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모든 병사와 물자들의 하역이 끝났을 때 외무청 관리가 지급 전선 위에서 대기 중인 이정운에게 다가와 자세한 보고를 시작했고 이정운은 외무청 관리의 이야기를 다 듣고 조금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 온타리오 호수면 이 세인트로렌스 강 가장 안쪽에 연결된 호수잖아? 그쪽으로 이동해 내륙으로 들어가려 했다고?”
외무청 관리는 그런 이정운의 반응을 이해하고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총독은 애초에 이곳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동맹 부족과 함께 적당히 시간을 끌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 본국에서 지원병력이 올 때까지?”
“그렇습니다. 버티고 버텨 북미왕국의 병력을 최대한 분산시켜보겠다...뭐 이런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에 이정운은 고개를 저었다.
항복 후 무기를 내려놓고 빈손으로 무리 지어 있는 프랑스인들의 수를 고려해보면 총독의 계획대로 자신들이 도착하기 전에 저들의 배가 도착해 배를 타고 이동했다고 하더라도 크게 위협적일 것 같지는 않았기에.
“거참...큰 의미는 없었겠지만, 귀찮아질 수는 있었겠네. 근데 그런 생각을 한 양반이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용케 항복했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총독은 끝까지 항전할 생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건 개죽음이라고 생각한 행정관이 나서서 총독을 설득한 모양이고요.”
프랑스인들이 하나둘 목책에서 나와 무장을 해제하는 동안 외무청 관리는 장에게 누벨 프랑스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졌고 그러면서 알게 된 정보를 이야기하자 이정운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 그럼 총독은 더 주의 깊게 살펴야겠군. 특별 대우를 한다는 명목으로 적당히 격리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고. 그리고 항복 협상을 주도한 그 행정관이 실세인 것 같은데 그를 잘 회유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고.”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이정운의 말에 외무청 관리가 동의하자 이정운은 시선을 돌려 퀘벡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그럼 여기엔 민간인은 전혀 없다는 거네?”
“뭐 엄밀히 따지자면 저기 의용병들이 민간인이긴 하지요.”
이정운의 물음에 외무청 관리는 손으로 무장을 해제한 체 한곳에 모여있는 프랑스인들을 가리키며 말했고 이정운은 이를 보며 난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러면 애매한데...저들을 계속 포로 취급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무장을 해제했으니 그냥 풀어줘야 하나?”
“아무래도 포로 취급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곳에 가족이 남아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고요. 거기에 포격으로 인해 저들이 지낼 곳은 대부분 사라졌으니까요.”
외무청 관리의 말에 이정운은 선착장 인근의 폐허를 바라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런가? 이거 좀 미안한데...”
“뭐 그런 거 신경 쓰고 전쟁을 치를 수야 없지 않습니까. 우리야 프랑스인들이 결사 항전할 줄 알았으니까요.”
심드렁한 외무청 관리의 말에 이정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기야 하지. 헌데 저들을 모두 포로 취급해서 매사추세츠 지역으로 데리고 가면 결국 이곳은 텅 비게 되잖아?”
“그렇겠지요. 그렇다고 이곳을 비워둘 수는 없으니...당분간은 병영만 존재하는 군사 도시가 되겠지요. 아. 그리고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강을 따라 몇몇 조그마한 마을들이 더 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봉화가 처음으로 올라왔던 선착장과 그곳과 연결된 지류가 있잖습니까.”
외무청 관리의 말에 이정운은 세인트로렌스 강과 연결된 지류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아. 거기? 설마 그 지류 안쪽에도 마을이 있는 건가?”
“그렇답니다. 모피 거래소가 들어섰다가 시간이 흘러 조그마한 마을로 변했다고 하는군요.”
그러면서 장에게 들었던 설명을 이정운에게 전달해주는 외무청 관리였고 이를 다 듣고 이정운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세인트로렌스 강 안쪽으로 보낼 인급 전선 한 척과 사그네 강으로 보낼 인급 전선 한 척을 빼 두겠네. 그러니 그곳에 태울 프랑스 포로를 준비해두게. 우리가 이야기해봐야 프랑스인들이 곧바로 믿지는 못할 테니. 아. 그리고 어차피 뉴펀들랜드 섬은 장악했을 테니 상관없지만, 아카디아 지역의 프랑스인들을 설득할 포로도.”
개전하는 즉시 뉴펀들랜드 섬에 주둔하고 있는 경비대가 움직여 프랑스인들의 거점인 어촌 마을을 점령하고 섬을 장악하기로 작전 계획을 짜두었기에 이정운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외무청 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곳 사람들과 안면이 있는 프랑스인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아. 근데 그 마을들도 이곳처럼 남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이정운의 물음에 외무청 관리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그건 아니랍니다. 시간도 촉박했고 대서양을 안전하게 넘을 정도의 배가 많지도 않았다고 하더군요. 해서 퀘벡의 주민들만 본국으로 보냈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그럼 그 마을들에 배치할 병사들도 따로 빼놔야겠군. 알겠네.”
* * *
퀘벡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이정운은 4함대에 포로들을 모두 태우고 곧바로 뉴펀들랜드 섬으로 이동했다.
뉴펀들랜드 섬의 거점인 세인트존스 항에 4함대가 도착해 이정운이 배에서 내리자 분함대를 책임지는 함대장이 이정운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사령관님.”
이정운은 함대장을 보고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오다 보니 프랑스인들이 거주하는 어촌 마을은 완전히 점령한 것 같더군.”
“그렇습니다. 10일에 바로 경비대를 이동시켜 점령했습니다.”
함대장의 보고에 이정운은 고개를 끄덕인 후 질문을 던졌다.
“피해는?”
“전혀 없습니다. 애초에 전투가 없었거든요.”
“아. 경비대의 숫자를 보고 바로 항복한 건가?”
함대장의 보고에도 이정운이 딱히 놀라지 않은 것은 그만큼 이곳에 배치된 경비대의 수가 많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어촌 마을은 작은 규모였고 이곳의 주민들 수보다 경비대가 많으니 북미왕국이 진군하자 항복했을 것으로 짐작해 이정운이 질문했지만 의외로 함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개전하기 3일 전쯤부터 그 어촌 마을 사람들도 곧 북미왕국이 공격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는지 작은 배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마 남쪽의 아카디아로 도망쳤겠지요. 덕분에 마을은 텅 비었지요.”
“그래? 경비대를 보고 항복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긴 한데 뭐 나쁘진 않네. 이미 누벨 프랑스는 항복했고 아카디아의 주민들을 설득할 프랑스인도 함대에 타고 있으니.”
누벨 프랑스가 항복한 이상 아카디아 지역의 프랑스인들에게 이를 알리고 잘 설득하면 그만이었고 이렇게 되면 아카디아로 도망간 프랑스인들도 자연스럽게 항복할 거로 생각한 이정운이 중얼거리자 함대장이 슬쩍 웃으며 덧붙였다.
“굳이 아카디아의 주민들을 설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매사추세츠에서 연락이 왔는데 개전하자마자 아카디아의 주민들도 북미왕국에 항복했다고 합니다.”
“뭐?”
예상외의 이야기에 이정운이 놀란 표정으로 함대장을 바라보자 함대장이 자세한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보고를 다 듣고 이정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그것 참...단순한 방어를 위해 아카디아 방면으로 진군한 병력을 아카디아를 점령하기 위한 병력으로 착각하고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항복한 게로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카디아의 마을들은 모두 해안가에 위치했는데 괜히 버텼다가 에스파냐처럼 해안가가 불타오르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는군요. 더불어 총독부의 명령대로 남자들만 숲속으로 들어가 저항하자니 남은 가족들이 걱정되고 했을 테고요.”
함대장의 이야기에 이정운은 저들의 상황에 공감했다.
그나마 퀘벡의 주민들은 가족들을 배에 태워 안전한 본국으로 보냈지만, 아카디아의 주민들은 가족을 마을에 남겨두고 북미왕국에 저항하기 위해 숲속으로 들어가야 했으니 따르기 어려웠으리라.
“그렇기야 하겠지.”
“그리고 보고에 따르면 항복 협상을 주도한 자가 매사추세츠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해서 항복하고 북미왕국의 백성이 될 테니 아카디아에도 매사추세츠에서처럼 값싸게 생필품을 팔아달라고 부탁했다는군요.”
이에 이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뭐 아카디아와 매사추세츠는 비교적 가까운 편이니 어떻게 소문이 흘러 들어간 모양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이건 경비대에서 보낸 보고서입니다.”
이정운이 보고서를 확인해보니 개전 후 아카디아 주민들이 먼저 사람을 보내 항복 의사를 보냈기에 이를 받아들이고 아카디아 지역의 장악을 위해 5천의 경비대가 그대로 북진, 곳곳에 병영을 건설할 계획이라는 내용에 이정운은 중얼거렸다.
“흠. 건설 장비나 식량 등을 수송하려면 당분간 바쁘겠는데...그보다 함대장. 누벨 프랑스는 항복했지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분함대의 임무 자체가 유럽에서 오는 선박을 이곳에서 일차로 저지하는 것이었기에 유럽의 정보에 빠삭한 함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프랑스가 남아있지요.”
“그래. 뭐 프랑스도 당장 유럽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고 프랑스의 상대는 강력한 해군을 자랑하는 네덜란드인 만큼 쉽사리 함대를 이곳으로 보내진 않으리라고 생각되긴 하는데...누벨 프랑스의 총독이 곧 프랑스 본국에서 함대와 지원병력을 보내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을 보니 프랑스 본국과 종전 협상을 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될 것 같아.”
이정운의 말에 함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운은 선착장 한쪽에 정박해 있는 분함대 소속 전선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뭐 서인도 제도에 배치된 프랑스 함대야 2함대에서 막아줄 테니 상관없고. 문제는 프랑스 본국에서 함대를 보내면 기존의 항로를 타고 올 테니 프랑스 함대를 일차적으로 막는 것은 분함대가 될 텐데...프랑스의 함대 규모가 생각보다 큰 편이라 지금 분함대의 규모로는 막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이정운의 말에 함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분함대에 소속된 전선은 총 4척이었지만 이 중 2척은 번갈아 가며 새진주에서 각종 물자를 수송하느라 실질적으로 전투에 나설 수 있는 것은 2척에 불과했으니까.
물론 북미왕국의 전선들은 바람에 상관없이 움직일 수 있었을뿐더러 후장식 화포와 작렬탄을 사용하는 만큼 프랑스 함대를 미리 발견하고 치고 빠지며 타격을 준다면 까짓거 상대 못 할 것도 없긴 했다.
다만 뒤에 4함대가 있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분함대만으로 프랑스 함대를 상대할 필요는 없기에 함대장이 입을 열었다.
“음...아무래도 그렇지요. 물론 함대 사령관님께서 하신 것처럼 치고 빠지며 한 척씩 침몰시키면 그만이긴 합니다만...”
이정운이 처음으로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인급 전선 한 척으로 치고 빠지며 에스파냐의 교역 함대를 모두 격침했던 것이었기에 함대장이 이를 언급하자 이정운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지.”
“그건 그렇지요.”
“해서 말인데...당장은 매사추세츠로 돌아가더라도 조만간 4함대 일부와 내가 이곳에서 머무르며 분함대와 함께 움직일 생각이네.”
누벨 프랑스의 소식이 프랑스에 알려지고 곧바로 프랑스에서 함대를 파견한다 하더라도 거리와 저들의 항해 속도를 고려해보면 빨라야 여름은 되어야 프랑스의 함대가 이곳에 나타날 테니 당장은 매사추세츠로 돌아가 포로 문제를 비롯한 각종 업무를 처리하고 여름에 이곳으로 오겠다는 이정운의 설명에 함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던졌다.
“허면 이곳에 몇 척이나 배치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에 이정운은 이곳으로 올 때 미리 생각해두었기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최대한 배치해야지. 4함대 소속 지급 전선 3척과 인급 전선 3척은 배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프랑스와의 전쟁을 예상하고 많은 물자를 옮겨두긴 했지만 프랑스와의 전쟁이 장기화할지도 모르는 이상 함대 일부는 수송 업무에 돌려야 한다는 것을 아는 함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함대 소속의 배까지 합치면 지급 전선 4척과 인급 전선 6척, 총 10척이군요.”
“그렇지. 뭐 2척 정도는 계속 수송 업무에 투입해야겠지만.”
“알겠습니다.”
함대장이 대답하자 이정운은 잠시 분함대 전용 선착장 반대편에 있는 유럽의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을 바라보고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면 기존에 프랑스와 누벨 프랑스를 오가던 선박들이 있지 않나?”
잉글랜드가 북미 대륙에서 철수한 후 외무청에서는 잉글랜드와 에스파냐를 통해 당분간 새진주를 제외한 북미왕국의 그 어떤 항구도 유럽의 선박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유럽에 알렸기에 이곳으로 오는 선박은 북미왕국에 허가를 받은 어선들과 퀘벡으로 이동하는 프랑스 선박뿐이었다.
“그렇습니다. 많지는 않습니다만 있기는 있었지요. 그러고 보니 슬슬 프랑스의 선박들이 퀘벡을 방문할 시기군요. 프랑스와 전쟁 중이니만큼 프랑스의 선박이 보이면 공격해야겠지요?”
이에 이정운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보이는 족족 공격하게. 아. 그래도 일단 저들은 상황을 잘 모를 테니 무조건 침몰시키지는 말고 적당히 포격으로 위협한 후 항복을 권유해 봐. 물자도 포로도 아까우니 말이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