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이정운은 갑판 위에서 충혈된 눈으로 퀘벡의 선착장을 바라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고 이곳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이틀 전 세인트로렌스 강 중간 지점에 있던 선착장에서 봉화가 올라올 때만 해도 조만간 저들이 한번 공격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만...의외로 배도 별로 없군요.”
“거참...”
매사추세츠에 도착해 탐사대장인 이정호와 상의해 작전을 조금 변경하고 분함대를 제외한 4함대 소속 12척의 전선에 병사들을 바리바리 싣고 7일에 매사추세츠를 출발한 4함대는 9일 저녁쯤에 세인트로렌스 만 인근에 도착했다.
그리고 날이 바뀌자마자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고.
세인트로렌스 강 하류 쪽은 강폭이 무척 넓었기에 기습당할 염려가 적어 빠르게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4함대는 도중에 우측 편에서 불빛이 갑작스럽게 나타나자 내심 긴장했었다.
특히 불빛이 보인 위치는 분명 선착장이 있었으니 프랑스의 배들이 숨어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긴장하며 속도를 늦추고 움직였지만 별다른 공격은 없었기에, 그리고 조금 이동하니 강가를 따라 다른 불빛이 보였기에 봉화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들의 접근을 알아챘으니 조만간 프랑스의 배들이 나타나든 아니면 해안가에 매복해있던 프랑스인들이 공격하지 않을까 싶어 긴장을 늦추지 못했고.
하지만 퀘벡에 도착할 때까지 프랑스는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도 자지 않고 선장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정운은 허탈한 표정으로 퀘벡의 선착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부관이 입을 열었다.
“저기 퀘벡의 총독을 직접 만난 외무청 관리는 퀘벡의 총독을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인물이자 고집스러운 인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불리함을 알면서도 결국 전쟁을 택한 것으로 판단했지요. 그런 만큼 무언가 준비를 했을 것 같은데...선착장을 보면 화포를 싣고 다닐 정도의 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4함대가 퀘벡을 공격할 때 공격하려 들지 않겠습니까?”
부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이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편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배가 있을 곳은 저 섬 좌측뿐이겠군.”
“그럴 겁니다.”
퀘벡 바로 앞에는 커다란 섬이 존재해 세인트로렌스 강은 둘로 나뉘어있었고 4함대는 안전을 위해 강폭이 넓은 쪽으로 이동한 만큼 만약 프랑스의 배들이 강폭이 좁은 지역에 있다면 퀘벡에 도착하는 동안 프랑스의 배를 만나지 못한 것과 선착장에 배가 거의 없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강폭이 좁은 쪽으로 이동한다면 요격하고 넓은 쪽으로 이동한다면 우리가 퀘벡을 공격할 때 뒤편에서 요격한다니 나쁘지 않은 전술이네.”
“그렇습니다. 전술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만...문제는 저들의 함대가 별 볼 일 없다는 거겠죠.”
물론 현재 프랑스의 해군은 유럽에서 강력한 축에 속했다.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는 재무부의 총감인 장바스티스 콜베르는 중상주의 정책을 추진해 프랑스의 국부를 증가시키려고 노력했는데 콜베르는 기존의 다른 프랑스 정치가와는 달리 해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해외 무역을 위해 상선대를 조직한다 해도 안전한 해상 교통로를 확보할 강력한 해군이 없다면 제대로 된 해외 무역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아 여러 업무에 관여하면서 유명무실했던 프랑스의 해군을 집중적으로 육성한 것이다.
덕분에 현재 프랑스의 해군은 규모 면에서는 다른 해상 강국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만, 이 프랑스 함대들은 주로 본국과 서인도 제도, 인도 방면에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잉글랜드와 에스파냐를 통해 들었기에 당장 4함대 앞에 나타날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저번에 방문했을 때 보았던 화포를 싣고 다니는 상선 수준의 함대가 전부일 테고 그 정도면 인급 전선 한두 척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기에 부관은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는 이정운도 마찬가지였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망원경으로 퀘벡을 살펴보다 말했다.
“뭐 선착장 인근 마을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포격으로 싹 밀어버리게. 그리고 정박해 있는 배도 침몰시키고. 다만 좀 조심해서 사격하라고 하게. 저 선착장은 우리가 이용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리고 인급 전선 2척 정도는 만약을 대비해 빼둘까요?”
부관의 말에 이정운은 몸을 뒤편으로 돌려 한번 살펴보고 말했다.
“흠. 잘 보이는데? 이러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프랑스 함대가 보이면 그때 신호하면 그만이지.”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바로 포격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게.”
* * *
퀘벡 총독부의 장교는 행정관인 장의 말에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곧 북미왕국의 함대가 퀘벡에 들이닥칠 텐데 반란을 일으키자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해서 장교는 장을 바라보고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지금...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인 겁니까?”
그런 장교의 반응에 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지금 총독 각하께서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어. 곧 북미왕국의 함대가 퀘벡에 도착할 텐데 총독 각하는 이곳을 방어할 생각이란 말일세.”
북미왕국에 대한 소문은 무척 무성했지만 제대로 알려진 것은 아직 많지 않았다.
특히 프랑스는 북미왕국과 제대로 교류한 적은 없었기에 유럽에 떠도는 이런저런 소문을 주워들은 정도였으니까.
그렇기에 장교는 전투를 앞두고 장이 두려움에 휩싸여 적인 북미왕국을 너무 과대평가해 이런 문제가 일어났다고 생각해 입을 열었다.
“으음...하지만 정말 북미왕국의 함대가 소문대로 대단할지, 그리고 많은 병사를 대동하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말일세. 이 목책을 이용해서 반년 가까이 북미왕국의 공격을 막는 것이 정녕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전에도 이곳을 방문한 북미왕국의 선박에는 분명 적지만 포문이 존재하는데?”
장의 말에는 장교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비록 총독부가 해안가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 함대의 포격이 이 목책까지 닿지는 않겠지만 배에 대포를 싣고 다니는데 육상용 대포가 없을 리는 만무했으니까.
그리고 총독의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온타리오 호수에 물자를 내려놓고 복귀한 배를 타고 온타리오 호수 인근으로 이동해 동맹 부족의 도움을 받아 숲속에서 전투를 치르며 최대한 시간을 끌 생각이었지만 이미 동맹 부족은 동맹을 파기했고 물자를 싣고 떠난 배가 퀘벡에 도착하기 전에 북미왕국의 함대가 퀘벡에 도착할 판이었다.
이에 장교는 장이 왜 이렇게 현 상황을 심각하게 판단한 것인지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것이 장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음...그렇다고 총독 각하를 유폐하는 것은 좀...저희는 총독 각하를 호위하는 호위병에 가깝다는 것 잘 아시잖습니까.”
군대를 파견하는 것도 다 돈이었기에 프랑스에서는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누벨 프랑스에 군대를 보내기보다는 총독부를 호위할 인원 정도만 보냈었고 장교는 이 호위대의 총 책임자였으니 장의 말에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장은 그런 장교의 상황을 이해는 했지만, 이대로 가다간 수많은 프랑스인이 헛되이 죽을까 걱정되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자네의 입장은 잘 아네. 허나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다 같이 죽겠다는 뜻인가?”
“행정관님의 걱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엔 행정관님도 조급하신 것 같습니다.”
“조급?”
장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장교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예. 조만간 북미왕국의 함대가 도착할 테니 저들의 전력을 확인하고 다시 총독 각하를 설득한다면 총독 각하도 이를 들어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는 저도 행정관님과 함께 총독 각하를 설득하도록 하지요.”
장교의 말에 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음...하지만 총독 각하가 끝까지 저항을 주장한다면 어쩔 텐가?”
정말 북미왕국이 강력하다면 그때도 총독의 말에 따라 이곳에서 옥쇄할 거냐는 장의 물음에 장교는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때는 행정관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장교의 대답에 장은 안도하며 무어라 이야기하려는 찰나 병사가 방안으로 급히 들어와 소리쳤다.
“행정관님!”
엄밀히 따지면 반란 모의나 다름없었기에 장과 장교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장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숨을 헐레벌떡 이고 있는 병사를 바라보고 물었다.
“뭔가?”
“북미왕국의 함대가 나타났습니다!”
그 말에 장과 장교 모두 굳은 안색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급히 방을 나와 목책 위로 올라갔다.
저 멀리 해안가에 북미왕국의 함대가 보이자 장은 신음을 흘렸다.
“으음...”
장교는 품에서 망원경을 꺼내 북미왕국의 함대를 자세히 살펴보고 전에 퀘벡을 방문했던 선박보다 더 큰 선박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 저기 보십시오. 저건 최신형 전열함과 비슷한 크기로 보입니다.”
장은 장교에게 망원경을 건네받아 장교가 가리킨 배를 확인하고 탄식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정말 그렇군.”
북미왕국의 함대가 빠르게 선착장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교가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의 배는 기존의 범선과는 달라서 묘한 압박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에 장은 눈에서 망원경을 떼고 선착장으로 다가오는 북미왕국의 함대를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긴 해. 돛도 노도 없이 저렇게 유유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예. 거침없이 접근하는 것을 보니 곧 공격할 것 같군요.”
장교의 말처럼 빠르게 선착장에 접근하면서 함대 진형을 변경해 일자로 다가오던 북미왕국의 함대는 곧 속도를 줄이고 일제히 우측으로 선회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장과 장교는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음...”
“허. 북미왕국의 해군이 대단하다더니...왜 그런 소리를 듣는지 알겠습니다. 함대 전체가 마치 한 몸처럼 일제히 선회한 것을 보면 북미왕국 해군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군요.”
“그러게 말일세. 포문이 열리는군.”
장의 말에 장교는 망원경을 돌려받아 즉각 북미왕국의 선박을 살펴보았고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북미왕국의 배는 2종류였고 그중 큰 배의 경우 프랑스의 최신 전열함과 크기가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최신 전열함은 보통 2층 포 갑판에 70문 가까이 탑재했었지만, 북미왕국의 배는 배의 크기를 고려하면 포문의 수가 너무 적었으니까.
“음...저 커다란 배도 의외로 포문이 적군요? 거기에 1층 포 갑판에 불과하고. 저건 군함이 아니라 상선일까요?”
이에 장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글세...다만 해적들의 이야기론 저들의 군함은 탑재한 포는 적어도 강력하다고 들었으니...”
장의 말에 장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북미왕국의 해군은 화약통을 정확히 맞춰 포격한다든지, 아니면 포탄이 터진다든지 하는 해적들의 이야기 말입니까? 그건...”
그때였다.
‘퍼퍼퍼퍼펑!’
북미왕국의 함대에서 일제히 포탄을 발사했고.
‘콰콰콰콰쾅!’
선착장 앞의 창고와 마을이 폭음과 함께 박살이 나는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광경에 장과 장교는 얼어붙었다.
이건 북미왕국의 함대가 보인다는 소식에 목책 위로 올라와 북미왕국의 함대를 구경하던 병사들과 의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목책 위에 무서울 정도의 적막감만이 감돌 때 다시 북미왕국의 함대에서 포탄을 발사했다.
‘퍼퍼퍼퍼펑!’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악!”
“히익?!”
“저게 무슨!”
그리고.
‘콰콰콰콰쾅!’
처음 포격에서 살아남았던 건물들이 박살 나며 그 파편들이 비산하는 모습을 보고 장은 끔찍하다는 듯 탄식을 토해냈다.
“오. 신이시여...”
“해적들의 말이 허풍이 아니라 사실이었다니...”
장교는 해적들의 말이 허풍이 아니었다는 것에, 그리고 북미왕국의 포탄의 위력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반쯤은 폐허가 된 선착장 앞마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북미왕국의 함대는 계속해서 포격해 선착장 앞의 모든 건물을 부순 후에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들을 포격했다.
북미왕국의 포탄이 배에 명중하는 순간 배는 산산조각이 나 하나씩 가라앉는 광경을 보고 곧 북미왕국의 상륙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공포를 느낀 장교는 옆에서 참담한 표정으로 부서진 마을을 바라보는 장을 보고 입을 열었다.
“...행정관님. 바로 총독 각하를 설득하러 가지요.”
장교의 말에 정신을 차린 장은 잠시 부서진 마을과 불타오르는 선착장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 솔직히 저들의 포격을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금 걱정했었지만...뭐 총독 각하께서도 지금 이 광경을 보고 있을 테니 설득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군.”
장은 실소하며 말했고 이에 장교는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