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푸른 안개의 안내에 따라 숙소를 나선 조선의 사절단 일행은 외무청에서 준비한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마차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정신없이 새한성을 구경하던 사절단 일행이 도착한 곳은 묘하게 북미왕국 백성들이 바글거리는 광장 같은 곳이었다.
사절단 일행이 일제히 마차에서 내리자 조선 특유의 복식을 했기 때문인지 북미왕국 백성들은 신기하다는 눈길로 사절단 일행을 바라보았기에 유철은 잠시 움찔했다가 푸른 안개를 바라보며 물었다.
"음...이곳은?"
"기차역입니다. 기차를 타는 곳이지요."
생소한 단어에 유철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기차요?"
하지만 푸른 안개는 광장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는 시계탑을 바라보고 시간을 확인한 후에 말했다.
"북미왕국의 백성들이 먼 거리를 이동할 때 타는 육상 운송 수단입니다."
"으음? 마차 같은 겁니까?"
유철의 질문에 푸른 안개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차와 비슷합니다. 다만 자세한 설명은 기차에 타고 나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좀 지체되어서 말입니다. 일단 이동하시지요."
약간은 조급한 느낌이었기에 유철은 일단 따르는 것이 낫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푸른 안개가 조선 유민들이 정착할 곳을 보여주겠다고 이야기했었기에 따라나선 공식적인 사절단 일행 30명과 이들의 수행원 30명을 더해 총 60명의 일행이 푸른 안개와 외무청 관리들의 안내를 받아 광장을 가로질러 한 기다란 건물로 향했다.
그리고 건물을 가로질러 한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고.
건물을 가로지를 때만 해도 의문스러운 표정이던 사절단 일행은 건물 밖에 정차된 흰 연기를 뿜어대는 거대한 쇳덩이와 그 뒤에는 유리창들이 달린 마치 거대한 마차로 짐작되는 물체들을 보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이건? 이게 기차라는 겁니까?"
유철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푸른 안개에게 묻자 푸른 안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푸른 안개의 대답에 김만기가 끼어들었다.
"운송수단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설마 이 육중한 물체가 움직인단 말씀입니까?"
"물론입니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푸른 안개를 보고 유철과 김만기를 비롯한 사절단 일행은 혼란이 극에 달한 표정이었다.
허나 푸른 안개는 크게 개의치 않고 객차의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타시지요. 곧 출발할 테니까요."
그러면서 계단을 올라 객차 안으로 들어갔고 이에 유철과 김만기는 서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투덜거린 둘은 계단을 올랐고 이를 따라 사절단 일행이 객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객차 안은 마차와 비슷한 구조였기에 유철을 비롯한 사절단 일행은 외무청 관리의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사절단 일행들은 의자에 앉아서도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히 이 앞에는 흰 연기를 뿜어대는 거대한 쇳덩이뿐이었고 자신들이 앉아있는 이 거대한 마차가 그 뒤로도 여러 개가 연결되어 있었다.
헌데 이것이 움직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싶어서 말이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 기차라는 기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어이쿠! 움직인다?!"
기차의 진동과 창문을 통해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파악한 조선인들은 기겁했다.
"허억!"
"이...이게 대체..."
생소한 경험에 사절단 일행은 충격을 받고 잔뜩 겁먹은 눈치였다.
거기에 창문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풍경에 겁을 먹고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이에 외무청 관리들은 돌아다니며 괜찮다고 안심시켜줘야 했고.
처음 기차가 움직일 때만 해도 대경실색하며 유리창을 통해 점차 변화하는 풍경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유철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빠르게 변화하는 풍경을 보고 탄식하듯 말했다.
"이거...점점 빨라지는 것 같소이다."
"맙소사..."
이에 김만기는 기겁하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시간이 흐른 후 사절단 일행들이 기차의 흔들림에 익숙해지고 빠르게 변화하는 바깥 풍경을 즐기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날 때쯤 푸른 안개가 유철과 김만기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건넸다.
"조금 진정되셨습니까?"
이에 유철은 급히 질문을 던졌다.
"대체 이 기물은 뭡니까?"
"마차와 비슷한 운송수단에 불과합니다. 마차는 말이 끌고 기차는 기관차가 이 객차들을 줄줄이 끌고 가는 것에 불과하지요."
푸른 안개의 대답에 유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이것도 북미왕국의 선박과 같은 원리로 움직이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허어..."
푸른 안개의 대답에 유철은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조선에서도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저들이 예물로 보낸 단총이나 어떻게 움직이는 것인지 당최 알 수 없었던 북미왕국의 선박만 보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기차라는 기물을 직접 타고 이동하니 얼마나 북미왕국이 대단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고 이 기차와 북미왕국 배가 움직이는 원리조차 짐작이 가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김만기가 무척이나 간절한 눈길로 푸른 안개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말씀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에 푸른 안개는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북미왕국의 선박도, 그리고 이 기관차도 모두 증기기관을 이용하는 기물입니다."
"증기기관?"
김만기가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자 푸른 안개가 말했다.
"증기기관의 원리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야...물을 끓이면 증기가 생기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 증기를 이용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정확히는 그 증기의 힘을 이용하는 거지요."
"아니...그게 무슨..."
푸른 안개의 설명에도 유철과 김만기는 답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물을 끓이는 증기를 어찌 이용한단 말이며 고작 물을 끓여 이 거대한 기차를 움직인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원리를 파악하고 연구해 그동안 발전시켜나간 결과가 바로 이 기차와 북미왕국의 선박들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푸른 안개가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자 유철은 푸른 안개가 더 자세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다고 판단해 조심스럽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으음...이제와 그것을 말씀해주시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다른 북미왕국 사람들은 증기기관이란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만..."
푸른 안개의 설명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껏 조선의 사절단이 북미왕국인들에게 북미왕국 배가 움직이는 원리를 물어보아도 기밀이라며 굳게 입을 다물었던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의외였다.
유철은 푸른 안개가 김만기의 질문에 답변을 피할 줄 알았기에.
해서 질문을 던지자 푸른 안개는 슬쩍 웃었다.
증기기관은 북미왕국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술 중 하나였기에 아무리 조선에서 온 사절단이라 하더라도 존재 자체를 비밀로 하는 것이 맞긴 했다.
허나 정성국은 오랜 고민 끝에 조선의 사절단에게 증기기관의 존재를 알려주라고 이야기했다.
정성국도 처음에는 아직 조선에 증기기관의 존재를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허나 최근 새진주 인근에서 활동하는 음흉한 여우가 북미왕국의 선박에 관심이 많은 에스파냐가 새진주를 드나들며 북미왕국 선박을 꾸준히 관찰했고 그 결과 항상 북미왕국 선박에 가득 채워 넣는 석탄을 보고 북미왕국의 선박은 석탄으로 움직인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보고에 생각을 바꾸었다.
유럽은 17세기 초부터 꾸준히 원시적인 증기기관을 개량해 이용하려는 발명가들이 존재하는 만큼 증기기관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이 때문에 북미왕국의 선박이 석탄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게으른 곰과 음흉한 여우가 열심히 정보를 교란하기 위해 헛소문을 퍼트린다 하더라도 북미왕국이 증기기관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또한, 북미왕국의 선박과 얼마 후 새진주를 드나드는 기차를 보고 증기기관이 얼마나 유용한지 확실히 알게 될 테고.
자연스럽게 유럽의 각국은 국가 차원에서 증기기관의 개발에 전력을 다할 테니 전생보다 기술의 발전이 더욱 가속화될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 만큼 조선에도 증기기관의 존재와 기초적인 원리 정도는 알려주어 스스로 연구하게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고 여겼다.
훗날 상황을 봐서 기술을 전수하더라도 기초적인 지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컸으니까.
이런 정성국의 결정에 청장들은 조금 우려하긴 했지만, 실물만 넘겨주지 않는다면 단순히 기초적인 원리만 알려주는 것으로 지금의 북미왕국 증기기관 수준에 도달하려면 최소한 수십 년은 족히 걸릴 테고 그 기간 안에 연구청은 가만히 있겠느냐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정성국의 말에는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러한 사정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기에 푸른 안개는 슬쩍 둘러댔다.
"여러분이 외무청의 안내에 따라 방문하는 장소들은 이 증기기관을 이용하는 곳이 대부분이라서 말입니다."
"음? 이번에 가는 곳은 조선 유민들이 정착할 새로 북미왕국이 논밭을 개간하는 장소 아니었습니까?"
유철이 푸른 안개의 대답에 의아한 표정을 짓자 푸른 안개가 대답했다.
"직접 보시면 제 말을 이해하실 겁니다."
"으음..."
푸른 안개의 대답에 유철과 김만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어느덧 사절단 일행이 기차에 익숙해져 기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조선의 풍경과는 확실히 다른 북미왕국의 풍경을 바라보느라 정신없을 때 기차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중간에 몇 번이고 기차역에 멈춘 적이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사절단 일행들은 외무청 관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에 정차하는 기차역이 목적지니 준비하라는 이야기에 기차에서 내려야 한다는 사실에 울상을 지었다.
기차가 기차역에 멈춘 후 사절단 일행은 기차에서 내려 바로 기차역을 빠져나가기보단 기차가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기에 푸른 안개는 이를 허락하고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유철과 김만기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곳이 정말 새한성에서 대략 500리나 떨어져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푸른 안개의 대답에 유철과 김만기는 감탄한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객차의 창문을 통해 기차가 무척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지만 고작 한나절 만에 500리를 이동했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였다.
한양에서 동래까지의 거리가 대략 1000리였으니.
기차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던 사절단 일행들도 푸른 안개의 대답에는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그 거리를 한나절 만에? 허어..."
"정말...정말 대단한 기물이로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 철도가 깔려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지만...그것만으로도 이 기차의 가치는 참으로 엄청나군요."
그렇게 사절단 일행이 감탄하고 있을 때 육중한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를 바라보며 탄성을 내지르던 사절단 일행은 기차가 거의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외무청의 안내에 따라 기차역에서 나와 준비된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세워진 조그마한 마을을 지나자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 역시 새한강 유역처럼 비옥해 보였으며 북미왕국은 이런 곡창지대가 많기에 식량이 넘쳐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다 작물이 심겨 있지 않은 정리된 논밭이 보이자 마차는 멈춰섰고 푸른 안개가 마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이곳에 조선의 유민들이 정착해 논밭을 일구게 될 겁니다."
"음...그렇군요. 음?"
유철은 마차에서 내려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허허벌판을 바라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저건 대체 뭡니까?"
사절단 일행은 허허벌판을 움직이는 마치 축소된 증기기관차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건 경운차라고 불리는 기물입니다. 조선에서는 소를 이용해 논밭을 일구지요? 북미왕국은 저 경운차가 소를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허어..."
푸른 안개의 설명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 유철이었고 옆에 있던 김만기가 질문을 던졌다.
"저것도 증기기관을 이용해 움직이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푸른 안개의 대답에 김만기는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어...증기기관이라..."
사절단 일행이 홀린 듯 열심히 밭을 갈고 있는 경운차를 바라보고 있을 때 유철이 푸른 안개에게 질문했다.
"혹시 서양의 다른 나라에도 증기기관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하더군요. 아. 물론 원시적인 형태의 증기기관에 불과해 아직 북미왕국처럼 실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합니다만...증기기관의 가능성을 짐작해 서양의 귀족들이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푸른 안개의 대답에 기겁했던 유철은 이어지는 푸른 안개의 대답에 조금은 안도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귀족이요?"
이에 푸른 안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먹고 살기 바쁜 장인들이 막대한 재물이 소모되는 연구를 어찌 진행하겠습니까. 거기에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서양의 귀족들은 이런 실용적인 학문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해서 스스로 연구하거나 혹은 장인들을 후원한다고 하더군요."
푸른 안개의 대답에도 일리가 있어 유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으로 경운차를 바라보았다.
"으음...실용적인 학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