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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18화 (318/850)

318화

카프 프랑수아 선착장 인근에 나무로 지어진 조그마한 요새 위 감시탑에서 덩치 큰 한 병사가 하품하면서 중얼거렸다.

“어휴. 지겨워.”

“조금만 참아. 슬슬 교대 시간이니.”

함께 근무하는 키가 작은 병사가 해가 떠 있는 위치로 시간을 짐작하고 이야기하자 덩치 큰 병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오늘 저녁은 좀 맛있는 걸 줬으면 좋겠는데...”

이에 키 작은 병사는 바랄 걸 바라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냥 대충 때우고 주점이나 가자. 오랜만에 고기라도 먹자고.”

“오! 그것도 괜찮지.”

빨리 교대하고 주점에 갈 생각에 히히거리는 덩치 큰 병사를 보고 피식 웃은 키 작은 병사는 다시 바다를 감시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최근 북미왕국과의 전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북미왕국의 함대가 서인도제도에 진출한 적은 없었지만, 혹시 모른다며 철저히 경계할 것을 주문하고 병사들이 잡담하지 않고 잘 감시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관들이 불규칙적으로 돌아다녔기에 괜한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바다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해야 했다.

그러다 문득 키 작은 병사는 저 멀리 보이는 점들을 확인하고 두 손을 눈썹에 가져다 댔다.

“음?”

키 작은 병사의 반응에 덩치 큰 병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야야. 저기 저거...함대 아니냐?”

키 작은 병사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 덩치 큰 병사는 잠시 후 잔뜩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함대긴 한데...돛이 없다?”

북미왕국의 배가 돛도 노도 없이 스스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었기에 덩치 큰 병사가 기겁하자 키 작은 병사가 급히 소리치듯 말했다.

“역시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그럼 저거 북미왕국의 함대라는 뜻이지?”

조금씩 커지는 북미왕국 함대를 보고 덩치 큰 병사가 중얼거렸다.

“맙소사. 정말 북미왕국의 함대 같은데...어쩌지?”

“뭘 어째. 어쩌긴.”

키 작은 병사는 뒤쪽에 매달려 있는 종과 연결된 줄을 힘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땡땡땡!’

종소리를 듣고 몇몇 병사가 감시탑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야! 시끄러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자 키 작은 병사가 잠시 종 치는 것을 멈추고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북미왕국의 함대가 나타났어!”

그 이야기에 병사들이 기겁하기 시작했다.

“헉!”

“맙소사!”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한 사관이 나와서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뭐해! 빨리 전투 준비하라고! 다른 망루에서도 빨리 종을 울려!”

* * *

갑판 위에서 점차 가까워지는 카프 프랑수아의 풍경을 망원경으로 살펴보던 김봉길은 문득 선착장이 부산스러워진 것을 깨닫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호. 그래도 전쟁이라고 경계는 제대로 하나 보네? 보아하니 우리를 발견한 모양인데?”

이에 부관이 옆에서 망원경으로 선착장 주변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헌데 전열함으로 짐작되는 선박은...6척뿐이로군요.”

이곳에 오는 도중 해역을 순찰하는 프랑스 전열함을 만나지 못했기에 이곳엔 전열함이 많지 않을까 예상했었지만, 생각보다 적었기에 이를 언급하자 김봉길이 덧붙였다.

“그리고 생각보단 작은데? 난 지급 전선 정도는 될 줄 알았더니...저 정도면 인급 전선보다 약간 큰 수준인가?”

“그렇군요. 손쉽게 상대할 수 있겠는데요?”

하나둘 돛을 펴고 선착장을 박차고 나오는 프랑스의 전열함을 보고 김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저 정도면 굳이 선회할 필요 없이 돌격해도 되겠어. 그보다 나름대로 생도맹그의 거점 항구라더니...선착장은 꽤 크네. 정박해 있는 배도 좀 있는 편이고.”

“그렇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은...프랑스 깃발을 달고 있군요.”

부관의 말에 김봉길은 다시 망원경으로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배에 걸려 있는 깃발을 확인하다가 투덜거렸다.

“젠장. 저거 잉글랜드 선박 아닌가? 그리고 저쪽은...”

“덴마크 깃발 같습니다. 저건 스웨덴 깃발이고요.”

“쩝...이러면 조심스럽게 공격해야겠군.”

상선으로 짐작되는 몇몇 타국의 선박이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것을 확인한 김봉길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조금씩 가까워지는 프랑스 함대를 보고 김봉길이 부관에게 명령했다.

“일단 전속력으로 돌격해 마중 나오는 프랑스 함대부터 박살 낸 후 선착장의 프랑스 선박을 공격한다고 신호하게.”

“알겠습니다.”

* * *

카프 프랑수아의 선착장 인근에 세워진 조그마한 요새에서 계속해서 종을 치기 시작하자 카프 프랑수아에 있는 사람들도 이변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쉬고 있던 프랑스 해군 병사들도 부리나케 전열함에 오르는 것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 역시 불안한 표정으로 조금씩 접근해오는 북미왕국의 함대를 바라보았고.

“저들이 소문의 그 북미왕국 함대로군요.”

교역을 위해 어제 이곳에 도착한 덴마크의 상인은 범선의 갑판 위에서 북미왕국의 함대를 보고 중얼거리자 상인에게 다가오던 선장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돛도 노도 없으니 좀 독특해 보이는군요.”

“독특해 보이기도 하고 저렇게 큰 배가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는 정말 궁금하군요. 아무리 봐도 저 프랑스의 전열함과 비슷한 크기인 것 같은데...”

그렇게 태평하게 이야기하는 상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던 선장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깨닫고 급히 입을 열었다.

“그보다는 우리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북미왕국 함대를 보고 감탄하기보다는 일단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선장의 이야기에 상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흐음...듣기로 북미왕국은 문명국이라고 했습니다. 이 배에는 덴마크의 국기도 걸려 있고. 그러니 공격할 의사 없이 가만히 있으면 우리를 공격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태평한 상인의 이야기에 선장은 안색을 찌푸리다가 입을 열었다.

“음...그보다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바로 출항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선장의 말에 상인은 이제 막 선착장을 떠나는 프랑스의 전열함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음...프랑스 함대가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줄 테니 빠르게 출항하자?”

“그렇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와 북미왕국은 전쟁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북미왕국의 함대가 이곳까지 온 이상 이 항구를 공격하려 하겠지요. 그런 만큼 출항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선장의 말에 상인은 떨떠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곳에 있어도 교역품은 못 구할 거란 소리군요.”

“그렇습니다.”

생각해보니 선장의 말처럼 두 나라는 전쟁 중이었고 북미왕국 함대가 이곳까지 진출한 만큼 저 프랑스 전열함만 공격하고 회항할 것 같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이 카프 프랑수아도 공격할 테니 이곳은 엉망이 될 테고 당분간 교역하기는 글렀기에 상인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그럽시다. 바로 출항하지요.”

상인이 동의하자 선장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급히 선원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인은 그런 선장과 선원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전면을 바라보았고.

선착장을 빠져나온 프랑스의 전열함은 하나둘 선회하며 빠르게 접근하는 북미왕국의 함대에 포격하기 위해 현측을 드러냈지만, 북미왕국의 함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왔고.

‘퍼퍼퍼펑!’

프랑스의 전열함이 일제히 포격을 시작하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상인은 선회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북미왕국의 함대를 보고 중얼거렸다.

“음...북미왕국은 제대로 된 전술이 없는 건가? 아니면 백병전이나 충각 전술을 사용하려는 속셈인 걸까?”

‘콰콰쾅!’

그때 프랑스의 전열함 한 척이 갑작스럽게 폭발하며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그 폭음에 선원들을 재촉해 이제 막 돛을 펴고 선착장을 빠져나가는데 집중하던 선장마저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저건...”

“맙소사...”

갑판 위가 엉망이 되고 불에 휩싸인 프랑스인 병사가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에 상인은 기겁한 표정으로 근처의 선장에게 물었다.

“이보시오. 선장. 저건 프랑스가 운이 없는 겁니까? 아니면 소문대로 북미왕국의 함대가 대단한 겁니까?”

그 질문에 정신을 차린 선장은 곧장 상황을 파악하고 소리치듯 말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예상보다 프랑스 함대가 시간을 벌어주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전에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로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었기에 상인은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배를 지휘하는 데 집중하시지요.”

그러는 도중 다시 포격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콰콰쾅!’

‘콰콰콰쾅!’

2척의 프랑스 전열함이 차례대로 폭발하는 광경에 상인은 프랑스가 운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북미왕국의 함대의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신음했다.

“...정말 그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 * *

전투가 시작되었기에 구조물 안에 배치된 잠망경을 통해서 전방을 살피던 김봉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음? 이거 싱겁게 끝나겠는데?”

“예?”

이제 절반의 전열함을 명중시켰을 뿐인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부관이 김봉길을 바라보자 김봉길은 잠망경에서 눈을 떼고 어깨를 으쓱했다.

“보니까 남은 전열함은 도망칠 기세야.”

이에 부관은 실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뭐 주변의 배들이 차례차례 침몰하는데 버티긴 쉽지 않지요.”

“그건 그렇다만...선수포만으로 프랑스 함대가 정리될 줄은 몰랐는데?”

어차피 북미왕국의 전선은 튼튼하니 저들의 포격을 한두 번만 버티고 돌입해 가까이에서 포탄을 쏴 프랑스의 전열함을 격침할 생각이었던 김봉길은 선수포를 맞고 침묵한 전열함들에 조금 맥이 빠진 표정이었다.

이에 부관은 실소하며 대답했다.

“저희 2함대의 규모가 있지 않습니까. 선수포만 하더라도 14문이니...”

부관의 말마따나 적 전열함은 6척에 불과했기에 14문의 선수포로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지급 전선 기준으로 2척, 인급 전선 기준으로는 4척이 현측으로 일제 포격하는 것보다는 많았으니.

이에 김봉길은 멋쩍은 듯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건가.”

“그 보다 어쩌시겠습니까?”

이에 김봉길은 뭘 묻느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 적의 전열함은 줄일 수 있을 때 확실히 줄여야지. 백기를 들어 항복한 것도 아니고 도망치는 것을 봐줄 필요가 있나. 함대 일부는 전열함을 추격하라고 하고 나머지는 선회해 자리를 잡고 선착장에서 나오려는 선박들을 공격하지. 아. 물론 공격 전에 깃발 확인을 꼭 하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 * *

갑판 위에서 북미왕국 해군과 프랑스 해군의 전투를 지켜보던 덴마크 상인은 선장에게 다가가 외쳤다.

“선장! 저걸 보시오!”

선장은 상인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프랑스의 전열함들을 보고 신음했다.

“으음...그 프랑스 함대가 잠깐의 시간도 못 벌다니...”

어떻게든 북미왕국의 돌격을 막겠다는 각오로 돛을 접고 포격하던 프랑스의 전열함들은 다시 돛을 펴고 이 카프 프랑수아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기보단 북미왕국의 돌진을 피하고자 움직이고 있었다.

이에 북미왕국의 함대 일부가 프랑스의 전열함을 향해 이동했고 나머지는 계속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점차 다가오는 북미왕국 함대를 보고 상인이 살짝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선장을 바라보았다.

“어쩌지요? 저 북미왕국의 함대 절반 정도가 곧바로 이곳으로 다가오는데?”

“맙소사. 선회하는군요. 저건 자리를 잡고 공격하겠다는 뜻인데...”

이곳으로 다가오던 북미왕국의 군함들은 일제히 선회하며 현측을 보이기 시작했고 군함이 현측을 보인다는 의미를 파악한 선장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을 때 포성이 들려왔다.

‘퍼퍼펑!’

‘콰콰쾅!’

자신들보다 앞쪽에 있던 프랑스의 상선 일부가 포탄에 맞아 불타오르는 광경을 보고 상인이 덜덜 떨면서 말했다.

“이거...어쩝니까?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는 것 아니요?”

이에 선장은 잠시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아니요. 여기서 멈춰 있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 일단 외곽으로 빠져서...정말 저들이 이 깃발을 보고 공격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나을 겁니다.”

“으음...”

그렇게 덴마크의 배는 조심스럽게 우측으로 선회해 이동했고 그러는 사이 앞쪽에서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려던 프랑스의 선박들은 모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가 외곽으로 빠지고 그 뒤를 따라오던 프랑스 선박이 북미왕국의 포탄에 맞아 폭발하자 움찔했던 상인과 선장은 자신들을 따라오는 프랑스 선박들이 포탄에 명중하는 광경을 바라보다 말했다.

“아무래도 북미왕국은 우리를 공격할 뜻이 없는 것 아니오?”

선장 역시 상인의 말에 동의하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런 것 같습니다. 저 뒤편의 프랑스 상선은 공격하면서도 그보다 가까운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으니. 천만다행이군요. 하지만 전장이고 눈먼 포탄이 날아올 수 있으니 빨리 피해야겠습니다.”

“그러시오. 그보다 북미왕국의 소문이 정말 사실이었구려. 그 말도 안 되는 강력하고 정확한 속사포가 정말 존재했다니...”

상인이 북미왕국의 군함에 눈을 떼지 못하고 중얼거리자 조금은 여유를 되찾은 선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에스파냐가 은근슬쩍 물러서고 잉글랜드도 애써 가꾼 식민지를 돈 받고 넘겼을 때부터 뭔가 있다고는 생각했지만...저런 광경은 상상도 못 했군요.”

포격음이 들리면 최소한 한두 척의 배는 일부가 부서지거나 폭발했기에 선장이 고개를 젓자 그 광경을 바라보던 상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북미왕국의 군사력은 생각보다 더 대단하구나. 그리고 저들의 무기를 얻게 된다면...? 돌아가면 바로 이 사실을 알려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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