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퍼퍼퍼퍼펑!’
정성국은 궁 안에서 굉음과 함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을 보며 감탄했다.
“오. 생각보다 아름다운데? 모양이 참으로 화려하기도 하고.”
“그래요?”
정성국의 감탄에 전아라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저 불꽃놀이에 사용되는 폭죽은 전아라와 강평화가 연구해 새로 만든 폭죽이었기에 정성국의 감탄은 곧 자신을 향한 칭찬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전아라의 얼굴을 확인한 정성국은 살짝 웃으면서 옆에서 입을 벌리고 뚫어지게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들의 향연을 바라보고 있는 정안문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그럼. 어떠냐. 안문아. 저 폭죽이 네 엄마가 만든 건데 정말 대단하지?”
정성국의 질문에 정안문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정말 대단해요!”
“에이. 우리끼리 있을 땐 아빠라고 부르라니까...”
“어...그게...”
정성국의 말에 정안문은 슬쩍 전아라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이에 전아라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돼요. 그건, 아버지라는 호칭도 전 좀 불만인데요.”
이에 정안문은 정성국을 보고 어깨를 으쓱한 뒤 다시 밤하늘로 고개를 돌렸고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전아라를 바라보고 말했다.
“아바마마? 여긴 조선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나리야.”
이에 하얀 들꽃의 손을 잡고 멍한 표정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던 정나리가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네?”
“아빠 해봐.”
이에 정나리는 정성국을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빠!”
“어이쿠. 이쁜 것.”
정성국은 정나리의 옆구리를 들어 껴안았고 정나리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깔깔깔.”
그렇게 잠시 정나리를 껴안고 빙글빙글 돌던 정성국은 정나리를 내려놓고 전아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봐봐. 얼마나 귀여워. 아버지라는 호칭하고 아빠라는 호칭은 울림이 전혀 다르다니까?”
전아라는 정나리를 무척 예뻐했고 정나리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정성국이 말을 걸자 애써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안 돼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니까요.”
“끙...”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저 아이들이 꼬박꼬박 존댓말 하는 것도 귀엽긴 했기에 어깨를 으쓱하면서 다시 밤하늘에서 펑펑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그보다 저렇게 폭죽을 터트리니 새해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 같은데?”
새한성에서 갑자기 불꽃놀이가 벌어진 것은 바로 정성국의 지시 때문이었다.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왕실에서 벌이는 행사는 정오에 시작되는 만큼 새해가 되었다는 것을 알릴만한 행사를 따로 기획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고 그래서 불꽃놀이를 기획했다.
처음에는 새한성 인근에 거대한 종이라도 만들어 새해가 되면 종을 칠까도 생각했었지만 거대한 종을 만든다 쳐도 새한성의 백성들이 모두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또 아니었기에 멀리서도 볼 수 있는 불꽃놀이를 떠올린 것이다.
해서 전아라와 강평화는 정성국의 설명을 듣고 이런 축제에 사용되는 폭죽을 더욱 개량해 새로운 불꽃놀이용 폭죽을 만들었고.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보통은 날이 밝은 후에 축제가 시작되면서 새해 분위기가 났는데 말이죠.”
전아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얀 들꽃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헌데 차라리 오늘 축제가 끝나고 터트리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오늘은 새해였고 해가 뜨면 축제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그 이후에 터트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하얀 들꽃의 말에 정성국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지. 그래서 오늘 저녁에도 다시 터트릴 생각이고.”
“아. 축제는 끝났다는 의미로 말이지요?”
“응.”
“그러면 뭐...”
하얀 들꽃은 배시시 웃으며 다시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으로 시선을 돌렸고 정성국은 슬쩍 자리를 이동해 전아라의 옆에 서서 입을 열었다.
“그보다 저거...비싸?”
“싸진 않죠. 화약에 능숙한 작업자가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흐음...”
전아라의 답변에 정성국이 무언가 생각에 잠기며 신음을 흘리자 전아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대량 생산해서 새해마다 다른 북미왕국 도시에서도 폭죽을 터트리고...유럽 왕실이나 청나라에 팔아먹으면 돈도 좀 벌 수 있을 것 같고 해서?”
폭죽을 사용하는 불꽃놀이의 기원은 중국이었고 13세기 말에는 화약의 존재가 유럽에 전해지며 불꽃놀이 역시 함께 알려져 15세기경에는 유럽 전체에 퍼졌다.
그러면서 왕족의 결혼식이나 대관식 같은 궁중 행사에 폭죽이 쓰이기 시작했고.
그런 만큼 기존의 폭죽보다 훨씬 화려하고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리는 아름다운 북미왕국의 폭죽은 분명 수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이를 이야기하자 전아라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그러려면 엄청 큰 공방을 세워야 할걸요? 흑색 화약도 따로 만들어야 하고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라 그 물량을 감당하려면 어지간한 사람 수로는 어려울 거에요.”
지금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만들기 위해 3개월 넘게 여러 사람이 매달렸다는 것을 설명하자 정성국은 당장은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끙...당장은 어렵겠네. 알았어.”
* * *
새해를 축하하는 축제가 모두 끝나고 잠시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정성국은 곧바로 청장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그래. 북미 동해안 지역의 물자 수송은 어떻게 되어가나.”
다른 지역은 안정적이지만 북미 동해안 지역의 물자 부족으로 인해 물가가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행정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이 관리청장을 보고 질문을 던지자 관리청장은 즉각 대답했다.
“2함대와 4함대 선박 대부분이 투입되었고 전하의 명령을 받고 새진주에서 베라크루즈로 외무청 관리를 보내 에스파냐의 선박 10척과 500명의 선원을 고용했다는 보고와 에스파냐의 선박 10척은 곧바로 수송 업무에 투입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더불어 500명의 선원은 곧바로 매사추세츠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보고도 함께 올라왔고요.”
“그래? 근데 500명의 선원이면...”
“못해도 매사추세츠에 정박해 있는 범선 10척 이상은 충분히 운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매사추세츠에서도 따로 선원을 모집할 거라고 들었으니 곧 상황이 나아질 겁니다.”
관리청장의 막힘없는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다행이군. 하지만 언제까지 전선이 민간 수송 업무에 투입될 수야 없는 법인데...”
이에 군사청장도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관리청장은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전하. 다행히 2함대의 재건이 끝나 이제 새진주에서는 주로 수송선을 건조할 계획일뿐더러 4함대에서 많은 배를 노획한 덕분에 이 배들도 기범선으로 개조한다면 충분히 상황이 해결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정성국은 연구청장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다행인데...노획한 배를 개조할 증기기관을 빠르게 만들 수 있으려나?”
이에 연구청장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 이미 공방을 최대한 가동해 250마력 증기기관과 600마력 증기기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반년 정도면 30척에 탑재할 증기기관을 모두 생산해 새진주에 보낼 수 있을 겁니다.”
기존의 생산 물량에서 추가로 생산해야 했기에 조금 걱정스러웠던 정성국은 연구청장의 장담에 고개를 끄덕였다.
“휴. 그러면 다행이군.”
“문제라면 선원입니다. 기범선의 선원이라는 것은 결국 증기기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된다는 것이니까요.”
관리청장이 끼어들자 정성국은 그게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상관없지 않나? 어차피 에스파냐에서 데려온 선원들이야 1년 단위로 계약했다면서? 어차피 기범선으로 개조하는 것도 하루아침에 개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나. 일단 북미왕국 선원들이 운용하는 선박부터 개조하고 에스파냐의 선원들이 운용하는 선박은 저들과의 계약이 끝난 이후에 개조하면 그만이지.”
“그 중엔 잉글랜드인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관리청장이 무엇을 우려하는지 눈치챈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미 대부분의 제약은 다 풀기로 했잖아? 그래서 군사청에서는 각 지역에 훈련소를 건설 중이고 교육청에서는 제외했던 일부 과목을 더 가르치기로 했고. 그러니 개의치 말게. 우리가 제대로 저들을 대우해준다면 굳이 잉글랜드로 돌아가거나 정보를 흘리지는 않을 테니.”
정성국의 말에 청장 중에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지만, 몇몇은 이 결정을 조금 우려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정성국이 생각하기에는 2, 4함대가 계획대로 배치된 이상, 그리고 이번 일로 북미왕국의 군사력이 저들의 예상보다 대단하다는 것이 유럽 내에 알려질 것이 분명한 이상 더는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에스파냐가 증기기관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챈 이상 에스파냐가 증기기관을 연구한다면 분명 다른 유럽의 나라들도 상황을 알아차릴 것이 뻔해 보였기에 굳이 증기기관의 정보를 감추겠답시고 잉글랜드인들을 심하게 차별할 것까지는 없어 보이기도 했고.
관리청장은 정성국이 마음속으로 확고히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깨닫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보다 아직 프랑스에서 별다른 반응은 없지?”
정성국의 질문에 조용한 곰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2함대가 움직인 후 서인도제도의 프랑스 외교관들과 협상을 할 생각이었지만 프랑스 본토에서 직접 함대를 파견한 상황이다 보니...”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생도맹그를 공격한 후 잉글랜드의 도움을 받아 서인도제도의 외교관과 협상을 벌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루이 14세가 직접 함대를 보내 북미왕국을 적대하기로 한 이상 루이 14세가 보낸 외교관과 협상을 해야 뒤탈이 없었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결국, 프랑스 본토에서 보낸 전권을 가진 외교관과 협상해야겠지. 그리고 아마 지금쯤 잉글랜드에 소식이 들어갔을 테고.”
“그렇습니다. 전하. 허니 빨라야 봄에서 여름쯤에나 협상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흠...알겠네. 그럼 다음으로는...”
그렇게 정성국과 청장들은 항상 그래왔듯 자정이 되기 전까지는 회의실을 탈출하지 못했다.
* * *
웅크린 늑대는 얀센의 말에 이채를 띠었다.
얀센이 시간을 달라고 하면서 에스파냐의 배에 올라탔다는 보고에 혹시나 했지만, 용케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을 설득해 에스파냐의 외교관과 함께 돌아올 줄은 몰랐으니까.
“호오...왜 에스파냐의 외교관분과 함께 오셨나 했더니 에스파냐와 함께 전열함을 구매하겠다는 뜻입니까?”
그렇게 웅크린 늑대의 생각 속에서 돈 많은 호구에서 나름대로 능력 있는 돈 많은 호구로 평가가 바뀐 얀센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귀국이 노획한 프랑스 전열함을 모두 구매하겠습니다.”
“온전한 전열함 17척과 반파된 전열함 14척을 모두 구매하겠다는 뜻이지요?”
웅크린 늑대는 에스파냐의 외교관을 보며 다시 한번 확인했고 에스파냐의 외교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에 웅크린 늑대는 웃으며 얀센과 에스파냐의 외교관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뭐 좋습니다. 우리로서는 노획한 전열함 전부를 판매할 수 있으니 나쁠 것은 없지요. 그럼 자세한 협상으로 들어가 볼까요?”
웅크린 늑대가 씩 웃으며 속으로는 이들에게 얼마나 뜯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얀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두 가지만 배려해주셨으면 합니다.”
“말씀하시지요.”
“대금을 3년에 걸쳐 나누어 지급했으면 합니다. 당장 그 큰 금액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얀센의 말이 끝나자 에스파냐의 외교관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저들의 반응에 웅크린 늑대는 잠시 고민하다가 얀센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흐음...그럼 다른 하나는 뭡니까?”
“반파된 전열함을 수리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는 만큼 계약서에 서명하는 즉시 반파된 전열함 전부를 베라크루즈 항으로 이동시켰으면 합니다만...”
그 말에 웅크린 늑대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얀센과 에스파냐의 외교관은 슬쩍 그의 시선을 피했고 그런 둘의 반응에 웅크린 늑대는 속으로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흠...대금의 일부를 받은 뒤에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달라는 말씀이신데...”
이에 얀센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제가 본국으로 돌아가 전열함 구매 대금을 가져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시간이 아까워서 그렇습니다.”
여기서 지금 이 자리에서 계약서에 서명한다고 해도 얀센이 돌아가 본국에서 구매 대금을 가져오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옆에서 에스파냐의 외교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못해도 6개월 넘게 반파된 채로 방치된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면 배를 수리하는 것이 더 힘들 겁니다. 그러니...”
이에 웅크린 늑대는 손을 들어 에스파냐 외교관의 말을 끊고 잠시 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습니다. 그럼 그러시지요.”
얀센과 에스파냐의 외교관은 첫 번째 요구는 몰라도 두 번째 요구는 북미왕국에서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헌데 웅크린 늑대가 결국 승낙하자 무척 놀란 표정으로 급히 되물었다.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이에 웅크린 늑대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설마 두 국가가 북미왕국에 사기 치는 일은 없을 거로 생각하니까요.”
웅크린 늑대의 말은 결국 나중에 돈을 내지 않는다면 강제로 돈을 받아내겠다는 선언과도 같았기에 얀센과 에스파냐의 외교관은 조금 경직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럼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물론입니다. 꼭 대금을 지급할 겁니다.”
그런 반응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웅크린 늑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협상을 시작해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