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북미왕국의 함대 중 일부가 자리를 잡고 카프 프랑수아의 선착장에서 빠져나와 도망치려는 프랑스 선박들을 공격하고 전열함을 추격하던 북미왕국의 인급 전선들이 결국 도망치는 전열함을 침몰시킨 후 돌아오자 선박 대부분은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백기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확인한 김봉길이 잠망경에서 눈을 떼며 중얼거렸다.
“휘유. 끝난 건가.”
이에 부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런 것 같습니다. 10척가량은 침몰했고 나머지는 결국 백기를 들었군요. 헌데 저들을 어쩌시겠습니까?”
부관의 질문에 김봉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대로 저항하기도 힘든 상선들이 모두 항복한 것은 나쁠 것이 없는데 저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스러웠던 것이다.
저들이 항복한 만큼 상선은 전리품으로 노획하고, 타고 있는 선원은 포로로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모로 걸리는 것이 많았기에 김봉길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회항하는 도중 전투를 치를 수도 있는데 저 선박들을 끌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포로를 전선에 태울 수도 없지. 그러니 일단 항복한 선박들에 통보하게. 선착장으로 돌아가 배에서 내리라고.”
부관은 김봉길의 명령에서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조금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착장을 공격할 때 함께 공격하실 생각이시군요.”
이에 김봉길도 무척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장 배가 부족해 전선까지 물자 수송에 동원되는 상황에서 비록 범선이라지만 30척에 가까운 배는 무척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함대는 생도맹그 해안가를 초토화해 프랑스를 협상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목적인 만큼 어쩔 수 없었기에 말했다.
“그래야지. 좀 아깝긴 하지만 뭐 아직 우리의 목적을 달성한 것은 아니니 어쩌겠나. 배가 부족한 현 상황은 차차 나아질 테니...”
이에 부관은 아쉬움을 떨쳐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허면 저들에게 선착장을 공격할 예정이라는 것까지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선착장 인근의 조그마한 요새에는 프랑스군이 주둔해 있었고 선착장을 공격할 예정이라는 것을 알린다면 프랑스군도 요새를 비우고 물러날 수 있기에 질문을 던지자 김봉길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게. 아무리 전쟁 중이래도 무의미한 피를 흘릴 필요야 없으니. 저들이 요새에서 우리와 맞서든 도망치든 저들에 선택에 맡기도록 하지.”
* * *
‘콰콰콰쾅!’
김봉길은 갑판 위에서 완전히 박살 난 선착장과 곳곳에 가라앉은 선박들, 그리고 폐허가 된 요새를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흠. 요새까지 박살 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허면 물러날까요?”
이에 김봉길은 조금 고민했다.
항복한 선박들이 회항하기 전 침몰한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을 구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고 그 후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빠져나간 것을 기다렸다 포격을 개시해 카프 프랑수아를 박살 내는 사이 시간이 흘러 해가 지고 저녁을 넘어 한밤에 가까웠으니까.
그렇다고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좀 껄끄러웠기에 김봉길이 입을 열었다.
“괜히 이곳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보단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나아 보이는...”
그때 견시수가 소리쳤다.
“함대 사령관님! 뒤쪽에서 정체불명의 함대가 보입니다!”
“음?”
김봉길과 부관은 몸을 돌려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바다를 살폈고 견시수의 말처럼 범선으로 구성된 30척 규모의 함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흐음...아무래도 토르투가 섬에 있던 친구들 같은데? 역시 가시거리 밖에서 우리를 따라온 모양이군.”
그런 느긋한 김봉길의 말에 부관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발견이 늦어서 그런지 꽤 접근했군요.”
“허. 단단히 준비했나 보군. 우리의 포격이 두렵기도 하고 야간 기습을 위해 불빛 없이 항해한 모양이군?”
“어쩌시겠습니까?”
김봉길은 물어 무엇하느냐는 표정으로 아무런 불빛 하나 없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는 함대를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친구들이 이곳까지 쫓아와 놀자고 하니 제대로 놀아줘야 하지 않겠어? 어차피 볼일도 끝났으니...가차없이 박살 내고 저들의 본거지인 토르투가로 가자고.”
“알겠습니다. 신호하지요.”
* * *
해적선의 선장은 갑판 위에서 북미왕국 함대를 관찰하며 연신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제발 눈치채지 마라.”
선장 옆에서 무척 불안한 표정으로 북미왕국 함대와 선장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부선장은 수많은 해적선을 침몰시켜 해적들의 사신이라 불리는 북미왕국의 함대와 점차 가까워지자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선장님. 이건 미친 짓입니다.”
이에 선장은 부선장을 힐끗 바라보고 다시 북미왕국 함대에 시선을 고정하면서 말했다.
“알아.”
“예?”
“나도 안다고. 미친 짓이라는 건.”
북미왕국의 함대가 생도맹그와 토르투가 섬 사이의 해역을 지나갔기에 북미왕국 함대의 목표가 카프 프랑수아라는 것을 확신한 토르투가 섬의 프랑스 관리는 곧장 해적들과 사략선의 선장들을 불러 북미왕국 함대를 공격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해적들과 사략선의 선장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프랑스 관리는 어차피 카프 프랑수아에도 프랑스의 함대가 주둔해 있는 만큼 거리를 두고 뒤따라가다가 북미왕국의 함대가 프랑스의 함대와 전투를 벌일 때 공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고.
해적들과 사략선의 선장들은 북미왕국 함대의 소문을 익히 들었기에 무척 껄끄러워했지만, 사략 허가증까지 건네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곤란할 거라는 눈빛을 마구 보내는 프랑스 관리와 병사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선장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헌데 어쩌겠어. 우리가 프랑스의 요청을 거절하는 순간 프랑스는 우리를 해적으로 선포하고 공격하려 들 텐데. 그렇다고 도망치자니 갈 곳도 마땅치 않지. 북미왕국이나 에스파냐는 우리를 보자마자 공격할 테고.”
해적으로 선포되면 사로잡히는 순간 무조건 교수형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부선장은 움찔하면서도 선장이 생각보다 이번 일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말했다.
“그래도 잉글랜드가 있지 않습니까.”
선장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바하마나 자메이카는 북미왕국과 너무 가깝다는 게 문제지. 북미왕국 그놈들은 대체 해적에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 젠장.”
그가 알기로 북미왕국의 선박을 공격한 해적은 없던 것으로 아는데도 북미왕국은 집요하게 해적이 보이기만 하면 쫓아와 공격했다.
그러니 선장은 북미왕국의 해군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고.
부선장은 그런 선장의 반응에 잠시 고민하다 점차 가까워지는 북미왕국의 군함을 바라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야간 기습이라니. 달빛이 전혀 없는 날이면 또 모를까 그것도 아닌데. 분명 조금만 더 다가가면 분명히 눈치챌 겁니다. 그럼 가차 없이 포격을 퍼부을 테고 우리는 다 죽을 거라고요.”
선장은 전투가 시작되기도 불안감을 마구 조성하는 부선장을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어쩌자고.”
“그냥 도망치죠?”
이에 선장은 확 인상을 구기며 으르렁댔다.
“이 미친놈이? 방금 내가 열심히 설명했더니만?”
선장이 주먹을 날릴 기세였기에 부선장은 재빠르게 덧붙였다.
“아. 물론 도망치면 더는 이곳에서 해적질하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그럼 다른 곳으로 뜨면 그만 아닙니까?”
“다른 곳?”
“북아프리카도 괜찮고 동아프리카나 저 멀리 아시아 지역도 나쁘지 않죠.”
“으음...아예 서인도제도에서 떠나자?”
지금까지 서인도제도는 해적들의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신대륙에서 채취한 각종 귀금속과 돈이 되는 교역품들, 그리고 신대륙에 팔기 위해 본국에서 가져오는 물품과 노예들을 가득 실은 선박들이 즐비했으니까.
하지만 북미왕국의 등장 이후 해적들의 활동 반경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고 특히 이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에스파냐의 선박을 공격하기 어려워졌기에 최근 벌이는 썩 신통치 않았다.
그렇기에 선장은 부선장의 말에 흥미를 보였고 선장이 자신의 말에 흥미를 보이자 부선장은 안도하며 급히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이 등장한 이후 에스파냐의 선박 대부분은 항로를 바꾼 탓에 교역 선단을 노려 한탕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잖습니까. 그럴 바엔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때 앞쪽에 있던 한 선원이 낮게 소리쳤다.
“헉! 선장님! 저길 보십쇼! 북미왕국의 배가 움직입니다!”
이에 고민하던 선장은 기겁한 표정으로 급히 시선을 앞쪽으로 돌렸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동안 자리를 잡고 카프 프랑수아를 포격하던 북미왕국의 군함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기에 선장이 중얼거렸다.
“뭐야? 벌써 카프 프랑수아를 다 박살 낸 거야?”
그때 멀리서 포성이 들렸고.
‘퍼퍼퍼퍼펑!’
선두에서 북미왕국 함대로 접근하던 사략선이 포탄에 맞았는지 선수 부분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콰쾅!’
이에 부선장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울부짖듯 선장에게 소리쳤다.
“젠장! 걸렸습니다! 이제 어쩝니까?”
선장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소문처럼 북미왕국의 군함은 무척이나 강력한 대포를 탑재하고 있는 듯했고 덕분에 고작 한 번의 포격에 사략선의 갑판 위가 초토화된 것을 확인한 선장이 소리쳤다.
“젠장할...식량과 식수는 충분하지?”
선장의 물음에 부선장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오! 설마?”
“그래. 그대로 내뺀다. 곧바로 선회해!”
어차피 북미왕국에 걸린 만큼 소리를 죽일 필요도 없었기에 부선장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얘들아! 들었지? 포탄이 더 날라오기 전에 곧바로 선회해!”
““알겠습니다!””
* * *
전투가 벌어졌기에 안전을 위해 구조물 안으로 들어와 잠망경을 통해 상황을 살피던 김봉길은 중간의 한 척의 선박이 선회해 도망치기 시작하자 이를 따라 다른 선박들도 줄줄이 선회하는 광경을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저건? 접근하다 걸렸다고 곧바로 튀겠다는 거야?”
이에 부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과연 해적답군요.”
“거 참...근성이 없네. 근성이.”
“해적에 근성이 무에 필요하겠습니까. 이득과 자신의 목숨이 우선이겠지요. 그보다 저들이 그대로 도망치면 몰라도 주변에서 알짱거리기 시작하면 무척 귀찮아질 것 같은데...최대한 빨리 추격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퍼퍼퍼펑!’
포탄이 발사되는 가운데 김봉길은 잠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해가 떠 있는 낮이라면 곧바로 추격 명령을 내렸겠지만, 한밤중에 함대 진형을 풀고 저들을 추격하느라 흩어지는 것은 위험할 수 있었기에.
“글세...달빛은 나쁘지 않은데...그렇다고 대놓고 추격하기엔 쉽지 않아 보이는데?”
“그렇기야 합니다. 해도가 있다 해도 익숙한 바다도 아니고요.”
부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봉길은 마음을 정한 듯 명령을 내렸다.
“일단 조심히 추격하고 기함의 신호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지역까지만 추격을 허용한다고 신호하게.”
“알겠습니다.”
* * *
이정운은 매사추세츠로 복귀한 후 수많은 서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워낙 포로가 많았기에 매사추세츠의 경비대 인력으로 당장 이들을 관리하기 어려워 4함대에서도 배를 운용할 최소 인력을 제외한 모든 병사를 하선시켜 갑오 소총을 들려주고 경비를 서게 했으니 자연스럽게 업무 상당수가 이정운에게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이정운은 누벨 프랑스 각지에 보낸 배들이 하루빨리 경비대를 데려오길 바라면서, 그리고 새진주에서 하루라도 빨리 업무를 보좌해 줄 관리를 추가로 보내주길 바라면서 수많은 서류를 확인하고 도장을 찍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부관이 한 병사와 함께 들어왔다.
“후. 무슨 일인가.”
“뉴펀들랜드 섬에서 긴급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긴급 보고라는 부관의 말에 이정운은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분함대에서? 무슨 일로? 설마?”
혹시 프랑스가 추가로 함대를 보낸 것은 아닌가 싶은 얼굴을 하는 이정운을 보고 병사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네덜란드의 사절을 태운 선박이 방문했습니다.”
병사의 보고에 안도하며 다시 자리에 앉은 이정운은 되물었다.
“네덜란드라고?”
“그렇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여기 보고서에 적혀 있습니다.”
병사가 건네준 보고서를 빠르게 훑어본 이정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고서에는 네덜란드의 선박이 뉴펀들랜드 섬을 향해 이동하기에 분함대에서 이를 저지하려 하자 자신들은 네덜란드 본국에서 온 사절단이며 북미왕국과의 협상을 위해 방문했다는 소식에 일단 네덜란드 선박을 뉴펀들랜드 섬에 정박시켰다는 내용과 이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묻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으음...국가 간 외교 문제면...결국 웅크린 늑대가 있는 새진주까지는 가야 한다는 건데...아. 혹시 우리가 프랑스 함대와의 해전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이들이 알고 있나?”
이정운의 물음에 병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대답했다.
“음...아마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일단 네덜란드의 사절과 선원들은 뉴펀들랜드 섬의 외국인들이 지내는 장소에서 지내는 터라...그 어부들은 우리가 프랑스 함대와의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병사의 말에 이정운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러면 협상을 위해 굳이 숨길 이유는 없다는 거군. 그럼 네덜란드의 사절단 일행만 이곳으로 데려오게. 이곳에서 새진주로 향하는 배에 태워 보내면 될 테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