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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12화 (312/850)

312화

함장실에서 해도를 유심히 보고 있던 이번 지원 함대의 지휘를 맡은 아브라함 듀케인 제독은 옆에 서 있는 이 배의 함장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이대로라면 내일 아침에 뉴펀들랜드 섬 인근에 도착하겠지?”

“그렇습니다. 제독님.”

루이 14세가 누벨 프랑스에 지원 병력을 보내라고 명령한 이후 콜베르는 잉글랜드에 상륙 작전을 잠시 미루자고 통보하고 잉글랜드와의 연합 함대를 구성하던 프랑스 함대를 그대로 지원 함대로 편성했다.

더불어 루이 14세가 지원 병력으로 편성한 2만 명의 병사를 수송하기 위해 상선을 추가로 편성했고.

덕분에 80척의 대규모 함대가 지원 함대라는 이름으로 편성되었고 이 지원 함대의 지휘는 루이 14세가 믿고 있는 프랑스 해군 제독인 아브라함 듀케인이 맡게 되었다.

한참 잉글랜드와 연합해 네덜란드 해군을 상대하는 일에 골몰하던 아브라함은 이 갑작스러운 명령에 놀랐지만, 루이 14세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콜베르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빠르게 지원 함대를 구성해 출항했고 긴 항해 끝에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의 입구에 해당하는 뉴펀들랜드 섬에 도달한 것이다.

“흐음...”

아브라함은 해도 옆에 놓여있는 수많은 보고서 더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이를 보고 함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러십니까?”

“내일이면 소문의 북미왕국 함대와 싸워야 할 테니 긴장되어서 그러네.”

지금껏 아브라함이 프랑스 해군의 제독으로 여러 차례 전쟁에 참여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함장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뉴펀들랜드 섬에 주둔 중인 북미왕국의 함대는 소규모 함대이지 않습니까?”

해전을 한두 번 경험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는 듯한 함장의 반응에 아브라함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랬겠지만, 현재 북미왕국은 우리 프랑스와 전쟁 중이고 저들도 바보는 아닌 만큼 뉴펀들랜드 섬에 추가로 군함을 배치했을걸세. 유럽에서 오는 배를 경계하기엔 최적의 장소이니만큼.”

그 말에 함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북미왕국의 해군 규모 자체가 작은 만큼 상대하는 데는 그렇게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함장의 대답에 아브라함은 표정을 굳히며 해도 옆에 놓여있는 북미왕국 해군에 대한 수많은 보고서 더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저 보고서들은 자네도 보지 않았나?”

아브라함의 표정이 굳은 것을 확인하고 함장은 살짝 긴장하면서 대답했다.

“물론 보긴 했습니다만...사실 확인이 된 보고는 아니지 않습니까. 서인도제도에 퍼진 소문을 취합한 내용에 불과하지요.”

“그러니 신빙성이 없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북미왕국의 군함에 의해 수많은 해적선과 사략선이 침몰한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 때문에 서인도제도 서쪽엔 해적선과 사략선은 얼씬도 하지 않고 있으니 말일세.”

아브라함의 말에 함장은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함장을 보고 아브라함은 질문을 던졌다.

“믿기 어려운 건가 아니면 믿기 싫은 건가?”

이에 함장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둘 다입니다. 제독님. 북미왕국은 분명 문명과 기술이 발달한 국가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들이 이미 속사포를 운용한다는 것은 믿기 어렵지요. 더불어 저들이 사용하는 속사포는 무척 정확하고 강력해 한 발만 명중해도 배가 침몰한다는 것은...믿기 싫을 수밖에 없지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우린 최악을 대비해야 하는 만큼...북미왕국의 군함에는 강력한 속사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준비해야 하네. 그래야 만약의 사태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지. 자네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면 다른 함장들도 비슷하겠군.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군.”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북미왕국의 함대와 조우하기 전에 함장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함장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저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면...솔직히 승산 없는 싸움 아닙니까? 북미왕국의 군함은 빠르고 포탄을 튕겨낼 정도로 단단하며 강력한 속사포로 무장했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군함을 무슨 수로 상대합니까?”

함장의 말처럼 서인도제도에 퍼진 북미왕국 군함의 소문은 말이 안 될 정도였다.

빠르고 단단하며 강력한 함포로 무장한 완전무결한 군함에 가까웠으니 정말 북미왕국의 군함이 소문과 같다면 상대할 방법은 거의 없었다.

이에 아브라함은 이곳에 오기까지 저 보고서들을 읽고 또 읽었기에 함장의 심정이 이해가 가서 씁쓸히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어쩌겠어. 국왕 폐하께선 기필코 북미왕국의 함대를 격파하고 누벨 프랑스를 되찾아오라고 신신당부하셨으니 어떻게든 해봐야지. 해서 말인데...저 보고서의 내용이 정말 사실이라면 포격전은 승산이 없을 것 같아.”

“그야 그렇지요. 하지만 배를 붙여 근접전에 돌입하기도 쉬워 보이진 않습니다만...”

정말 저들의 함포가 강력하다면 포격전보다는 직접 배를 붙여 근접전을 통해 배를 탈취하는 것이 그나마 나아 보였다.

문제라면 그게 굉장히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북미왕국의 함대가 프랑스의 함대가 접근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더불어 저들의 배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고 갑판 위에 마치 성처럼 구조물이 있고 북미왕국의 병사들은 전투 시에 그 구조물 안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일반적인 백병전이 가능한가 싶었다.

그런 함장의 반응에 아브라함은 자신도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하지만 백병전 외엔 딱히 방법이 없어 보이는 것이 문제니 어쩌겠어. 구조물이야 화약통을 가져가 터트리면 그만일 테고.”

아브라함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기에 함장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해서 말인데 함대를 넷으로 나누자고. 프리깃함으로 구성된 함대와 화선으로 구성된 함대, 그리고 전열함으로 구성된 두 개의 함대로 말일세. 그리고 북미왕국의 함대를 발견하면 풍상 측을 점하고 바람을 타고 빠르게 접근하는 거지. 그리고 일단 전열함으로 구성된 하나의 함대와 화선으로 구성된 함대를 보내자고.”

아브라함의 말에 함장은 아브라함의 의중을 알아채고 딱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전열함이 저들의 포격을 버티는 사이 화선으로 북미왕국의 함대를 공격하겠다는 뜻이로군요.”

“정확하네. 더불어 화선의 절반은 연기가 자욱하게 나는 인화성 물질을 실었으니 그걸 앞세우고 화약을 가득 실은 화선을 접근시켜 공격한다면 효과가 없지는 않을 거야.”

화선은 일종의 자폭선으로 전열함 간의 전투는 포탄의 한계로 인해 포격으로만 전열함을 침몰시키기에는 한세월이 걸리는 터라 빠르게 적 군함을 침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선박이다.

화선은 용감한 선원들이 배를 몰고 적 군함에 가까이 가서 불을 지르고 바다에 뛰어드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만큼 정박한 함대에는 효과적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효과가 조금 떨어지기는 했다.

더불어 공격할 때마다 배를 불태우는 만큼 비용 문제로 인해 함부로 쓰기도 어려웠고.

하지만 아브라함은 북미왕국의 해군이 만만치 않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코트렐의 도움으로 지원 함대에 최대한 많은 화선을 편제했고 북미왕국의 선박은 돛이 없다고 들었기에 일반적인 인화성 물질보다는 시야를 가릴 수 있도록 연기가 나는 풀들과 화약통을 준비해두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함장은 아브라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면 전장은 무척 혼란스러울 테고 당연히 저들은 이동하려 들겠지.”

이에 함장이 아브라함의 말을 받았다.

“그런 북미왕국의 함대를 온전한 전열함 함대가 접근해 백병전을 걸겠다는 뜻이로군요. 더불어 빼 두었던 프리깃함으로 구성된 함대는 우회해 함대를 포위하겠다는 뜻이고요.”

“그렇지.”

정말 북미왕국의 군함이 보고서처럼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하다면 아브라함의 작전이 그나마 승산은 있어 보이긴 했다.

하지만 이 작전대로라면 피해가 너무 크지 않나 싶은 함장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독님. 제독님의 작전대로라면...그리고 저 보고서에 적힌 북미왕국 군함의 성능이 사실이라면 북미왕국 함대의 포격을 버텨야 하는 전열함과 화선, 최소한 30척 이상이 침몰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피해가 너무 큰 것 아닙니까? 우리는 네덜란드와도 전쟁 중이잖습니까. 더불어 화선이야 그렇다 쳐도 전열함 20척이 침몰한다면 콜베르 님이 난리를 치실 텐데요?”

콜베르는 해군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급격히 프랑스 해군을 키워나갔다.

그런 만큼 콜베르는 전열함 한 척 한 척을 아꼈고 그렇기에 프랑스 함대는 잉글랜드와 연합해 네덜란드를 공격할 때도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작전은 사용하지 않을 정도였고.

헌데 지금 아브라함의 작전은 기존의 작전과는 전혀 다른, 피해를 감수하고 과감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작전이었으니 함장은 승리하더라도 아브라함 개인에게는 좋지 않으리라고 판단해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그런 함장의 말에 아브라함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우...솔직히 나도 저들과 한 번 교전해보고 정말 보고서에 적힌 것처럼 강력하다면 바로 후퇴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하네. 함대를 보존해야 제해권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국왕 폐하께서는 나를 직접 불러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북미왕국 함대를 꼭 격파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는 점이지. 더불어 콜베르 님도 이번엔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북미왕국의 함대를 격파하고 누벨 프랑스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러니 어쩌겠나.”

“으음...”

아브라함의 대답에 함장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국왕인 루이 14세도, 해군을 책임지는 콜베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북미왕국의 함대를 격파하고 누벨 프랑스를 되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면 아브라함으로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북미왕국의 함대를 격파하고 수송 중인 병력 2만을 누벨 프랑스에 내려놔야 했다.

이에 함장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허면 해가 질 때 정박하고 함장들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 * *

“함장님! 저기 보십시오! 대규모 함대입니다!”

언제나처럼 정찰을 나온 인급 전선의 함장은 견시수의 비명 섞인 외침에 급히 갑판으로 나와 망원경을 꺼내 살펴보고 중얼거렸다.

“...맙소사. 대체 저게 몇 척이야?”

함장과 함께 나온 부함장도 망원경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 말했다.

“...못해도 50척은 가볍게 넘어 보입니다. 100척은 안 될 것 같고요. 저런 대규모 함대라면...역시 프랑스 함대겠지요?”

“아무리 봐도 어선처럼 보이진 않네.”

망원경으로 봐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기에 함장은 급히 인급 전선을 대규모 함대 방향으로 돌렸고 시간이 좀 흐르고 인급 전선이 대규모 함대에 가까워지자 함장과 부함장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 대규모 함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깃발과 문양을 보니 프랑스 함대로군. 물론 프랑스의 대규모 함대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너무 많지 않나? 분명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전쟁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

함장이 투덜거리자 부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설마 네덜란드가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항복한 것 아닐까요?”

“그리고 본토에 함대를 누벨 프랑스로 보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젠장. 조금만 더 버티지.”

그러면서 함대 규모를 파악하던 함장은 부함장을 보고 말했다.

“대략 80척 정도 되는 모양인데?”

“예. 그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절반 이상은 저들이 자랑하는 전열함인 것 같습니다. 크기가...인급 전선보단 커 보여요.”

프랑스 해군은 루이 14세의 집권 이후 급격하게 규모가 늘어났기에 해군에 소속된 군함 대부분은 새로 건조된 전열함들이었고 크기도 인급 전선보다는 컸기에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부함장이었다.

이에 함장은 시선을 돌려 전열함 뒤쪽을 바라보다 말했다.

“뒤쪽의 배들은 어째 상선처럼 보이는데...병력을 태운 수송선인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 인급 전선은 프랑스 함대에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프랑스 함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인급 전선에 타고 있는 선원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부함장이 함장에게 눈치를 주자 함장은 눈에서 망원경을 때며 명령을 내렸다.

“흐음...이 정도면 충분히 정찰한 것 같으니 바로 배를 돌리고 전속력으로 세인트존스 항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함장님.”

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인급 전선은 급히 뱃머리를 돌려 빠르게 세인트존스 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함장은 자리를 옮겨 뒤쪽의 갑판에서 점차 작아지는 프랑스 함대를 망원경으로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80척? 휴우. 한 척당 10척은 침몰시켜야 한다 이거지? 어디 한번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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