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새진주에 있던 웅크린 늑대는 이번에 매사추세츠에서 도착한 배에 네덜란드의 사절단이 타고 있다는 보고에 곧바로 네덜란드의 사절단과 만났다.
외무청 회의실에서 네덜란드 사절단의 총 책임자인 얀센 반 마이어와 만나 인사하고 커피를 마시며 잠시 담소를 나눈 웅크린 늑대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얀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 먼 곳까지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탐색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웅크린 늑대의 말에 얀센도 나쁠 것이 없었기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잠시 웅크린 늑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귀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이렇게 대서양을 건너 이곳까지 왔습니다.”
아시아에서의 무역이 끊긴 이후 그동안 별다른 교류가 없던 네덜란드가 갑자기 사절단을 보냈고 더불어 현재 네덜란드의 사정이 썩 좋지 않다는 사실에 웅크린 늑대는 이번 네덜란드 사절단의 목적을 충분히 짐작했기에 얀센의 말에 침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웅크린 늑대였다.
“그렇군요. 동맹이라...”
어차피 북미왕국도 프랑스와 전쟁 중이니 네덜란드의 동맹 제의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거라 예상했던 얀센의 생각과는 달리 웅크린 늑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얀센은 웅크린 늑대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우리 네덜란드도 귀국처럼 프랑스와 전쟁 중인 상황입니다.”
“예. 그 사실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왜 동맹을 맺길 원하는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얀센의 말에 웅크린 늑대는 잠시 턱을 매만지다 말했다.
“...적의 적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북미 대륙의 떠오르는 강국인 북미왕국과 유럽의 해상 강국인 우리 네덜란드가 힘을 합친다면 루이 14세의 야욕을 막기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처음 대서양을 건널 때만 하더라도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어 프랑스 해군을 조금이나마 분산시킬 목적이었지만 이미 북미왕국 해군이 프랑스 함대를 모두 처리해 프랑스 해군의 전력이 절반 가까이 사라진 이상 굳이 동맹에 목멜 필요는 없었다.
이미 잉글랜드의 한 어선을 빌려 네덜란드 병사를 태우고 이 사실을 곧바로 네덜란드 본국에 알리라고 해 두었으니 네덜란드 본국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효과적으로 프랑스를 압박할 것이 분명했다.
더불어 프랑스 역시 본토의 방어와 무역로 보호를 위해 프랑스 해군을 시급히 복구해야 하는 만큼 네덜란드와 전쟁을 계속하지는 않을 것 같았고.
다만 북미왕국의 군사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어떻게든 북미왕국과 군사동맹을 맺는다면 그 어떤 유럽 국가도 함부로 네덜란드를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여겼기에 얀센이 루이 14세를 비난하며 동맹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했고 웅크린 늑대는 얀센의 이야기를 듣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귀하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습니다만...이미 루이 14세의 야욕은 막힌 것 아닙니까?”
“예?”
“귀하께서는 뉴펀들랜드 섬에도, 그리고 매사추세츠 지역에도 들렀을 테니 이미 우리 북미왕국의 4함대가 프랑스 함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파악하셨을 것 아닙니까.”
“으음...”
웅크린 늑대의 말에 딱히 할 말이 없었던 얀센이 신음을 흘릴 때 웅크린 늑대가 덧붙였다.
“아무리 프랑스의 국력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전열함만 46척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당분간 몸을 사리지 않겠습니까.”
“46척? 제가 듣기로 이번 프랑스 함대에 소속된 전열함은 총 40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뉴펀들랜드 해전의 결과를 정확히 알고 있는 얀센의 대답에 웅크린 늑대는 피식 웃으며 그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 우리가 누벨 프랑스를 점령한 이후 우리는 프랑스와 계속 협상을 시도했습니다만 프랑스는 우리와 협상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기에 그들을 압박하고자 최근 북미왕국의 2함대가 서인도제도의 생도맹그를 공격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곳에 배치되어 있던 전열함 6척은 침몰했고요.”
웅크린 늑대의 설명에 얀센은 몹시 놀란 표정으로 급히 질문을 던졌다.
“맙소사...서인도 제도의 프랑스 섬들을 공격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북미왕국은 굳이 프랑스와의 전쟁을 길게 끌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일단은 생도맹그를, 그래도 반응이 없다면 서인도제도의 모든 프랑스 영토를, 후엔 남미 대륙의 식민지인 프랑스령 기아나까지 공격할 예정이었습니다. 뭐 이젠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말입니다.”
“으음...”
무척이나 강력한 북미왕국의 해군이 서인도제도와 남미의 프랑스 세력까지 공격할 예정이었다는 웅크린 늑대의 말에 잔뜩 흥분했던 얀센은 웅크린 늑대의 마지막 말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얀센의 반응에 웅크린 늑대는 슬쩍 미소를 짓고 덧붙였다.
“그리고 잉글랜드나 에스파냐의 외교관들에게 듣기로는 유럽은 수많은 나라가 복잡하게 얽혀 전쟁이 잦다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귀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그러한 다툼에 우리도 휘말린다는 뜻이라 아무래도 섣불리 동맹을 맺기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요.”
바로 그 점을 원해 북미왕국과의 동맹을 원했던 얀센이었으나 북미왕국은 생각보다 유럽의 정세에 밝은 듯 보였고 이러한 유럽의 정세에 동맹이라는 이유로 휘말리기 싫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자 얀센은 한발 물러섰다.
“허면 동맹은 어렵더라도 국가 간 교역은 어떻습니까?”
얀센의 말에 웅크린 늑대는 웃으며 대답했다.
“교역이라면 환영입니다. 특히 우리 북미왕국의 도자기를 처음 유럽에 알린 것도 네덜란드의 상인들이라고 알고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웅크린 늑대가 그렇게 이야기해주자 얀센은 활짝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네덜란드 상인들이 아시아에서 북미왕국의 도자기를 발견해 유럽으로 가져와 북미왕국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지요.”
“다만 북미 동해안 지역의 안정을 위해 당분간은 이곳 새진주에서만 교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른 곳은 정박 자체를 불허하니 그 점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어차피 돈이 되는 사치품들은 수도 인근에서 생산되어 이곳으로 운반되는 만큼 다른 지역에선 각종 사치품을 대량으로 구하는 것은 어렵다는 사정을 설명하자 얀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자세한 사항을 논의해보도록 하지요. 먼저...”
* * *
누에바 에스파냐의 안토니오 부왕은 보좌관의 보고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북미왕국에서 배를 용선하는 것을 넘어 선원을 모집한다고?”
“그렇습니다. 부왕 전하.”
에스파냐는 현재 북미왕국의 대서양 방면에 민간 상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북미왕국이 프랑스와 전쟁에 돌입한 이후 물자 수송을 도와줄 수 있다고 제의했었다.
다만 북미왕국은 에스파냐의 호의는 고맙지만 괜찮다고 거절했었고.
헌데 최근 북미왕국 외무청 관리가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가장 큰 항구인 베라크루즈를 방문해 그곳의 관리에게 1년 한정으로 배를 용선하고 선원들을 모집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베라크루즈의 관리는 누에바 에스파냐와 북미왕국 간의 우호 관계를 위해 이를 흔쾌히 허락하자 외무청 관리는 후한 조건으로 10척의 배와 500명에 가까운 선원을 모집했다고 한다.
이러한 보좌관의 설명에 안토니오 부왕은 표정을 굳히고 중얼거렸다.
“북미 동해안 지역이 급격히 발전되면서, 그리고 프랑스와의 전쟁이 겹치면서 물자를 수송하는 배가 모자란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설마 그동안 철저하게 통제해왔던 북미왕국 배를 운용하는 선원을 외국인을 고용한다고? 그 정도로 북미 동해안 지역의 물자 부족이 심각한 상황인 건가?”
안토니오 부왕의 말에서 그가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보좌관이 급히 입을 열었다.
“그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모집하는 선원은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북미왕국 특유의 배가 아닌 범선을 몰 거라고 하더군요.”
“범선? 북미왕국이 범선을 만든다고?”
“그게...”
베라크루즈의 관리 역시 배를 용선하는 것은 몰라도 선원을 대량으로 모집하는 것은 무척 의외라고 여겨 외무청 관리에게 질문을 던졌고 외무청 관리는 뉴펀들랜드 섬 인근에서 프랑스 함대와 해전이 벌어졌다는 사실과 이 해전에서 승리하고 범선 일부를 노획했지만 당장 이를 운용할 선원이 부족해 이렇게 모집한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놀란 베라크루즈 관리는 뉴펀들랜드 해전에 대해 자세히 물었고.
그 후 외무청 관리에게 들었던 내용을 모두 보고서에 적어 급히 부왕에게 보고서를 올렸기에 보좌관이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 안토니오 부왕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정말 루이 14세가 누벨 프랑스를 되찾기 위해 그런 대규모 함대를 보냈었다고? 그리고 북미왕국 4함대에 박살 났고?”
“그렇답니다. 전열함이 절반 넘게 침몰하거나 반파되면서 답이 없다고 생각한 프랑스 제독이 항복한 모양입니다. 덕분에 꽤 많은 범선을 노획했고 이를 움직이기 위해 선원을 모집했다고 합니다.”
보좌관의 설명에 안토니오 부왕은 등을 의자에 기대며 중얼거렸다.
“맙소사...루이 14세가 그런 선택을 할 줄은 몰랐는데? 프랑스는 이미 네덜란드와 전쟁 중이지 않나?”
“그렇지요. 그래서인지 북미왕국의 외무청 관리도 대체 왜 프랑스에서 대규모 함대를 보낸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답니다.”
보좌관의 대답에 안토니오 부왕은 루이 14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인지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그로서는 프랑스와 북미왕국이 계속해서 전쟁을 지속했으면 하는 마음에 퍼트린 소문과 프랑스와 루이 14세를 걱정한 찰스 2세의 편지가 도리어 루이 14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해 결국 마음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는 없었기에 단순히 북미왕국과의 교류가 없었기에 루이 14세가 북미왕국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생각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겠지. 확실히 의외야. 어째 루이 14세는 북미왕국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한 모양인데...”
“그런 것 같습니다.”
“뭐 루이 14세의 선택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건 그거고. 중요한 것은 루이 14세의 오판 덕분에 그동안 프랑스가 애지중지하던 프랑스 해군이 거의 반 토막 났다는 거겠지?”
안토니오 부왕의 말에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거기에 최근 북미왕국 2함대가 생도맹그 해안가를 초토화하고 그곳에 배치된 프랑스 함대와 해적선, 사략선들도 박살 내버렸으니 당장은 서인도제도에서도 세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테고요.”
2함대가 새진주를 떠났다는 사실을 파악한 에스파냐에서는 생도맹그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곧바로 배를 보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북미왕국이 예전 누에바 에스파냐의 서해안을 초토화한 것처럼 생도맹그 해안가 역시 시설 대부분은 모두 파괴되어 있었을뿐더러 가장 골치였던 토르투가 섬의 항구 역시 폐허가 되었으며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항구를 복구하기 위해 나서기는 했지만 제대로 복구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더불어 프랑스 함대가 일방적으로 북미왕국 함대에 깨졌다는 사실과 북미왕국 함대가 생도맹그를 공격한 만큼 프랑스는 종전 협상을 끝낼 때까지는 섣불리 이곳에 전열함을 배치하거나 프랑스 본국에서 물자를 동원해 이곳을 복구하기는 어려웠기에 안토니오 부왕은 지금이 아니면 프랑스를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몰아내지는 못하리라고 보았다.
다만 군사를 동원해 히스파니올라 섬을 완전히 장악하더라도 훗날 프랑스가 생도맹그를 되찾기 위해 함대를 보낸다면 이를 막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을 알기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루이 14세의 오판으로 프랑스 해군의 전력은 깎여나갔고 훗날 함대를 보내는 것도 어려워 보였기에 안토니오 부왕은 잠시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그렇지. 그러니 이건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고.”
“그럼...”
“함대와 병사를 준비하도록 하게. 이 기회에 생도맹그와 토르투가 섬을 완전히 장악하고 프랑스 세력을 서인도제도 동쪽으로 몰아내야겠어.”
안토니오 부왕의 선언에 보좌관은 조금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괜찮을까요?”
그런 보좌관의 반응에 안토니오 부왕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연히 히스파니올라 섬은 우리 에스파냐의 영토일세.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슬금슬금 기어들어 와 눌러앉은 도둑을 다시 내쫓을 뿐이고. 그러니 본국에서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을걸세. 본국에서 뉴펀들랜드 해전의 결과를 알게 되면 오히려 본국 차원에서 네덜란드와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압박할 수도 있겠지. 이 기회에 프랑스에 빼앗긴 스페인령 네덜란드를 다시 가져올 수도 있는 거고.”
더불어 안토니오 부왕은 이번 일을 크게 확대하지 않고 서인도제도 내에서 흔히 있었던 국지적인 분쟁으로 치부하려고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 에스파냐 단독으로 움직이는 거라고 덧붙이자 보좌관은 안토니오 부왕이 마음을 굳힌 것으로 판단하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부왕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