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화
한창 프랑스와 잉글랜드를 상대로 분투하던 네덜란드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잉글랜드의 사절단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단독으로 강화 협상을 제의하자 내심 반기면서도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고.
이에 잉글랜드는 누벨 프랑스의 총독이 북미왕국에 수작을 부려 이를 참지 못한 북미왕국이 누벨 프랑스를 공격함으로써 북미왕국과 프랑스가 전쟁에 돌입했고 잉글랜드는 둘을 중재하려 했으나 프랑스가 이를 거절했기에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이번 전쟁에서 빠지겠다고 현 상황을 슬쩍 알려주자 상황을 파악하고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네덜란드는 잉글랜드와 강화 협상을 진행하면서 프랑스와 전쟁 중인 북미왕국에서 동맹을 위한 사절을 파견하기로 정했다.
일단 적의 적은 아군이나 다름없었고 북미왕국이 계속해서 프랑스의 해군을 분산시켜 준다면 네덜란드가 받는 압력이 한층 줄어들 수밖에 없었으니까.
더불어 아시아에서 진행하던 북미왕국과의 무역이 끊긴 이후 정식으로 사절을 보내 북미왕국과 교역을 진행하려 했었지만, 당시 내외부의 상황이 좋지 못해 사절을 보내지 못했으니 겸사겸사 교역 협상도 진행하기로 했고.
다만 잉글랜드의 사절에게 이미 프랑스가 대규모 함대를 구성해 누벨 프랑스를 탈환하기 위해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네덜란드 사절단은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배에 올라탔다.
네덜란드가 보기에 과연 북미왕국이 프랑스의 대규모 함대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서양을 건너 조심스럽게 뉴펀들랜드 섬 인근에 도착했을 때 특이한 북미왕국의 배가 나타나 자신들을 가로막는 것을 보고 안도하며 자신들이 네덜란드의 사절단이라는 것을 밝혔고 뉴펀들랜드 섬에 정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북미왕국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뉴펀들랜드 섬에 있는 유럽 출신 어부들에게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그게 정말이란 말이지?”
네덜란드 사절단의 총 책임자인 얀센 반 마이어는 선장의 보고에 신음을 흘리자 선장은 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이야기하더군요.”
“허...정말 프랑스의 그 대함대를 상대로 북미왕국의 함대가 이겼단 말이지? 그것도 비슷한 규모의 함대가 아니라 고작 8척으로?”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잉글랜드를 통해 파악하기로는 대략 80척 규모의 대함대를 구성해 북미왕국 원정을 떠났다고 했는데 그런 대규모 함대가 고작 8척의 소규모 함대에 밀렸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말이 되는가 싶었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동안 북미왕국에 대한 소문 중 허황되었다고 여겼던 소문들이 아마도 사실인 듯합니다. 그렇지 않고선...”
선장의 대답에 얀센은 북미왕국과 관련된 여러 소문을 떠올리고 정말 그 소문이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진실이었다면 충분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기에 간신히 납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면 해전의 결과를 설명할 수 없겠지. 거기에 프랑스 대함대의 지휘관은 듀케인 제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듀케인 제독은 프랑스 함대를 이끌며 네덜란드와 몇 번 부딪쳤고 비록 네덜란드 해군을 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얀센이 중얼거리자 선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 듀케인 제독이 지휘하는 프랑스 함대가 북미왕국의 함대를 당해내지 못해 결국 항복하고 대부분이 포로가 되었으니...”
“뭐 거리를 생각하면 후퇴를 선택하기도 쉽지 않았겠지. 그러니 괜히 끝까지 맞서 싸우다 숙련된 병사들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보다야 북미왕국이 문명국이니 포로를 학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병력을 보존하기 위해 항복했을 테고.”
얀센이 듀케인 제독이 순순히 항복한 이유를 추측하자 선장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제 생각도 같습니다. 거기에 북미왕국의 배는 빠르다고 소문나있으니. 그보다 중요한 것은 듀케인 제독이 무의미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항복했기에 당분간 프랑스 함대의 전력은 무척 약화될 수밖에 없겠지요.”
선장의 말에 얀센은 무릎을 치며 소리쳤다.
“그렇군! 거기에 항복한 이상 프랑스 해군의 최신 전열함 40척도 북미왕국의 소유나 마찬가지고...”
잉글랜드를 통해 프랑스 함대에 전열함만 40척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얀센이 흥분해서 이야기하자 선장이 그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전열함만 40척이 사라진 셈이니 저들이 자랑하는 프랑스 해군의 전력이 거의 반 토막이 난 셈 아닙니까. 당연히 상륙 작전은 꿈도 못 꿀 테고요. 결국, 이대로 버티기만 하더라도 우리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선장의 말에 얀센은 그게 아니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하면서 말했다.
“버틴다고? 아니야.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거야. 북미왕국 덕분에 승기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프랑스 해군에 소속된 전열함은 대략 100척가량이었고 그중 40척이 사라진 이상 프랑스의 해상 장악력은 급속히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번에 사라진 프랑스 함대는 본토에 배치되어 있던 함대인 만큼 네덜란드 해군을 움직여 프랑스 해안가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프랑스는 각지에 배치된 해군 대부분을 본토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으니 곳곳에 배치된 네덜란드 해군이 프랑스의 무역로를 공격한다면 효과적으로 프랑스의 재정을 고갈시킬 수 있었다.
이를 얀센이 이야기하자 선장은 무척 고무된 얼굴로 말했다.
“그렇군요! 거기에 잉글랜드도 우리와 협상할 뜻을 내비쳤으니 프랑스는 우리 네덜란드 해군을 단독으로 상대해야 하는데 현재의 전력으로는 막기 어려울 테니 무역로는 텅 비겠어요! 허면 이를 빠르게 본국에 알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네덜란드는 잉글랜드를 통해 프랑스의 대규모 함대가 누벨 프랑스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프랑스 역시 최소한의 함대를 방어 함대로 편성해 둔 상태였기에 저들의 함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무리하게 공격하다 피해를 볼 바에는 지금처럼 지형을 이용한 방어에 집중하며 함대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기에 선장이 이를 언급하자 얀센은 잠시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사절단으로 왔는데 바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나.”
일단 사절단으로 북미왕국에 방문했는데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다시 돌아간다면 북미왕국이 자신들을 무례하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었다.
“하긴...북미왕국의 국력이 상상 이상인 것 같은데 괜히 무례하게 굴 이유는 없지요. 허면 어부를 고용하거나 어선 한 척을 용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이 지역에는 유럽을 오가는 어부들이 많았기에 선장이 이야기하자 얀센은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군. 바로 본국에 전할 보고서를 작성할 테니 자네는 편지를 전할 병사와 어선을 한 척 구해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 * *
2함대가 보인다는 보고에 웅크린 늑대는 새진주의 선착장으로 나갔고 때마침 지급 전선에서 내리는 김봉길을 보고 미소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오셨습니까.”
“오. 여기까지 나와 있었나? 별일 없었지?”
김봉길은 웅크린 늑대를 보고 반갑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자 웅크린 늑대는 잠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엔 별일이 없었습니다.”
“이곳엔?”
예의상 한 말인데 웅크린 늑대의 답변이 심상치 않았기에 김봉길이 어리둥절 하자 웅크린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들어가서 이야기하지요. 길어질 테니. 그보다 가신 일은?”
웅크린 늑대의 반응에 급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 김봉길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생도맹그 북부 해안가 전부와 토르투가 섬의 항구를 완전히 초토화하고 왔네. 생도맹그에 배치되어 있던 프랑스 전열함 6척도 모조리 침몰시켰고. 그러니 프랑스 놈들이 더는 뻗대지 못하고 조만간 협상하자고 먼저 연락이 올걸?”
이에 웅크린 늑대는 묘한 미소를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마 프랑스는 무조건 협상하자고 해야 할 겁니다.”
“응?”
* * *
“뭐?! 프랑스 대함대가 뉴펀들랜드 섬을 공격하려 했다고?”
김봉길은 집무실에 들어와 커피를 마시다가 웅크린 늑대의 말에 기겁했다.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전쟁 중이었기에 북미 대륙에 함대와 병력을 보내리라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김봉길의 반응에 웅크린 늑대가 고개를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80척에 가까운 대함대였다는군요. 일부는 수송선이라고는 하지만 전열함만 하더라도 40척에 가까웠답니다.”
웅크린 늑대의 말에 김봉길은 무척 아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부럽다. 어떻게든 내가 4함대를 맡았어야 했는데...나름 기대했건만 이번에도 제대로 된 해전도 치르지 못했는데 이정운 이 녀석은...”
2함대를 끌고 갔지만 생도맹그에 배치된 전열함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야음을 틈타 기습하려던 해적선과 사략선들은 공격받자 그대로 내뺐으며 그대로 토르투가 섬에 가보니 선착장은 거의 비어 있어 제대로 된 전투 없이 선착장과 항구 마을에 포탄만 날리고 왔기에 김봉길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이정운을 부러워하자 웅크린 늑대는 실소하며 입을 열었다.
“승패도 묻지 않으십니까?”
이에 김봉길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 큰 피해 없이 승리했겠지. 이정운 그 녀석도 뛰어난 함대 지휘관이나 다름 없고...이번에 프랑스 함대를 상대해보니 별로 위협적이진 않던데? 거기에 이정운의 성향이라면 피해를 최소화하겠답시고 외곽에서 거리를 두고 일방적으로 두들겼을 것이 뻔한데 뭘. 뭐 내가 4함대를 지휘했어도 함대 규모에서 차이가 나니 안전을 위해서라도 비슷한 전술을 사용했을 테고.”
서인도제도에 배치된 2선급 전열함과 대서양을 건넌 프랑스 본국의 최신 전열함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던 김봉길은 단순하게 상황을 추측하자 웅크린 늑대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맞습니다. 일방적으로 두들긴 끝에 결국 프랑스 함대는 항복했다고 하더군요.”
“그랬겠...잠깐만. 그럼 프랑스의 배들은?”
2함대야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항복한 배들을 모두 침몰시킬 수밖에 없었지만 4함대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기에 급히 묻자 웅크린 늑대는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매사추세츠의 선착장에 정박 중입니다.”
“오오! 그럼 숨통이 좀 트이겠는데? 토르투가 섬을 공격할 때 조그마한 배라도 나포해 가져올까 하다가 말았는데!”
“그렇습니다. 뭐 전열함이야 워낙 비싼 만큼 직접 사용하는 것보다는 프랑스에 되팔든 다른 유럽 국가에 팔아 이득을 챙기는 것이 낫다고 해도 수송선들과 정찰선들은 물자를 수송하는 데 써먹으면 될 것 같다더군요. 물론 배를 운용할 선원들을 구하는 것이 문제긴 합니다만...”
북미왕국의 입장에서 전열함을 그대로 써먹기는 여러모로 어려웠다.
그렇다고 기범선으로 개조하기엔 선체 모양 때문에 제대로 속력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고 600마력의 증기기관이 많지도 않았고.
특히 포로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아직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전쟁 중이었으니 차라리 프랑스에 값비싸게 되파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이정운이었다.
전열함을 건조하는 데는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들어가고 시간도 걸리는 만큼 프랑스로서는 당장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나포된 전열함을 비싸게 살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다른 유럽 국가에 팔면 그만이었고.
다만 저들이 프리깃함이라고 부르는 정찰선과 육군 병력을 수송하기 위한 수송선은 당장 배가 부족한 북미왕국의 상황에서 적당히 기범선으로 개조해 사용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고.
웅크린 늑대의 설명에 김봉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매사추세츠에 범선에 익숙한 잉글랜드인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 뭐 없으면 적당히 가르쳐도 되는 거고.”
“예. 그렇긴 한데 당장은 포로 관리 때문에 그런 부분을 신경 쓸 여력이 없나 봅니다.”
김봉길은 웅크린 늑대의 말에 그건 그렇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하긴...그 정도 규모의 함대였다면 포로도 많겠는데?”
“예. 대략 2만 7천 명쯤 된다는군요. 그 때문에 이정운 4함대 사령관뿐만 아니라 4함대의 병사들도 전선에서 내려 포로들을 관리하는 일에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웅크린 늑대의 대답에 김봉길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어휴...생각해보니 4함대를 맡지 않아서 다행이네.”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꾸는 김봉길의 반응에 웅크린 늑대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렇지요. 여러 업무에 능숙한 이정운 4함대 사령관도 서류에 깔려 죽겠다며 자신을 도와줄 관리들을 보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정운은 2함대 시절 김봉길을 대신해 2함대의 수많은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했었는데 그런 이정운이 볼멘 소리를 할 정도의 업무라니.
그건 서류 지옥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김봉길은 잠시 상상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이정운이 죽는소리를 한다고? 어휴...생각만해도 끔찍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