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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306화 (306/850)

306화

이정운은 갑판 위에서 하나둘 가라앉는 선박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요즈음 훈련보단 수송 업무에 집중해서 솔직히 절반 이상은 빗나갈 줄 알았는데...생각보다 명중률이 괜찮네?”

4함대가 편성된 뒤로 분함대를 제외한 4함대 소속 전선들은 부지런하게 새진주를 오가며 물자를 운송하기 바빴기에 이정운이 의외라는 듯 말하자 부관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그래도 훈련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잖습니까. 수송 업무 중에도 간간이 포격 훈련은 했으니까요. 그리고 정식 출항하기 전까지 매사추세츠 인근에서 다시 죽어라 훈련하기도 했고요.”

북미왕국의 군대는 매년 훈련으로 소모해야 하는 총알과 포탄이 정해져 있었다.

총알과 포탄이 비싼 것은 사실이었지만 전생의 잉글랜드의 군대가 강군으로 유명한 것도 다른 나라의 군대와는 달리 실탄 사격을 하며 훈련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정성국이었기에 군사청에 신신당부한 것이다.

덕분에 4함대는 수송 업무에 집중하면서도 훈련용으로 배정된 포탄을 소모하기 위해 중간중간에 포격 훈련을 해야 했고.

거기에 이번 전쟁을 앞두고 불안했던 이정운이 올해 배정된 훈련 물자를 모조리 소모하는 강훈련을 지시했기에 그것이 효과가 있지 않겠냐고 부관이 이야기하자 이정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효과가 있었다니 다행이군.”

“헌데 사령관님. 이제 선착장도 텅 비었는데 슬슬 상륙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부관의 말에 퀘벡 앞 풍경을 살펴본 이정운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명령을 내렸다.

“좋아. 이제 계획한 대로 함대를 반으로 나눠서 포탄을 맞지 않은 선착장에 배를 대고 상륙을 시작하게. 저들은 저 목책 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차분하게 상륙해 선착장을 확보하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곧바로 이정운의 명령을 수행하려는 부관에게 이정운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아직 프랑스의 함대가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걸려. 그러니 만약을 대비해 견시수를 늘리고 모든 방향을 확인하게.”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 * *

장과 퀘벡의 장교는 총독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총독은 장과 장교가 집무실을 들어왔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집무실 한쪽의 창문을 통해 하염없이 퀘벡의 선착장을 바라보았다.

그런 총독의 모습에 장은 조심스럽게 총독을 불렀다.

“총독 각하.”

총독은 장이 부르자 그제야 장을 바라보았다.

“왔는가...”

장은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총독에게 항복을 권할 생각이었지만 총독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장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런 장의 질문에 차분했던 총독이 흥분하며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괜찮냐고? 저 광경을 보고 괜찮을 수가 있는가? 정말로? 도대체 저들은 뭔가. 악마의 하수인이라도 되는 건가? 마법을 사용해 배를 움직이고 사탄의 불덩이라도 날리는 거야?”

그런 총독의 반응에 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그럼 지금 보이는 저 지옥 같은 광경은 대체 뭔가!”

이에 장 옆에 있던 장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북미왕국의 포탄 안에는 화약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위력을 자랑하는 것 같고요.”

“그게 가능한 건가?”

“솔직히 어떻게 저것이 가능한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가능하니 저들이 사용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신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실제 북미왕국은 실제 터지는 포탄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부정해 봐야 무엇하느냐는 장교의 말에 총독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그런 총독을 보고 장이 슬쩍 덧붙였다.

“그리고 저런 위력을 자랑했기에 에스파냐는 기겁하고 항복했을 테고요.”

“하아...”

북미왕국의 공격으로 누에바 에스파냐의 태평양 방면 해안가가 모조리 불타오르고 그 때문에 에스파냐는 곧바로 북미왕국과 종전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무척이나 잘 알려진 사실이었기에 총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총독의 반응에 장은 손을 들어 창문 밖 선착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보시지요. 이제 북미왕국의 군대가 선착장을 통해 상륙하고 있습니다.”

장의 말대로 북미왕국의 함대는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선착장에 정박하고 병사들이 계속 내리는 광경이 보였기에 총독이 중얼거렸다.

“...계속해서 병사들이 내리는군.”

“그리고 저들은 곧바로 이곳으로 진격하기보다는 선착장을 지키려는 듯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 뒤에 있는 함대에도 병력이 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면서 장이 장교에게 눈짓하자 장교가 한 발짝 총독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총독 각하. 결단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저 정도의 군대에 포병이 없을 리는 만무하고 저들의 포탄이 이곳으로 날라오면...솔직히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더불어 수많은 프랑스인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겠지요.”

“...”

장교와 장의 말에도 침묵하고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는 총독의 모습에 장은 장교를 바라보았지만, 장교가 고개를 젓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총독을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들이 모든 병력을 상륙시키고 이곳을 공격하기 전에 항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무의미한 피가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총독 각하.”

장의 말에 총독은 시선을 돌려 서늘한 눈빛으로 장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무의미한 피라. 나라를 지키는데 흘리는 피가 무의미하다는 뜻인가?”

이에 장은 두 눈을 부릅뜨고 총독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 폐허를 보십시오. 북미왕국은 혹시 저곳에 매복이 숨어있을까 걱정되어 수많은 포탄을 날려 마을을 폐허로 날렸습니다. 만약 의용병이 저곳에 숨어있었다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냥 죽었겠지요. 그리고 저들이 모두 하선하고 대포를 내리고 진군하면 이곳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

“그리고 저길 보시지요. 목책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는 저 의용병들을 말입니다. 북미왕국의 포격이 시작되면 저 의용병들은 허무하게 죽어 나가겠지요. 총독 각하께서는 그걸 원하시는 겁니까? 저들은 의용병 이전에 이곳의 주민이고 총독 각하께서는 저들의 생명을 보살필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장의 말이 끝나자 총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총독 역시 북미왕국의 포격을 확인하고 항복을 고민하긴 했다.

하지만 이미 북미왕국은 누벨 프랑스에 선전포고했고 이는 자동으로 프랑스에도 선전포고한 것과 같았다.

그렇기에 지금 누벨 프랑스가 북미왕국에 항복한다 한들 이번 전쟁은 끝나지 않으며 자신들이 북미왕국에 항복하면 북미왕국은 후방을 안정시키고 전력으로 프랑스를 상대할 수 있게 되니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싶었고.

물론 목책으로 저들의 포격을 막을 수야 없겠지만 벽돌로 지어진 건물 안에서 저항한다면 솔직히 무의미하지만 조금은 시간을 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총독은 슬쩍 장교를 바라보았지만, 장교 역시 장과 비슷한 눈빛으로 총독이 항복을 결정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총독은 포기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백기를 들어 올리게. 그리고 협상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마침내 총독이 항복을 결정하자 안도한 장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총독 각하.”

* * *

“사령관님! 저기 보십시오!”

“왜? 어라?”

갑판 위에서 선착장 주변을 바라보던 이정운은 부관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백기...잖아?”

“예. 백기네요.”

이정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목책 위에서 흔들리는 백기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뭐 무의미한 피를 줄일 수야 있으니 나쁘진 않은데...외무청 관리의 예상과는 조금 다르네?”

이정운의 말에 부관은 피식 웃으며 손으로 선착장 앞 폐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아무리 누벨 프랑스의 총독이 프랑스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고집스러운 작자라 해도 저 광경을 보면 오금이 저리며 자신의 선택을 바꿀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흠...하긴. 저 광경을 보고도 목책에서 저항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긴 하지. 개죽음이나 다름없으니.”

부관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이정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부관이 덧붙였다.

“더불어 저 광경을 보고 프랑스 함대로 4함대를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거겠죠.”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믿고 있던 카드가 쓸모없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니 백기를 들어올렸다라...흠.”

폭발하는 포탄을 사용하는 북미왕국을 상대로 해전에서 승리하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은 총독이 결국 항복을 결정한 것으로 생각해 이정운이 고개를 끄덕일 때 부관이 물었다.

“어찌할까요?”

이에 이정운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뭘 어째. 일단 저들이 백기를 들어 올렸으니 호위병을 붙여 외무청 관리를 보내. 그리고 혹시 모르니 병력은 계속 내리고 아직은 저곳에서만 백기를 들어 올렸으니 견시수들에겐 주변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 * *

백기가 올라오자 외무청 관리는 경비대의 호위를 받아 퀘벡의 총독부 인근 목책까지 이동했고 그러자 목책의 문이 열리며 몇몇 프랑스인이 나와 외무청 관리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외무청 관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프랑스인의 얼굴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당신은...”

“행정관 장이라고 합니다.”

전에 퀘벡에 도착해 총독을 만났을 때 집무실에 함께 있었던 인물이라는 것을 떠올린 외무청 관리가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백기를 올린 이유는 북미왕국에 항복하겠다는 뜻이지요?”

“북미왕국이 프랑스인들을 제대로 포로로 대우하겠다고 약속하면 항복하겠습니다.”

차분하게 답하는 장의 말에 외무청 관리는 그건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시지요. 아. 다만 우리 북미왕국에서는 포로도 노동을 어느 정도 해야 합니다.”

외무청 관리의 말에 장은 잠시 인상을 찡그리며 질문을 던졌다.

“노동이요? 포로에게 강제 노역을 시킨단 뜻입니까?”

외무청 관리는 그런 장의 반응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좁은 지역에서 멍하니 있는 것보단 최소한의 노동을 통해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이는 것이 포로의 건강에도 도움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서 말입니다. 아. 그렇다고 흔히 상상하는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고 간수들이 채찍질하는 가혹한 강제 노역 같은 분위기는 전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에스파냐의 포로들도 이 노동을 통해 무척 건강해졌고 이를 알게 된 에스파냐도 북미왕국의 포로 대우는 무척 좋은 편이라고 인정했으니까요. 그 때문에 에스파냐의 포로 일부는 아예 북미왕국에 남겠다고 하기도 했고.”

솔직히 건강보단 워낙 인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포로들에게 그냥 먹을 것을 내어주며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키지 않아 노역을 시키게 되었지만 그렇게 이야기할 수야 없는 법이었기에 적당히 포장한 외무청 관리였다.

이에 장은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분명 북미왕국은 에스파냐와 전쟁을 벌였고 북미왕국에 에스파냐의 포로를 학대했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 없었기에 이를 문화적 차이로 이해하고 수긍했다.

“으음...알겠습니다. 그럼 누벨 프랑스는 정식으로 항복하겠습니다.”

장의 선언에 외무청 관리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누벨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허면 무장을 해제해 주시지요. 병사들이 일렬로 나와 이곳에 무기를 놓고 돌아가면 됩니다. 아. 그리고 매복해있는 프랑스의 함대에도 연락을 보내시고요.”

무장을 해제하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던 장은 뒤이은 외무청 관리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예? 매복한 프랑스 함대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만...”

“음? 이곳에 오는 동안 프랑스의 배를 전혀 보지 못했는데요?”

외무청 관리의 말에 장은 북미왕국이 왜 프랑스의 함대가 매복해있을 것이라 짐작한 건지 이해하고 씁쓸히 말했다.

“아. 처음 총독 각하께서는 결사 항쟁을 주장하셨습니다. 해서 여성과 아이, 노약자들은 안전을 위해 배를 태워 본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물자를 실어 온타리오 호수로 보냈지요.”

장의 답변에 외무청 관리는 조금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아...허면 그들에게라도 연락하시지요.”

“따로 연락하지 않더라도 물자를 내려놓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으니 오히려 북미왕국에서 이들을 발견하면 공격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의 말에 외무청 관리는 총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파악했다.

‘총독은 퀘벡을 지킬 생각이 없었구나. 내륙으로 이동해 저항할 생각이었어. 퀘벡을 먼저 공격한 것이 천만다행이었군. 아니었으면 무척 귀찮아질 뻔했어.’

물론 인근의 동맹 부족이 모두 북미왕국의 손을 잡았으니 추적하기 어렵지야 않겠지만 귀찮아질 수도 있었기에 외무청 관리가 내심 안도하고 있을 때 장이 계속 말했다.

“더불어 누벨 프랑스의 다른 마을에도 전령을 보내 누벨 프랑스는 북미왕국에 항복했으니 저항하지 말라고 전하겠습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누벨 프랑스에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장의 말에 외무청 관리도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 본국의 입장은 또 다를 테지요. 하지만 뭐...”

말을 흐렸지만, 외무청 관리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확인한 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의용병들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해 목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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