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세인트존스 항에 머물던 4함대는 해가 뜨기 직전에 항구를 빠져나와 일자진을 펼치고 북동쪽으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동하다 바다에서 일출을 바라보고 한 시간 후.
북미왕국은 멀리서 다가오는 프랑스의 대규모 함대를 발견했다.
“함장님! 저기 보십시오! 프랑스 함대입니다!”
인급 전선의 함장은 부함장의 호들갑에 망원경을 들어 프랑스 함대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좀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저렇게 보니 확실히 대단하기는 하네. 그리고 범선이라 그런지 확실히 더 웅장해 보이기도 하고.”
“그러게 말입니다. 헌데 함장님. 함대 규모에서 너무 차이가 나는 것 아닙니까?”
이에 함장은 주변을 둘러보고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수적 우위를 앞세우고 싸웠다고. 안 그래?”
이정운 함대 사령관은 몇 번이고 프랑스 함대를 경시하지 말 것을 주문했고 함장은 이정운의 이야기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대규모 함대를 확인한 후 배 안의 분위기에는 긴장감이 과하게 감돌기 시작했기에 이러한 분위기는 전투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애써 별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함장이었다.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저 앞쪽에 보이는 프랑스 전선은 그동안 상대했었던 해적선이나 사략선에 비해 크기도 크고...”
하지만 부함장이 눈치도 없이 계속 불안감을 조성하자 함장은 전투가 끝나면 하루 날 잡고 부함장의 정신 교육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슬쩍 목소리를 높였다.
“아. 그래 봐야 덩치 큰 표적일 뿐이야. 괜히 두려워할 필요 없어. 침착하게 미리 이야기해둔 작전대로만 움직이면 큰 피해 없이 저들을 물리칠 수 있을 거야. 긴장하지 마. 거기에 저기 선박 중에 전열함으로 보이는 배는 절반 정돈데 뭘 그래. 나머지는 서인도제도에서 지겹게 상대했던 해적선이나 사략선처럼 다 한 번의 포격이면 곧바로 침몰할걸?”
자신만만한 함장의 표정과 말투에 전투를 앞두고 잔뜩 긴장했던 선원들의 표정이 풀어지기 시작하자 함장이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서 저 프랑스 함대를 완전히 박살 내면 그 어떤 유럽 국가도 감히 북미 대륙에 침을 흘리지 못할 테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육군과는 달리 해군의 경우 조선인의 비율이 높긴 했지만, 원주민 병사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북미왕국에 합류한 원주민들은 북미왕국이 이야기하는 북미 대륙은 온전한 원주민들의 땅이라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함장의 말에 원주민 출신 병사들은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런 함 내 분위기에 함장이 만족하고 있을 때 견시수가 소리쳤다.
“함장님! 기함에서 깃발이 올라왔습니다.”
이에 함장은 이정운이 타고 있는 기함에서 올라온 깃발을 확인하고 씩 웃으며 소리쳤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시작이니 정신 바싹 차려! 전속 전진!”
* * *
“제독님! 북미왕국의 함대입니다!”
아브라함은 함장의 외침에 저 멀리 보이는 북미왕국 함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흐음...역시 어제 보였던 배가 우리의 존재를 북미왕국에 알린 모양이군. 이렇게 북미왕국의 함대가 마중 나온 것을 보니.”
이에 함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대고 북미왕국의 함대를 관찰하다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독님의 예상처럼 북미왕국도 뉴펀들랜드 섬에 군함을 추가 배치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많지는 않군요.”
“흐음...총 8척이로군.”
“그렇습니다. 분명 북미왕국의 군함이 여러 소문처럼 강력하다 해도 이 정도 규모의 차이라면...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입니다.”
북미왕국의 함대는 큰 군함과 작은 군함이 반씩 섞여 있었기에 프랑스 함대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왜소해 보였다.
그 때문에 함장은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이야기했지만, 아브라함은 오히려 표정을 살짝 굳히고 손으로 북미왕국 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저들도 비슷한 생각인 것 같군. 우리를 보고도 일자진을 펼치고 다가오는 것을 보면 말이야.”
“으음...”
생각해보니 저들은 수에서 불리한데도 거침없이 일자진을 펼치고 다가오고 있었고 이는 북미왕국은 저 소규모 함대로도 프랑스 함대를 모두 상대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방증이었기에 함장은 아브라함의 지적에 신음을 흘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에 아브라함은 전투를 앞두고 너무 과도하게 긴장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기에 슬쩍 미소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 말처럼 함대 규모에서 차이가 나니 작전대로만 움직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걸세.”
“허면?”
함장이 바라보자 아브라함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을 시작하지. 깃발을 올리게.”
“알겠습니다!”
* * *
“함대 사령관님! 저기 보시지요!”
부관의 외침에 이정운은 망원경을 눈에서 떼고 프랑스 함대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중얼거렸다.
“함대를 나눴군? 그것도 3개로?”
북미왕국의 함대를 발견한 프랑스 함대는 3개로 나뉘어 맨 뒤쪽에 보이는 20여 척의 함대는 돛을 완전히 걷어 배의 속도를 죽이고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맨 앞쪽에 자리한 30척 규모의 함대는 모든 돛을 펼쳐 배의 속도를 올리고 빠르게 북미왕국의 함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고.
중간의 30척 규모의 함대는 기존의 속도를 유지하며 돌진하는 함대 뒤쪽에서 따라오고 있었고.
“맨 뒤쪽의 함대는 전투에 참여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아마 수송선들인 것 같습니다.”
부관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이정운은 바람을 타고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선행 함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겠지. 헌데 전투 함대를 굳이 둘로 나눌 필요가 있나? 오히려 프랑스의 전선들이 축차 소모될 텐데?”
프랑스가 북미왕국의 정보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왜 저러나 싶어 이정운이 고개를 갸웃하자 부관이 말했다.
“혹시 우리가 선행하는 함대와 싸우는 틈에 뒤쪽의 함대가 우리를 포위하려는 생각 같습니다. 우리의 기동력을 제한하기 위해서요.”
부관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고 판단했기에 이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프랑스 함대를 살펴보다가 피식 웃었다.
“나쁠 것 없군. 어차피 철저히 거리를 두고 포격으로만 싸울 생각이었으니 저들이 알아서 분산해준다면야 우리로선 고맙지.”
“그렇습니다. 함대 사령관님.”
어차피 프랑스도 서인도제도에 떠도는 북미왕국 해군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테니 프랑스 해군이 취할 방법은 하나였다.
포격전이 안된다면 튼튼한 전열함을 믿고 우직하게 붙어서 백병전을 펼치는 것.
그 때문에 이정운은 수송선을 제외한 전 함대가 똘똘 뭉쳐 북미왕국 함대로 접근하리라 생각했고 북미왕국 함대는 기동력을 이용해 최대한 거리를 두고 프랑스 함대의 외곽을 공격하며 프랑스 함대를 갉아먹을 생각이었고.
하지만 저들이 포위한다고 알아서 퍼져주면 자신들에게 나쁠 것은 없었기에 이정운이 웃자 부관 역시 슬쩍 미소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 선행하는 프랑스 함대와의 거리가 미리 이야기해둔 300m가량 되었을 때 견시수가 소리쳤다.
“함대 사령관님!”
“좋아! 선수포를 발사하게!”
이정운의 명령에 뒤쪽에 있던 부함장이 소리쳤다.
“선수포 발사!”
‘펑!’
이정운이 타고 있던 지급 전선의 선수포가 발사되자 다른 전선의 선수포도 일제히 포탄을 쏘아냈다.
‘퍼퍼퍼펑!’
* * *
프랑스의 함장인 시몽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북미왕국 함대를 보고 아브라함의 걱정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앞쪽에서 포성이 들려왔기에 시몽은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뭐지? 적 함대의 공격인가?”
“그렇습니다! 북미왕국 함대가 선수포를 발사했습니...”
‘콰쾅!’
북미왕국 함대에서 쏜 포탄은 대부분 빗나갔지만, 딱 한발이 우측에 있던 모흘레 함의 선수에 틀어박혔고 곧 폭음과 함께 모흘레 함의 선수가 박살 나며 수많은 나무 조각들이 비산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부함장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함장님! 모흘레 함의 선수가!”
“맙소사...북미왕국 군함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었나?”
시몽은 북미왕국의 소문을 믿지는 않았다.
한 발만 명중하면 배가 침몰할 정도의 강력한 속사포로 무장했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렇기에 어제 아브라함이 함장들을 불러 작전을 이야기하고 함대를 편성할 때 자신 있게 나선 것이었고.
하지만 선수 부분이 박살 나고 돛 일부에 불이 번지는 광경을 보자 북미왕국의 소문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과 아브라함이 왜 이번 전투에 앞서 그렇게 걱정한 것인지 깨달았다.
“함장님! 저기 보십시오! 북미왕국의 함대가 일제히 선회했습니다!”
견시수의 외침에 시몽은 정신을 차리고 북미왕국의 함대를 바라보았다.
북미왕국의 함대는 선수포를 날린 후 일제히 좌측으로 선회해 자신들에게 현측을 드러내면서 포격할 뜻을 드러냈다.
이를 보고 시몽이 입술을 깨물다가 중얼거렸다.
“이 거리에서? 쳇. 어차피 한 발만 명중하면 된다 이건가.”
그때 모흘레 함에 눈을 떼지 못하던 부함장이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눈빛으로 시몽을 바라보았다.
“함장님? 어찌합니까?”
이에 시몽은 애써 목소리를 높였다.
“뭘 어째! 어차피 저들의 화력이 대단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잖아! 하지만 저들은 고작 8척에 불과해! 어떻게든 붙기만 하면 그만이다! 돛을 최대한 펴고 북미왕국 군함을 들이받으면...”
‘퍼퍼퍼퍼펑!’
현측을 드러낸 북미왕국 함대에서 포성이 들리자 부함장은 기겁한 표정으로 북미왕국 함대 방향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함장님! 북미왕국 함대의 일제 포격입니다! 포탄이 날아옵니다!”
“괜찮아! 저들의 군함에는 포가 많지 않...”
시몽은 애써 부함장을 비롯한 병사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시몽의 배에 포탄이 명중했고.
‘콰콰쾅!’
선수에 틀어박힌 포탄이 터지며 아비규환의 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끄악!”
“아악!”
“내 팔!”
포탄이 폭발하면서 그 충격으로 비명을 지르며 바닷속으로 떠밀려간 병사들과 선수가 박살 나며 흩날리는 나무 파편에 박혀 피투성이가 된 병사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불이다! 모래 가져와!”
“화약통을 치워! 불똥 튀지 않게 막아!”
“돛에 불이 붙었다!”
그나마 뒤쪽에 있던 병사들은 기겁하며 불길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한 참상을 바라보던 시몽은 겁도 없이 나선 어제의 자신을 저주하며 중얼거렸다.
“...신이시여.”
* * *
‘퍼퍼퍼퍼펑!’
‘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부관이 이정운에게 보고했다.
“이번엔 3척에 명중했습니다. 3척 모두 당장 전투에 참여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 이제 22척 남은 건가?”
“그렇습니다.”
이에 이정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 생각외로 튼튼하군. 저 가운데 있는 전열함엔 3발이나 명중했는데도 갑판은 온통 아수라장일지언정 함이 침몰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그렇습니다. 침몰시키려면 유폭을 노리고 여러 발을 명중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신호용으로 쏜 선수탄에 운 좋게 한 발이 명중하고 선회한 후 3번의 포격으로 지금까지 전열함 7척에 포탄을 명중시켰지만 침몰한 전열함은 단 2척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갑판 위나 돛대가 부러지는 등의 피해를 입어 당장 전투에 참여하기는 어려워 보이나 일단 배가 침몰할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아직은 거리가 있는 만큼, 그리고 선회한 후 빠르게 이동하며 사격하는 만큼 명중탄이 적어 방금을 제외하면 전열함 한 척에 기껏해야 한두 발의 포탄이 명중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이에 이정운은 조금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계속 접근하는 프랑스 함대를 바라보고 있을 때 부관이 소리쳤다.
“어? 함대 사령관님! 저기 뒤쪽의 작은 전선이 튀어나왔습니다!”
부관의 말처럼 전열함 뒤쪽을 졸졸 따라오던 작고 날렵해 보이는 전선 10척가량이 갑작스럽게 속도를 올리며 전열함 옆을 지나 북미왕국 함대로 접근하고 있었다.
“정찰선인가 본데...지금까지 전열함 뒤에 있었으면서 왜 갑자기 지금?”
“포격을 분산시키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글세...음?”
의아한 표정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정찰선을 망원경으로 확인하던 이정운은 갑판 위에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확인하고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급히 소리쳤다.
“당장 깃발을 올려 함대에 신호하게! 접근하는 선박부터 우선 사격하라고!”
“예? 아...알겠습니다.”
이정운의 명령에 부관은 갸우뚱했지만 심각한 이정운의 얼굴에 곧바로 깃발을 올렸고 북미왕국의 함대는 깃발을 확인하고 접근하는 선박들부터 포격하기 시작했다.
‘퍼퍼퍼퍼펑!’
포탄은 빠르게 날아가 북미왕국 함대를 향해 돌진하는 작은 선박들에 한두 발씩 틀어박혔고.
‘콰콰콰콰콰쾅!’
작은 배에서 일반적인 폭발음과는 전혀 다른 커다란 폭발음에 부관은 기겁했다.
“맙소사!”
“역시 화약을 가득 실은 화선이었군.”
이번 포격으로 접근하던 화선 4척이 포격을 맞고 침몰하자 남은 화선 중 2척 정도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연기? 시야를 막겠다는 뜻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서로 이동하는 지금 상황에선 큰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저들이 연기 속에 숨는다면 맞추기 힘들 것 같기는 하군.”
“그렇습니다. 바람도 그렇고요.”
북미왕국의 함대가 원래 자리에 있었으면 모를까 좌측으로 선회하고 빠르게 이동 중이라 저들이 연기를 피운다고 해서 북미왕국의 시야가 연기로 인해 가려지지는 않았기에 이정운이 심드렁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다시 포탄이 발사되었다.
‘퍼퍼퍼퍼펑!’
총 36문의 후장식 화포가 가깝게 접근한 화선들을 조준하고 발사되었고.
‘콰콰콰콰콰쾅!’
“6척 격침! 화선은 모두 침몰시켰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이정운은 화선에 포격을 집중하는 사이 상당히 다가온 전열함을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일단 겁도 없이 접근하던 함대는 전열함 12척만 남은 셈이로군. 저 정도면 접근하기 전에 침몰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명중시켜 돈좌시킬 수는 있을 것 같은데...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