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329화 (329/850)

329화

정성국은 자신을 찾아온 행정청장의 보고에 안색이 환해졌다.

“그래? 드디어 캐롤라이나 지역의 성비는 맞춰졌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캐롤라이나 지역으로 이주시킨 흑인들의 경우 성비가 극단적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노예상들에게 꾸준히 흑인 여성 노예를 사들여 해방해왔고, 비로소 성비를 맞췄다는 말에 정성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나마 한시름 놨군. 그럼 캐롤라이나의 흑인들은 모두 결혼을 한 건가?”

이에 행정청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성비만 대략 맞췄을 뿐이지 강제로 결혼을 시킬 수야 없는 노릇 아닙니까.”

“아. 그렇기야 하지. 그래도 노총각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

정성국의 대답에 행정청장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그거야 그렇습니다. 일단 지금까지 노예 상인을 통해 사들여 해방한 흑인 여성들은 대부분 제 짝을 만나 가정을 꾸린 상태이니까요.”

일단 북미왕국에 도착한 여성 노예들은 곧바로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지만 당장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 여성들에게 너희들은 이제 노예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알아서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 수야 없는 노릇이었기에 행정청에서는 이들이 지낼 숙소를 마련해 두었다.

여성들은 이 숙소에서 지내며 북미왕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배워야 하는 말과 글을 비롯한 여러 지식을 교육받았고 이러한 교육 도중 숙소 인근에서 기웃거리는 남성 중 한 명을 골라 가정을 꾸리곤 했다.

북미왕국으로서는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가정을 꾸리길 원했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노예로 잡힌 여성 대부분은 눈앞에서 가족을 잃고 노예로 지내다 북미왕국에서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기에 이 기회에 새 출발을 하려는 생각에, 그리고 홀로 사는 것보다는 가정을 꾸리는 것이 행정청으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이런 남성들의 구애를 받아들였다.

물론 가족을 잊지 못해 결혼을 거부하는 여성들도 있었고 이들은 숙소에 남아 모든 교육을 수료한 후 행정청이나 교육청에 채용되어 격무에 시달려야 했고.

이러한 사정을 행정청장이 자세히 설명하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로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행정청장이 무어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 정성국의 눈치를 살피자 정성국은 행정청장이 하려던 말을 짐작하고 입을 열었다.

“계속 노예를 사들이자고?”

“...그렇습니다. 전하. 흑인 인구를 증가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요. 해서 이제부턴 흑인 남성 노예들도 함께 사들여 해방해 캐롤라이나 지역에 정착시키는 것이 어떤가 싶습니다만...”

“흐음...”

행정청장의 말에 정성국이 고민하기 시작하자 행정청장은 곧바로 덧붙였다.

“북미 동해안 지역은 무척 넓고 이 지역을 순조롭게 개발하려면 지금의 인구와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인구만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전하께서도 북미 동해안 지역을 완벽히 장악하고 나면 유럽 이주민들을 받아들이실 생각 아니십니까.”

행정청장의 말에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캐롤라이나 지역은 주로 흑인들과 원주민들만으로 발전시키기로 한 만큼 이곳의 인구 증가가 더딜 것을 걱정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아프리카 대륙에 제대로 된 나라가 있고 그곳에서 꾸준히 이주민들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지금처럼 꾸준히 노예를 사들여 해방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일단 지금 북미 동해안 지역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 캐롤라이나 지역이긴 했다.

꾸준히 흑인 여성 노예들을 사들여 해방한 덕분에 흑인 인구만 하더라도 거의 2배나 증가했고 캐롤라이나 지역은 잉글랜드에서 제대로 개발하기 전이었기에 다른 지역에 비해 원주민들도 많은 편이었다.

물론 캐롤라이나 지역의 원주민들도 잉글랜드인들과 접촉하며 전염병이 돌아 인구가 확 줄긴 했지만 다른 지역과는 달리 땅 문제로 인해 잉글랜드인과 마찰을 빚진 않았기에.

하지만 흑인과 원주민 인구를 모두 합쳐봐야 10만이 채 되지 않았고 이 숫자로는 넓은 캐롤라이나 지역을 개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정성국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는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유럽에서 이주민을 받을 생각이었고 물론 정성국의 존재로 인해 역사가 어느 정도 틀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유럽에서 전쟁이 사라지진 않을 것 같기에 혼란스러운 조국을 등지고 안정된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려는 유럽인이 꽤 있으리라고 예상했고.

그렇게 되면 결국 인구수에서 밀리는 캐롤라이나 지역만 발전이 더뎌질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캐롤라이나 지역의 발전을 위해 흑인들을 노예로 생각하는 유럽인들을 무턱대고 캐롤라이나 지역에 정착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라 정성국은 한참을 생각하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끙...알겠네. 일단은 허락하지.”

정성국이 노예무역을 썩 탐탁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행정청장은 속으로 안도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영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전하.”

정성국은 그런 행정청장의 대꾸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됐고. 다른 지역들은 어떤가?”

이에 행정청장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잽싸게 대답했다.

“세 지역 역시 서서히 성비가 맞춰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하더라도 2천 명에 가까운 백인 여성 노예들을 사들여 해방해 세 지역에 나누어 정착했습니다. 또한, 잉글랜드, 에스파냐에서 북미왕국으로 이주를 결정한 여성들도 약 500명가량 되고요.”

행정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호. 그래? 협상이 완료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생각보다 이주한 여성들이 많네?”

잉글랜드와 에스파냐는 북미왕국에서 여성 이주민을 원하자 북미 동해안 지역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주민 한 명당 일정 금액을 받길 원했다.

하지만 저들이 원하는 대로 금액을 지급했다간 훗날 대규모로 이주민을 받아들일 때 발목이 잡힐 것을 우려한 외무청에서 한참을 협상한 끝에 북미왕국이 원하는 대로 아무런 조건 없이 이주민을 모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는 당장 북미왕국에서 직접 잉글랜드나 에스파냐로 배를 보내 이주민을 모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이들 왕실에서 지정한 상인들에게 이주민 업무를 맡기겠다는 것과 이주민들의 뱃삯은 모두 북미왕국에서 대신 지급할뿐더러 이주민을 태우고 새진주에 도착한 배 역시 북미왕국의 물품을 살 수 있게 허용한다고 이야기했기에 당장 잉글랜드나 에스파냐로선 상인들에게 이 권리를 팔아 이득을 취할 수 있었기에 협상 타결이 가능했다.

“유럽에서 북미왕국의 물품은 무척 고가에 팔리고 이주민의 숫자에 따라 살 수 있는 물품의 양이 달라지니 상인들이 최선을 다해 이주민을 모집한 모양입니다.”

이에 정성국이 조금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강제로 데려오진 않았겠지?”

이에 행정청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입니다. 혹시 몰라 행정청 관리들이 이주를 결심한 여성들과 면담을 해서 확인도 했고요.”

물론 북미왕국의 상황에서는 여성 이주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긴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주민 스스로가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길 원해야 북미왕국에서 잘 정착해 살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강제, 혹은 거짓말로 이주민을 모집했다면 돌려보내겠다고 이야기해두었을뿐더러 상인들도 첫 거래에서 북미왕국에 밉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지 그런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다고 행정청장이 설명하자 정성국은 안도했다.

“그럼 다행이고.”

“그리고 이미 유럽에선 북미왕국이 무척 부유해서 평민들도 도자기를 사용할 정도라고 알려진 탓에 북미왕국으로 이주해 북미왕국 남성과 결혼한다면 더는 굶주릴 일은 없지 않겠느냐는 상인들의 이야기에 이주를 결심했다고 하는군요.”

행정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행정청장을 바라보았다.

“음? 그게 무슨 소린가? 잉글랜드나 에스파냐의 백성이 굶주림을 피해 북미왕국으로 이주를 결심했다고?”

물론 현시대가 소빙하기라 작황이 썩 좋지 못한 경우가 많긴 했지만, 이 시기 유럽에 기근이 발생했다는 기억은 없기에 정성국이 의아해하자 행정청장이 쓴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두 국가 모두 세금이 조금 과한 모양이더군요. 더불어 생필품의 가격도 생각외로 높은 편이라 평민들이나 하층민들의 살기 쉽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걷는다는 사실을 떠올린 정성국은 조금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중얼거렸다.

“아...그럼 이주한 여성들이 잘살고 있다는 소문까지 알려지면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려는 여성들이 더 많아지려나?”

이에 행정청장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충분히 가능성 있긴 합니다만...뭐 매년 이렇게만 여성들이 유입되면 3, 4년 정도면 충분히 성비가 맞춰질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다만 이주한 여성들에 대한 소문을 슬쩍 흘려 북미왕국에 대한 인식을 더 좋게 만드는 것도 나쁠 것은 없어 보이는데...”

그제야 행정청장은 정성국의 의도를 알아채고 질문을 던졌다.

“아. 나중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훗날 유럽인들의 이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요?”

“그렇지.”

“하지만 어차피 이주민을 모집하는 상인들이 알아서 떠들어주지 않겠습니까? 저들은 최대한 많은 이주민을 모집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테니까요.”

행정청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렇긴 하네. 그보다 세 지역에도 여성 이주민이 유입되고 있는데 세 지역의 분위기는 어떤가? 아직도 원주민 남성들과 다툼이 잦은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당분간 여성들의 유입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조급해하며 원주민 여성들과 결혼하기 위해 애를 쓰던 잉글랜드인들은 행정청에서 공지한 후 몇 차례에 걸쳐 여성들이 유입되자 더는 이전처럼 막무가내로 원주민 마을을 방문해 원주민 여성에게 구애하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행정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안도하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다행이군. 원주민 남성들의 불만도 상당해서 조금 걱정이었는데. 그보다 총기 보유 허가서의 발급과 총기 등록은 끝냈나?”

“그렇습니다. 전하. 작년에 대대적으로 공지한 덕분에 머스킷을 소지하고 있던 잉글랜드인들은 모두 행정청에 자신 소유의 총기를 등록했습니다.”

애초에 정성국은 작년에 북미왕국 전 지역에 총기 보유를 허용할 생각이었지만 조금 신중해야 한다는 몇몇 청장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일단 북미 동해안 지역에만 시범적으로 허용했다.

일단 북미 동해안 지역의 주민들은 머스킷을 보유하고 있었을뿐더러 이곳과 본토는 아직 뱃길로만 연결되어 있었기에 청장들도 이를 환영했고.

그렇게 북미 동해안 지역의 주민들에게 총기 보유를 허용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관리 없이 총기를 풀 수야 없는 노릇이었기에 행정청에서는 총기 보유 허가서를 발급했고 이 등록 기간 안에 총기 보유 허가서를 발급받고 가져온 머스킷에 총기 등록 번호를 새기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최소 5년의 노역 형에 처한다고 알렸기에 머스킷을 소지하고 있던 잉글랜드인들은 머스킷을 들고 행정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몇 정이나 되나?”

“대략 1만 정가량 되었습니다.”

“휘유. 생각보다 많은데?”

행정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잉글랜드인의 수가 3만이 넘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총기 소지 비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에 행정청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잉글랜드 식민지 시절에는 원주민들과 분쟁이 잦았고 잉글랜드가 직접 군대를 파견해 치안을 철저히 유지한 것도 아니다 보니 안전을 위해 많은 남성이 알음알음 총기를 사들인 것 같더군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리고 신식 소총은 생각보다 안 팔린다면서? 역시 가격 때문인가?”

정성국이 민간에 신식 소총을 허용하긴 했지만, 의도적으로 가격을 비싸게 책정했다.

그래야 총기를 분실하지 않도록 제대로 관리할 거라는 생각과 총알 가격이 값비싸야 홧김에 총을 사용하는 일이 줄어들 거라 여겼던 탓이다.

덕분에 부유한 새한성 인근 백성들을 기준으로 신식 소총을 사려면 석 달 치의 수입을 털어 넣어야 했고 총알 한 발을 사는 데만 하더라도 최소 한 달 생활비는 털어 넣어야 했다.

이러니 북미 동해안 지역의 잉글랜드인들은 신식 소총의 가격이 더욱 부담될 수밖에 없어 신식 소총이 거의 팔리지 않는다고 정성국은 생각했지만, 행정청장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가격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머스킷과는 달리 신식 소총은 매년 행정청에 들러 신식 소총과 총알을 실제 보유하고 있다고 확인받은 후 총기 보유 허가증을 갱신받아야 하며 만약 신식 소총을 분실하는 순간 뒷감당이 어려우니 신식 소총을 꺼리는 것 같습니다.”

머스킷은 분실한다 해도 행정청에 신고만 하면 그만이었지만 신식 소총의 경우 분실하는 순간 신식 소총을 외부로 빼돌렸다는 의심을 받고 경비대에 철저한 조사를 받아야 하며 총기 관리 소홀로 처벌과 막대한 벌금까지 내야 하니 잉글랜드인들은 신식 소총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정성국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제약을 풀어주면 순식간에 신식 소총이 유럽으로 퍼질걸?”

“그거야 그렇지요. 신식 소총의 경우 지금처럼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봅니다. 다만...머스킷의 경우는 처음 총기 보유 허가증만 발급받으면 10년에 한 번씩만 갱신하면 그만이라 잉글랜드인들은 오히려 머스킷과 흑색 화약을 팔아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행정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머스킷 때문에 흑색 화약을 소량 생산해 판매하는 것은 이해해도 이제 와서 머스킷 공방까지 만든다? 낭비 같은데...”

“그렇긴 합니다. 더불어 머스킷의 경우 당장 위급할 때 사용하기 어려운 면도 있고요. 하지만 해수를 쫓는 데는 오히려 부담 없이 발사할 수 있는 머스킷이 더 낫다고 하니...”

그 말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흠...그건 강평화와 좀 의논해보고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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