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장은 정기적으로 찾아와 불편한 점이나 필요한 물품들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외무청 관리와의 대화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후 슬쩍 질문을 던졌다.
“요새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시끄러운 것 같은데...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이에 외무청 관리는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주변이 조금 시끄럽지요? 근처에 포로수용소가 건설되는 중이라 그렇지요.”
“예? 포로수용소를요? 갑자기 왜...?”
외무청 관리는 자신의 대답에 놀란 장을 보고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놓친 것을 깨닫고 작게 탄성을 질렀다.
이 포로수용소는 지속해서 포로들을 수용했기에 한계에 다다랐고 그 때문에 이번에 포로가 된 프랑스 병사들은 전부 다른 곳에 분산해서 관리하기로 한 터라 이들이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거기에 병사들이 포로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도 않았고 포로들은 간단한 단어 외엔 북미왕국 말을 할 줄 몰랐으니 상황을 알 도리가 없었고.
“아. 귀하는 모르셨겠군요. 최근 프랑스 본국에서 누벨 프랑스를 탈환하기 위해 함대를 보냈었습니다.”
어차피 이 사실을 숨길 생각은 없었던 외무청 관리가 대답해주자 장은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외무청 관리의 담담한 표정에 장은 굳이 외무청 관리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그럼 포로수용소를 건설한다는 뜻은...”
“예. 뉴펀들랜드 섬 인근에서 대규모 해전이 벌어졌고 그 해전에서 북미왕국이 승리한 덕분에 포로가 무척이나 많아졌지요. 해서 여러 곳에 포로수용소를 건설 중이고...이 근처에도 짓고 있는 터라 그렇습니다.”
이곳에 수용하지 않고 따로 포로수용소를, 그것도 여러 곳에 짓는다는 점과 외무청 관리가 포로가 무척이나 많다고 이야기하는 점이 걸린 장이 물었다.
“포로가 무척이나 많다면...?”
이에 외무청 관리는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대략 2만 7천 명쯤 됩니다.”
“...맙소사.”
그 정도의 규모라면 본국에서 대규모 함대와 지원 병력을 보냈다는 뜻이었기에 총독의 말처럼 어떻게든 저항하며 시간을 끌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장은 잠시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저들의 공격이 예상보다 빨랐고 동맹 부족들은 모두 등을 돌렸기에 반년 넘게 버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과 결국 본국의 지원군은 북미왕국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리고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외무청 관리가 입을 열었다.
“뭐 귀하의 입장에선 나쁜 소식은 아닙니다.”
“예?”
외무청 관리의 말이 무슨 뜻인가 싶어 장이 고개를 갸웃하자 외무청 관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프랑스는 지금껏 우리와 협상하려 들지 않았습니다만...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프랑스는 결국 종전 협상을 해야 할 테고 이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귀하를 비롯한 포로들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아...”
확실히 프랑스 포로만 하더라도 3만 명에 가까웠고 북미왕국의 군사력을 확인한 이상 본국에서는 이 전쟁을 더 끌지는 않을 것이 확실했기에 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외무청 관리를 보고 급히 입을 열었다.
“혹시 이번에 잡혔다는 포로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본국에서 왔으니 본국의 사정을 조금 듣고 싶어서 말입니다.”
“흐음...일단 위쪽에 요청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전하. 새진주에서 드디어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이미 2함대에 명령을 내려두었기에, 그리고 슬슬 2함대의 보고가 올라올 시기가 되었기에 정성국과 군사청장은 새진주에서 보고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보고가 올라왔다며 환한 얼굴로 보고하는 군사청장을 보고 정성국은 내심 안도했다.
일단 북미왕국의 전선이 강력하긴 한데 아직 전열함과는 붙어본 적이 없었을뿐더러 2함대는 신규 함대나 다름없었기에 조금 불안하기도 했었다.
다만 지금껏 얼마 안 되는 수송선으로 북미 동해안의 물자 운송을 감당할 수 없어 2함대와 4함대의 전선들도 수송 업무에 투입되었는데 프랑스와 전쟁이 벌어지면서 만약을 대비해 일부가 묶여버리자 예상대로 물자가 조금씩 부족해지기 시작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프랑스를 협상장으로 불러내야 했기에 고민 끝에 명령을 내렸었다.
헌데 군사청장의 얼굴을 보니 결과가 좋아 보였기에 정성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군사청장이 건넨 보고서를 확인했다.
“휴우. 예상했던 대로 별다른 피해 없이 생도맹그 해안가를 초토화시켰다라...이 정도만 해도 프랑스는 우리가 서인도제도를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했을 테니 조만간 종전 협상을 진행하겠지?”
“그렇습니다. 프랑스는 무조건 협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군사청장은 씩 웃으면서 대답하고 다른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넸다.
“음? 이건...”
“이정운 4함대 사령관이 올린 보고서입니다. 보고서가 도착한 시기가 맞았는지 함께 보고 되었습니다.”
“그래?”
정성국은 꽤 두툼한 보고서를 받아들고 앞 장을 읽어보다 기겁했다.
“이건...프랑스가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왔었다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뉴펀들랜드 섬에 4함대 일부를 배치해두었던 이정운 4함대 사령관이 직접 출전해 프랑스 함대를 공격해 결국 저들의 항복을 받아냈고요.”
정성국은 빠르게 보고서를 읽다가 신음을 흘리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맙소사...80척 규모의 함대라고?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전쟁 중이었는데? 설마 전쟁이 끝난 건가?”
정성국이 알기로 전생에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1678년까지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전생과 동일하게 흘러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북미왕국의 존재로 인해 이 전쟁의 흐름이 바뀌지는 않으리라고 판단했다.
이번 전쟁에 참여하는 프랑스나 네덜란드와는 별다른 교류도 없었고 기껏해야 잉글랜드가 식민지 판매 대금으로 재정이 조금 나아진 것뿐이니 말이다.
헌데 갑작스럽게 프랑스가 이런 대규모 함대를 구성해 대서양을 건넜다니 유럽의 사정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정성국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혹시 잉글랜드에 건넨 식민지 판매 대금으로 인해 유럽의 역사가 대폭 바뀐 것인가 싶었고.
그때 군사청장이 대답했다.
“포로들을 심문한 결과 아직 네덜란드와는 전쟁 중이라고 합니다. 빠르게 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까지 함락하려 들었지만, 네덜란드의 필사적인 방어에 계속 막혔던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군사청장의 대답에서 아직은 전생과 비슷한 흐름이라는 것을 파악한 정성국은 안도하면서도 대체 왜 이런 시기에 프랑스가 누벨 프랑스로 함대를 보낸 것인지 의아했다.
“그런데도 대규모 함대를 조직해 누벨 프랑스를 탈환하려 들었다고? 대체 왜?”
이에 군사청장은 확실하지는 않다면서 입을 열었다.
“프랑스 함대의 지휘관이 답하기를 루이 14세가 갑작스럽게 명령을 내렸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잉글랜드와 연합 함대를 구성해 네덜란드 해군을 꺾고 상륙 작전을 준비 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목표를 바꾸었답니다.”
“왜 갑작스럽게 목표를 바꾸었는지는 모르고?”
“그렇습니다. 다만 루이 14세는 누벨 프랑스의 상황을 보고 받은 후로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과 잉글랜드의 찰스 2세가 루이 14세에게 친서를 보낸 이후 화를 냈다는 소문이 돌았다면서 잉글랜드에서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더군요.”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흐음...잉글랜드가 우리와 프랑스 사이를 이간질했다? 당장 프랑스와 손잡고 네덜란드와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물론 이번 전쟁에 잉글랜드가 참전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다.
잉글랜드는 북미왕국의 군사력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 만큼 만약 이번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에스파냐와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북미왕국과 프랑스 사이를 이간질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당장 잉글랜드가 관심을 두는 것은 바로 네덜란드가 가지고 있는 해상 패권이었고 단독으로 네덜란드 해군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프랑스와 손잡은 상황이니 오히려 프랑스를 설득해 북미왕국과의 확전을 막으려 들면 모를까.
‘잠깐만. 텍셀 해전이 올 8월 아니던가? 상륙 작전을 준비 중이었는데 그 함대를 보냈다면...텍셀 해전은 없던 일이 되었으니 이러면 네덜란드는 못 버틸지도 모르겠네.’
정성국이 기억하기로는 1673년 8월에 잉글랜드와 프랑스 연합 함대는 병력을 상륙시키기 위해 네덜란드 해군과 해전을 벌이지만, 또다시 패배하게 되고 이 해전의 패배 원인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비난하면서 양국의 관계가 험악해지고 결국 잉글랜드는 네덜란드와 단독 강화를 하고 이번 전쟁에서 빠지면서 네덜란드가 받는 압박이 줄어들어 결국 프랑스를 상대로 버틸 수 있게 되는 만큼 정성국이 유럽의 역사도 바뀔 것을 걱정하는 사이 군사청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휘관의 추측일 뿐이니까요.”
이에 정성국은 아무리 고민해봐야 답이 나올 리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보고서로 눈을 돌렸다.
“그건 나중에 외무청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고...허. 80척 규모의 함대를 상대로 피해는 고작 부상자 12명이 다라고?”
보고서에는 해전이 끝나기까지 프랑스 함대의 포격에 맞은 충격으로 병사들이 넘어져 다친 자들이 총 12명이라고 적혀 있었기에 정성국이 놀란 표정을 짓자 군사청장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단 북미왕국의 전선들은 유럽의 화포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을뿐더러 적 전열함과 비교하면 화력과 기동력에서 월등하잖습니까. 이정운 4함대 사령관은 이런 북미왕국 전선들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며 포격전을 벌였으니...부상자가 많이 발생할 이유가 없지요.”
물론 북미왕국의 전선이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전열함을 상대로도 이런 일방적인 결과가 나올 줄을 몰랐기에 정성국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그거야 그렇지만...허. 정말 이정운이 대단한 업적을 세운 셈이로군.”
이 정도면 단 13척으로 300척이 넘는 왜군을 상대로 승리한 명량 해전엔 미치지 못할지라도 훗날 두고두고 회자되지 않을까 싶어 이야기하자 군사청장이 그건 그렇다는 듯 웃었다.
“하하하. 그건 그렇지요. 거기에 포로와 노획한 함선도 많고요.”
이에 정성국은 보고서 뒷장을 살피고 혀를 내둘렀다.
“와우. 총 80척 중 61척이나 노획한 건가?”
보고서엔 프랑스 함대 80척 중 19척을 침몰시켰고 14척을 반파시켰다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반파된 14척과 항복해 온전한 47척을 노획해 매사추세츠로 끌고 왔다고 쓰여 있었기에 정성국이 다시 놀라자 군사청장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 중 온전한 함선은 47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열함을 제외한 선박들을 수송선으로 이용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전열함이야 워낙 크고 무거운 배인 만큼 수송 업무와는 맞지 않고 개조도 어렵다고 여겨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총 30척이로군. 이 정도면 북미 동해안 지역의 물자 운송에 숨통이 트이겠는데?”
“그렇습니다. 더불어 기범선으로 개조한다면 더 쓸모가 있겠지요.”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서를 넘기고 다시 혀를 내둘렀다.
“연구청에 최대한 많은 증기기관을 생산하라고 이야기해두겠네. 그보다 포로의 숫자가...어휴. 이거 관리가 되나?”
“일단 4함대 소속 병사들 태반이 포로 관리에 투입된 상황이고 곧 누벨 프랑스 곳곳에 배치된 병사들 역시 매사추세츠로 이동해 포로 관리에 투입될 테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 손이 부족하면 매사추세츠 주민들의 손을 빌려도 되는 문제고요.”
“아...하긴...”
프랑스와 전쟁이 벌어지자 매사추세츠의 주민들이 북미왕국을 돕기 위해 무기를 들고 자원입대하려 했다는 보고를 접한 뒤로 정성국을 비롯한 청장들은 무척 놀랐었다.
물론 이들이 정말 북미왕국의 백성으로 투철한 애국심에 나섰다기보다는 북미왕국의 통치가 자신들에게 이득이니 이를 지키기 위해 나섰을 것이라는 점은 정성국도 청장들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의 행동은 무척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에 당분간 잉글랜드인을 관리나 병사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던 정성국과 청장들은 이런 제한을 철폐하기로 했고 조만간 북미 동해안 지역에도 훈련소를 만들 생각이었으니 당장 일손이 부족하면 매사추세츠 주민들을 무장시켜 의용병으로 편성해 포로 관리를 맡기는 것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이정운 4함대 사령관은 이번 기회에 포로를 이용해 매사추세츠 지역 곳곳의 광산을 최대한 개발할 생각이라고 하는군요.”
비록 일손이 부족해 당장 광물을 캐진 못할지라도 행정청에서는 꾸준히 경험 많은 광부들을 이용해 자원 탐색을 하고 있었고 애팔래치아 산맥 인근은 각종 광물이 묻혀 있는 만큼 일단 프랑스 포로들을 이용해 광산을 개발한다면 북미 동해안 지역의 개발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한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나쁘지 않은데? 다만 지금도 북미 동해안 지역에 비축한 물자가 거의 동났다는 보고가 올라오는 상황에서 3만에 가까운 포로가 추가되었으니 북미 동해안 지역의 상황이 썩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
“예. 이런 사정을 파악한 김봉길 2함대 사령관이 2함대를 전부 동원해 물자 수송에 나섰다고 하는데...그래도 조금 부족할 것 같습니다.”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 상황을 보니 더는 프랑스를 경계할 필요는 없어 보였기에 만약을 대비해 묶어두었던 전선들을 다시 수송 업무에 투입할 수는 있겠지만 기존의 물자에 거의 3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사용할 물자까지 추가로 보급해야 하니 2함대를 모두 동원하더라도 당장은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렇겠지. 당장 30척의 범선을 운용할 인력도 구하기 어려울 테고.”
“그렇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흐음...이건 외무청에서 나서야겠군. 에스파냐의 배 일부를 용선해 수송 업무에 투입하고 선원들을 대거 고용해 노획한 30척의 범선마저 투입하면...상황이 좀 트일 거야. 이건 내가 조용한 곰에게 따로 언질을 해 두지.”
“아. 그러면 될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