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동맹 부족들이 우리와의 동맹을 일제히 파기했다고?!”
퀘벡의 총독은 행정관 장의 보고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고 장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령들이 북미왕국과의 전쟁을 알리자 북미왕국과는 싸우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 누벨 프랑스와의 동맹을 파기한다고 선언했답니다.”
장의 대답에 퀘벡의 총독은 잔뜩 흥분해 소리쳤다.
“이런 배은망덕한 원주민 놈들이!”
“진정하십시오. 총독 각하.”
하지만 총독은 흥분을 가라앉히기는커녕 더욱 흥분해 장을 보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그동안 우리 프랑스가 저 배은망덕한 원주민들에게 베푼 은혜가 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
하지만 장은 총독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진정하셔야 합니다. 전령들이 이렇게 늦게 복귀한 것도 전령들이 시급한 일이라고 이야기해도 추장들이 전령을 만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총독은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온몸이 차갑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잔뜩 흥분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니 북미왕국의 사절이 퀘벡에 도착해 선전포고한 뒤로 곧바로 주변의 동맹 부족에게 전령을 보냈다.
동맹 부족의 위치는 제각각이었지만 개중에는 퀘벡과 가까운 부족도 꽤 존재했는데도 불구하고 북미왕국이 이야기 한 3월 10일이 넘었는데도 퀘벡으로 돌아온 전령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었고.
헌데 10일이 되기 전까지는 추장들이 누벨 프랑스에서 보낸 전령들을 피했다면 답은 뻔했다.
“설마...?”
총독이 조금 이성을 찾은 듯 하자 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북미왕국이 이미 동맹 부족들을 모두 포섭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북미왕국이 이야기한 10일이 되어서야 전령을 만나 동맹 파기를 선언한 것이고요.”
“맙소사...”
장의 대답에 총독은 힘이 빠진 듯 자리에 앉아 탄식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급히 고개를 들어 장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설마 동맹 부족도 북미왕국처럼 우리에게 선전포고한 것은 아니겠지?!”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은 우리 누벨 프랑스와 북미왕국과의 전쟁에 휘말리는 것이 싫다면서 당분간 자신들의 영역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답니다.”
총독은 장이 고개를 젓자 안도했지만, 장의 말을 끝까지 듣고 하얗게 질렸다.
“그러면...”
“예. 총독 각하께서 계획한 것처럼 내륙으로 이동해 시간을 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지요. 제대로 된 길잡이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내륙을 돌아다니며 싸우겠습니까. 거기에 잘못하면 북미왕국뿐만 아니라 주변 원주민들과도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고요.”
장의 대답에 총독은 기운이 빠지는지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하...”
그러면서 총독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장은 그런 총독의 모습에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총독 각하. 각하의 명령에 따라 퀘벡의 모든 주민을 무장시켜 의용병으로 편성해두었지만...1천 명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입니다. 그런 병력으로 이곳의 목책을 이용해 북미왕국의 공격을 막기는 불가능합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북미왕국에 항복해야 합니다.”
애당초 프랑스는 잉글랜드처럼 이 누벨 프랑스에 이주민을 정착시켜 식민지를 발전시키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원주민과의 교역을 통해 모피를 확보하는 것에 주력했었다.
퀘벡 역시 모피 거래의 중심지이자 모피 거래상들의 가족이 주로 사는 곳에 불과했고 인구는 많지 않았고.
그러다 장이 누벨 프랑스의 행정관으로 부임하면서 이런 식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해 잉글랜드처럼 이주민을 정착시키는 정책을 펼쳤지만 그러한 정책을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따뜻한 날씨와 비옥한 땅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식량을 자랑하는 프랑스 본국을 떠나 춥고 척박해 먹을 것이 부족한 이 누벨 프랑스로 오려는 이주민이 많지 않았기에 아직 퀘벡의 인구는 적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어린아이와 노인, 여인을 제외한 퀘벡의 주민들을 모두 무장시켜 의용병으로 편성했지만,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서 동맹 부족까지 이탈했으니 북미왕국을 상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해 총독을 설득하려 했지만, 총독은 장이 항복을 다시 권유하자 다시 흥분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릴세! 원주민들에게 항복이라니! 그리고 이미 본국으로 배를 보냈으니 콜베르 님이라면 곧바로 지원 병력을 내어주실 걸세! 그러니 반년, 아니 넉 달만 버티면 된다고!”
총독의 말에 장은 무척 차분한 얼굴로 총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이에 총독이 조금 진정하자 장이 입을 열었다.
“그 넉 달을 도대체 무슨 수로 버틴단 말입니까. 북미왕국의 배에는 함포가 달려있으니 이곳에선 하루라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만.”
장의 말처럼 목책이 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봐야 대포알을 버틸 수야 없었다.
그리고 목책이 부서진다면 병력도 많고 훈련받은 병사를 의용병이 상대하기는 어려웠고.
이에 총독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꼭 길잡이가 없더라도 내륙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는 없지.”
그리고 총독의 대답에 장은 당신 미쳤냐는 표정으로 총독을 바라보고 결국 목소리를 높였다.
“총독 각하! 지금 북미왕국과 전쟁 중인 상태에서 다른 원주민 부족들까지 적으로 돌리겠다는 뜻입니까?”
“아니. 생각해보게. 어차피 이로쿼이 연맹 정도가 아니고선 머스킷으로 무장한 우리를 섣불리 공격할 원주민은 없을 거야. 그러니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북아메리카 내륙으로 이동하자고. 물자도 준비해두지 않았나.”
총독의 말에 장은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하아.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왜 의미가 없나! 분명 본국은 지원 병력을 보내줄 거라고! 그러니 두 달 정도 내륙으로 들어갔다 다시 복귀해 본국의 지원 병력과 함께 북미왕국을 공격한다면...”
그때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병사가 헐레벌떡 뛰어와 소리쳤다.
“총독 각하! 급보입니다! 봉화가 올라왔습니다!”
“뭐라고?”
병사의 보고에 총독과 장은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총독과 장은 북미왕국이 먼저 가까운 아카디아를 공격하고 뉴펀들랜드를 완전히 장악하리라 예상했다.
해서 이 두 곳에 전령을 보내고 더불어 저들이 퀘벡을 공격하러 올 때를 대비해 퀘벡과 타두삭 사이에 임시로 봉화를 몇 개 설치하고 북미왕국의 함대가 등장하면 봉화를 피워 즉각 알리도록 해 두었고.
헌데 그러한 봉화가 올랐다는 이미 세인트로렌스 강 중간에 북미왕국의 함대가 등장했다는 뜻이고 오늘이 3월 12일인 것을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은 단단히 준비하고 있다가 10일이 되자마자 움직인 것으로 보였기에 장은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총독에게 말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북미왕국은 퀘벡부터 공격할 생각인가 봅니다. 더불어 타두삭에서 봉화가 올라왔다는 것은 세인트로렌스 만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10일이 되자마자 움직인 듯 보이고요.”
“허...”
“총독 각하. 봉화가 올라온 이상 빠르면 하루, 늦어도 이틀 이내에 북미왕국의 함대가 이곳에 도착할 겁니다. 허니...”
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독은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에게 말했다.
“당장 의용병을 목책 안으로 불러들이고 방어 준비를 하도록 하게!”
그 말에 장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총독 각하! 이건 무의미한 저항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이 땅을 내어줄 수는 없어! 이건 명령일세!”
명령이라는 총독의 말에 장은 총독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알겠습니다.”
그리고 장은 집무실을 나서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대로는 개죽음일 뿐인데...’
* * *
“대장.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정말 총독의 명령에 따르실 겁니까?”
산적 수염이 인상적인 병사의 말에 대장이라 불린 중년 사내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런 대장의 반응에 염소 수염의 병사가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그냥 북미왕국에 항복하지요. 그게 낫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북미왕국이 무척이나 관대하게 통치한다는 것은 대장도 아시잖습니까.”
중년 사내와 병사들은 아카디아 지역의 누벨 프랑스 병사들로 이들은 총독의 명령에 따라 매사추세츠에 잠입한 적이 있었다.
원래는 북미왕국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잉글랜드인들을 선동할 생각이었지만 생각외로 북미왕국은 무척 관대하게 잉글랜드인들을 통치했고 덕분에 선동은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잉글랜드인들을 보다가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더불어 이를 보고하자 총독부에서는 임무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넘어갈 테니 입조심 하라고 경고까지 했기에 조국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목숨을 걸고 매사추세츠로 잠입했던 병사들은 내심 총독부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굳이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최근 북미왕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걱정하던 찰나 총독부에서 전령이 도착했고, 북미왕국이 프랑스에 선전포고했다는 사실과 아카디아의 모든 남성은 무장하고 본국에서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보라는 명령에는 도저히 참지 못한 것이다.
해서 이곳 병사들 중에 가장 선임이라 대장이라고 부르는 중년 사내에게 차라리 항복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고.
중년 사내는 병사들의 이야기에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우리와 잉글랜드인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 않나. 거기에 확신도 없고.”
“예?”
“분명 저들은 잉글랜드인들을 관대하게 통치하고 있네. 더불어 잉글랜드인에게 땅을 나눠주고 당대에 한해서 세금까지 받지 않고. 하지만 저들이 잉글랜드인을 통치하는 것처럼 우리도 똑같이 관대하게 통치할 거란 확신이 없지 않나.”
중년 사내의 말처럼 자신들이 항복하고 북미왕국이 이 아카디아를 통치한다고 해서 매사추세츠 지역처럼 이곳 주민들에게도 땅을 나누어주고 세금을 아예 받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기에 몇몇 병사들은 그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젊은 병사가 그게 무슨 문제냐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상관없다고?”
중년 사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젊은 병사를 바라보자 젊은 병사가 말했다.
“예. 저들이 걷어가 봐야 본국처럼 무지막지하게 세금을 걷어가겠습니까.”
“으음...”
루이 14세가 왕이 된 이후 베르사유에 새로운 궁전을 짓고 프랑스의 패권을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터라 루이 13세 시기에 부유했던 정부 재정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었고 이 때문에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밖에 없었다.
본국에서 세금을 많이 걷는데 식민지를 내버려 둘 이유가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이곳 사정도 썩 좋지는 않았고.
그러한 사정을 잘 아는 중년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주변의 병사들은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이들은 매사추세츠에 잠입해 북미왕국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북미왕국은 세금으로 버는 것의 40 프로 정도를 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잉글랜드인들과는 달리 자신들은 세금을 내더라도 총독부에서 걷어가는 것보다 적으니 차라리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변 병사들이 자신의 의견에 호응하자 젊은 병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뿐입니까? 저들의 물건은 품질도 좋고 가격도 무척 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덕분에 북미왕국의 백성이 된 잉글랜드인들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요. 이 기회에 우리도 북미왕국에 항복하고 그렇게 살면 안 됩니까?”
젊은 병사의 말에 다른 병사들도 앞다투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예. 그리고 대장도 보고를 받지 않았습니까. 남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북미왕국의 병력이 어림잡아 5천입니다. 이들을 상대로 반년 넘게 숲으로 들어가 버티라니...솔직히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고작 200명으로?”
“맞습니다. 대장. 그나마 200명의 정예병도 아니고 죄다 의용병인데 이들로 북미왕국의 군대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예요. 차라리 이 기회에 항복하지요. 가족을 내버려 두고 산으로 갈 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럼요. 저들의 소문은 대장도 듣지 않았습니까? 저들이 에스파냐를 공격했을 때 저들은 함대를 이용해 저 태평양 연안의 해안가를 모조리 불태웠다고 했지요. 우리가 저항했다가 에스파냐처럼 아카디아 해안가 전체가 불타오르면 어쩝니까?”
“그렇죠. 매사추세츠에는 북미왕국의 함대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여기 있는 병사들은 대부분 가족과 함께 이 아카디아에 장착했기에 가족을 내버려 두고 산으로 들어가 북미왕국과 맞서 싸우며 버티라는 총독부의 명령에 무척 반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나마 승산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승산이 전혀 없었으니까.
거기에 총독부는 본국에서 무조건 병력을 지원해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동안 총독부에서 본국에 북미왕국의 위험성을 알리며 줄기차게 지원 병력을 요청했어도 무시하고 세금에만 관심을 두던 본국이었으니.
그런 병사들의 분위기를 감지한 중년 남성은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고 병사들은 하나둘 침묵하며 중년 남성을 바라보았다.
이에 중년 남성은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의용병들을 이끌어야 하는 눈앞의 병사들은 이번 전쟁에 부정적이었으니 괜히 싸우자고 주장해봐야 제대로 싸울 리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더불어 중년 사내의 가족 역시 이곳에서 지내는 만큼 가족을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휴우. 너희들의 뜻은 잘 알겠다. 허면 북미왕국에 항복하도록 하자.”
“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이미 밤이 늦었으니 일단 의용병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저들을 설득하고 내일 아침에 내가 직접 남쪽으로 가서 항복 의사를 전하도록 하지.”
그러면서 중년 사내는 자신이 직접 북미왕국의 진영으로 가 항복 의사를 전하는 대신 북미왕국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것을 약조 받겠다고 이야기하자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