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제주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곧바로 제물포에 도착한 조선 사절단 일행은 곧바로 한양으로 이동했다.
한양에 도착하자마자 입궐해 금상을 알현해 무사히 북미왕국에 다녀왔다는 것을 알리고 서장관이었던 이정민이 북미왕국에서 보고 들었던 것을 기록한 보고서와 화공들이 북미왕국에서 사절단과 함께 움직이며 보았던 풍경을 그린 수많은 그림을 바쳤다.
조선의 국왕인 이연은 이정민이 올린 꽤 많은 양의 보고서는 나중에 읽기로 하고 조정 대신들도 북미왕국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대전에서 함께 화공들이 그린 그림을 하나씩 감상했다.
그렇게 북미왕국의 풍경이 그려진 그림들을 감상하다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 나오자 유철이 이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고 이를 듣던 이연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저기 그려진 기물이 거대한 쇳덩이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 거대한 쇳덩이가 철길을 빠르게 달려 하루에 1000리나 이동한다는 겁니까?”
이조 판서가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유철에게 물었지만, 유철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허...”
“그게 대체...”
유철의 대답에도 조정 대신들은 자신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기차라는 기물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웅성거렸고 그때 공조 판서가 질문을 던졌다.
“예조 판서께서는 저 기차라는 기물을 직접 타보신 겁니까?”
“저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병조 참판을 비롯해 공식 사절단 인원은 전부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해 저들의 곡창지대이자 조선 유민이 장착한다는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헌데 그 위치가 예전에 북미왕국이 건네준 지도로 계산해보면 못해도 한양에서 한밭보다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한나절이면 도착했었습니다.”
“허어...”
“그리고 그곳에서 다음날 다시 기차를 타고 해가 지기 전에 새나주에 도착했었지요. 새한성에서 새나주까지의 거리가 1000리가 훨씬 넘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저들의 이야기처럼 쉬지 않고 달린다면 하루에 1000리를 이동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으음...”
김만기 역시 옆에서 기차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이연과 조정 대신들은 기차가 얼마나 유용한 기물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기차가 그려진 그림의 설명이 끝나고 상선이 다음 그림을 펼치자 공조 판서가 이채를 띠며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 그림은...”
“아. 그게 바로 기차가 움직이는 길인 철도를 까는 공사 현장을 그린 그림입니다. 기차를 타보고 나니 이 기차라는 기물이 너무 대단해서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고...그 중에 현재 북미왕국이 새나주에서 동쪽의 새진주라는 곳까지 철도 공사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서 푸른 안개 공에게 공사 현장을 가 보고 싶다고 부탁해 방문한 현장입니다. 정말 장관이었지요.”
유철은 그림을 보고 대답하면서도 북미왕국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미약하게 감탄한 기색이 느껴지자 공조 판서는 공사 현장이 얼마나 대단했길래 유철이 저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소이까?”
“예. 수많은 인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빠르게 철도를 건설하는 모습은...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 반응에 이조 판서가 질문을 던졌다.
“일종의...토목 공사라 할 수 있구려?”
“그렇습니다. 곳곳에서 공사 중이라고 들었고 이 철도 공사를 위해 동원된 인력이 대략 6만 명 가까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철도 공사에 투입하기로 예정된 인원은 3만 명 내외였다.
하지만 새나주-새진주 구간 철도 공사를 진행하던 도중 가뭄이 발생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하던 푸에블로 족과 나바호 족의 젊은이들이 가세하면서 철도 공사에 투입된 인원은 계속 늘어나 현재는 6만 명가량의 인부가 공사에 투입되어 있었다.
“허어...6만 명이나...”
이조 판서가 놀란 가운데 영의정인 정태화가 혹시나 해 질문을 던졌다.
“혹시 노역입니까?”
“아닙니다. 북미왕국에서 고용한 인부입니다. 저들은 노역의 개념이 없고 돈으로 인부를 고용해 작업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유철의 대답에 조정 대신들은 혀를 둘렀다.
“북미왕국이 부유한 국가라더니...”
“그러게 말입니다. 저런 토목 공사를 노역이 아니라 인부를 사서 진행한다니 놀랍군요.”
그 이후로도 여러 그림을 유철과 김만기가 번갈아 나서서 설명했고 이연과 조정 대신들은 그림과 함께 듣는 북미왕국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저건...뭐하는 기물입니까? 그림을 보아하니 목화를 넣는 것 같은데?”
이조 판서의 질문에 유철이 대답했다.
“음...저건 조면기라는 기물로 증기기관을 이용해 면화에서 씨를 빼내는 기계입니다.”
유철의 대답에 다른 대신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북미왕국은 공방이 많은 편인지 공방에 대한 그림이 꽤 많았고 유철과 김만기의 설명으로 북미왕국에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신묘한 기물들이 많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일일이 사람 손을 쓰지 않고 목화에서 씨를 빼낸다는 게 대단했던 것이다.
“허어...증기기관으로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혹시 이것을 들여올 방도는 없던가요?”
조정 대신들이 급히 질문을 던지자 유철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북미왕국에서 기르는 목화와 조선에서 기르는 목화는 종류가 달라 들여와도 써먹긴 어렵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저들의 목화는 조선의 목화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허어...아쉽군요.”
아쉬운 것은 가까이에서 조면기를 보았던 유철이 더 했기에 입을 열었다.
“예. 아쉽긴 하지요. 혹시나 해서 북미왕국의 목화씨를 조금 가져오긴 했습니다만...과연 잘 자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조면기와 연속해서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유철이 말했다.
“그리고 저것과 그 뒤에 있는 것은 방적기와 직조기로...저기 그려진 방적기와 직조기 하나가 물레와 베틀 수십 개 분량의 일을 하더군요.”
유철의 말에 조정 대신들은 무척 놀라 다급히 되물었다.
“그...그런...”
“그게 참입니까?”
이에 유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이곳을 잠깐 구경하는 사이에도 계속해서 면포가 한쪽에 차곡차곡 쌓이는 광경이란...”
“그리고 이 기물로 만드는 면포의 품질은 조선의 면포보다 훨씬 품질이 좋았습니다.”
김만기가 그렇게 덧붙이자 조정 대신들은 안색을 흐리며 입을 열었다.
“허면 북미왕국이 면포를 풀기 시작하면 시중의 면포 가격은 폭락하겠군요.”
“이를 막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조정 대신들은 북미왕국산 면포가 들어온다면 조선의 면포값이 폭락하고 그러면 조선의 경제가 엉망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걱정하자 유철이 웃으며 말했다.
“북미왕국도 조선이 면포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조선에는 면포를 수출할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허어...그거 다행이군요.”
유철의 대답에 조정 대신들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였지만 김만기가 유철의 눈길을 받고 나섰다.
“허나 그렇다고 안심하고 언제까지 면포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으음...그렇기야 하지요.”
김만기의 말은 정론이었기에 다른 조정 대신들도 수긍하는 기색이었다.
그러자 병조 판서인 김좌명이 이연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하. 경술년에 화폐를 발행하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으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워 이를 중단했사옵니다. 허나 현재 조선의 상황은 안정된 형편이니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대동법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김육은 화폐의 사용도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이러한 김육의 주장에 인조와 효종 시절에는 몇 번이고 화폐를 발행한 적이 있긴 했다.
물론 제대로 정착하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김좌명은 김육의 장남으로 김육의 정책을 계승해 화폐 발행을 주장해왔다.
해서 현종은 경술년에 이를 허락했지만 갑작스럽게 기상이변이 발생해 화폐 발행을 잠정 중단시켰고.
허나 조선의 상황도 많이 안정되었고 북미왕국을 다녀온 유철과 김만기가 화폐 발행을 주장하자 이때다 싶어 나선 것이다.
“허허허. 그러도록 하시오.”
이연도 김좌명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여 경술년에 허락했었지만, 당시 상황이 좋지 않아 이를 중단시켰을 뿐이고 다행히 현 조선의 상황은 안정되어가고 있으니 다시 화폐 발행을 준비해도 되겠다 싶어 이를 허락하자 김좌명은 기뻐 어쩔 줄 모르며 고개를 숙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화폐 발행 문제를 일단락한 이연은 유철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여(余)가 생각하기엔 북미왕국의 기물에는 증기기관이라는 것이 핵심인 것 같은데...그 증기기관을 조선에 들여올 수는 없던가?”
“증기기관은 북미왕국의 핵심 기술이라 북미왕국에서도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사옵니다.”
“그런가...”
유철의 대답에 이연이 조금 아쉬운 기색을 보일 때 유철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허나 사절단이 새한성을 떠나기 전 푸른 안개 공이 저에게 두 가지를 넘겨주었사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증기기관의 초기 설계도이옵니다.”
“그것이 정말인가?”
유철의 대답에는 이연 뿐만 아니라 대전에 있던 조정 대신들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유철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그림에 그려진 수많은 북미왕국 풍경 중 절반 정도가 공방과 그 안에서 증기기관으로 가동하는 기물들이었다.
북미왕국은 이러한 기물을 통해 물품을 대량생산하고 있었고.
그런 만큼 증기기관이 참으로 유용하다는 사실과 이 증기기관이 북미왕국의 국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짐작했는데 이 증기기관의 설계도를 비록 초기 설계도라고 하지만 북미왕국에서 흔쾌히 넘겨주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현 북미왕국의 증기기관은 그간 북미왕국의 연구원과 장인이 10년간 연구한 결과물이라 함부로 내어줄 수는 없지만, 초기 증기기관은 조선에 있을 때부터 연구한 만큼 조선의 지분이 아예 없지는 않을 거라면서 설계도를 내어주었사옵니다.”
“오오...허면...”
이연이 무척 기뻐하는 것을 보고 유철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다만 이건 일종의 동력원일 뿐이라 이 설계도를 토대로 증기기관을 제작한다 하더라도 당장 북미왕국처럼 저런 기물을 만들어 운용할 수는 없을 거라 사료되옵니다.”
“아...그건 그렇겠군.”
유철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이연과 조정 대신들은 조금 진정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 유철이 덧붙였다.
“또한, 북미왕국의 수많은 기물은 실용적인 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원들과 장인들이 합심하여 10년간의 연구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이옵니다. 허니 북미왕국처럼 증기기관을 이용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걸리리라 사료되옵니다.”
유철의 말이 끝나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연은 공조 판서를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으음...허면 일단 이 설계도는 공조에서 맡아 연구하고 이 증기기관을 제작해 보는 것이 어떠한가.”
“성심을 다하겠사옵니다.”
그렇게 증기기관의 개발에 관련된 논의가 끝나자 정태화가 유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푸른 안개 공이 넘겨준 것이 두 가지라고 하였지요? 하나가 증기기관의 초기 설계도라면 다른 하나는 무엇입니까?”
“아. 일종의 의학 서적입니다. 우두법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이 우두법이라는 것으로 두창을 막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유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정 대신들은 기함하며 웅성거렸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조선에서 천연두는 무척이나 무서운 전염병이었고 그 때문에 전염병을 마마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런 천연두를 막을 수 있다고 하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유철이 곧바로 대답했다.
“일단 저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방법을 사용한 이후 북미왕국 내에서 두창은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오오...”
유철의 말이 끝나자 이연과 조정 대신들은 우두법에 대해 논의했고 일단 북미왕국에서 건네준 의학 서적을 내의원에 건네고 죄인에게 이 책에 나와 있는 방법대로 우두법을 시행해 정말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논의가 끝나자 유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더불어 저들은 위생과 청결을 무척 중요시했습니다. 북미왕국의 의원들은 매일같이 깨끗이 씻고 물을 끓여 마시는 것으로 전염병 대부분을 막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유철의 말에 정말 그런가 하는 표정의 조정 대신들이었지만 그때 정태화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은 전염병의 피해로 꽤 큰 피해를 보았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책을 시행한 결과 10년간 전염병으로 돌지 않았다고 합니다.”
“호오...”
유철의 말에 다른 조정 대신들은 북미왕국의 그림에서 본 목욕탕을 떠올리며 조선에도 목욕탕을 세우고 매일 같이 씻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연은 몸이 좋지 않고 피부병이 있어 자주 온천을 이용하는 터라 북미왕국의 목욕탕을 떠올리고 궁에 개인 목욕탕을 건설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할 때 유철이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던 그 대학교에는 여러 가지 학문을 가르치는데 그중에는 의학도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미왕국에선 인도적인 차원에서 조선의 의원을 유학생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뭐 학문적인 교류라는 입장에서 조선의 의원을 보내는 것도 나쁠 것은 없겠지요.”
정태화가 수긍하자 다른 조정 대신들이 입을 열었다.
“내의원 소속 어의를 보내야 할까요?”
“아무나 보낼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이에 이연이 결정을 내렸다.
“여의 생각도 그렇다. 아무나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의 중 한 명을 선발해 내년 사절단에 포함하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