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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91화 (291/850)

291화

이번에 도착한 이주 선단에 청나라에서 가져온 생사 전부가 실려 있었고 이것을 일단 창고로 옮기고 있다는 호위대원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일 때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스승님. 청나라에서 생사를 대량으로 가져왔다면서요?”

정성국은 집무실로 들어온 이상돈을 보고 실소하며 호위대원에게 나가보라고 손짓했고 호위대원은 정성국에게 고개를 숙인 후 집무실에서 나갔다.

정성국은 헐레벌떡 뛰어온 듯한 이상돈을 쳐다보며 웃었다.

“소식도 참 빠르구나. 그래. 가져왔지.”

“오오!”

정성국은 기뻐하는 이상돈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괜히 너와 연구원들을 압박 주는 것 같아서 묻지 않았다만 이렇게 된 김에 물어보자. 비단 연구는 어떻게 되어가냐.”

이에 이상돈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 계속 연구는 해야겠지만...지금도 청나라의 최고급 비단과 비슷한 수준은 됩니다.”

“어? 그래?”

이에 정성국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에 조선산 비단의 품질을 넘어섰다는 보고 이후로 별다른 보고가 없었기에 연구가 어려운 모양이구나 싶었으니까.

그때 이상돈이 품 안에서 조그마한 비단을 꺼내 정성국에게 건넸다.

“보시지요. 광택이 청나라의 최고급 비단 못지않지요?”

“허? 그러네?”

정성국이 빛을 받아 아름다운 광택을 내뿜는 비단에 놀라고 있을 무렵 이상돈이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원래는 청나라의 최고급 비단의 품질을 확실히 넘어섰을 때 보고할 생각이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청나라의 비단을 최고로 치는 만큼 북미왕국의 비단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청나라의 최고급 비단을 넘어 서야 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음...솔직히 비슷하기만 해도 거리 문제로 엄청 잘 팔릴 것 같은데?”

몇 년을 항해해야 도착하는 아시아와 3달이면 건널 수 있는 대서양이었으니 솔직히 비슷한 품질에 중국산 비단보다 더 비싸게 팔아도 유럽인들은 기꺼이 북미왕국의 비단을 사지 않을까 싶은 정성국이었다.

그런 정성국의 타박에 이상돈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하하하. 아무튼, 이번에 생사를 대량으로 가져온 것도 모자라 투로시노가 잘 협상해서 청나라와 교역을 하게 되었다면서요?”

“그렇지.”

“그럼 계속해서 생사를 가져올 수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비단을 생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요. 연구는 연구대로 계속하고 비단 생산은 비단 생산대로 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지요.”

"그래. 그럼 이제부터 비단을 생산하기로 하고...따로 공방을 세워야 하나?"

새한성 외곽 기차역 근처에 새롭게 면직물과 모직물을 대량 생산할 공방들을 지어둔 상태였고 아직 이 공방들이 원료가 부족해 제대로 가동하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이상돈이 고개를 저었다.

"기동이가 비단 전용 방적기, 직조기를 만들어 두었으니 따로 공방을 세우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당장은 원료가 없을 뿐이지 다른 방적 공방이나 방직 공방에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닌 거로 아는데요."

"그런가? 그럼 새로 공방을 지어야겠군. 알겠다. 연구원들에게 제대로 포상하고...비단 몇 필만 좀 궁으로 보내.”

정성국은 비단옷을 안 입는다는 것은 이상돈이 잘 알고 있었기에 이 비단을 누구에게 주려는 것인지 깨달은 이상돈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바로 보내드리지요.”

* * *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보고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이로쿼이 연맹에서 또 사람들을 보내왔다고?"

"그렇다고 합니다."

조용한 곰이 웃으며 대답했지만, 정성국은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거참...이로쿼이 연맹으로 돌아간 친구들이 뭐라고 했길래 다시 사람을 보내?"

정성국의 반응에도 조용한 곰은 외무청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현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북미왕국이 이로쿼이 연맹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극구 주장했겠지요. 그러니 그것이 정말인가 하고 이로쿼이 연맹의 추장들이 대거 방문한 거고요."

그리고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로쿼이 연맹의 추장들? 그들이 직접 왔다고?"

추장들이 직접 온 것이라면 이야기는 또 다를 수밖에 없었기에 정성국이 급히 되묻자 조용한 곰은 이전 이로쿼이 연맹의 부족원들을 안내하며 알게 된 이로쿼이 연맹의 정보를 정성국에게 이야기했다.

"그렇습니다. 듣기로 이로쿼이 연맹은 크게 5 부족의 연맹체로 알려졌지만 자잘하게는 50개의 소부족으로 나뉜다고 하더군요. 그중에 절반가량이 방문한 듯싶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추장들이 직접 방문할 정도라...그럼 정말 외무청의 계획대로 잘만 하면 이로쿼이 연맹도 우리 북미왕국에 합류할 수도 있겠군."

추장들이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북미왕국에 방문하진 않았을 테고 이로쿼이 연맹의 젊은이들을 북미왕국에 매료되게 만든 외무청의 수완이라면 이 추장들을 잘 설득시켜 이로쿼이 연맹을 북미왕국에 합류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은 씩 웃을 뿐이었다.

정성국은 자신만만한 조용한 곰의 표정을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야 뭐...외무청에서 잘 안내해 주라고."

"물론입니다. 헌데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응?"

정성국이 무슨 일인가 싶어 되묻자 조용한 곰이 약간은 분노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로쿼이 연맹 추장들이 해준 이야기인데...누벨 프랑스가 이로쿼이 연맹에 화약과 무기를 공급해주면서 은근슬쩍 우리 북미왕국을 공격하라고 부추긴 모양입니다."

"뭐?!"

정성국은 놀란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은 이로쿼이 연맹의 추장들이 외무청 관리에게 해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북미왕국에선 다른 물품은 팔아도 화약은 팔지 않는다고 선언했기에 이로쿼이 연맹은 비버를 사냥하기 위해 누벨 프랑스와 접촉하는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로쿼이 연맹은 누벨 프랑스와 공식적으로 종전 협상을 맺고 사냥에 필요한 화약을 사들였는데 의외로 누벨 프랑스는 싼 가격에 많은 양의 화약을 넘겨주면서 북미왕국의 확장이 무척 우려스러우며 이대로 가다간 북미왕국이 북아메리카 동해안 지역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내륙으로 확장할 테니 그 전에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로쿼이 연맹은 이미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내기로 정한 만큼 이를 무시했지만 누벨 프랑스가 북미왕국을 무척이나 경계하는 만큼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고 외무청 관리에게 전했다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거참...본국에서 결정이나 지원이 내려올 때까지 우리의 눈치나 살필 줄 알았더니...뒤에선 이로쿼이 연맹을 충동질할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합니다. 참으로 괘씸한 노릇이지요. 해서 말인데 무언가 행동을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성국은 누벨 프랑스의 행동에는 분개했지만, 감정으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기에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다 입을 열었다.

"흠...이를 빌미로 저들을 압박하자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압박보단 이 기회에 저들을 공격해 내쫓는 것이 어떻습니까?"

"뭐? 누벨 프랑스를 공격하자고?"

생각보다 과격한 의견에 정성국이 놀라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지금이 누벨 프랑스를 공격할 적기인데 명분까지 생긴 셈이니까요."

"누벨 프랑스를 공격할 적기라고?"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하자 조용한 곰이 말했다.

"새진도의 외무청 관리를 통해 들어온 소식입니다만 최근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전쟁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 기회에 누벨 프랑스를 공격해 저들을 북미 대륙에서 축출한다 하더라도 프랑스 본국에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만..."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겨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전쟁 중이라고? 아. 그러고 보면 3차 영란전쟁이 이 시기였나?'

3처 영란전쟁의 주체는 엄밀히 따지면 프랑스였기에 불란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긴 했다.

네덜란드를 공격하기 전 잉글랜드와 스웨덴 등을 끌어들이는 사전 작업도 프랑스가 했고.

하지만 찰스 2세와 잉글랜드는 2차 영란전쟁의 패배를 잊지 못했는지 프랑스보다 먼저 네덜란드를 공격했고 영국과 네덜란드는 몇 번이고 전쟁을 벌였기에 훗날 3차 영란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이 일어났다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외무청의 예상대로 우리가 누벨 프랑스를 공격한다 해도 프랑스 본국은 제대로 반응을 보이진 못할 텐데...그렇다면?'

정성국이 기억하기로 잉글랜드는 2차 영란전쟁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공격했지만 처참하게 깨진 후 빌빌거리다 네덜란드의 회유에 결국 종전하고 전쟁에서 이탈한다.

프랑스도 나름대로 선전하긴 했지만, 운하까지 터트리는 필사적인 네덜란드의 방어에 막혀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종전할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금방 이탈했던 잉글랜드와는 달리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종전하기까지 꽤 오랜 기간을 대치한 것을 기억하는 정성국은 당장 움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기회긴 한데...일단은 묻어둬."

"예? 하지만..."

정성국의 대답에 조용한 곰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무어라 말을 하려 할 때 정성국이 손을 들어 이를 막았다.

"아직 북미 동해안 지역에 경비대의 배치도 끝나지 않았을뿐더러...아직도 누벨 프랑스의 동맹 부족이 좀 남아있잖아?"

정성국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파악한 조용한 곰은 정성국을 설득하긴 어렵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그럼 프랑스의 동맹 부족을 모두 우리 쪽으로 끌어들인 이후에나 움직이실 생각이시군요."

"그렇지. 메타코멧이 열심히 원주민들을 설득하고 있으니 시간을 더 주자고. 내가 보기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전쟁이 금방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니."

"알겠습니다."

조용한 곰이 수긍하자 정성국은 문득 에스파냐와는 비밀 동맹을 맺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에스파냐가 프랑스의 사정을 전해준 것을 보면 이 기회에 우리가 누벨 프랑스를 공격하기를 바란 모양인데...별다른 말은 없었어? 일단은 비밀 동맹을 맺은 상태잖아?"

"아. 이번 전쟁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는 에스파냐 본국과 밀약을 맺은 모양입니다. 그 때문에 북미왕국이 누벨 프랑스를 공격하더라도 참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더군요."

조용한 곰은 불만스럽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말하자 정성국은 혀를 찼다.

"자신들은 참전도 안 하면서 부추겼다고? 거참..."

"그나마 물자 운송을 도울 배를 빌려주겠다고는 했습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 올해 움직일 생각은 없고 북미 동해안 지역에서도 식량을 생산하면 보급에 큰 문제는 없을 테니."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되자 정성국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조선의 사절단은 슬슬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나?"

조선의 사절단이 이곳에 도착한 지도 벌써 두 달이 흘렀다.

처음에는 외무청의 안내를 받아 북미왕국 곳곳을 둘러보았고 외무청이 준비할 일정이 끝나자 자유롭게 새한성을 돌아다니며 북미왕국을 파악하는 데 여념이 없는 조선의 사절단이었다.

하지만 슬슬 돌아갈 시기가 되었기에 질문을 던지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5일 후 새한성을 떠날 예정입니다.“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미리 송별연을 준비해둬야겠군. 알겠네."

“헌데 전하. 정말 증기기관의 설계도를 넘겨도 되겠습니까?”

정성국은 최근 푸른 안개를 통해 정성국이 조선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던 증기기관의 설계도를 조선 사절단에게 넘겨주었다.

이에 조용한 곰은 조금 걱정인 눈치였기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하지 않았나. 그 정도 설계도는 이미 유럽에도 있다니까? 거기에 조선 사절단은 서점에서 살 수 있는 책은 모조리 사들이는 중 아닌가. 그중에는 교과서도 있을 테니 이미 저들은 기본적인 증기기관의 설계도는 확보한 셈이지.”

“아...”

물론 중요한 서적들은 철저하게 관리했지만 그렇다고 교과서까지 그렇게 관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의 교과서에는 증기기관의 원리와 간략한 증기기관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었기에 조용한 곰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건네주라고 한 것은 그 설계도에서 딱 한 걸음만 더 나아간 것에 불과해. 그래서 직접 불러 그 설계도를 주기도 뭐해서 푸른 안개를 통해 슬쩍 건네준 것이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으음...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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