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제이콥은 선술집에 들어와 구석에 앉아 맥주잔을 홀짝이고 있는 잭을 확인하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봐. 잭.”
“아. 제이콥. 왔어?”
제이콥은 잭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맥주를 한잔 주문하고 잭에게 물었다.
“술집에 오는 중에 선착장을 보니까 배에서 또 북미왕국의 병사가 내리던데? 요새 계속해서 북미왕국의 병사가 집결하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지금까지는 물자를 주로 운송하던 북미왕국의 배에서 저번 주부터는 병사를 수송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매사추세츠 외곽에 주둔한 병사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처음엔 증가하는 북미왕국 병사들을 반겼던 매사추세츠 주민들이었다.
북미왕국의 병사는 행패도 부리지 않고 주말마다 돈을 쓰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매사추세츠 주민들의 예상과는 달리 추가로 합류한 북미왕국의 병사들은 병영에 틀어박혀 있었고 이곳에 주둔하던 병사들마저 병영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아. 나도 방금 알았는데 프랑스놈들이 수작을 부렸다네?”
잭의 이야기에 제이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수작? 무슨 수작?”
“저 내륙의 이로쿼이 연맹 알지? 프랑스놈들이 그 친구들을 충동질해서 이곳을 공격하려 했다네?”
이로쿼이 연맹은 잉글랜드와 교역하며 화약과 무기를 사들였기에 북미왕국을 제외한 다른 원주민 부족과 비교하면 무척 강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제이콥이 화들짝 놀라 급히 되물었다.
“뭐? 대체 왜?”
이에 잭은 눈앞에 프랑스인이 있다면 한 대 때릴 기세로 말했다.
“으득. 왜긴 왜겠어. 북미왕국이 급격히 확장하니 괜히 불안했던 거지. 그래서 이로쿼이 연맹에 무기와 화약을 왕창 넘겨주고 북미왕국을 공격하라고 한 거고.”
잭의 말에 제이콥 역시 분노하면서도 급히 질문을 던졌다.
“이 망할 놈들이...그래서? 설마 이로쿼이 연맹이 북미왕국을 공격한 거야? 그래서 북미왕국은 저렇게 병사들을 집결시킨 거고?”
제이콥의 질문에 잭은 갑자기 키득거리며 말했다.
“아니. 큭큭. 의외로 북미왕국과 이로쿼이 연맹은 친한가 보더라고? 그래서 이로쿼이 연맹은 프랑스의 수작을 그대로 북미왕국에 알린 거고...당연히 북미왕국은 프랑스놈들이 자신들을 적대하니 그냥 내버려 두었다간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며 이 기회에 저 북쪽에 있는 프랑스놈들을 아예 북미 대륙에서 몰아내겠다고 병사들을 집결시킨 거지.”
“아...”
잭의 설명에 현 상황을 이해하고 안도하며 종업원이 가져다준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 잭이 입을 열었다.
“뭐 우리로선 무척 다행이지. 이로쿼이 연맹이 프랑스 놈들의 수작에 넘어갔다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우리잖아?”
잭의 말마따나 이로쿼이 연맹이 북미왕국을 공격한다면 당연히 가까운 북미 동해안 지역을 공격할 것이 분명했기에 제이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특히 원주민들은 병사들이 머무는 병영을 공격하기보다는 만만한 외곽 농장을 습격했을 테니. 뭐 이곳까지 오기보단 저 밑의 뉴욕 지역을 공격할 것 같긴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고.”
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아아. 그래서 다들 프랑스놈들의 수작에 열 받아 하는 거고. 아까 여기서 술을 마시던 몇몇 친구들은 이 사실을 알고 집으로 갔어.”
“응? 왜?”
제이콥이 의문스럽다는 듯 묻자 잭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제이콥을 바라보았다.
“결국, 전쟁이잖아? 북미왕국과 프랑스 간에.”
그제야 제이콥은 잭이 무슨 뜻으로 이야기한 것인지 깨닫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잉글랜드가 이곳을 관리할 때만 하더라도 잉글랜드는 이곳에서 나오는 세금에만 관심이 있었지 이곳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해 안전을 지켜주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곳의 주민들은 원주민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하고 의용병이 되어 전쟁을 치르기도 했고.
“설마 자원입대하러?”
“응. 만약 이번 전쟁에서 북미왕국이 프랑스에 지기라도 한다면...솔직히 좀 불안하잖아? 물론 북미왕국이 잉글랜드에 돈을 주고 사들인 이 땅을 순순히 넘겨주지야 않겠지만...”
잭은 말을 흐렸지만, 제이콥은 잭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북미왕국은 이 북미 동해안 지역을 잉글랜드에 돈을 주고 사들인 만큼 프랑스에 패한다 하더라도 결코 넘겨주려 하지는 않을 테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특히 매사추세츠 지역은 누벨 프랑스와 가장 가까운 지역이었고 종전 협상에서 가까운 지역의 땅을 떼주는 일은 자주 있었으니까.
더불어 북미왕국이 흔들리면 다른 유럽 국가들도 북미왕국의 영토를 노릴 수도 있었고.
이에 제이콥은 인상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아...그렇긴 하네. 처참하게 밀리기라도 하면...또 모르는 일이니까.”
“응. 이 땅을 넘겨주진 않더라도 상황이 좋지 않으면 약속을 바꿀 수도 있고. 해서 나도 고민 중이야.”
이에 제이콥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잭을 바라보았다.
“너도 자원입대하게?”
“응. 이젠 북미왕국이 조국이잖아? 그리고 최소한 이 땅은 계속 북미왕국이 통치했으면 하거든.”
잭의 말에 제이콥 역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무척 불안해했지만, 북미왕국의 통치는 의외로 관대한 편이라 고작 1년이지만 풍족함을 누릴 수 있었으니 잭과 마찬가지로 제이콥 역시 계속해서 북미왕국이 이 지역을 통치했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다만 잭과 제이콥은 유럽 본토에서 살다 이곳으로 이주한 만큼 프랑스가 얼마나 강력한 국가인지 나름대로 알고 있었다.
물론 북미왕국도 꽤 대단한 편이긴 했지만, 과연 북미왕국이 유럽의 최강국인 프랑스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싶었고 그래서 잭이 북미왕국을 돕기 위해 자원입대를 고민한다는 것을 깨달은 제이콥은 앞에 놓인 맥주잔을 단숨에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으. 그래. 가자. 집에 가서 머스킷 꺼내오자고.”
제이콥의 말에 잭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도 입대하려고?”
이에 제이콥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나도 마찬가지니까. 거기에 점점 살기 좋아질 것 같은데 그걸 방해하는 프랑스놈들을 그냥 두고 보라고? 총알을 먹여줘야지.”
“하하하. 그래. 가자고.”
* * *
이정운은 매사추세츠로 돌아오자마자 한창 출진 준비에 한창인 탐사대장 이정호를 만나 퀘벡을 방문해 파악한 정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흐음...그렇습니까?”
“예. 군사청에서는 위아래로 퀘벡을 압박하라고 했지만...직접 퀘벡을 가 보니 그건 어렵겠더군요. 탐사대가 남쪽에서 올라온다고 해도 세인트로렌스 강에 막혀서 말입니다. 아. 물론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야 있겠는데...”
이정운이 말을 흐리자 이정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큰 의미는 없다는 거군요. 해군의 도움 없이 강을 넘기엔 어려워 보이던가요? 퀘벡 인근이 그나마 강폭이 제일 좁은 구간이라고 들었는데...”
퀘벡이라는 지명은 알곤킨 어로 강이 좁아지는 곳을 의미하는 단어였기에 이정호가 묻자 이정운은 고개를 저었다.
“세인트로렌스 강이 워낙 넓은 강이라서 말입니다. 분명 퀘벡 인근의 강폭이 제일 좁긴 한데...그래도 1km는 되어 보이더군요. 물론 안쪽까지 탐사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정운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정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알겠습니다. 허면 탐사대는 북진해 원주민 부족들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예. 그리고...”
이정운이 무어라 이야기하려는 순간 한 병사가 이정운에게 다가와 그를 급히 불렀다.
“사령관님!”
이정운은 병사의 표정이 잔뜩 상기된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가?”
“수백의 잉글랜드인들이 머스킷을 들고 병영 앞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병사의 말에 이정운은 기겁하며 말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잉글랜드인이 머스킷으로 무장하고 몰려들고 있다고? 대체 왜?”
이정운의 반응에 병사가 잠시 멈칫했을 때 옆에서 이정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프랑스인들이 미리 잉글랜드인들을 포섭해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곳에도 우리가 프랑스를 공격할 거라는 소문이 퍼졌으니...”
이정호까지 그렇게 이야기하자 병사는 안절부절못하며 무어라 이야기하려 했지만, 이정운은 이정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일리는 있군요. 하지만 계속 북미왕국의 병사가 증원되고 있는 시기에 봉기를 일으킨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일단 탐사대에 출동 명령을...”
대화가 진행되면서 이정호가 탐사대마저 출동시키려 하자 병사는 사색이 되어 급히 소리쳤다.
“아닙니다! 지금 몰려든 잉글랜드인들은 나라를 지키겠다고 자원입대하기 위해 몰려든 충성스러운 북미왕국의 백성들입니다!”
“...응?”
“뭐라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이정운과 이정호는 병사의 설명을 듣고 병영으로 몰려든 잉글랜드인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려 한 것이 아니라 전쟁이 벌어진다는 소문이 돌자 북미왕국을 돕기 위해 무기를 들고 찾아왔다는 사실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허...”
그렇게 잠시 침묵만이 감돌다 이정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거 좀 놀랍군요.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를 돕기 위해 무기를 들고 나서다니...”
이에 이정호 역시 반성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특히 이들은 북미왕국의 백성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습니까.”
“예. 그런 저들이 저렇게 발 벗고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문에 새한성에서 백성들이 무기를 들고 몰려들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면 당연히 백성들이 자원입대하기 위해 나섰을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이곳은 상황이 달랐다.
물론 이곳의 분위기가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직 제대로 말이 통하지도 않았기에 잉글랜드인이 북미왕국을 위해 기꺼이 무기를 들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란 둘이었다.
더불어 자신들이 잉글랜드인을 아직 진정한 북미왕국의 백성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 민망하기도 했고.
“어쩌실 겁니까?”
이정호의 질문에 이정운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저들의 마음은 정말 고맙긴 한데...저들의 도움 없이도 프랑스를 상대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로쿼이 연맹이 참전하겠다는 것도 거절한 거고요.”
“그렇기야 하지요. 허나 저들이 저렇게 북미왕국을 지키겠다고 나선 이상 그냥 돌려보내는 것도 좀...”
이정호는 이 지역의 통합을 위해서라도 저들을 받아들여 후방에 배치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표정이었지만 이정운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시기라면 저도 저들을 받아들여 자경대로 편성해 이곳의 치안유지를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만...봄이잖습니까.”
이에 이정호는 자신이 놓친 것을 깨닫고 중얼거렸다.
“아...하긴. 올 한해 농사를 생각하면 무척 중요한 시기이긴 하군요. 그런데도 저렇게 온 것을 보면...”
그 말에 이정운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고맙긴 하지만 저들을 위해서라도 돌려보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면서 이정운은 병사에게 잘 이야기해서 저들을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병사를 보내고 이정운은 이정호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잉글랜드인들이 프랑스와의 전쟁을 걱정하며 돌아가지 않고 자원입대를 고집한다는 병사의 보고에 발걸음을 옮겼다.
이정운이 외무청 관리와 함께 잉글랜드인들이 몰려있는 시끌벅적한 병영 앞으로 나오자 이정운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한 잉글랜드인들은 조용해졌다.
이정운은 외무청 관리에게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저들에게 전하라고 이야기한 후 입을 열었다.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기꺼이 조국인 북미왕국을 위해 싸우겠다고 나선 여러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들은 유럽 출신이기에 프랑스의 국력을 잘 알고 있고 그 때문에 이번 전쟁을 무척 걱정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잉글랜드인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한 분위기를 확인한 이정운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북미왕국은 강합니다. 더불어 이번 전쟁을 결정하기에 앞서 에스파냐와 잉글랜드를 통해 유럽과 프랑스의 사정을 확인했고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존재했기에, 그리고 그냥 프랑스를 내버려 두었다가는 이 북미 동해안 지역에 사는 백성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 때문에 전쟁을 결정하게 된 겁니다. 즉 여러분들을 걱정해 내린 결정입니다. 헌데 여러분들을 전쟁터로 데려갈 수야 없는 법이지요. 여러분들의 마음은 참으로 감사합니다만 이럴 때를 대비해 열심히 훈련한 우리 북미왕국의 군을 믿고 생업에 종사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곧 봄이 오는 만큼 이 시기를 놓쳐 한해 농사를 망칠 수야 없는 법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승전하고 개선했을 때 흥겨운 축제를 열기도 어려울 테고 말입니다.”
잉글랜드인들은 이정운의 자신만만한 표정과 마지막에 웃으며 농담하는 모습을 보고 프랑스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자신들은 북미왕국의 백성이지만 아직 북미왕국을 제대로 모르는 것은 사실이라 이정운의 농담에 피식 웃으면서 하나둘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정운은 외무청 관리를 보고 말했다.
“휴우. 혹시 모르니 곳곳에 포고문도 붙여놓게.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알겠습니다. 사령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