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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77화 (277/850)

277화

정평화는 사랑방의 상석에 앉아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감성우의 설명을 유심히 듣다가 설명이 끝나자 입을 열었다.

"음...그러니까 북미왕국에 가려면 결국 개항장에서 북미왕국을 오가는 북미왕국의 배를 이용해야 한다는 말인가?"

재작년인 경술년에 일어난 기상 이변으로 인해 경술년의 농사는 완전히 망쳤고 덕분에 식량이 부족해져 대기근이 일어날 뻔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북미왕국의 도움과 조정의 결단으로 피해를 최소화했지만, 경술년의 대흉년은 그다음 해인 신해년까지 영향을 미쳤다.

다행히 북미왕국에서 추가로 식량을 지원해주었고 이 식량이 떨어지기 직전 원상이 조선 팔도에 퍼트린 감자 덕분에 버틸 수 있었고.

마침내 쌀을 수확하며 식량 부족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나마 신해년의 작황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기에 조선은 다시 안정되었고 그때부터 식량을 지원해 준 북미왕국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사절단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북미왕국의 본토로 가는 뱃길은 초여름부터 가을까지만 열려 있었기에 이것이 알려지자 곧 수그러들었고.

해가 바뀌고 슬슬 봄바람이 불어오며 날이 따뜻해지자 다시 사절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해서 정태화는 퇴청하자마자 원상의 감성우를 부른 것이고 말이다.

"그렇습니다. 북미왕국 국영 상단 소속의 배가 개항장과 북미왕국을 오가니 이 배를 이용하시면 될 겁니다."

이에 정평화는 무언가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흐음...그래도 한 나라의 사절단이 타국의 상선에 타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정평화의 말에 감성우는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사절단의 안전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일반적인 조선의 배로 그 넓은 바다를 건너 북미왕국에 가는 것은 무척 위험합니다."

괜히 조선의 조그마한 배를 탔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감성우가 급히 입을 열자 정평화는 그런 감성우의 반응에 판옥선을 동원하는 것은 확실히 위험하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그럼 원상의 배를 이용하는 방법은 어떠한가?"

그 말에 감성우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습니다. 허나 원상의 배보다 북미왕국 국영 상단의 배는 더 큰 만큼 그 배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쾌적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저들은 자주 개항장과 북미왕국 본토를 오가니 북쪽 바다에 훨씬 익숙할 테고요."

감성우의 대답은 일단 원상의 배로는 저 넓은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정태화는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사절단의 규모를 생각하면 통째로 배를 빌려야 하는데 그게 쉽진 않을 것 같아 그러네. 전에 자네가 이야기하길 저들의 배는 국영 상단 소속이라 미리 일정이 다 짜여 있다고 하지 않았나."

정태화의 이야기에 감성우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기야 하지요. 헌데 사절단의 규모가 어느 정도이길래..."

"대략 500명가량으로 생각하고 있네."

"헉!"

정태화의 대답에 감성우가 기겁하자 정태화는 실소하며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놀라는 건가. 너무 많은가?"

"그...그렇지요. 배로 이동하는지라 많아야 200명 내외로 생각했습니다만..."

보통 왜국으로 보내는 통신사의 경우 300명에서 500명에 가까운 대규모 인원을 보내는데 이렇게 대규모의 인원을 보내는 것은 막부의 요청 때문이었다.

막부는 부유한 서부의 번주들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조선 통신사를 이용해 대접을 강요하며 그들의 부를 축냈던 것이다.

북미왕국으로 보내는 사절단은 북미왕국의 도움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사절단이니만큼 오히려 매년 여러 번 청나라로 보내는 사절단과 비슷할 거라 여겼다.

그리고 보통 청나라로 가는 사절단의 규모는 300명 내외였지만 이는 육로로 이동하는 만큼 사절단을 호위하는 병사들까지 포함되었기에 그러한 규모일 뿐이었기에 배로 이동하는 만큼 이러한 병사들도 대거 제외되어 많아야 200명 수준의 사절단을 예상했던 감성우이었다.

헌데 예상과는 달리 대규모의 사절단이었으니 감성우가 놀란 것이다.

이에 정태화는 흘흘거리며 웃다가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 그건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정태화의 말에 감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야 하지요. 북미왕국으로 보낼 사절단이 구성된다는 소리에 한양이 들썩이고 있으니까요."

원래 조선에서 외국으로 보낼 사절단이 구성될 때마다 이 사절단에 포함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애를 쓰긴 했다.

선비들에겐 합법적으로 외국을 둘러 볼 기회였고 거기에 상인들은 돈을 벌 기회이기도 했고.

하지만 이번엔 그 열기가 조금 심했는데 북미왕국은 조선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고 북미왕국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지만, 북미왕국의 사절단이 조선에 도착해 건넨 예물의 수준에 금상과 조정 대신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소문은 이미 한양의 저잣거리에도 알려져 있을 정도였기에 호기심 많은 선비와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직감한 상인들이 사절단에 포함되기 위해 난리라는 것은 한양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었다.

감성우가 이를 거론하자 정태화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인지 연줄을 이용해 어떻게든 사절단에 끼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추리고 추려도 500명 정도는 될 듯싶으이. 그래서 북미왕국 국영 상단의 배를 통째로 빌리지 못한다면 불편하더라도 차라리 원상의 배가 나을 듯싶고."

정태화의 이야기에 감성우는 사정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북미왕국 국영 상단 소속이 되어버린 이주 선단은 주로 조선을 떠나는 유민들이 타야 하는데 500명에 가까운 사절단이 탈 배를 마련해준다면 자연스럽게 북미왕국으로 떠나는 유민 500명이 줄어든다는 뜻과도 같았으니 북미왕국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원상의 배를 이용하는 것이 나았다.

"아...사정이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겠군요. 알겠습니다. 원상의 배를 준비해두겠습니다."

감성우의 대답에 정태화는 반색했다.

"오. 가능하겠는가?"

이에 감성우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원상의 배만으로 이동하는 것은 어렵고...북미왕국에 이야기해서 저들의 배와 함대를 이루어 함께 이동한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원상의 배는 일반 상선이라 그리 쾌적하지는 않을겁니다만..."

그런 감성우의 말에 정태화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허허허. 나라의 일로 북미왕국에 가는 것인데 어찌 편한 것만 찾겠는가. 고맙네."

* * *

정성국이 집무실에서 윤휴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호위대장과 그 뒤를 따라 보고서를 가득 돌고 있는 호위대원들이 조심스럽게 집무실로 들어왔다.

"전하. 쾌속선이 도착했습니다. 이건 그간의 보고서들입니다."

"그래? 저기다가 내려놓게."

호위대장은 호위대원들에게 눈짓했고 호위대원들은 들고 있던 보고서들을 정성국의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조심스럽게 집무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호위대장은 정성국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서찰을 꺼내 정성국에게 바쳤다.

"그리고 이건 이천호 대방의 서찰입니다."

"알겠네."

정성국에게 서찰을 건넨 호위대장은 곧 집무실을 나갔고 윤휴는 정성국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쾌속선이 도착했다는 소리는...북방 항로가 열렸다는 뜻이지요?"

이에 정성국은 서찰을 뜯다가 살짝 아쉬움이 섞인 미소로 윤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백호 어르신과 커피를 마시는 것도 조만간 끝이로군요."

윤휴와 윤의제는 북방항로가 열리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예정이었기에 정성국이 그리 이야기하자 윤휴는 빙그레 웃었다.

"허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조금 아쉽군요. 전하께서 타주시는 커피가 참으로 맛있는데 말입니다."

"하하하. 제가 타주는 커피가 생각난다면 언제든지 북미왕국으로 오세요. 언제든 환영하며 기꺼이 커피를 내려줄 테니 말입니다."

“허허허. 태평양을 건널 가치가 있군요.”

정성국의 농담에 윤휴는 웃으며 커피잔을 들어 정성국이 내린 커피향을 음미하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정성국은 이천호의 서찰을 빠르게 확인하다 중얼거렸다.

"아...다행이군요."

이천호가 보낸 서찰이라면 조선과 관련된 내용일 것으로 생각한 윤휴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무엇을 말입니까?"

"뭐 북방항로가 닫히기 전까지 특별한 기상 이변은 없었고 감자의 풍년으로 인해 식량 사정이 나아졌다는 보고는 들어왔습니다만...작년 벼농사도 결국 평작은 되었던 모양입니다. 덕분에 조선 상황이 무척 안정되었다는 이천호 대방의 보고입니다."

이에 윤휴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무척 안도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가 조선을 떠나기 전에도 상황이 썩 나쁘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벼 수확까지 큰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허. 참으로 다행입니다. 재작년만 하더라도 정말 대기근이 발생해 조선이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허나 전하의 자비와 조정 신료들의 결단으로 조선 백성들의 피해가 최소화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에요."

그러면서 윤휴는 정성국을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정성국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이천호가 보낸 서찰을 다시 확인하며 조선에 별다른 피해가 없고 상황이 안정되었다는 문구에 묘한 감흥이 들어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정말 대기근이 발생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다행이지요."

전생에선 조선의 3대 대기근 중 하나이자 수많은 조선 백성들이 아사했었던 경신 대기근이었지만 자신이 북미왕국을 건국하고 역사를 바꾸어 조선 백성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으니 전생을 기억하는 정성국으로선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과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고 이를 보고 윤휴는 빙그레 웃으며 농을 던졌다.

"허허허. 어째 조선인인 저보다 전하께서 더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제야 윤휴가 있다는 것을 상기한 정성국은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크게 웃었다.

"하하하. 뭐 저도 조선인 출신 아니겠습니까. 그보다는 조선에서 북미왕국에 사절단을 보낸다는군요."

이에 윤휴는 그건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재작년의 위기를 북미왕국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고 작년에도 추가로 도움을 받았으니 조선의 상황이 안정되었다면 응당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사절단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윤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었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헌데 백호 어르신께선 왠지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이에 윤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분명 사절단은 꽤 대규모일 겁니다. 작년 제가 조선을 떠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선비들은 자신들이 어려울 때 도와준 북미왕국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거기에 전하께서 조선의 주상 전하께 보내신 예물에 대한 소문도 꽤 파다했고...쉬쉬하긴 하지만 전하의 출신이 조선인이라는 것도 알음알음 알려졌기에 북미왕국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제 지인들도 제가 강원도 인근에 사니 혹시 북미왕국에 대해 아는 것 없느냐고 서찰을 보낼 정도였으니까요."

이에 정성국은 북미왕국이 조선이 어려울 때 도와줬으니 당연히 좋게 보기야 하겠지만 자신들을 소중화라고 자부하는 조선의 선비들이 정말 그렇게까지 북미왕국에 관심을 둘까 싶었다.

"허...그랬습니까?"

이에 윤휴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선 선비들이 북미왕국을 얼마나 궁금해하는지를 이야기해준 뒤 말했다.

"그런 대규모 사절단에 끼어들 정도의 능력과 연줄이 있는 자들이 이 북미왕국에 와서 제가 처음 이곳을 둘러보고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을 품는다면...분명 조선은 발전할 겁니다. 세상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체감할 테니까요. 그러니 기쁠 수밖에 없지요.“

그런 윤휴의 말에 정성국도 전생과는 다른 조선을 기대하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기쁜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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