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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27화 (327/850)

327화

“국왕 폐하! 자메이카에서 긴급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음?”

집무실에서 홍차를 마시던 찰스 2세는 소중한 티타임 중에 허겁지겁 들어온 보좌관을 살짝 째려보았지만, 보좌관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들고 있던 보고서를 티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건 누벨 프랑스로 떠난 프랑스 함대에 관련된 보고입니다. 또한, 이것은 북미왕국 해군이 서인도제도의 프랑스 영토인 생도맹그를 공격해 초토화했다는 보고입니다.”

보좌관의 말에 놀란 찰스 2세는 급히 찻잔을 내려놓고 보고서를 들어 올렸다.

먼저 찰스 2세는 북미왕국 해군이 생도맹그를 공격했다는 보고서를 확인하고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북미왕국은 확전을 원하지 않고 그대로 프랑스와 종전 협상을 하길 원했기에 지금껏 가만히 있었지만, 프랑스가 계속 협상을 피하는 만큼 북미왕국이 해군을 움직이지 않겠느냐는 예상은 진작에 했었으니까.

그렇다면 북미왕국 해군이 공격할 곳은 가까운 서인도제도뿐이었고.

그렇게 되면 결과야 뻔했고 예상대로 생도맹그는 초토화되고 그곳에 배치되어 있던 프랑스 함대와 각종 해적선, 사략선들도 모조리 침몰하거나 도망친 것으로 확인된다는 보고서에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보고서를 내려놓은 찰스 2세는 또 다른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보고서를 읽으면서 점차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보고서를 다 확인한 이후로는 경직된 표정으로 보고서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허...이건 좀 놀랍군. 북미왕국이 승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별다른 피해 없이 프랑스 함대를 모조리 제압했다고?”

“그렇습니다. 수에서 너무 차이가 나는 만큼 북미왕국이 밀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누벨 프랑스로 떠난 프랑스 함대의 규모를 확인한 찰스 2세와 보좌관은 내심 북미왕국이 승리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숫자에서 너무 차이가 나는 만큼 쉽지 않은 전투가 될 수도 있다고 여겼다.

헌데 결과를 보니 북미왕국의 압승에 가까웠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찰스 2세는 보고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프랑스 함대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뜻은...현재의 전열함으로는 북미왕국을 상대할 수는 없다는 뜻이로군.”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것 참...”

이번 해전의 결과는 결국 전열함으로는 북미왕국의 군함을 상대할 수 없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찰스 2세는 무척 고민이 많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찰스 2세는 북미왕국의 군사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내려 노력하고는 있었다.

더불어 북미왕국은 북미 대륙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북미왕국의 기조는 언제든 바뀔 수 있었고 아무리 현재 북미왕국과 우호적이라 한들 나라 간의 관계는 언제든 변할 수 있었기에 찰스 2세는 북미왕국이 너무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부담스러웠다.

동시에 저들의 군사 기술을 받아들인다면 유럽 내에서 자신들을 막을 국가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해서 찰스 2세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후장식 대포와 후장식 소총의 원리는 같겠지?”

비용 문제로 북미왕국의 후장식 소총을 수입 문제를 보류했던 찰스 2세가 다시 이를 거론하자 보좌관은 찰스 2세가 후장식 소총을 연구해 후장식 대포를 개발하려는 생각임을 파악하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북미왕국에 후장식 소총을 수입해 후장식 대포를 개발하시려는 생각이시군요?”

이에 찰스 2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해전의 결과를 보게. 전열함만 따져도 8척과 40척의 전투였어. 헌데 북미왕국이 일방적으로 승리한 셈이지. 그러니 저들이 사용하는 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 잉글랜드는 유럽 최강국이 될 수 있네.”

그 말에 보좌관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물론 후장식 소총을 수입해 연구하면 이를 후장식 대포를 개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북미왕국 해군의 강력함은 대포가 아닌 포탄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후장식 소총을 연구한다고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보좌관 역시 후장식 소총을 수입해 분해한다면 후장식 화포의 개발 자체는 수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단순하게 후장식 소총을 대형화하면 후장식 대포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금속 제련 기술과 금속 가공 기술 등이 부족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야 있지만 연구하다 보면 결국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고.

하지만 그래 봐야 쇳덩이를 빠르게 날리는 것에 불과했기에 이를 지적하자 찰스 2세는 자신이 놓친 것을 파악하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후장식 소총이 표적에 박혀 폭발한다는 보고는 전혀 없었으니까.

“아. 하긴. 그건 또 그렇군. 흐음...”

찰스 2세가 아쉬워하고 있을 때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일단 기술자들과 장인들이 북미왕국의 포탄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포탄을 연구 중이니 기다려 보시지요.”

북미왕국의 무기를 직접 확인한 이후 잉글랜드가 그냥 손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기술자와 장인들을 불러모아 수집한 북미왕국의 정보를 알려주고 후장식 소총 개발과 작렬탄으로 명명한 북미왕국의 포탄을 이미 연구 중이었기에 일단은 기다려 보자는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루이 14세를 떠올리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그래야겠군. 그보다 내 충고를 무시하고 함대를 파견한 루이 14세가 이 소식을 듣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참으로 궁금한데...?”

찰스 2세의 입가에 걸린 비웃음을 확인한 보좌관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네덜란드와 단독으로 협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난리를 쳤던 루이 14세 아닙니까.”

자신의 친서를 무시하는 행동을 보이는 루이 14세의 반응에 찰스 2세는 곧바로 네덜란드에 사절을 보냈고 결국 네덜란드와 나쁘지 않은 조건에 종전 협상을 체결했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루이 14세는 잉글랜드 대사를 불러 엄청나게 비난했고 찰스 2세에게도 북미왕국이 그렇게 두렵냐는 내용의 편지를 보낼 정도였기에 현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관계는 꽤 험악했고.

이런 상황에서 루이 14세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잉글랜드였기에 찰스 2세는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큭큭. 생각해보니 이 사실을 우리가 전해줘야 하지?”

“그렇습니다. 서인도제도를 공격한 사실은 나중에 알려지겠지만 뉴펀들랜드 해전의 상황은 프랑스 함대 전체가 그대로 북미왕국 해군에 항복한 상황이라 프랑스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보고 받지 못할 거라면서 포로들이 쓴 편지들을 대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보좌관의 대답에 찰스 2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했다.

“그래? 그럼 빨리 그 편지들을 프랑스로 보내게. 그리고 잉글랜드 대사에게 루이 14세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꼭 보고하라고 전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 * *

찰스 2세의 명령을 받은 프랑스에서 머물던 잉글랜드 대사는 루이 14세에게 알현을 요청했지만, 루이 14세는 이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어차피 잉글랜드 대사도 뉴펀들랜드 해전의 결과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그런 루이 14세의 반응을 속으로 비웃으면서 긴급한 일이라고 알렸고 결국 루이 14세를 만날 수 있었다.

왕좌에 삐딱하게 앉아 오만한 표정으로 잉글랜드 대사를 바라보던 루이 14세는 잉글랜드 대사가 인사하자 대충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래. 무슨 일인가? 긴급한 일이라면서?”

그런 루이 14세의 반응에 잉글랜드 대사는 언제까지 저런 자세를 할지 내심 궁금해하면서도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오늘은 북미왕국의 부탁 때문에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북미왕국이라고?”

“북미왕국이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해서 말입니다.”

“편지? 아.”

잉글랜드의 대사가 북미왕국을 거론하자 어리둥절했던 루이 14세는 긴급한 일이라면서 알현을 청한 잉글랜드 대사가 북미왕국의 편지를 가져왔다는 말에 누벨 프랑스에 프랑스 육군이 상륙해 이에 기겁한 북미왕국이 급히 협상을 요청하는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폭소했다.

서인도제도에서 돌던 소문도 그렇고 찰스 2세 역시 무조건 프랑스가 밀릴 거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을뿐더러 찰스 2세와 잉글랜드는 프랑스가 북미왕국에 대규모 함대를 보낸 일로 호들갑을 떨며 이번 전쟁에서 빠졌으니 더더욱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푸하하하. 그럼 북미왕국 국왕의 친서겠군?”

루이 14세의 말에서 그의 생각을 짐작한 잉글랜드 대사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애를 쓰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닙니다. 듀케인 제독을 비롯한 북미왕국에 잡힌 포로들의 편지이지요.”

“뭐?! 포로?”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경악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 하는 루이 14세를 보고 잉글랜드 대사는 품에서 편지 여럿을 꺼내 시종에게 건네주었고 시종은 조심스럽게 그 편지들을 뜯어 루이 14세에게 바쳤다.

루이 14세는 그 편지들을 잽싸게 낚아채 빠르게 확인했다.

글씨체와 인장이 아브라함의 것임을 확인한 루이 14세는 바로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았고 편지에 프랑스 함대가 북미왕국 함대를 상대로 패했다는 부분에서 루이 14세는 편지를 든 팔에 힘을 가득 주어 덜덜 떨면서 중얼거렸다.

“이...이건...”

그런 루이 14세의 분위기에 알현실은 침묵만이 감돌았고 루이 14세는 뒷장에 적힌 내용까지 확인한 후 편지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이건 말도 안 돼. 패배한 것도 모자라 함대 전체가 항복했다고? 듀케인 제독이 프랑스 함대를 고스란히 북미왕국에 가져다 바쳤단 말인가!”

해전에서 패할 수는 있었다.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동안 프랑스 해군은 네덜란드 해군을 상대로 몇 번이고 패했지만, 아브라함은 함대를 잘 추슬러 피해를 최소화했던 인물인데 그런 아브라함이 함대를 추슬러 다시 본국으로 퇴각한 것이 아닌 북미왕국에 항복하고 프랑스 함대를 고스란히 북미왕국에 넘겼다니 도저히 이 편지를 믿을 수 없었던 루이 14세였다.

그런 루이 14세의 반응에 잉글랜드 대사는 속으로 루이 14세를 비웃으면서도 애써 표정을 관리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만큼 북미왕국의 군함은 빠르고 강력하니까요. 후퇴하다 차례차례 침몰당하는 것보다야 병사들의 목숨이라도 건져보겠다는 판단 아니겠습니까. 과연 듀케인 제독답게 올바른 선택을 한 셈이지요. 전열함보다 더 빠른 해적선과 사략선조차 북미왕국 군함의 추격을 따돌리지 못했는데 무슨 수로 퇴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익!”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듯한 잉글랜드 대사의 발언에 루이 14세는 더욱 분노하며 씩씩거리기 시작했고 프랑스인들은 쥐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잠시 즐기던 잉글랜드 대사는 슬쩍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보아하니 우리가 입수한 이 소식도 아직 프랑스에 보고된 것 같지는 않아서 알려드립니다만...뉴펀들랜드 해전이 일어난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북미왕국의 해군이 서인도제도의 생도맹그를 공격해 그곳에 배치된 선박들을 모조리 침몰시키고 해안가를 초토화했다는군요.”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루이 14세는 순간 멈칫했다.

“뭐라고?! 그런 보고는 없었는데?”

“듣기로 북미왕국은 서인도제도의 프랑스 소유의 섬 전체를 공격할 생각이었으나 일단 프랑스가 북미왕국의 힘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생도맹그만 공격하고 일단 퇴각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조만간 보고가 올라오지 않겠습니까.”

루이 14세는 유들유들한 태도의 잉글랜드 대사를 보고 분노하다 시종에게 소리쳤다.

“이이익! 당장 콜베르를 불러오게!”

루이 14세의 명령에 곧바로 시종 한 명이 고개를 숙이며 알현실을 나갔고 루이 14세의 심복이나 다름없는 콜베르를 부른다는 것은 이 상황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은 잉글랜드 대사는 슬슬 알현실을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여겨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은 다시 한번 프랑스와 협상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는 프랑스와 북미왕국 사이의 협상을 중재해줄 의향이 있고요. 그러니 북미왕국과 협상을 결정하신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지요.”

“으음. 잘 알겠네. 하지만 북미왕국과의 협상은 조금 생각해보고 결정하도록 하겠네.”

당장 잉글랜드에 중재를 요청해야 할 상황에서 루이 14세는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자존심을 챙기려 들었기에 잉글랜드 대사는 속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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