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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82화 (282/850)

282화

조선의 사절단이 포로나이 항에서 머물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이주 선단과 함께 다시 떠나자 투로시노 역시 정일신이 준비해 둔 소규모 함대에 올라타고 청나라로 향했다.

그러다 함대가 산동반도 인근에 도착해 해안가를 따라 이동한 지 하루가 지나자 선원이 청나라 수군으로 짐작되는 배가 보인다며 투로시노를 급히 찾았다.

이에 투로시노는 바로 갑판으로 달려나가 갑판 위에서 망원경으로 점차 접근하는 청나라 선박들을 관찰하고 있는 함장에게 다가갔다.

"저기 보이는 함대가 청나라의 수군입니까?"

함장은 투로시노가 말을 걸자 망원경을 눈에서 떼면서 투로시노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오셨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요. 여기서 더 진입하게 되면 저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여지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투로시노의 말에 함장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청나라 수군을 자극할 이유는 없었기에 산동반도 인근에 도착한 후론 함대의 속도를 줄여 천천히 항해하고 있었지만, 청나라 수군이 나타나지 않아 이대로 발해만으로 진입해야 하나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요. 그럼 바로 백기를 올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통역을 부르도록 하지요."

* * *

청나라 수군은 북미왕국의 소규모 함대를 멀리서 확인하고 처음에는 돛이 없기에 난파된 배가 아닐까 싶어 접근했었지만, 점차 가까워질수록 이곳의 배가 아닌 것처럼 보였기에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만약을 위해 전투 준비를 해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때 북미왕국의 함대가 일제히 백기를 들어 올리고 정선하자 저 처음 보는 배들은 자신들과 싸울 의사가 없다고 판단한 청나라 수군은 조심스럽게 북미왕국의 함대에 접근했다.

그리고 작은 배를 띄워 사람을 보냈고 북미왕국에선 줄사다리를 내렸다.

청나라 수군의 하급 군관으로 보이는 자는 북미왕국의 배에 오른 후 좁은 갑판과 생소한 복식을 한 사람들을 보고 움찔했다가 곧 입을 열었다.

"이곳은 청나라의 영해다! 너희들의 정체는 무엇이냐?"

이에 투로시노가 통역과 함께 다가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북미왕국에서 보낸 사절단입니다."

통역을 통해 이를 전해 들은 청나라 군관은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북미왕국? 흐음...처음 듣는 나라 이름인데..."

그런 반응에 투로시노는 내심 혀를 찼지만 이를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까? 우리가 아시아에 진출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우리 북미왕국은 저 태평양 너머 북미 대륙에 자리한 나라입니다."

투로시노의 말을 전해 들은 청나라 군관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음? 서양인들이 이야기하는 신대륙을 말씀하는 겁니까?"

일단은 사절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조금은 정중하게 대하는 청나라 군관의 반응에 투로시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서양인들은 우리 미 대륙을 신대륙이니 아메리카 대륙이니 부르지요."

"미 대륙이라..."

생소한 명칭에 잠시 고개를 갸웃한 청나라 군관은 이 배에 오른 임무를 떠올리고 투로시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곳으로 온 이유는 천진으로 가려 한 것이오?"

"그렇습니다. 청나라의 수도로 가려면 천진으로 가야 한다고 들었기에. 그곳에서 청나라의 예부에 가지고 온 친서와 예물을 접수할 생각이었지요."

일단은 한 나라의 사절단을 자처했고 황제 폐하께 올릴 친서와 예물까지 가져왔다는 말에 청나라 군관은 일단 상급자에게 보고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으음...일단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줄 수 있겠습니까?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 보고를 올려야 할 것 같은데..."

이에 투로시노는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 * *

청나라 군관이 돌아가 보고하자 청나라 수군의 지휘관은 조금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일단 한 나라의 사절단을 자처하고 있었고 친서와 예물까지 가져온 상황이라 자신의 판단으로 돌려보내기도 난처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결국 북미왕국의 배들과 함께 천진 인근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북미왕국의 함대는 청나라 수군의 감시를 받으며 천천히 발해만을 항해했고 천진 인근에서 정박해 며칠을 기다리자 청나라 예부의 하급 관리가 청나라 수군의 배를 타고 북미왕국의 배에 올랐다.

투로시노는 이 예부의 하급 관리와 인사와 통성명을 한 후 대화를 시작했다.

"헌데 북미왕국이라면 혹시 최근 조선과 접촉했다는 그 나라가 맞습니까?"

그래도 예부의 관리라 그런지 조선에서 이야기했다는 북미왕국의 이름을 들어본 눈치였기에 투로시노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최근 조선과 접촉한 적이 있지요."

투로시노의 대답에 예부의 관리는 자신이 아는 북미왕국이 맞다는 것에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잘 오셨습니다. 헌데 듣기론 친서와 예물을 가져왔다고 하던데...친선의 목적으로 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이웃 국가나 다름없으니 친하게 지내 나쁠 것은 없지 않습니까?"

예부의 관리는 이 투로시노의 이야기에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듣기로는 북미왕국은 저 머나먼 신대륙의 나라라고 했는데 이웃 국가라는 표현이 이상했던 것이다.

"음? 제가 북미왕국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혹시 북미왕국의 영토가 그려진 지도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청나라와 접촉하면서 대략적인 영토가 그려진 지도를 건네줄 생각이었기에 투로시노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지도를 품에서 꺼내 예부의 관리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예부의 관리는 이 지도를 펼쳐 확인하고 기겁했다.

지도에 표시된 바에 따르면 생각외로 북미왕국의 영토가 엄청나게 넓었으니까.

"헉! 이 영역이 모두 북미왕국의 영토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예부의 관리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물었지만, 투로시노는 웃으며 즉답했다.

"허..."

예부의 관리는 감탄과 탄식이 섞인 탄성을 내뱉고 투로시노가 건네준 지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지도의 서쪽에는 청나라 동쪽 일부가, 동쪽엔 서양인들이 이야기하는 신대륙이 그려져 있었는데 북미왕국의 영토는 저 신대륙 북쪽의 전체를 차지한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청나라보다도 몇 배는 커 보인 탓이다.

물론 지도가 정말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었기에 어느 정도의 과장은 있겠지만 이 지도에 따르면 신대륙 북쪽 전체가 북미왕국의 영토였으니 생각보다는 강국이라고 생각하며 사신이 청나라를 이웃 국가라고 말한 이유를 찾기 위해 저들의 서쪽 영토를 확인했다.

그리고 기겁한 표정으로 투로시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 이곳은 우리 청나라의 영토인데 어찌 이곳이 당신들의 땅이라는 겁니까?"

예부의 관리가 가리킨 곳은 아이누 섬으로 청나라에서는 아이누 섬을 외만주 일부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누 섬은 청나라의 영토인데 북미왕국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었으니 기겁할 수밖에 없었지만, 투로시노는 이를 듣고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음?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우리가 이 섬을 처음 탐사할 때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이라고 이야기했고 이 섬을 장악하고 지금껏 청나라인은 보지도 못했는데 청나라의 영토라니요. 그리고 우리가 파악하기로 이 아이누섬은 왜국이 에조 지역이라 부르며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던 곳입니다만...?"

투로시노는 지금껏 아이누 섬에서 살아왔었기에 예부의 관리가 아이누 섬을 청나라의 땅이라고 주장하자 그게 무슨 소리냐며 즉각 반박했지만, 투로시노도 내심 짚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아이누 섬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었기에 남부는 아이누인들이 살고 있었지만, 북부는 윌타 족이나 니브흐 족이 살고 있었고 그동안은 교류가 거의 없었지만 최근 아이누인들이 북미왕국에 합류해 점차 발전하는 것을 보고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투로시노는 이들을 북미왕국에 합류시킬 생각이었고.

헌데 이들이 청나라에 복속된 부족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거...잘못하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겠는데? 돌아가면 바로 확인을 해 봐야겠군.'

투로시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예부의 관리는 투로시노의 반박에 멈칫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그렇다면 이 섬은 왜국의 것이지 어찌 북미왕국의 영토가 된단 말입니까? 설마 북미왕국이 이 섬을 차지하기 위해 왜국과 전쟁을 벌인 겁니까?"

이에 투로시노는 생각을 멈추고 곧바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우리가 이 지역에 처음 방문했을 때 이 홋카이도의 원주민들은 왜국의 압제에 대항해 봉기할 뜻을 굳힌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누 섬의 원주민들도 홋카이도의 원주민들과 동족이었기에 돕기로 한 상황이었지요."

"으음...그래서 북미왕국도 이 섬을 차지하기 위해 개입한 겁니까?"

그 질문에 투로시노는 슬쩍 입술에 침을 바르며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전혀 아닙니다. 우리 역시 우리들의 땅을 제멋대로 차지하려 드는 서양인들과 싸운 적이 있었기에 이들의 사정이 안타까워 배 한 척을 건네준 것뿐입니다. 그 배엔 우리가 가져온 화약과 무기가 조금 있었고요."

"으음..."

예부의 관리는 북미왕국을 전혀 몰랐기에 정말 그런가 하는 표정으로 투로시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음 해에 다시 이곳에 와 보니 이곳의 원주민들은 이미 왜국과 전투를 치른 후 독립한 상태였습니다."

투로시노의 말에 예부의 관리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그러니까 왜국이 한낱 원주민들을 진압하지 못했단 소립니까? 그대들은 기껏해야 배 한 척 분량의 무기만 전해줬을 뿐인데?"

이에 투로시노는 당연한 의문이라면서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물론 이곳은 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운 북쪽의 춥고 척박한 섬이기에 왜국이 포기했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겁니다. 애당초 왜국이 이 지역 전체를 제대로 통치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 홋카이도 남쪽 해안가 일부만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지역을 에조라 칭하고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했었으니까요. 원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음..."

예부의 관리는 투로시노의 대답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원주민들은 독립하긴 했지만, 다시 왜국이 침공할까 걱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 원주민들은 오랜 논의 끝에 북미왕국에 보호를 요청했고 우리 북미왕국은 고심 끝에 원주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에 불과합니다."

투로시노의 이야기가 끝나자 예부의 관리는 무언가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지도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으음...일단은 알겠습니다. 제가 알던 사실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 이 자리에서 무어라 대답하기는 어렵군요. 방금 사신께서 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투로시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러시지요. 아. 그리고 친서와 예물도 접수해주시지요."

예부의 관리는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은 친서와 예물을 받기로 결정을 내렸다.

"아. 알겠습니다. 언질을 해둘 터이니 저곳에 배들을 정박시키시지요. 다만 북경에서 명령이 내려올 때까진 배에서 대기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예부의 관리가 조금은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이야기하자 투로시노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건 친서고 이건 예물의 목록입니다."

투로시노가 품 안에서 친서와 예물의 목록이 적힌 종이를 꺼내 예부의 관리에게 전해주자 친서는 봉인되어 있었기에 건드리지 않고 예물의 목록이 적힌 종이를 확인해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오...건해삼과 건전복을 이렇게 많이?"

그런 예부 관리의 반응에 투로시노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북미왕국의 특산품 중 하나입니다."

아이누 섬의 해삼 양식은 점차 그 규모가 커지고 있었고 최근 새김포 인근의 어업 연구소에서 전복의 양식도 성공해 양식 전복을 말려 보내왔기에 예물에 포함시켰다.

그 외엔 구색을 갖추기 위해 도자기나 유리 제품 일부와 모피, 면직물, 모직물 일부를 가지고 왔고.

예부의 관리는 북미왕국이 가져온 예물의 목록과 수량을 전부 확인한 후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교류도 없던 국가에서 이 정도 규모의 예물을 가져온다면 이건 그냥 청나라에 바치는 예물이라기보단 공무역을 하자는 뜻과 같았기에.

"알겠습니다. 이 친서와 예물 역시 바로 북경으로 보내도록 하지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답례품으로 원하는 물품이 있습니까?"

이에 투로시노는 웃으며 곧바로 대답했다.

"가능하면 최대한 많은 생사를 원합니다."

이들 역시 비단의 원재료인 생사를 원한다는 이야기에 예부의 관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참고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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