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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23화 (323/850)

323화

장 툴롱은 포로수용소 입구 근처 건물의 조그마한 방 안에서 초조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프랑스인이 들어왔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온 프랑스인을 살펴보던 장은 무척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 듀케인 제독님 아니십니까?”

아브라함은 자리에 앉으려다 어정쩡하게 멈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한데. 자네는...”

“아. 누벨 프랑스의 행정관인 장 툴롱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눈앞의 사내가 자신을 아는 눈치였기에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지만, 기억에 없는 인물이었기에 조금 미안한 듯한 얼굴로 물었다.

“음...이거 미안하군.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던가?”

이에 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예전에 먼발치서 제독님의 얼굴을 보았을 뿐이지요.”

“그런가.”

장의 말에 아브라함은 자리에 앉았고 장 역시 자리에 앉아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아브라함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헌데 제독님께서 왜 여기에...”

“자네가 북미왕국에 요청했다고 들었는데?”

한창 북미왕국 병사들의 감독 아래 자신들이 지낼 포로수용소를 건설 중에 외무청 관리가 자신을 불러내 혹시 다른 프랑스인 포로를 만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고 아브라함은 그 프랑스인 포로가 누벨 프랑스 출신이라는 것을 알자 곧바로 만나겠다고 대답했다.

해서 아브라함은 북미왕국에서 준비한 창문이 가려진 마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고.

그런 아브라함의 대답에 장은 자신이 외무청 관리에게 요청했었던 사실을 떠올리고 그 듀케인 제독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유를 깨닫고 탄식했다.

“맙소사...설마 북미왕국 해군과 맞서 싸운 함대를 지휘하신 분이...”

이에 아브라함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내가 지휘한 함대였지. 국왕 폐하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누벨 프랑스 지역에 육군 병력을 상륙시키라고 하셨고 이를 위해 북미왕국의 해군과 전투를 치렀지만 역부족이었네. 사전에 서인도제도에 퍼진 북미왕국에 대한 소문을 입수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했었지만...무용지물이었지.”

“역시나...”

아브라함의 대답에 장이 탄식하자 아브라함은 슬쩍 그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음? 자네도 저들의 군사력을 알고 있나 보군?”

“예. 선전포고한 후 곧바로 저들의 함대가 퀘벡에 나타났으니까요. 저들의 포격에 선착장 주변의 건물이 하나둘 파괴되는 광경을 보면서...저항할 생각을 버리고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의 대답에 아브라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가. 그럼 설명이 쉽겠군. 화력에서 너무 차이가 나고 저들의 배는 바람을 무시하고 움직이니 도저히 저들의 배를 잡을 방도가 없더군. 일방적으로 거리를 두고 두들겨대니. 어떻게든 해보려 했지만, 저들은 계속해서 거리를 두고 일방적으로 공격할 뜻을 보였기에 무의미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결국 백기를 올릴 수밖에 없었네.”

그런 아브라함의 반응에 장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물론 북미왕국은 북미 대륙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여기고 프랑스가 애써 건설한 식민지인 누벨 프랑스를 인정하지 않았고 본국에서는 누벨 프랑스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으니 언젠가는 전쟁이 일어났으리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번에 북미왕국이 갑작스럽게 선전포고한 것은 이로쿼이 연맹을 이용해 북미왕국을 견제하려다 그 일이 고스란히 북미왕국에 알려져 전쟁이 벌어진 만큼 장은 누벨 프랑스의 총독부 관리로서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여겼기에, 그리고 오히려 누벨 프랑스의 병사들은 곧바로 항복해서 별다른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아브라함이 지휘한 함대는 북미왕국 함대를 상대로 맞서 싸우다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 같았기에 죄책감이 든 장은 곧바로 사과한 것이다.

하지만 장의 속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아브라함은 다시금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죄송할 것이 무언가. 다 내가 무능한 탓이지.”

아브라함은 프랑스 제독 중 가장 유능하고 경험 많은 제독이었는데 저런 말을 하자 장은 그를 위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진작 북미왕국과 교류하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했다면 분명 상황은 달랐을 겁니다. 이번 해전의 결과는 듀케인 제독님께서 제대로 된 정보 없이 북미왕국 해군과 맞섰기에 나온 결과일 뿐입니다.”

장의 말에도 아브라함은 회의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글세...그 이후로 몇 번이고 생각해봤지만, 현 상황에서는 도저히 북미왕국의 군함을 상대할 방법이 없어. 더 빠르고 저들의 포격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돌격선을 수십 척 건조하면 또 모를까. 하지만 국왕 폐하께서 갑작스럽게 명령을 내리신 것을 보면...미리 북미왕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더라도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을 걸세. 아. 어쩌면 내가 저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곧바로 항복했을 테니 희생자는 줄어들 수 있었을 것 같군.”

그 말을 끝으로 자조적인 미소를 띠고 잠시 허공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을 보고 장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조그마한 방에서 잠시 침묵이 감돌았을 때 아브라함은 장과의 대화를 위해 여기까지 왔음을 깨닫고 살짝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지. 그보다 이곳에서의 포로 생활은 어떤가?”

아브라함의 반응에 장은 방 안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습니다. 식량도 충분히 제공해주고 있으며 저들은 우리가 저 외곽 목책을 넘어가지 않는 한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 우린 매일같이 씻으라고 철저히 간섭하던데...”

장의 대답에 아브라함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장은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건 저희도 그랬습니다. 제대로 씻지 않으면 전염병이 돌 우려가 있다면서 매일같이 씻고 옷을 갈아입고 빨래해야 했지요.”

“끙...”

“다만 그것도 차차 익숙해지더군요. 지금에 와서는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딱히 말을 안 해도 씻지 않으면 좀 찝찝한 느낌이 들어 목욕탕에 들러 깨끗이 씻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곤 하지요.”

“그래?”

과연 매일 씻고 빨래하는 것에 익숙해질 수가 있는가 하는 표정을 하는 아브라함을 보고 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특히 저희는 포로수용소 안의 모든 건물을 완성한 후 근처에서 매일 석탄을 캐는데 그러다 보면 땀도 많이 흘리고 검댕도 묻어 꽤 지저분해지거든요. 그러니 저들이 주는 비누를 이용해 깨끗이 씻는 것이 필수지요.”

장의 말에 아브라함은 조금 표정을 굳히고 중얼거렸다.

“음...포로수용소 안의 건물들을 직접 짓는 거야 우리가 당분간 지낼 장소이니 이해는 하는데 광물까지 캔다고?”

“그렇습니다. 매일 할당량을 채워야 하지요.”

“그럼 노역이라는 건데...”

분명 북미왕국은 제대로 포로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포로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킨다면 이건 이야기가 달랐다.

이에 아브라함이 인상을 쓰고 있을 때 장은 그런 아브라함의 표정을 보고 그의 생각을 짐작하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반적인 노역과는 조금 다릅니다. 유럽이었다면 단순히 포로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북미왕국에선 포로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기보다는 제대로 대우해주니까요.”

“대우해준다고?”

노역인데 제대로 대우해준다는 게 무슨 소린가 싶어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장을 바라보자 장이 대답했다.

“예. 매일 채워야 하는 할당량은 결국 포로수용소에서 소모하는 식량과 물품들에 따라 매겨집니다. 즉, 광물이라도 캐서 이 빚을 갚으라는 뜻이지요.”

보통 포로일 때 제공받는 식량과 물품 등은 훗날 몸값 협상을 할 때 어느 정도 반영되는 것이 관례인 만큼 할당량을 채움으로써 몸값을 낮출 수 있다는 장의 이야기에 아브라함은 그렇다면 노역을 못 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그런 아브라함의 반응에 장이 덧붙였다.

“그리고 그런 구조인 만큼 할당량 이상을 캐게 되면 혜택도 있고요.”

“혜택이라고?”

장의 말에 조금 당황한 아브라함을 보고 장이 슬쩍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들의 물가가 생각보다 저렴한 편이라 할당량이 적은 편입니다. 덕분에 포로들은 하얀 밀빵과 신선한 고기, 그리고 담배를 제외한 기호품도 즐길 수 있습니다.”

장의 말에 아브라함은 혹시 장이 자신을 놀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포로수용소에서 고기와 기호품이라니.

하지만 장은 농담하는 기색이 아니었기에 아브라함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허...그럼 이곳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가능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물론 와인이 아니라 조금 아쉽긴 합니다만...북미왕국 특유의 깔끔한 증류주도 나쁘지 않습니다. 잉글랜드인들이 만든 맥주도 뭐...목을 축이기엔 나쁘지 않고요.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 보급 마차가 오는 날이면 그날은 축제나 다름없지요.”

그러면서 장은 보급 마차가 오는 날은 오전만 일해 할당량만 딱 채우고 조그마한 축제를 연다고 덧붙이자 아브라함이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그걸 내버려 둔다고?”

“예. 탈출하려 하지 않는 이상 전혀 간섭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면서 장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자 아브라함은 이를 듣고 고개를 저었다.

“이것 참...이야기를 들어보니 말만 포로수용소지 실제로는 포로수용소라기보단 일종의 폐쇄적인 광산 도시나 다름없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건강해진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매일 앉아서 펜대만 굴리다가 꾸준히 몸을 움직이고 잘 먹고 잘 씻고 잘 자니 이렇게 근육도 붙었지요.”

장의 말에 아브라함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째 행정관치고는 몸이 좋다 했더니 원래 그렇진 않았던 모양이군.”

“하하하. 그렇습니다. 원래는 조금 앙상한 편이었지요.”

그 후로 장은 프랑스 본국의 최신 소식을, 아브라함은 포로수용소 생활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시간을 보냈고 서로 적당히 궁금증을 풀었을 때 장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외무청 관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본국에서 무조건 협상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하던데...제독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아브라함은 조금은 씁쓸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이곳까지 끌고 온 최신 전열함이 무려 40척일세. 그리고 내가 항복함에 따라 최신 전열함 40척이 사라졌고 우리 프랑스 해군 전체가 엄청난 타격을 입은 셈일세. 그러니 본국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무조건 북미왕국과 종전 협상을 할 수밖에 없을 걸세.”

본국의 상황은 암울했지만, 외무청 관리의 말처럼 포로인 자신들로서는 나쁜 상황만은 아니었다.

해서 장은 조금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까? 잘하면 1년 안에 돌아갈 수도 있겠군요?”

“아. 협상이 빨리 끝난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간혹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이를 알리면 다들 좋아하겠군요.”

처음에만 하더라도 포로수용소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지만, 점차 포로수용소의 체계가 잡히고 북미왕국은 나름 관대하게 포로를 대해주었으며 열심히 일하면 일주일에 하루는 고기와 술을 마실 수 있었으니 아브라함의 말처럼 포로수용소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일종의 광산 도시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며 지냈기에 분위기는 꽤 좋은 편이었다.

다만 누벨 프랑스 출신 포로들 대부분은 가족들이 본국으로 돌아갔기에 내색은 하지 않아도 내심 가족이 본국에서 잘 지내는지 걱정하며 가족을 그리워했기에 포로 생활이 기약 없이 길어지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는 했고.

헌데 조금만 더 참으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이를 알린다면 그 친구들도 잘 버틸 수 있을거라고 여겨 장이 말하자 아브라함은 조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곧바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지는 말게. 협상이 얼마나 길어질지야 모르는 일이니까.”

아브라함의 말에 장은 웃음을 멈추고 아브라함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음...제독님께서는 종전 협상이 길어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아브라함은 어깨를 으쓱했다.

“북미왕국은 에스파냐와 잉글랜드와 교류하며 유럽의 사정에 나름대로 밝다고 알고 있네. 그런 만큼 현 본국의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테고...협상에서 시간을 끌면서 최대한 많은 이득을 취하려 들 걸세. 협상이 길어질수록 불리한 건 우리 프랑스니까.”

“...그렇긴 하지요. 그럼 현 상황을 알리고 협상이 끝나면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야겠군요.”

“그러는 것이 나을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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