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세인트로렌스 강과 그 지류인 사그네 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항구인 타두삭의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범선에서 한 선원이 물건을 옮기다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배를 확인하고 기겁하며 선장에게 달려갔다.
“선장님!”
“왜?”
“저기 저거. 북미왕국의 배 아닙니까?”
“뭐라고?!”
처음 선원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데만 열중하던 선장은 선원의 말에 놀란 표정으로 급히 갑판 위로 달려나갔다.
그러자 세인트로렌스 강을 빠르게 거슬러 올라가는 북미왕국 특유의 배 옆모습이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선장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니...저들이 왜 여기까지...”
작년 북미왕국이 잉글랜드를 대신해 북미 동해안 지역과 뉴펀들랜드 섬에 병력과 함대를 배치한 후 가끔 세인트로렌스 만을 돌아다니고 수심을 측량한 적은 있었지만 만과 연결된 세인트로렌스 강 안쪽까지 들어온 적은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북미왕국이 당장은 자신들과 적대하려는 생각은 없다고 판단해 내심 안도하고 있었고.
더불어 총독부에서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당장은 본국에서 전쟁이 벌어져 바로 지원 병력을 보내지 못했지만, 조만간 본국에서 지원이 올 테고 북미왕국 역시 본국을 의식해 함부로 자신들을 공격하지 못한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기에.
헌데 해가 바뀌고 슬슬 날이 풀릴 때쯤 북미왕국의 배가 거침없이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슬러 퀘벡 방면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 선장은 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선원이 그런 선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장님. 어찌합니까?”
불안한 표정으로 북미왕국의 배를 바라보던 선장은 선원의 질문에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뭘 어째! 일단 막아야지!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퀘벡이라고! 저들이 어떤 의도로 왔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잖아! 빨리 닻을 올려!”
“아...알겠습니다.”
* * *
“사령관님. 저 안쪽에 항구가 보입니다.”
이번 퀘벡행은 4함대의 사령관인 이정운이 부관과 함께 직접 움직였다.
이번에 외무청 관리를 태우고 퀘벡으로 이동하는 경로로 개전 후 4함대가 이동해 퀘벡을 공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세인트로렌스 강의 안쪽 상황을 직접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부관의 말에 시선을 돌려 부관이 가리킨 방향에 보이는 항구를 확인하고 안색을 찡그렸다.
“하...애매한데...선착장이 있는 건 좋은데...하필이면 다른 강이 있네. 저건 세인트로렌스 강의 지류인건가?”
이정운이 확인한 항구는 세인트로렌스 강의 지류로 보이는 강 하구 좌측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저기 보이는 항구의 선착장을 이용해 병력을 내려놓는다 하더라도 퀘벡으로 이동하려면 저 지류로 보이는 넓은 강을 다시 건너야 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강도 생각보다 폭이 커서...저 선착장에서 병력을 내리고 육군 자체적으로 강을 건너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맞은편의 지형도 썩 좋지 않고요.”
부관 역시 이정운의 의견에 동의하자 이정운이 중얼거렸다.
“그렇지? 저 선착장을 이용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네. 이거 이대로는 그냥 병력을 태우고 퀘벡까지 가야 할 것 같은데?”
“예. 어차피 병력이 하선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면...차라리 퀘벡 인근에서 병력을 하선하는 게 여러모로 낫겠지요.”
부관이 동의하자 이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전을 조금 수정하기로 마음먹고 말했다.
“그래. 원래 계획과는 조금 다르지만...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아. 돌아가면 탐사대장과 상의해서 탐사대는 누벨 프랑스의 동맹 부족을 보호하는 데만 집중하라고 하고 퀘벡은 우리 4함대가 박살 내고 우리가 수송할 경비대로 점령하는 편이 낫겠다.”
“그보다 사령관님. 저 항구에 정박해 있던 배가 이쪽으로 옵니다만...”
부관의 말처럼 선착장에 정박해 있던 범선이 급히 돛을 내리고 북미왕국의 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에 이정운은 프랑스의 범선을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그동안은 우리를 보아도 못 본 척하던 작자들이 드디어 반응하는군?”
그동안 4함대의 분함대가 세인트로렌스 만을 탐사하며 수많은 프랑스의 선박과 만났지만,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북미왕국의 배를 못 본 척했었다.
헌데 이제 와 부랴부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프랑스의 범선이 우스워 이정운이 이야기하자 부관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꽤 깊이 들어온 상황이고...이대로 가면 저들의 본거지인 퀘벡이 나올 테니 더는 모른척할 수 없는 거겠지요. 어쩌시겠습니까?”
북미왕국에 다가오는 범선은 전투용 함선이라고 보기엔 어려웠고 적당히 무장한 상선으로 보였기에 이정운은 망원경으로 다가오는 범선을 살펴보다 명령을 내렸다.
“일단 세인트로렌스 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니 속도를 올려 떨쳐내기는 좀 그렇고. 잔뜩 긴장한 꼴을 보니 포를 쏘면 그대로 도망치거나 항복할 것 같긴 한데...아직 선전포고 전이니 어쩌겠어. 일단 배를 정선하고 백기를 올리게. 그리고 외무청 관리를 불러오고.”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북미왕국의 배가 속도를 줄이자 잔뜩 긴장한 프랑스인들은 곧 북미왕국의 배에서 백기가 올라오자 안도하며 조심스럽게 북미왕국의 배에 접근했다.
그리고 한 프랑스인이 북미왕국의 배에 오르자 외무청 관리는 바로 그에게 다가갔고.
북미왕국의 배에 오른 선장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북미왕국인을 보고 입을 열었다.
“이곳은 우리 누벨 프랑스의 영역인데 무슨 일로 북미왕국의 배가 이곳까지 온 것이오?”
이에 외무청 관리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저는 북미왕국의 외무청 관리고 본국의 명령에 따라 누벨 프랑스의 총독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겁니다. 듣자니 이 강을 따라 이동하면 누벨 프랑스의 총독부가 존재하는 퀘벡이 나온다고 해서 이동 중이었고요.”
외무청 관리의 대답에 선장은 내심 안도하며 되물었다.
“음...사절이라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선장은 북미왕국의 배가 군함처럼 보여 현실적으로 이들의 퀘벡행을 막기는 어렵다는 판단과 저들 스스로가 사절이라고 주장하는 만큼 일개 상선의 선장인 자신이 이들을 막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으음...알겠소. 허나 퀘벡에 먼저 연락을 보냈으면 하는데...”
이에 외무청 관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허면 연락을 먼저 보내시지요. 다만 답변이 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기보다는 내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말입니다.”
외무청 관리의 대답에 조금 고민했지만, 선장이 판단하기에는 자신이 무어라 한다고 이를 들어줄 것 같지 않았기에 최대한 빠르게 퀘벡으로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알겠소.”
* * *
북미왕국의 배가 강을 거슬러오고 있다는 사실이 퀘벡에 알려지기 무섭게 북미왕국의 배가 퀘벡에 접근하자 퀘벡의 총독부는 발칵 뒤집혔다.
“총독 각하.”
퀘벡의 행정관인 장이 총독의 집무실로 들어오자 총독이 그를 반기며 급히 질문을 던졌다.
“어서 오게. 행정관. 북미왕국의 배가 나타났다면서?”
“그렇습니다. 총독 각하. 저들이 선착장 인근에서 배를 멈추고 백기를 들어 올려 다시 사람을 보내 저들의 목적을 물어보니 상선의 선장이 이야기한 대로 자신들은 북미왕국에서 보낸 사절이며 총독 각하를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니. 저들이 갑자기 왜?”
총독의 질문에 장은 그걸 자신이 어찌 알겠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음...이제와서 북미왕국이 사절을 보냈다라...”
“어쩌시겠습니까?”
장의 질문에 총독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뭘 어쩌겠나. 저들이 스스로를 사절이라고 이야기한 이상 접촉해봐야겠지. 이곳으로 데리고 오게.”
“알겠습니다. 총독 각하.”
* * *
총독의 집무실로 들어온 북미왕국의 사절은 가벼운 인사 후 총독에게 두 장의 서류를 건넸다.
하나는 북미왕국의 언어로, 또 하나는 프랑스어로 쓰여 있었기에 총독은 빠르게 사절이 건넨 서류를 읽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에 장은 무슨 내용인가 싶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총독이 소리쳤다.
“이...이건...선전포고문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총독의 말에 장이 기겁할 때 외무청 관리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리 북미왕국은 에스파냐와 조약을 맺어 이 북미 대륙의 모든 권리를 손에 넣었습니다. 허나 알고 보니 에스파냐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귀국과 잉글랜드 역시 이 북미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해 운영하고 있었고 이에 우리 북미왕국은 평화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우리의 노력을 알아준 잉글랜드는 결국 우리와 협상을 통해 북미 동해안 지역에서 철수했고요. 허나 귀국은 우리와의 접촉을 꺼렸고 그것도 모자라 이로쿼이 연맹을 이용해 우리 북미왕국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어찌 이를 참을 수 있겠습니까.”
“그...그건...”
외무청 관리의 말에 장은 기겁하며 무어라 이야기하려 했다.
하지만 외무청 관리는 이를 무시하고 총독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계속 이야기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우리 북미왕국의 모든 신하는 일제히 우리 북미왕국을 공격하려 한 귀국의 영토를 곧바로 불태워버리길 청원했으나 우리 북미왕국의 자비로운 국왕 전하께서는 이 땅에 더 많은 피가 흐르는 것을 원치 않아 하시며 당신들이 먼저 북미왕국을 공격하려 한 잘못을 인정하고 순순히 북미 대륙에서 철수한다면 이를 넘어가겠다고 하셨습니다. 해서 이렇게 제가 온 것이고요.”
“이...이익!”
외무청 관리의 말은 결국 프랑스는 결코 북미왕국을 이기지 못할 테니 괜히 반항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뜻과 같았기에 총독이 분개해 무어라 이야기하려는 찰나 장이 급히 총독을 말리며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북미왕국에서 무언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만 저희는...”
“변명은 집어치우시지요. 우리가 제대로 사정을 파악하지도 않고 귀국을 공격하겠다고 결정한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이미 이로쿼이 연맹에 사람을 보내 사정을 모두 확인한 후입니다. 그곳에 프랑스산 무기와 막대한 화약이 쌓여있던데요?”
이에 장은 속으로 이로쿼이 연맹을 욕하면서도 겉으로는 그게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이로쿼이 연맹이 머스킷을 사용해 비버를 사냥하는 부족이라 더 많은 비버 가죽을 위해 넘겨준 것뿐입니다.”
장의 변명에 외무청 관리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이미 귀국이 지속해서 이로쿼이 연맹에 우리 북미왕국에 대한 편향된 정보를 알려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더불어 귀국은 이로쿼이 연맹이 우리 북미왕국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가 이로쿼이 연맹을 공격할 거라고 은근히 위협하기도 했다는 사실도. 이미 이로쿼이 연맹의 모호크 족 추장이 이를 다 털어놓았으니 변명은 그만하시지요.”
“...”
이미 이로쿼이 연맹은 북미왕국에 붙어 모든 이야기를 다 한 것처럼 보였기에 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이로쿼이 연맹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며 속으로 탄식했다.
그리고 장이 침묵하자 총독이 외무청 관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고작 원주민들의 말만 믿고 감히 대프랑스에 선전포고하겠다는 뜻이오?”
하지만 외무청 관리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거기에 적힌 대로 북미왕국은 1673년 3월 10일을 기해 누벨 프랑스와 전쟁 상태에 돌입할 겁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무장을 해제한 후 이 북미 대륙에서 떠날 생각이 있습니까?”
“절대로!”
“총독 각하! 그건!”
외무청 관리가 묻자 총독은 단호하게 대답했고 이에 장은 기겁하며 무어라 이야기하려 했지만, 총독이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집무실에 잠시 침묵만이 감돌았고 총독과 외무청 관리는 서로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외무청 관리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귀국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종전 협상 때나 다시 뵙도록 하지요.”
외무청 관리가 집무실에서 나가자 장은 즉시 총독에게 소리쳤다.
“총독 각하! 지금이라도 저들에게 항복해야 합니다! 본국에서 지원군이 오기 전까지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누벨 프랑스를 고스란히 북미왕국에 넘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잉글랜드처럼 협상을 통해 일정 금액을 받고 이 지역을 넘기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누벨 프랑스를 그냥 넘겨줄 수는 없었기에 단호히 고개를 젓는 총독을 보고, 장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렇다고 이 땅에서 죽자는 뜻입니까?”
“일단 전쟁 돌입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았네. 허니 바로 본국으로 연락을 보내게. 본국에서도 북미왕국이 선전포고했다는 사실을 알면 바로 지원 병력을 보내 줄걸세.”
총독의 명령에도 장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총독 각하! 정신 차리십시오! 본국에서 곧바로 지원 병력을 보내 준다 하더라도 지원 병력이 도착하기 전까지 못 버틴단 말입니다! 저들의 해군이 지금처럼 강을 거슬러 올라오면 그걸 무슨 수로 막습니까!”
세인트로렌스 강은 무척 넓었고 덕분에 누벨 프랑스의 모든 배를 끌어모은다 한들 저들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을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곳의 목책을 믿고 방어하는 것도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고.
“나도 아네. 이곳에서 죽기 살기로 방어해봐야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는 것을. 다만 우리에겐 동맹 부족들이 있지 않은가.”
“설마...원주민들처럼 숲에서 싸우겠다는 뜻입니까?”
“그렇네.”
그런 총독의 대답에 장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간청했다.
“총독 각하. 다시 생각해 주시지요. 저들도 원주민입니다. 숲에서의 전투는 저들도 익숙할 거란 말입니다!”
이에 총독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명령했다.
“익숙하다 해도 저들은 이곳의 지형을 제대로 모르지 않나. 그리고 이곳은 무척 넓고. 적당히 흩어져서 게릴라 전술을 펼친다면 반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이건 명령일세. 즉시 본국에 연락을 보내고 물자들을 챙기게. 그리고 동맹 부족에게 북미왕국이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온다고 알리고.”
장은 총독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