렇긴 한데.”
애당초 정성국이 민간에 총기를 허용한 이유는 혹시 모를 해수의 위협을 대비해 스스로 안전을 지키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해수를 발견하면 그때서부터 장전해야 하는 화승총보다는 일단 장전되어 있으니 안전장치만 풀면 곧바로 발사할 수 있는 신식 소총이 훨씬 나았다.
더불어 화승총의 경우 흑색 화약을 개인이 따로 관리해야 하는데 흑색 화약은 습기와 정전기에 취약해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고.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군사청장의 지적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군사청장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화승총까지 생산해 값싸게 풀어버린다면 누가 비싼 신식 소총을 사겠습니까.”
군사청장의 말처럼 성능이나 편의성에선 신식 소총이 훨씬 좋지만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가격이 훨씬 싸다는 이유로 화승총을 고를 가능성이 컸기에 정성국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화승총은 생산하지 말자?”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신식 소총과 총알 가격을 무척 비싸게 책정한 것은 이를 통해 신식 소총을 일종의 귀중품으로 생각해 소중히 관리하고 방아쇠를 당길 때도 한 번 더 고민했으면 하는 의도에서 그렇게 책정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다른 지역의 경우 북미 동해안 지역보다는 부유한 만큼 신식 소총의 가격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으리라고 판단합니다. 특히 목숨값이라고 생각한다면요.”
“흐음...”
이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기자 군사청장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북미 동해안 지역의 주민 중 정말 총기가 필요한 외곽에 사는 사람들은 이미 화승총을 보유하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 말에 정성국을 결정을 내렸다.
“그럼 처음 신식 소총을 살 때 총알을 덤으로 줘서 북미 동해안 지역 주민들의 부담을 조금 덜어주는 방향으로 가야겠군. 한 10발쯤이면 충분하겠지?”
“음...차라리 그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알겠네.”
* * *
새한강의 선착장에서 유유히 물살을 가르는 선박을 바라보던 최주명은 뒤쪽이 소란스럽자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흰머리수리의 깃발이 매달린 마차를 확인하고 급히 마차로 달려갔고 정성국은 마차에서 내려 뛰어오는 최주명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주명아. 오랜만이구나.”
“헉헉. 스승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이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하며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할 말이 있어서 널 집무실로 부를까 하다가 저 녀석을 구경하려고 한번 와본 거지. 저게 300톤급 철선이지?”
“그렇습니다.”
정성국은 새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300톤급 선박을 살펴보다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생각외로 괜찮아 보이는데?”
아직 300톤급 선박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정성국은 거의 인급 전선과 비슷한 크기의 길고 얇은 선체를 자랑하는 철선을 보고 만족스러워 입을 열자 최주명은 슬쩍 가슴을 펴며 대답했다.
“성능도 괜찮습니다. 저 정도면 대량 건조해 연안 순찰용이나 정찰용 함선으로 써먹을 만하지요.”
이에 나쁘지 않다고 여긴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려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질문을 던졌다.
“저거 속도가 얼마나 나와?”
“평균 15노트의 속도로 움직입니다.”
정성국의 예상대로 생각보다 속도가 나오지 않았기에 정성국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최주명을 바라보았다.
“음...? 600마력 증기기관을 탑재한 것이 아닌가?”
이에 최주명은 고개를 저었다.
“250마력 증기기관 2개를 탑재했지요. 고장이 날 때를 대비해서요.”
“아. 그래? 하지만 정찰용 함선으로 써먹기엔 너무 느린 것 같은데?”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최주명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항변했다.
“다른 배들은 평균 10노트로 이동하니 1.5배나 빠릅니다만...”
그런 최주명의 반응에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언제까지 10노트를 적정 속도로 둘 수야 없잖아? 기동이가 2천 마력의 증기기관을 개발한 거 알고 있지?”
박기동을 언급하자 최주명이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녀석이 스승님께 보고까지 한 것을 보면 시범 운용에서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 보군요.”
“그래. 그래서 이 기회에 기선들에 장착한 증기기관의 출력을 높여 더 빠른 배들을 건조했으면 하거든.”
정성국의 말에 최주명은 정성국이 왜 이곳까지 방문한 것인지를 깨닫고 말했다.
“아...그럼 천급 기선엔 이번에 개발한 2천 마력 증기기관 2개를 장착하란 뜻입니까?”
“그렇지. 그 이상의 선박은 당장 건조하긴 어렵잖아? 그렇다면 배의 속도를 올려 물자 수송량을 증가시켜야지. 배의 속도가 딱 2배만 되면 1년에 개항장을 4번이나 오갈 수 있다고. 얼마나 대단해?”
처음 최주명은 정성국이 당장 선박의 크기를 키우긴 어렵지 않냐는 말에 슬쩍 입을 삐죽였지만, 정성국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죠. 다만 증기기관의 크기가 달라 증기기관을 교체하려면 생각보다 힘들 겁니다. 전선이라면 모를까 일반 선박들을 교체하는 것은 인력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최주명의 대답에 어느 정도 상황을 예상했던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런가? 그럼 전선은 어떻게든 증기기관을 교체해보고 그 외에는 새로 건조하는 선박만이라도 증기기관의 출력을 올리자고. 바로 가능하지?”
“음...혹시나 해서 지급 함선까지는 증기기관을 교체해 출력을 2배로 올린 배를 설계해둔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바로 가능한데 천급 함선은 2천 마력의 증기기관의 크기를 확인한 후 새로 설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주명 역시 천급 함선 이상의 선박은 재료의 한계로 양산하기 어려워졌기에 이를 돌파하고자 증기기관을 교체해 더 빠른 배를 만드는 것이 어떨까 싶어 장인들과 함께 의논해 설계까지 해 둔 상태이기는 했다.
다만 배의 속도를 무한정 올릴 수 없는 이상 수송량을 증가시키려면 결국 배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철선에 매달리고 있었고.
이를 알리자 정성국은 무척 반색하며 말했다.
“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고.”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되자 최주명 근처의 조선 장인들과 기술자가 일제히 최주명을 빤히 바라보며 무언의 눈치를 주었고 최주명은 이들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철선을 바라보고 감탄하는 정성국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그리고 스승님. 올해 여름이면 철도 공사가 끝나잖습니까?”
“아. 아직 모르는구나? 철도 공사가 거의 끝났다고 하더라.”
“예?”
정성국의 대답에 최주명이 당황하자 정성국은 개발청이 공사 일정을 대거 단축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에 최주명은 무척 기뻐하며 급히 질문을 던졌다.
“아...그럼 당분간 철도 부설은 없으니 강철에 여유가 좀 있겠지요?”
“아마도?”
“허면 신규 선박 건조에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시지요. 어떻게든 천급 함선 이상의 철선을 만들어보겠습니다.”
비장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최주명과 잔뜩 긴장해 조용해진 주변을 확인한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그동안 철도 부설로 인한 강철의 부족으로 철선 연구를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해 최주명을 비롯한 기술자들은 커다란 철선의 건조를 시도하기보다는 조금씩 규모를 키우며 자료를 축적하고 있었다.
그러다 동력을 연구하는 박기동을 비롯한 기술자들이 새로운 증기기관을 만들었는데도 이를 장착할 커다란 선박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신들의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해 꽤 분해하는 눈치였고.
하지만 정성국은 이들의 능력 부족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강철의 부족으로 인해 철선 연구가 지체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최주명과 만나 당분간은 최대한 지원을 해줄 테니 최대한 빠르게 커다란 철선을 건조해보라고 할 생각이었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나쁘지 않지. 최대한 지원해줄 테니 성공할 때까지 만들어봐. 아. 물론 천급 함선 개량형의 설계는 끝내고 말이야.”
정성국이 흔쾌히 승낙하자 최주명과 주변 장인들의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아. 그리고 쾌속선도 속도를 더 올려봐. 쾌속선이라는 이름값을 해야 하지 않겠어?”
북미왕국의 배가 평균 10노트의 속도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평균 22노트로 빠르게 바다를 누비는 쾌속선은 이름처럼 쾌속선이라 부를 만했지만, 신규 건조되는 배의 속도가 확연히 올라간다면 쾌속선은 그보다 더욱 빨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정성국의 이야기에 최주명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말씀대로 이제 쾌속선으로 불리려면 평균 30노트쯤은 나와야겠지요.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정성국은 최주명의 패기 넘치는 대답에 잠시 움찔했다.
전생에 현대식 증기 터빈을 발명한 찰스 파슨스는 증기 터빈을 장착한 터비니아라는 실험 선박을 건조했고 이 배는 무척 빨랐지만 빠른 만큼 공동 현상을 비롯한 여러 문제가 발생했기에 이를 해결하느라 꽤 오랜 시간을 소모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미 배에 관해선 최주명과 장인들이 더 전문가나 다름없었기에 문제가 생겨도 이들이 알아서 해결할 것으로 생각해 최주명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 믿으마. 그럼 고생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