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285화 (285/850)

285화

장의 보고에 누벨 프랑스의 총독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허...이게 사실인가?"

장 역시 조금은 당혹스럽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총독 각하."

이에 총독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모든 주민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는데 세금을 걷지 않는 다라...그럼 대다수의 잉글랜드인은 딱히 북미왕국에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지."

북미왕국의 잉글랜드인들을 선동하려고 매사추세츠 지역으로 잠입했던 누벨 프랑스의 병사들은 그대로 아카디아로 복귀해 잉글랜드인들을 선동해 대규모로 봉기를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보고를 올렸다.

처음 이 보고를 확인하고 불같이 화를 냈던 총독이었지만 병사들의 상세한 보고서를 확인하니 총독도 왜 병사들이 임무를 포기하고 복귀한 것인지 이해한 것이다.

이에 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그나마 대지주들이 북미왕국에 반감을 품을 수는 있어 보이지만 수가 적고 이들의 영향력도 예전만 못해 자신들의 정체가 알려질 것이 우려되어 접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노예도 없고 대지주 밑에서 일하는 자가 아무도 없으니."

그 말에 총독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생각하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그보다 세금을 걷지 않으면 대체 무슨 수로 저런 병력을 운용한다는 거지? 매사추세츠 지역과 뉴펀들랜드 섬에 배치된 병사들만 해도 거의 4천 명에 가깝다고 보고하지 않았나?"

총독의 질문에 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병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북미왕국이라고 세금을 안 걷는 것은 아니랍니다. 다만 북미왕국도 북아메리카 동해안 지역에 남은 잉글랜드인들이 새로운 북미왕국의 정책에 불만을 품을 수도 있으니 약간의 유예를 둔 것뿐이지요. 그리고 북미왕국이야 부유하다고 소문났으니 굳이 이 지역에서 세금을 걷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다는 뜻일 테고요."

하지만 총독은 그런 장의 설명에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지...이해하기 어렵군. 아무리 북미왕국이 부유해도 세금이야 많이 걷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어차피 북아메리카 동해안 지역에 배치된 북미왕국의 병사들을 생각하면 이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해도 제압할 수 있을 텐데..."

장 역시 그런 총독의 생각에 동의했지만, 북미왕국의 정책이 그런 것을 어쩌겠는가.

"그렇긴 합니다만...아무튼 북미왕국에서 저런 정책을 펼쳐 잉글랜드인들이 현 상황에 만족하고 있으니 잉글랜드인들을 선동해 봉기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총독은 장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믿을 것은 이로쿼이 연맹뿐인가? 쯧...아! 그리고 북미왕국에 잠입했다는 병사들 말이네."

총독이 무어라 말하기 전에 장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북미왕국의 정보를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고 이야기해두었습니다."

30년 전쟁 이후 유럽의 군사 체계가 바뀌면서 각국은 경쟁적으로 상비병의 규모를 늘리기 시작했다.

이건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였고 덕분에 프랑스는 군사 개혁을 통해 10만이 훌쩍 넘는 대규모의 육군을 보유 중이었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지출을 야기했다.

거기에 루이 14세는 어릴 때 왕위에 오른 후 초반에는 꽤 고생했었고 이 때문에 왕권 강화에 집착해 베르사유에 새로운 궁전을 짓고 있었는데 여기 들어가는 돈도 상당했고.

당연히 이 때문에 세금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고 이는 식민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왕국의 실상이 알려지면 당연히 누벨 프랑스의 주민들은 내심 동요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해서 장은 북미왕국에 잠입했던 병사들의 보고서를 확인하는 즉시 명령을 내려 병사들에게 절대 북미왕국의 상황을 발설하지 말라고 몇 차례 경고해 둔 것이다.

총독은 장의 대답에 잠시 고민했지만 한 명의 병사도 아쉬운 시기에 북미왕국의 입을 막겠다고 프랑스의 병사들을 죽일 수야 없는 노릇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잘했네."

* * *

정성국은 의복 장인이 만들어 준 곤룡포를 굳이 입고 싶지는 않았다.

곤룡포라는 것 자체가 동양적인 느낌이 무척 강할 수밖에 없었으니 곤룡포를 입고 외국 사절을 맞이한다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해서 전생의 양복 슈트와 코트의 도안을 그려 의복 장인에게 건네주었고 정성국이 직접 그렸다는 의복 도안을 확인한 의복 장인은 탄식했다.

정성국이 그린 의복은 결국 북미왕국이 현재 입고 있는 의복을 조금 더 개량해 격식 있게 만든 것으로 보였고 이는 정성국이 북미왕국 특유의 복식을 더욱 발전시키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 탓이다.

그런 정성국에게 안이하게 곤룡포를 만들어 올렸으니 정성국이 거의 입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 의복 장인은 심혈을 기울여 새로 의복을 만들어 바쳤다.

이를 받아든 정성국은 바로 방으로 들어가 하얀 셔츠와 양복 상하의를 입고 방에서 나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음...어때?"

전아라와 하얀 들꽃은 처음 정성국을 멍하게 쳐다보다가 활짝 웃으며 정성국에게 다가왔다.

"너무 멋지세요! 전하!"

"정말 잘 어울리네요. 그리고 무척 격식 있어 보이고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두 아내의 호평에 정성국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전신 거울로 이동해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정성국의 키는 꽤 큰 편이었기에 양복 슈트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만족했다.

다만 목 부분이 조금 허전하긴 해서 넥타이를 만들긴 해야 겠구나 싶었고.

"조선의 사절단을 맞이할 때 이렇게 입으시려고요?"

"여기에 외투까지."

정성국은 의복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수 놓은 검은 코트를 걸치자 하얀 들꽃은 다시 한번 감탄사를 토하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와...정말 위엄 넘치는 것 같아요!“

이에 전아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괜찮네요. 곤룡포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긴 한데...오히려 그 점이 나은 것 같아요. 이곳은 북미왕국이니까요."

전아라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몸을 움직여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휴. 근데 외투는 나름 얇게 만들었는데도 여름이라 그런지 더운데? 이건 어때?"

그러면서 정성국은 코트를 벗고 양복 상의를 벗은 후 셔츠 위에 바로 코트를 걸쳤다.

이에 전아라는 나쁘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음...괜찮아요. 다만 아까보다는 격식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긴 한데..."

전아라의 대답에 하얀 들꽃도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잠시 고민했다.

"그래? 근데 아무리 잠깐 알현하는 거라도 여름에 다 껴입기는 좀...아."

정성국은 셔츠 위에 입는 조끼를 떠올리고 급히 종이에 도안을 그리기 시작했고 전아라와 하얀 들꽃은 다가와 정성국이 빠르게 그리는 도안을 살펴보았다.

"아...셔츠 위에 팔 없는 상의를 덧입으실 생각인 거군요?"

"응. 그럼 좀 낫겠지."

"그렇겠네요."

정성국은 빠르게 도안을 다 그리고 하얀 들꽃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럼 의복 장인에게 이걸 건네주고...청장들이 입을 옷도 준비해달라고 전해. 청장들은 굳이 코트까진 필요 없고 이 의복 상하의면 충분할 것 같아."

"네!"

* * *

곧 있으면 새김포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배 안에 퍼지자 갑판 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오. 저기 보이는 저 커다란 항구가 바로 이 배의 최종 목적지인 새김포겠지요?"

김만기가 마침내 보이는 커다란 항구를 보고 감탄하자 유철도 드디어 항해가 끝났다는 생각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아마 그렇겠지요. 허어...새한성으로 가는 일종의 관문 도시라더니...확실히 포로나이나 새남포와는 규모 자체가 다르군요."

예전 투로시노가 이야기한 것처럼 새남포의 풍경은 정말 압도적이라 무척 인상 깊긴 했지만, 새남포의 크기는 포로나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기에 새남포 역시 본토라 꽤 기대했지만 실제로 볼 것은 많지 않았고.

허나 새김포는 투로시노가 북미왕국의 가장 중요한 항구라고 말한 것처럼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기에 유철이 감탄하자 김만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보다 이곳 새김포에서 새한성까지는 무척 가깝다고 했지요?"

이에 유철은 투로시노가 알려준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배를 바꿔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나절이면 간다더군요."

"휴우. 다행이군요. 물론 배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계속된 항해에 조금 지치긴 했는데 말이지요."

물론 원상의 배는 조선의 배보다는 큰 편이고 선원들 역시 능숙해서 초반 뱃멀미만 제외하면 육체적으로는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꽤 피곤했기에 김만기가 중얼거리자 유철은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요. 허나 이주 선단의 선장들에게 듣기로는 바람과 해류를 타고 빠르게 이동한 편이라고 합니다."

"허...정말 멀긴 멀군요. 그런 거리를 매년 오가다니...북미왕국의 항해술은 참으로 대단하군요."

김만기의 감탄에 유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렇지요. 그리고 이렇게 항해해보니 재작년과 작년에 우리에게 지원해 준 식량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군요."

그 말에 김만기는 나직이 탄성을 토했다.

"하긴...120만석 전부가 결국은 이곳에서 가져온 식량이나 다름없으니..."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선을 돕기 위해 막대한 식량을 운반했다는 것을 체감하자 유철과 김만기 주변에 있던 사절단의 일원들은 내심 감동한 표정으로 점차 가까워지는 새김포를 바라보았다.

그때 이주 선단은 방향을 틀었지만, 원상의 배는 조그만 배를 따라 계속 이동했다.

"어? 이주 선단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군요. 뭐 선착장이 많은 만큼 목적에 따라 정박하는 선착장이 다른 거겠지요."

"음..."

그리고 유철의 예상처럼 안쪽에 비어 있는 선착장이 보였고 원상의 배가 조심스럽게 그 선착장에 배를 대려 하자 김만기가 입을 열었다.

"저곳에 정박할 듯싶군요. 그리고 이번에도 목욕탕을 이용해야겠지요?"

"하하하. 항구에 들를 때마다 목욕탕을 이용하니 전 목욕탕도 썩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이미 중간에 들른 보급항에서 목욕탕을 이용한 사절단이었다.

제대로 씻지 않으면 배에서 내릴 수도 없을뿐더러 항해 도중엔 제대로 씻기도 힘든 터라 사절단은 별다른 불만 없이 목욕탕을 이용했다.

그리고 유철은 이 목욕탕을 썩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기에 김만기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남사스러운 것만 빼면 나쁘진 않지요. 탕도 널찍해서 뜨거운 물이 담긴 탕에 들어가면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고..."

"그렇지요. 솔직히 한양에도 목욕탕이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유철의 말에 김만기는 고개를 저었다.

"어휴...그게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연료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체면이 문제가 아니라 저렇게 대규모의 물을 끓여 보급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긴 한가 싶은 김만기의 말에 유철은 그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그렇지요."

* * *

조선 사절단은 새김포의 선착장에 내려 깨끗이 씻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북미왕국에서 마련해 둔 북미왕국 특유의 배를 타고 새한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곳은 북미왕국 본토인 만큼 너도나도 구경하기 위해 갑판이나 선실의 마련된 유리창으로 몰려들었고.

"허어..."

"정말...끝도 없이 논밭이 펼쳐져 있군요. 북미왕국에선 식량이 넘쳐난다더니..."

김만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을 보고 감탄하자 유철이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전에 투로시노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북미왕국 본토에는 식량이 넘쳐 더 많은 식량을 조선에 넘겨주고 싶은데 그 식량을 운송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투로시노가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겠습니다. 이 망원경으로 보이는 곳도 모두 논밭인 모양인데..."

유철에게 망원경을 건네주었던 푸른 안개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허. 그렇습니다. 새한강에서 가까운 곳은 벼농사를, 망원경으로 확인한 곳은 아마 밀 농사를 짓는 곳일 겁니다. 지금이야 파릇파릇해 푸른 들판이지만 가을엔 작물이 익어 황금 들판이 펼쳐지는데 그 풍경은 정말 장관이랍니다."

"허...그렇기도 하겠군요. 황금 들판이라..."

유철의 푸른 안개의 말에 그 광경을 상상해보고 다시 감탄했을 때 김만기가 논밭을 바라보다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헌데 길이 일자로 뻗어 있고 논밭도 반듯한 모양이라 무척 보기가 좋군요."

"그렇지요? 이 지역도 그렇고 북미왕국에서 사람을 동원해 논밭을 개간한 지역은 모두 이렇게 반듯합니다. 훗날을 생각해서 만들었지요."

"훗날이요?"

푸른 안개의 말에 그게 무슨 뜻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유철과 김만기였지만 푸른 안개는 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 조만간 왜 북미왕국에서 이렇게 논밭을 사각형 모양으로 만든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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