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탕!’‘탕!’‘탕!’
북미왕국의 병사가 빠르게 총을 재장전하며 여러 마리의 비버를 사냥했고 마지막 총성이 울린 후 잠시 적막만이 감돌았을 때 메타코멧이 한 중년 원주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습니까?”
중년 원주민은 어두운 얼굴로 사격이 끝난 후 정자세로 서 있는 북미왕국의 병사와 그가 들고 있는 머스킷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걸 보여주기 위해 사냥을 하자고 한 모양이구려.”
“그렇습니다.”
중년 원주민은 아베나키 족의 추장으로 아베나키 족은 퀘벡 인근에 자리한 부족이자 메타코멧이 설득하지 못한 마지막으로 남은 누벨 프랑스의 동맹 부족이었다.
누벨 프랑스와의 동맹을 포기하고 북미왕국과 함께하기로 한 다른 범 알곤킨 족 추장들의 소개로 다른 누벨 프랑스의 동맹 부족을 설득한 메타코멧은 마지막으로 아베나키 족의 추장을 만나 설득했으니 이 아베나키 족 추장은 이에 부정적이었다.
아베나키 족 추장이 보기엔 누벨 프랑스는 대단지 않아도 그 뒤에 있는 프랑스는 대단했기에 과연 원주민들의 나라인 북미왕국이 프랑스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해서 메타코멧은 당신의 생각은 알겠다며 이렇게 온 김에 함께 사냥이나 하자고 제의했다.
아베나키 족 추장은 그런 메타코멧의 제의에 내심 경계하긴 했지만 메타코멧의 호위병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머스킷을 소유한 부족원을 모두 불러 함께 외곽 숲으로 나왔고 적당한 곳에서 메타코멧이 먼저 북미왕국의 병사들은 뛰어난 사냥꾼이라면서 호위병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호위병 중 한 명이 나와서 비버 무리를 향해 총을 발사하고 다시 빠르게 재장전해 계속 발사했다.
처음으로 발사할 때만 하더라도 무언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빠르게 장전해 여러 마리의 비버를 순식간에 사냥하는 호위병의 모습에 아베나키 족 추장과 부족원은 경악해 표정이 굳었고.
아베나키 족 추장은 메타코멧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메타코멧이 왜 갑작스럽게 사냥을 하자고 제의했는지 깨달았다.
“저게 정말 북미왕국이 만든 머스킷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북미왕국에서 개발한 무기이고...오로지 북미왕국의 병사들만이 저 무기로 무장하고 있지요.”
“으음...”
메타코멧의 이야기에 아베나키 족 추장의 안색이 한없이 어두워졌을 때 메타코멧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런 병사들을 상대하시렵니까? 그것도 수백 명도 아니고 최소 1만이 넘는 병사들을?”
아베나키 족 추장은 저 북미왕국의 머스킷으로 무장한 1만 명의 병사를 상상하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다가 무언가 의문이 들었기에 메타코멧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 정말 북미왕국의 모든 병사가 저런 무기로 무장했고 그토록 많은 병사가 준비되어 있다면 뭐하러 우리를 설득하려는 거요? 당신의 말처럼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그냥 쓸려나갈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무기로 무장한 북미왕국의 병사들을 누벨 프랑스나 자신들이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북미왕국은 굳이 시간을 들여 자신을 설득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냥 공격해 쓸어버리면 그만이지.
아베나키 족 추장의 말에 다른 부족원들도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메타코멧은 고개를 저었다.
“오해하시는군요. 북미왕국은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누벨 프랑스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누벨 프랑스는 이로쿼이 연맹에 편향된 정보를 제공해 북미왕국을 공격하도록 유도했고 이를 알게 된 북미왕국이 즉각 누벨 프랑스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누벨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여러 부족이 있는 상태에서 누벨 프랑스를 공격하면 아무런 죄가 없는 원주민 부족들이 피를 흘릴 것을 우려해 이렇게 설득하는 것뿐입니다.”
메타코멧의 말에 다른 부족원들은 그게 정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최근 누벨 프랑스가 이로쿼이 연맹과 종전을 맺고 꽤 많은 양의 무기를 거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아베나키 족 추장이 신음을 흘렸다.
“으음...최근에 이로쿼이 연맹에 화약을 많이 판다더니...그 때문이었나?”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로쿼이 연맹은 무척 호전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이로쿼이 연맹조차 북미왕국 군대와 싸운다는 것은 개죽음이라는 사실을 파악했기에 북미왕국에 사실을 알린 거고요. 헌데 당신들은 끝까지 누벨 프랑스와의 동맹으로 남으실 겁니까?”
메타코멧의 말에 아베나키 부족원들은 일제히 추장을 바라보았고 아베나키 족 추장은 메타코멧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정말 북미왕국에서도 누벨 프랑스처럼 여러 물품을 생산할 수 있는 거요?”
“물론입니다. 오히려 프랑스에서 가져오는 물품들보다 더 값싸고 더 좋은 품질의 물품을 생산하고 있지요. 저 머스킷만 보더라도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짐작하실 텐데요?”
메타코멧의 대답에 아베나키 족 추장은 다시 머릿속으로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리 프랑스 본국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저런 말도 안 되는 무기로 무장한 북미왕국을 이기진 못하겠구나 싶어 결정을 내렸다.
“...좋소. 누벨 프랑스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으리다.”
마지막 누벨 프랑스의 동맹 부족인 아베나키 족이 마침내 북미왕국의 손을 잡자 메타코멧은 드디어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사실에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예.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 * *
정성국은 집무실을 찾아온 연구청장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래? 젖소를 구했다고? 외무청에선 딱히 덴마크와 접촉했다는 소식을 못 들었는데?”
이에 연구청장은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요. 에스파냐를 통해 구한 겁니다.”
“어? 에스파냐에도 젖소가 있어?”
정성국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연구청장이 말했다.
“그건 아니고...저희가 유제품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과 젖소를 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에스파냐의 상인이 젖소를 구해왔습니다. 다만 덴마크의 젖소가 아니라 네덜란드의 젖소라고 합니다만...”
“아. 네덜란드도 꽤 많은 유제품을 생산하는 만큼 네덜란드의 젖소도 나쁘진 않지.”
“예. 그래서 거래한 모양입니다.”
흔히 젖소 하면 떠올리는 얼룩무늬를 자랑하는 홀스타인 종은 그 이름과는 다르게 덴마크의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주가 아닌 네덜란드의 프리슬란트 주에서 나왔고 그 때문에 네덜란드가 수많은 유제품으로 유명한 만큼 정성국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연구청장이 건네준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와우. 80두 치곤 조금 비싸긴 하네. 헌데 모조리 암소라고? 그럼 번식은 어쩌라고?”
정성국이 보고서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자 연구청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저희가 젖소를 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젖을 짤 수 있는 암소 위주로 구했다고 합니다. 물론 같은 종의 수소도 20두 태우긴 했는데...다 폐사했답니다.”
이에 정성국은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참...안타깝기도 하고...또 에스파냐 놈들의 말을 믿을 수 있나 싶기도 하고...”
그런 정성국의 말에 연구청장 역시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다만 다음엔 수소의 가격을 더 높게 쳐준다고 했으니 수소를 데려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에스파냐의 상인이 수소만 구해올 것 같았지만 일단 북미왕국에 들어온 암소가 있었으니 크게 상관없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젖소들은 축산 연구소에 넘겨주었고?”
“그렇습니다. 번식을 시키진 못합니다만...일단 젖소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구청장에게 말했다.
“그래. 알겠네. 그리고 젖소를 구했으니 젖소에서 나오는 우유를 이용해 치즈를 비롯한 유제품의 제조법부터 연구해보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 * *
모호크 족 추장은 북미왕국으로 떠났던 이로쿼이 연맹의 추장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급히 부족으로 돌아왔다.
이미 다른 추장들은 본거지로 돌아갔지만 몇몇 추장들은 항상 모이던 롱하우스에서 모호크 족 추장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모호크 족 추장은 그들을 살펴보고 웃으며 인사를 던졌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이에 오논다가 족 추장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곳에 별일은 없었습니까?”
“예. 아. 중간에 누벨 프랑스에서 상인이 또 왔습니다. 무기와 화약을 가지고 와 넘겨주더군요.”
“아. 그래요? 별말은 없던가요?”
“왜 없었겠습니까. 지금까지 사들인 물량이면 북미왕국을 공격하기 충분할 텐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묻더군요. 해서 일부러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우리가 알아서 결정하고 행동할 테니 참견하지 말라고 쏘아붙였지요.”
모호크 족 추장의 말에 다른 추장들은 잘했다는 듯 웃었다.
“하하하. 잘 하셨습니다.”
“그보다 북미왕국은 어땠습니까? 정말 자식놈들의 이야기처럼 대단하던가요?”
모호크 족 추장이 이 중에서 제일 신중한 카유가 추장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자 카유가 족 추장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씁쓸히 웃었다.
북미왕국 외무청 관리의 안내로 커다란 배를 타고 새진주라는 곳에 도착해 마차를 타고 이동하다 기차로 갈아타고 북미왕국의 수도인 새한성을 한 달 가까이 둘러보면서 북미왕국의 국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예. 정말 대단했습니다. 자식 녀석들이 왜 그렇게 하루라도 빨리 북미왕국에 합류해야 한다고 한 것인지 알겠더군요.”
카유가 족 추장뿐만 아니라 다른 추장들의 눈빛도 감탄만이 서려 있었기에 모호크 족 추장은 더는 묻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렇습니까? 허면 다른 추장들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북미왕국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추장들과 함께 방문했고 이들이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원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부족별로 쪼개질 수밖에 없기에 그들의 반응을 묻자 카유가 족 추장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거대한 북미왕국의 배를 탔을 때부터 조금 조용해졌고...철길을 따라 이동하는 기차라는 쇳덩이를 보고 그 쇳덩이를 타고 저들의 수도인 새한성에 도착한 이후로는 자신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하나같이 북미왕국과 합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더이다.”
어차피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던 한 추장도 육중한 기차가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엔 입을 다물지 못하던 것을 떠올리고 피식 웃을 때 모호크 족 추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습니까? 정말 저들은 움직이는 쇳덩이를 타고 다닌다는 거지요?”
그가 아들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그 기차였기에 되묻자 다른 추장들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모호크 족 추장께서도 나중에 꼭 북미왕국에 가서 기차를 직접 타보시지요. 정말 대단하더이다.”
“그렇습니다. 말을 타고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속도였습니다. 차이점이라면 이 기차는 일정한 속도로 계속 움직인다는 거지요. 더불어 한 번에 많은 사람을 싣고 말입니다.”
“솔직히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기차의 경우는 직접 봐야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될 겁니다.”
“뭐 그렇기야 하지요.”
다른 추장들의 대답에 모호크 족 추장은 움찔하면서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들이 이러나 싶어 나중에 북미왕국을 꼭 한번은 방문해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카유가 족 추장이 말했다.
“물론 기차도 대단했습니다만 그것 외에도 북미왕국의 수도라는 새한성에서 볼 것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둘러보면서 막연히 연맹과 나라가 같다고 여겼던 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고요.”
카유가 족 추장의 말에 다른 추장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음...그렇긴 하지요.”
“다만 정치체계가 조금 걸리긴 합니다. 우리와는 달리 저들은 국왕을 모시고 국왕의 의견을 따르는 체계니까요.”
카유가 족 추장의 말에 오논다가 족 추장은 그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 국왕은 무척 현명한 인물이고 북미왕국의 발전을 이끈 인물이라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훗날을 생각해보면 조금 불안하긴 하지요.”
이에 오네이다 족 추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긴 하지만...그것 때문에 북미왕국에 합류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야...그렇지요. 특히나 저들의 교육 체계는 놀라울 정도였고 하루라도 빨리 북미왕국에 합류해 저들의 교육 체계로 우리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북미왕국을 방문했던 추장들은 서로 토론하기 시작했고 옆에서 그런 추장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던 모호크 족 추장은 비록 몇 가지 부분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북미왕국과 합류하지 않는다면 천천히 몰락하는 미래만이 존재한다는 것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이에 모호크 족 추장이 입을 열었다.
“허면 여기 계신 분들은 북미왕국에 합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그게 그나마 최악을 피하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신중한 카유가 족 추장마저도 고개를 끄덕이자 모호크 족 추장 역시 결정을 내리고 말했다.
“허면 우리 이로쿼이 연맹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모든 추장을 불러 정식으로 대의회를 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여러 추장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