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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99화 (299/850)

299화

“전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정성국은 집무실을 들어오는 해군 탐사대장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오. 참으로 오랜만일세. 저기 앉게. 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정성국은 커피를 내려 해군 탐사대장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그래. 남태평양 탐사대를 맡았다면서?”

해군 탐사대는 작년에 북태평양 탐사대와 남태평양 탐사대로 재편되었다.

이는 알래스카 최북단까지의 대략적인 탐사가 끝나기도 했고 계속해서 탐사선이 늘어나는 상황이었기에 이 탐사선들을 알래스카 주변 해역에만 배치해두는 것은 낭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해서 해군 탐사대를 둘로 나누었고 원칙대로라면 정성국의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해군 탐사대장은 해군 탐사대의 총 책임자로 새한성에 남아야 했지만, 탐사대의 경우 보통 가을에 새한성으로 복귀하면서 보고를 하는 터라 새한성에 남아봐야 할 것이 없지 않냐며 지금처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다는 해군 탐사대장의 요청에 정성국은 그러라고 허락했다.

해군 탐사대장 역시 뛰어난 뱃사람이자 모험가인데 새한성에 묶어두긴 아까웠던 탓이다.

그렇게 정성국이 허락하자 해군 탐사대장은 무척 기뻐하면서 남태평양 탐사대를 직접 맡겠다며 곧바로 하와이 제도로 떠났기에 이를 기억하고 있던 정성국이 웃으며 묻자 해군 탐사대장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알래스카 연안을 돌아다녔으니 다른 바다를 탐사하고 싶기도 했고...남태평양 탐사대는 다른 탐사대와는 달리 탐사해야 할 영역이 무척 넓지 않습니까. 해서 남태평양 탐사대를 직접 총괄하기로 했습니다.”

남태평양의 관할 구역이 더 넓었기에 선택했다는 해군 탐사대장의 말에 천상 뱃사람이라고 생각한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 남태평양은 어떻던가?”

“음...봉길해와는 전혀 다른 바다였습니다. 기후도 전혀 달랐고요.”

“하하하. 그야 그렇겠지.”

물론 알래스카 주변 해안을 탐사하는 시기는 주로 여름이긴 했지만, 그래도 위도 때문에 꽤 선선한 편이었다.

허나 남태평양은 아열대 기후였기에 무척 더울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알래스카 해안가를 따라 탐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더군요.”

“아아. 아무래도 망망대해를 탐색해야 할 테니.”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해군 탐사대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더구나 알래스카 연안의 경우 제대로 된 지도가 있었습니다만 남태평양의 경우는 북미왕국의 지도도 정확하지 않아 탐사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물론 정성국이 전생의 기억으로 세계지도를 그리긴 했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섬을 모두 표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몇몇 커다란 섬들 위주로 표기했는데 남태평양에는 수많은 조그마한 섬들이 존재했으니 남태평양 지도는 부정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그러니 남태평양 탐사대가 남태평양을 샅샅이 탐사해야 할 거야.”

정성국의 말에 해군 탐사대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은 막막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그래야지요. 허나 제대로 된 지도를 만들려면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그런 해군 탐사대장의 반응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뭐 어쩌겠어. 남태평양이 워낙 넓은 바다이니. 허나 남태평양 탐사대는 꾸준히 규모가 늘어날 테니 언젠간 제대로 된 지도를 만들 수 있겠지. 그보다 이번에 남태평양을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섬은 있나?”

“물론입니다.”

그러면서 해군 탐사대장은 품 안에서 남태평양의 지도를 꺼내 정성국에게 건넸다.

하와이 제도와 호주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던 지도에는 10개가 넘는 아주 작은 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아...이 점들이 이번에 발견한 섬인가? 생각보다 수는 많네?”

정성국이 티테이블 위에 남태평양 지도를 올려놓고 묻자 해군 탐사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의외로 조그마한 섬이 많더군요. 그리고 이러한 섬들에 원주민들이 살고 있어 그들과 조심스럽게 접촉했고요.”

“그래? 이 지역의 원주민들과 말이 통하던가?”

호주를 제외한 남태평양은 크게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로 나누는데 이 중 폴리네시아 지역은 북쪽의 하와이 제도, 남서쪽의 뉴질랜드, 남동쪽의 이스터 섬을 이어 그려지는 거대한 삼각형 안쪽의 모든 섬을 통칭하며 이 지역에 사는 폴리네시아인들은 무척 유사한 언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번에 남태평양 탐사대가 발견한 곳이 바로 폴리네시아 지역의 섬이었기에 하와이인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남태평양 탐사대라면 분명 말이 통할 것이라 예상한 정성국이었다.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거리를 생각해 당연히 말이 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만...의외로 이들은 하와이 제도의 원주민들과 무척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더군요. 덕분에 의사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어느 정도 외부와 교류하고 있던 모양인지 우리를 보자마자 철제 제품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고 하니 교역하기를 원하더군요.”

폴리네시아인들은 뛰어난 항해술을 가지고 있었으니 고립되지 않고 다른 섬들과 교역했겠구나 싶었던 정성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헌데 교역할만한 것이 있긴 한가?”

“그렇습니다.”

해군 탐사대장은 품 안에서 주머니를 꺼내 정성국에게 건네주었고 그 주머니를 열어본 정성국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오. 이건 진주잖아? 생각보다 양이 많네? 설마 후려친 건 아니지?”

꽤 커다란 주머니를 가득 채운 진주의 양에 정성국이 묻자 해군 탐사대장은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외부와의 교류가 있었기에 진주가 가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해서 자신들이 가끔 들르는 외부인들과 거래하던 시세라며 먼저 제시한 것을 받아들였을 뿐입니다만...”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의 말에 혀를 찼다.

“쯧. 그놈들이 엄청나게 후려쳤던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대로 거래하겠다고 하자 묘하게 기뻐했던 것을 보면 분명 기존에 거래하던 것보다 비싸게 부른 모양인데 그래 봐야 작은 단검 하나에 진주 2알이었습니다.”

그 말에 해군 탐사대가 원주민을 만났을 때 교역하기 위해 싣고 다니는 물품의 물량을 대충 짐작하는 정성국은 기겁했다.

“잠깐. 그럼 이게 전부가 아니겠네?”

“그렇습니다. 나머지는 관리청에 넘겼습니다.”

정성국은 고개를 저으며 주머니 안의 진주를 꺼내 살펴보았다.

천연진주라 못생긴 진주도 많았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막대한 이득이긴 했다.

해서 조금은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지만, 원주민들이 만족했다는 해군 탐사대장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가치야 상대적인 거니까. 그리고 우리가 후하게 진주를 사들이면 이들은 계속해서 우리와 거래하려 들 테니 나쁠 것도 없지 뭐.”

해군 탐사대장 역시 그러한 생각에 굳이 흥정하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정성국은 주머니를 티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주머니에서 꺼낸 새끼손톱만 한 진주를 유심히 살펴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성국의 눈빛에는 탐욕이 서려 있기보다는 무언가 고민하는 표정이었기에 해군 탐사대장은 그러한 정성국의 반응이 의아해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러십니까?”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정성국은 손바닥에 있는 진주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아. 이걸 보니 인공적으로 진주를 양식할 순 없을까 싶어서 말이지.”

진주는 그 특유의 아름다움 때문에 보석으로 분류되지만, 실상은 진주조개가 체내에 들어온 이물질을 격리하려고 분비물로 감싼 유기체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진주조개에 임의로 이물질을 삽입하면 진주를 만들 수 있고.

물론 쉬운 일은 아니긴 했다.

잘못 삽입하면 진주조개가 폐사할 수도 있었고 적당히 큰 진주알이 생성되기까지는 꽤 오랫동안 키워야 하는데 잘못 관리하면 몇 년간의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니까.

하지만 진주는 특유의 광택 때문에 동서를 가리지 않고 몹시 인기 있는 보석인 만큼 이를 연구해보는 것도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그때 정성국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해군 군사청장이 물었다.

“음...진주 조개를 양식해 안정적으로 진주를 얻겠다는 뜻이로군요?”

“비슷해. 뭐 쉽지야 않겠지만 연구해볼 가치는 있겠어.”

정성국의 말에 해군 탐사대장은 조금 흥분한 기색이었다.

어떤 보석이든 채굴하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데 정성국의 말처럼 진주조개 양식에 성공한다면 계속해서 진주를 채취할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렇지요. 보석을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 아니겠습니까.”

정성국은 그런 해군 탐사대장을 보고 피식 웃으며 진정하라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렇기야 하지. 뭐 이건 내가 따로 어업 연구소에 이야기해야겠군. 그건 그렇고 이번에 발견한 섬 중 중간 거점으로 삼을만한 곳이 있던가?”

정성국의 질문에 자신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은 해군 탐사대장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도에 그려져 있는 섬 중 가장 남쪽의 섬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 생각엔 이 섬이 가장 나을 듯싶습니다. 이곳 원주민도 가장 우호적이기도 했고요.”

대략적인 위치를 고려해보면 아마 전생의 투발루 섬 중 하나로 보였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그래? 나쁠 것 없겠지. 이곳을 거점으로 주변을 탐사해보라고.”

정성국의 말에 해군 탐사대장은 움찔했다.

“음...”

“왜?”

정성국이 묻자 해군 탐사대장은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중간 거점을 마련하는 대로 거대한 대륙을 직접 탐사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정성국은 이 지역에 수많은 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주변을 돌아다니며 제대로 된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지만, 해군 탐사대장은 거대한 호주를 하루라도 빨리 탐사하고 싶어하는 표정이었기에 정성국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뭐 그거야 마음대로 하게. 나야 이곳을 거점으로 천천히 주변 탐사를 하는 것이 나쁠 것 없다 싶어 이야기했을 뿐이니까.”

정성국의 허락이 떨어지자 해군 탐사대장은 반색하며 곧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남태평양 탐사대 소속의 탐사선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일부는 계속 주변을 탐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그러도록 하게. 그리고 북태평양 탐사대는?”

정성국의 질문에 해군 탐사대장은 곧바로 대답했다.

“특별히 보고할 것은 없습니다. 주변 해역을 탐사하고 원주민들과 주기적으로 교역을 진행하고 있을 뿐이지요.”

“새의주의 건설은?”

새의주 인근에 여러 광물 자원이 묻혀 있었고 이를 캐기 위해서는 일단 주변 원주민들을 불러모을 거점이 필요했기에 새의주 건설을 시작했다.

“일단 선착장을 비롯해 여러 시설이 들어선 상태입니다. 그리고 새의주가 건설되고 이곳을 거점으로 북태평양 탐사대가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주변 원주민들도 교역하기 위해 새의주로 몰려오고 있고요.”

“그래? 그럼...”

“보고받기로는 내년에 원주민을 고용해 일단 석탄부터 채취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새의주의 난방문제도 있고 이곳에서 석탄을 캐기 시작하면 북태평양 탐사대의 연료 보급도, 그리고 새의주에서 봉길섬까지의 거리가 훨씬 가까우니 이주 선단의 연료 보급도 훨씬 수월해지겠지요.”

해군 탐사대장의 말에 정성국은 조금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면 새의주에서 겨울을 맞는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군.”

지금까지는 그 알래스카였기에 정성국이 명령을 내려 가을이 되면 모든 북미왕국인은 새남포로 철수시켰다.

하지만 이번에 새의주를 건설하면서 수백의 북미왕국인이 새의주에서 겨울을 나야하는 만큼 정성국이 걱정하자 해군 탐사대장이 슬쩍 미소지으며 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알래스카 지역의 추위가 무척 매섭다는 것을 알기에 다른 지역과는 달리 온돌까지 설치한 것으로 압니다.”

북미왕국은 온돌보단 난로를 주로 사용했다.

온돌의 경우 2층부터는 설치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북미왕국의 경우는 그나마 북쪽에 있는 새남포도 겨울에 꽤 포근했기에 굳이 온돌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고.

허나 알래스카는 달랐기에 온돌까지 설치했다고 하니 정성국은 그제야 조금 안도했다.

“흐음...그렇군. 알겠네. 그리고 남태평양을 탐사하느라 고생했네.”

정성국의 치하에 해군 탐사대장은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헌데 전하.”

“음?”

“남태평양 탐사대가 발견한 섬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의 말에 신음을 흘리며 되물었다.

“으음...발견한 섬을 북미왕국의 영토로 주장할 것인지 묻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 설마 이번에 발견한 섬들에 동판을 설치했나?”

“아닙니다. 전하께서 별다른 언질을 주시지 않았기에 일단 보류했습니다.”

해군 탐사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봉길해의 섬들이야 러시아놈들 때문에 영토로 선언했지만, 이 지역은 조금 다른데...거기에 남태평양엔 워낙 많은 섬이 존재하니 현실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울 테고.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서양놈들이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꼴을 보고 싶진 않으니...“

“일단 무인도의 경우 동판을 설치하고 북미왕국의 영토라는 것을 알리게.”

“허면 원주민들이 사는 섬은 그냥 내버려 둡니까?”

“동판을 하나 더 만들게. 이 섬이 원주민들의 땅임을 북미왕국이 인정한다고.”

정성국의 대답에 해군 탐사대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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