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잉글랜드의 국왕인 찰스 2세는 보좌관의 보고에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가 하는 표정으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음? 그게 무슨 소린가? 프랑스에서 지금 준비 중인 네덜란드 상륙 작전을 일단 미루자고 했다고?”
잉글랜드는 프랑스와 연합 함대를 구성해 2차례에 걸쳐 상륙 작전을 시도했지만 결국 네덜란드 함대에 가로막혔고 이 때문에 함대를 재정비해서 다시 한번 상륙 작전을 감행할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는 만약을 위해 빼 둔 몇 척의 전열함도 이번 작전에 포함 시켜 이번에야말로 네덜란드의 함대를 박살 내고 상륙 작전을 성공시키겠다며 벼르고 있었고.
헌데 갑작스럽게 프랑스가 작전을 미루자고 하니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 되묻자 보좌관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해서 잉글랜드 대사가 알아보니 누벨 프랑스로 보낼 지원 함대를 편성 중이라고...”
보좌관의 말에 찰스 2세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뭐라고? 맙소사...누벨 프랑스로 지원 함대를 보내겠다고? 설마 내가 쓴 친필 서한을 루이 14세에게 전달하지 않은 건가?”
“분명 전했답니다. 헌데 갑자기 누벨 프랑스를 공격한 북미왕국에 프랑스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지원 함대를 편성해 보내라고 명령했답니다.”
서인도제도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확인하고 혹시 루이 14세가 오판할 것을 우려해 직접 친서까지 썼건만 루이 14세는 아랑곳하지 않고 누벨 프랑스를 되찾기 위해 대규모의 지원 함대를 편성 중이라는 보좌관의 보고에 찰스 2세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하아...골치 아프군. 이미 누벨 프랑스는 북미왕국이 장악했을 텐데 이곳에 지원 함대를 보내겠다는 것은 북미왕국과 제대로 한 판 붙겠다는 뜻이잖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북미왕국의 함대와 맞닥뜨리는 순간 프랑스의 함대는 바닷속으로 사라질 테고.”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찰스 2세의 말에 보좌관은 조심스럽게 이견을 제시했다.
“음...뭐 그럴 확률이 높긴 하지만...생각보다 지원 함대의 규모가 크다고 하니 또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보좌관은 서인도제도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모두 확인했기에 북미왕국의 군사력을 모르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도 북미왕국의 일방적인 승리를 점치지 않았기에 찰스 2세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이에 보좌관은 조심스럽게 찰스 2세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시작했다.
“물론 북미왕국 해군이 후장식 화포와 특유의 터지는 포탄을 사용하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저들의 함대 규모는 작은 편이잖습니까. 더불어 북미왕국 해군은 드넓은 북미 해안가를 지키느라 얼마 안 되는 함대가 퍼져있지요. 그에 반해 프랑스가 이번에 합동 작전을 미룬 것을 보면 연합 함대를 구성하던 프랑스 함대를 그대로 지원 함대로 편성할 것 같은데...그것만 해도 60척이 넘습니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네덜란드의 함대를 꺾기 위해 3번째 상륙 작전에 참여하는 연합 함대 규모는 120척 규모로 예정되어 있었다.
해서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각각 60척의 함대를 구성했었고.
물론 이 60척 전부가 전열함은 아니었다.
정찰을 위한 프리깃과 함대 진형을 흐트러트리기 위한 화선도 포함된 숫자긴 했지만, 전열함만 하더라도 40척에 가까웠다.
그에 반해 북미왕국의 해군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대서양 방면의 북미왕국 해군 소속 선박은 대략 20척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더불어 이들은 드넓은 북미 대륙의 해안가를 지키기 위해 함대를 둘로 나누었다는 것은 이미 클레멘트의 보고로 알고 있었고.
결국, 60척 규모의 프랑스 함대와 잘해야 10척 규모의 북미왕국 함대가 맞붙게 될 텐데 보좌관은 아무리 북미왕국의 함대를 구성하는 군함이 강력하다 하더라도 쉽지는 않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보좌관의 생각을 이해한 찰스 2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흐음.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은 대규모 해전을 치른 적도 없고 수에서도 밀리니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프랑스에도 승산이 없지는 않아 보이긴 해.”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의 군함들은 서인도제도를 배회하는 해적선과 사략선 정도만 상대했을 뿐이지 대규모 해전을 치른 적은 없었다.
에스파냐와의 전쟁은 북미왕국의 기습공격으로 시작해 일방적으로 끝났으니.
더불어 군함의 성능이 중요한 소규모 전투와는 달리 함대 전술이 중요한 대규모 해전은 또 달랐기에 찰스 2세가 수긍하자 보좌관이 반색했다.
“그렇지요?”
이에 찰스 2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북미왕국과 프랑스의 전쟁을 두고 내기를 한다면 난 북미왕국의 승리에 돈을 걸고 싶군. 코트렐의 보고서 때문인지 머릿속에서 북미왕국의 함대가 프랑스의 함대에 깨지리라는 상상이 되질 않아. 프랑스의 함대가 박살 나는 것만 상상되지.”
“뭐 그렇긴 합니다.”
보좌관 역시 찰스 2세의 말에 기묘한 표정으로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적으로 판단해보면 비등하거나 프랑스가 더 유리할 것 같은데 심적으로는 북미왕국의 함대가 프랑스 함대를 박살 내지 않을까 싶었기에.
그런 보좌관의 반응에 찰스 2세는 피식 웃고 입을 열었다.
“그보다 예정된 연합 작전도 미루고 내가 친서를 보냈는데도 이를 무시하듯 북미왕국과 대대적으로 전쟁을 벌이겠다는 것은 잉글랜드와 나를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지. 안 그런가?”
찰스 2세는 웃는 얼굴로 이야기했지만, 보좌관은 찰스 2세가 자신의 말을 무시한 루이 14세의 행동에 내심 불쾌해하고 있다는 것을 재빠르게 파악하고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니 네덜란드에 사절을 보내게.”
한창 전쟁 중인 네덜란드에 사절을 보낼 일이 무엇이겠는가.
보좌관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찰스 2세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절이라면...역시 강화 협상을 위한 사절입니까?”
“그렇네. 프랑스 함대와 북미왕국 함대가 맞붙으면 승패와는 상관없이 프랑스 함대는 꽤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어. 그만큼 프랑스의 해상 전력을 약화 된다는 뜻이고...지금도 네덜란드 해군을 뚫지 못하는 상황에서 프랑스의 해상 전력이 약화 된다면 네덜란드를 항복시키기 위한 상륙 작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야겠지. 그러니 지금 네덜란드와 협상해 적당히 실리를 취하는 것이 차라리 나아 보이네. 더불어 네덜란드도, 프랑스도 해상 전력이 한동안 묶일 수밖에 없으니 이 기회에 해상 무역 장악에 집중한다면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을 테고.”
잉글랜드도, 프랑스도, 네덜란드도 이번 전쟁을 위해 상당수의 군함을 본국으로 집결한 상태였다.
당연히 주변 해역을 보호하는 군함의 수가 줄어들어 사략선과 해적의 활동이 기승을 부렸고.
이런 상황에서 잉글랜드는 전쟁에서 빠지고 자국의 상선을 보호하고 사략선을 뒤에서 지원해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선박을 공격하게 한다면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흔들 수 있었기에 찰스 2세가 씩 웃으며 이야기하자 보좌관은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과연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국왕 폐하.”
* * *
슬슬 더워지기 시작할 무렵 정성국은 집무실을 찾아온 조용한 곰의 보고에 반색했다.
“그래? 촉토 족이 결국 북미왕국에 합류했다고?”
촉토 족은 전생의 루이지애나 주와 미시시피 주의 영역에 자리한 부족으로 텍사스 지역의 원주민 부족 태반이 북미왕국에 합류한 이후 새진주의 외무청 관리들은 텍사스 지역 동쪽의 원주민 부족들을 방문해 이들과 우호적인 교류를 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교류하길 4년 만에 가장 세력이 큰 촉토 족이 북미왕국으로 합류하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정성국은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미소지으며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더불어 치티마차 족도 북미왕국에 합류했습니다.”
“아. 치티마차 족이라면...그 미시시피 강 하류에 사는 원주민들 말이지?”
“그렇습니다. 전하.”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미시시피 강을 이용할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전하. 미시시피 강을 통해 북미 대륙 내륙 지역으로 진출할 길이 열린 셈이지요.”
정성국은 몸을 돌려 집무실 뒤편에 걸려 있는 북미 대륙의 지도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이거 북대서양 탐사대보다 미시시피 강 탐사대를 먼저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원래는 올해 북대서양 탐사대를 창설할 생각이었지만 프랑스와의 전쟁을 고려해 빠르게 2함대를 키울 필요가 있어 일단은 북대서양 탐사대의 창설은 뒤로 밀렸다.
해서 내년쯤에 북대서양 탐사대를 창설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티치마차 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해 미시시피 강 하류도 북미왕국의 영토가 된 이상 오히려 북대서양 탐사대보다는 미시시피 강 탐사대를 먼저 창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미시시피 강은 북미 대륙 중부에 존재하는 수많은 지류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이곳을 탐사한다면 북미 대륙 내륙의 원주민 부족들과 교류할 수 있고 결국 내륙의 원주민 부족들도 북미왕국에 끌어들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를 짐작한 조용한 곰은 환영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그것도 괜찮지요.”
그러면서 잠시 미시시피 강 탐사대의 이야기를 하다가 정성국은 문득 생각나 진지한 표정으로 조용한 곰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촉토 족은 식인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이에 조용한 곰 역시 웃음을 지우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북미왕국이 식인 풍습을 극도로 혐오한다는 사실과 아코키사 족이나 아타카파 족이 식인 풍습을 포기한 대신 북미왕국으로부터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과 북미왕국에 합류한 이후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생활 수준이 나아진 것을 확인한 촉토 족은 결국 북미왕국에 합류하는 대신 식인 풍습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텍사스 지역의 아코키사 족과 아타카파 족에는 식인 풍습이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북미왕국의 위협을 동반한 설득에 결국 식인 풍습을 포기했다.
처음에는 내심 불만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북미왕국이 이들을 세심히 살폈기에, 그리고 북미왕국에 합류한 후 이들의 생활 수준은 확실히 나아졌기에 아코키사 족과 아타카파 족은 별다른 불만을 나타내지 않고 식인 풍습도 완전히 버렸다.
문제는 아타카파 족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촉토 족과 치티마차 족도 아타카파 족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비슷한 풍습을 지녔기에 외무청 관리들은 이들 부족에도 식인 풍습이 있지 않을까 걱정해 조심스럽게 알아보았고 촉토 족 역시 식인 풍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외무청에서는 이 문제를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시간을 들여 설득한 끝에 식인 풍습을 포기하겠다는 확답을 받은 것이다.
그러한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안도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덧붙였다.
“그거 정말 다행이군. 그리고 주변 부족들도 말과 풍습이 비슷하니 식인 풍습이 있는 부족이 분명 더 있을 거야. 그러니 이번에 합류한 촉토 족의 도움을 받아 다른 부족들을 설득해 보게.”
“물론입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벽에 걸려 있는 북미 대륙이 그려진 지도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보다 몇몇 부족만 더 설득하면 지도상으로 떨어져 있던 플로리다와 연결되긴 하겠군. 뭐 그렇다 해도 당장 육로로 이동하기는 어려워 보이긴 하는데...”
현재 북미왕국은 북미 대륙 전체를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장악한 지역은 해안가에 인접한 커다란 U자 형태에서 아랫부분이 비어있는 형태였다.
그리고 이번에 촉토 족과 치티마차 족이 합류했기에 촉토 족의 영역에서 플로리다 지역 사이에 자리한 몇몇 부족을 설득한다면 육지로도 연결되는 셈이었고.
“그렇지요. 이 지역은 생각보다 강이 많아서 육로로 이동하려면 쉽지 않을 겁니다. 더불어 훗날 이 지역에 철로를 까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이고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어휴. 텍사스에서 해안가를 따라 매사추세츠 지역까지 철도를 깔 바엔 거기 들어가는 돈으로 대서양 방면의 도시 곳곳에 조선소를 만들고 수많은 배를 건조하는 편이 나을걸?”
“하하하. 그건 그렇지요.”
“그보다 슬슬 조선의 사절단이 도착할 시기 아닌가?”
이에 조용한 곰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작년에 방문했던 사절단이 조선 내에 북미왕국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인지 사절단에 포함되기 위한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고 그러더군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어휴. 그럼 이번에도 꽉꽉 채워서 오겠군.”
“하하하. 아마 그럴 겁니다.”
“작년처럼 외무청에서 잘 대접하게.”
“물론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나시면 한번 읽어보시지요.”
정성국의 말에 웃음 짓던 조용한 곰은 들고 있던 보고서 밑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조선의 책으로 보였기에 정성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를 받아들고 책 앞에 적힌 한자를 확인하며 말했다.
“음? 북미왕국 견문록? 이건 뭐야?”
“작년 조선 사절단의 정사인 유철이 집필한 책이랍니다. 투로시노와 유철은 친한 편이라 유철이 몇 권 보낸 모양입니다.”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책의 이름을 이해하고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 자넨 읽어봤나?”
“그렇습니다. 물론 전하께 드린 책이 아닌 외무청 관리가 번역한 글을 읽었습니다만...”
“아.”
북미왕국 견문록은 유철이 조선의 선비들을 일깨우기 위해 쓴 글이니만큼 당연히 정음이 아닌 한자를 사용했기에 원상을 통해 이 책을 받은 투로시노는 번역본을 만들어 함께 본국으로 보냈다.
“대부분 내용은 북미왕국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글 입니다만...간간히 북미왕국의 정책을 조선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건국한 지 얼마 안 되는 북미왕국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평가하는 부분이 조금 신선하더군요.”
그 말에 정성국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북미왕국 견문록을 바라보다가 책을 한쪽에 내려놓고 말했다.
“그래? 시간 날 때 한번 읽어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