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화
연구청장이 집무실을 나선 후 커피 한 잔을 내려 향을 즐기던 정성국은 조심스럽게 집무실로 들어오는 호위대장을 보고 티테이블에 앉아 손짓하며 커피를 내어주었다.
이에 호위대장은 무척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커피를 맛보았고.
그렇게 집무실에서 조용히 커피를 즐기다가 정성국이 커피잔을 내려놓자 호위대장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인지 커피잔을 내려놓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전하. 새진주로 행차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갑자기 호위대장이 집무실을 찾은 이유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2주 후에 새나주-새진주 구간 철도 공사가 마무리되니 기차를 타고 한 번 가 볼 생각이네.”
정성국이 대답하자 호위대장은 살짝 안색을 굳히며 질문을 던졌다.
“으음...허면 2주 후에 바로 출발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새진주에 처음으로 도착하는 기차가 바로 왕실 전용 기차라는 뜻이고요?”
“아마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왜 그러나?”
정성국의 대답에 호위대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준비할 시간이 조금 부족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준비? 무슨 준비?”
정성국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호위대장이 곧바로 대답했다.
“전하께서 새진주에 행차하시는 만큼 안전을 위해 먼저 호위대를 보내 새진주역 주변을 철저히 통제하고 새진주에 주둔해 있는 경비대를 움직여 새진주의 치안을 유지하려면...”
이에 정성국은 질린 얼굴로 급히 호위대장의 말을 끊기 위해 입을 열었다.
“어휴. 됐네. 됐어.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하지만 호위대장은 걱정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새진주는 외국인들도 드나드는 곳 아닙니까. 더불어 새진주에도 철로가 깔린 이상 새진주의 주민들은 처음으로 도착하는 기차를 보기 위해 몰려들 가능성도 있고요.”
정성국은 처음 호위대장의 말을 듣고 과한 걱정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지만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뭐 외국인이야 어차피 격리되어 있으니 큰 문제야 없지만...자네 말처럼 새진주의 주민들이 실제로 기차를 보기 위해 몰려들 수는 있겠군. 그동안 기차를 이용해 철도 공사에 필요한 자제를 옮겼으니 분명 새진주에도 기차에 대한 소문이 알려지긴 했을 것 같긴 한데 텍사스 지역의 공사는 순차적으로 철로를 까는 것이 아닌 곳곳에서 철로를 깔고 있다고 했으니...”
가장 빠르게 철도를 부설하는 방법은 구간을 나누어서 동시에 공사하는 방법이었지만 그러려면 마차를 이용해 철로를 비롯한 각종 자재까지 수송해야 했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워 철로 인근에서만 구간을 나누어 철도를 부설했다고 한다.
그러다 새진주와 가까워지자 더욱 일정을 단축할 생각에 새진주의 마차를 총동원해서 텍사스 지역 곳곳에 철로를 옮기고 빠르게 철로를 깔고 있다고 개발청장이 설명했었고.
그런 만큼 새진주의 주민들은 철도 공사가 끝날 때까지 실제로 기차를 목격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기에 처음으로 기차가 도착한다면 이를 구경하기 위해 주민들이 몰려들 거라는 호위대장의 예상도 일리는 있었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호위대장은 반색하며 어떻게든 일정을 미뤘으면 하는 마음에 급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허니 전하께서 왕실 전용 기차를 타고 새진주에 도착하시면 분명 인파가 몰려들 겁니다. 그러니 미리 준비해야...”
“하지만 호위대원들도 왕실 전용 기차를 타고 함께 움직이니 괜찮을 것 같은데?”
당연히 왕실 전용 기차에는 여러 객차가 달려 있었고 이 중에는 호위대원들이 탑승하는 객차도 있었기에 호위대원들은 정성국과 함께 새진주로 이동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큰 상관 없지 않으냐는 정성국의 말에 호위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왕실 전용 기차를 타고 전하를 호위할 호위대원은 고작 200명뿐입니다. 허니 위험합니다.”
하지만 정성국은 200명도 과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200명의 호위대원이 빠져나가면 가뜩이나 일에 치여 사는 다른 호위대원들이 더 고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나 호위대원을 줄이라고 해봐야 호위대장이 결사반대할 것이 뻔했기에 정성국은 입을 열었다.
“아니. 200명이면 충분하네. 어차피 처음으로 철도가 개통되면 당연히 새진주의 주민들이 몰려들 테니 안전을 위해 새진주의 경비대도 함께 움직일 테니 그렇게 걱정할 것 없네.”
“하지만...”
“그리고 자네 말대로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가 새진주를 방문한다는 사실이 새진주에도 널리 알려질 테니 오히려 그게 더 위험하지 않겠나.”
안전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새진주에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는 정성국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기에 어떻게든 정성국을 설득하려던 호위대장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으음...”
“그러니 너무 일을 크게 벌리지 말도록 하게.”
정성국이 당부하자 호위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새진주 순행에 대한 호위 문제가 일단락되자 정성국은 호위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군사청장에게 듣자니 호위대를 대폭 늘리자고 건의했다면서?”
“그렇습니다. 전하. 새한성이 계속 발전하고 인구가 집중되고 있는 터라 호위대만으로 전하와 왕실 가족들, 그리고 궁을 경비하면서 동시에 새한성의 치안 유지까지 도맡아야 하다 보니 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호위대는 단순히 왕실 가족과 궁을 경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한성의 치안 유지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이는 새한성으로 천도하며 호위대의 인원을 대폭 증가시켰지만, 당시 궁은 건설 중이라 지켜야 할 면적이 적어 호위대의 인력이 남았기에 임시로 호위대에서 새한성의 치안 유지까지 도맡은 것이다.
하지만 점차 궁궐 안의 건물이 추가로 건설되고 새한성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호위대의 업무가 가중될 수밖에 없었기에 최근엔 새김포에 배치된 경비대 일부가 새한성에 배치되었지만 그래도 부족하다고 판단한 호위대장이었다.
이에 정성국은 호위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흠...그럼 호위대에서 새한성의 치안 유지 업무에 손을 떼면 굳이 호위대를 늘릴 필요는 없나?”
새한성 인근의 치안은 배치된 병력을 생각해보면 무척 좋은 편이긴 했지만, 점차 사람이 많아지면서 다툼이 발생하기 시작했기에 정성국 역시 치안 유지를 위해 경비대를 대폭 늘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새한성에 경비대를 상당수 배치하고 호위대는 본연의 업무로 돌릴 생각이었기에 정성국이 질문하자 호위대장은 잠시 생각해보고 입을 열었다.
“음...그렇다 하더라도 최소 3천 명까지는 호위대 정원을 늘렸으면 합니다. 그래야만 궁을 철통같이 경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호위대도 회전 단총을 부무장으로 장비했으면 합니다.”
호위대를 지금의 2배로 늘려야 한다는 호위대장의 주장에 정성국은 조금 많지 않은가 싶었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머무는 궁이니만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군사청장에게 이야기해서 올해 안에 호위대 인원을 3천 명까지 증원해 주겠네. 더불어 올해 안에 새한성의 치안 유지는 경비대에 맡길 테니 조금만 더 버텨주고. 그리고 회전 단총 역시 올해 안에 지급해주겠네.”
예상과는 달리 정성국이 시원스럽게 승낙하자 호위대장은 조금 안도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 * *
“오. 마침 잘 왔다.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정성국은 집무실을 방문한 박기동을 보고 반색하자 박기동은 고개를 갸웃했다.
“예? 무슨 일로요?”
“일단 기동이 네가 집무실까지 온 것을 보면 보고할 것이 있다는 거지? 네 용건부터 듣고 이야기하마.”
그러면서 정성국이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내자 박기동은 가슴을 쭉 펴면서 당당히 선언했다.
“아. 예. 크흠. 이번에 새로 2천 마력에 가까운 증기기관 개발에 성공해서 보고드리려고 왔습니다. 스승님.”
“헉! 그게 정말이냐?”
박기동의 선언에 정성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박기동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뭐 당장은 딱히 써먹을 데가 없긴 합니다만...”
그동안은 새롭게 증기기관을 개발하면 기존의 범선이나 기범선을 완전히 기선으로 개조하는 데 사용하곤 했지만 이미 북미왕국에서 가장 큰 배인 천급 함선에도 예전에 개발한 1천 마력의 증기기관 2개를 탑재해 기선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급 함선 이후로 더 큰 선박은 목재의 한계로 경제성이 나빠 굳이 제작할 이유가 없었고.
해서 박기동이 써먹을 데가 없다고 투덜거리자 정성국이 중얼거렸다.
“으음...천급 함선을 뛰어넘는 철선을 건조하는 건 아직 무리 일려나?”
“최근에 건조한 300톤급 철선이 별다른 문제 없이 운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주명이에게 들었습니다만...”
최주명을 비롯한 조선 장인들은 철선을 건조하기 위해 처음으로 50톤급의 철선을 건조해 시범 운영하며 철선 제조의 경험을 쌓았고 그 이후로도 조금씩 크기를 키워 철선을 건조하고 있었고 정성국 역시 이를 내심 관심 두고 있었기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 작년에 건조한 그 300톤급 철선 말이지?”
“예. 어느 정도 연구가 진척되었다고는 들었는데 곧바로 천급 함선을 뛰어넘는 거대한 철선을 건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주명이는 아직 2천 마력의 증기기관에 대해 모르나?”
이에 박기동은 고개를 저었다.
“알죠. 처음 2천 마력 증기기관을 시범 제작했을 때 알렸습니다만 별다른 이야기는 없던데요?”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일단 최주명과 한번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번에 개발한 2천 마력 증기기관은 꾸준히 생산해 둬. 주명이에게 이야기해서 이제는 배의 속력을 올려보라고 할 테니.”
“배의 속력을요?”
“그래. 당장 배의 크기를 키울 수 없다면 배의 속력을 올리면 되니까.”
당장 조선 기술의 한계로 배의 크기를 키울 수 없다면 배의 속력을 올려 더 많은 물자를 운송하면 그만이었다.
지금까지야 쾌속선을 제외하면 북미왕국 선박 대부분은 보통 10노트의 속력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정성국은 이 기회에 천급 함선을 비롯한 주력 선박들의 속도를 끌어올릴 생각이었고.
그런 정성국의 이야기에 박기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건 그렇네요. 2천 마력 증기기관 2개를 장착한 천급 함선이라...그게 가능하면 무척 대단하겠는데요?”
어차피 이 부분은 최주명과 이야기해야 하는 문제라 고개를 끄덕인 정성국은 남 일처럼 이야기하는 박기동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그렇지. 그리고 이건 기차도 마찬가지야. 이번에 개발한 2천 마력의 증기기관을 장착한 새로운 기관차를 개발해 봐. 원래 널 불러서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기차를 만들어 보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새로운 증기기관까지 개발되었으니 잘됐네.”
“빠르게요?”
“그래. 새진주까지 철도 공사가 곧 끝난다고 하는데 현재로선 밤낮으로 운행해도 4일이나 걸리는 것이 좀 불만족스러워서 말이야. 새진주까지의 거리가 먼 만큼 더 빠른 기차가 필요해.”
이에 박기동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어째 기차의 속도를 2배 가까이는 올리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요?”
“정확해. 시속 100km를 목표로 해 보라고.”
전생에서 처음 증기기관차가 등장했을 때는 약 20km/h의 속도로 철도를 달렸지만, 빠르게 발전해 약 100년 만에 증기기관차는 최고 속도 200km를 찍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 속도는 국가 간의 자존심을 건 속도 경쟁 속에 나온 만큼 큰 의미는 없었지만, 증기기관차의 황혼기에는 평균 150km/h의 속도로 운행되었고.
그런 만큼 지금부터 박기동을 갈아 넣는다면 빠르게 발전하지 않을까 싶어 정성국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박기동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 스승님. 일단 노력을 해보겠는데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기차의 속도를 올리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어요.”
“흠...그래?”
“예. 특히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제동이 쉽지 않아서요. 안전을 생각하면 무턱대고 속도만 올릴 수가 없거든요.”
이에 정성국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속도가 올라가면 제동거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긴 하겠구나.”
“그렇죠. 그리고 그만큼 부품의 마모도 심할 테고요. 일단 새로운 기관차를 만들어 보고 또 기차의 속도를 최대한 올려 보겠습니다만...당장 속도를 2배로 증가시키긴 현실적으로 어렵죠. 차라리 더 많은 기관사를 양성하는 편이 빠를 겁니다.”
즉, 기차 속도를 2배로 만드는 것보다는 기관사를 비롯한 승무원을 2배로 모집해 밤에도 이동하는 것이 빠르다는 박기동의 말에 정성국은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박기동의 말처럼 안전은 중요했고 특히 기차가 빠르게 이동하다 사고가 난다면 정말 대형 사고였기에 정성국은 수긍했다.
“쩝...어쩔 수 없지. 알았다. 그리고 또 보고할 것은 없고? 경유기관이라던가?”
정성국이 박기동을 빤히 바라보자 박기동은 부담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딱히 보고할 건 없습니다. 전에 보고드린 대로 경유기관은 순조롭게 출력을 높이고 있는 터라 조만간 건설용 기계의 동력 기관을 증기기관에서 경유기관으로 바꿀 생각입니다.”
연구청에서 경유기관을 개발한 이후 경유기관의 발전 가능성을 파악한 박기동과 장인들은 경유기관을 개량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그 성과가 차츰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반색했다.
“아. 그래?”
“예. 아무래도 보일러가 필요한 증기기관보다는 차지하는 공간도 적고 움직이기 전 보일러를 예열해야 하는 증기기관보다야 경유기관이 운용하기 편하니까요. 문제라면 연료의 보급이 문젠데...”
석탄이야 곳곳에 매장되어 있었고 당장 증기기관을 돌리기 위해 곳곳에 저장고를 건설해 두었지만, 석유는 주로 새한성에서만 소모했기에 그렇지 않아 박기동이 걱정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어차피 새진주까지는 철도가 뚫렸으니 기차로 석유를 옮기면 그만이지. 석유 저장고야 건설하면 그만이고.”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