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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76화 (276/850)

276화

조용한 곰이 정성국의 집무실에서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행정청장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이에 잠시 쉬며 커피를 마실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던 정성국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투덜거렸다.

"어째 오늘은 청장들이 계속 들이닥칠 것 같은데..."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행정청장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오늘 도착한 기차에 따끈따끈한 보고서들이 가득 실려있었으니까요."

"어휴. 그래. 그건 뭔가."

행정청장은 들고 왔던 무턱이나 두툼한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북미 동해안 지역에서 올라온 보고서입니다."

"그래? 이건 시간을 들여 살펴봐야겠는데?"

정성국이 보고서의 두께에 혀를 차자 행정청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급한 보고서는 아니니 천천히 살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직은 별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두꺼운 보고서를 한쪽에 치우고 이미 이 보고서를 대충이라도 파악한 행정청장을 보며 말했다.

"그건 다행이긴 한데...좀 의외인걸? 북미왕국의 종교 정책은 강경한 편이라 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할 줄 알았더니."

정성국의 말에 행정청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불만이 정말 없겠습니까마는...일단은 북미왕국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북미왕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닌데도 종교에 대해서 관용적인 자세를 보인 만큼 여러 제약은 납득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우세했답니다."

"허. 그래? 매사추세츠 지역도?"

매사추세츠 지역은 종교 문제로 더욱 민감할 수 있다고 여겼던 정성국의 무척 의외란 표정으로 묻자 행정청장은 매사추세츠 지역에서 올라왔던 보고서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대답했다.

"매사추세츠 지역도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답니다. 선교에 관해선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북미왕국의 정책에 오히려 환영하는 목사들도 있었다더군요. 다만 실제로는 북미왕국이 직접적으로 종교 단체를 통제하는 방식이라 이 부분은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선동해 시위하거나 행정청 관리를 찾아와 항의하는 식의 행동은 전혀 없다더군요."

불만은 있지만, 행동은 없다는 말에 정성국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역시 매사추세츠 지역에 배치한 경비대 때문이려나?"

"뭐 그런 부분도 없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괜히 불만을 표시했다가 북미왕국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할 테고요."

이에 정성국은 일리가 있다는 듯 수긍했다.

"하긴...유럽에선 왕이나 정부의 결정에 따라 종교가 허용되고 탄압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을 테니..."

"그렇습니다. 그 때문인지 목사들도 조용하답니다."

그러면서 각 지역의 분위기에 대해 적당히 설명하는 행정청장이었고 정성국은 이를 듣고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다행이군. 종교 문제는 그렇다고 치고...땅 문제는 어떻게 되어가나? 대지주들이 순순히 땅을 넘겨준다던가?"

"조금 의외인데...순순히 땅을 반납했다고 하더군요."

"응? 정말로?"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이야기에 조금 놀랐다.

물론 북미왕국은 무작정 땅을 몰수하기보다는 헐값에 사들이는 방식을 취했지만, 대지주의 경우는 제한이 있어 손해가 막심했기에 어떻게든 막으려 들거나 시간을 끌지는 않을까 예상했던 것이다.

"각 지역의 행정청 관리들이 올린 보고에 따르면 애초에 남아있던 대지주들도 큰 기대는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미 북미왕국은 모든 땅이 북미왕국의 소유라고 명시했으니까요. 그렇기에 대지주 대부분은 미련 없이 떠난 것이고요."

"음..."

물론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욕심이 있는데 그게 가능한가 싶은 정성국이었다.

이에 행정청장은 웃으며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은 노예를 해방했고 본인이 원한다면 이용할 수 있는 땅을 배정해주었기에 막상 북미왕국에 반발해 땅을 쥐고 있어도 이를 놀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공고를 하면서 땅의 거래도 막아버렸기에 꼼수를 쓰기도 애매했다.

400헥타르 이상은 보상해주지 않기에 남은 땅을 팔려 해도 괜히 조그만 이익을 탐하다 북미왕국에 눈 밖에 날까 봐 대지주의 의도대로 움직이지도 않았고.

그러니 대지주들은 순순히 땅을 넘겼다고 이야기하면서 덧붙였다.

"그리고 북미왕국이 땅을 배정해주고 거기에 당대에 한해서지만 세금까지 걷지 않겠다고 하니 주민 대부분은 북미왕국의 정책에 환영하고 있는지라...자신들의 편이 거의 없는 상황 아닙니까. 주민들을 선동하고 싶어도 그게 먹히겠습니까?"

그러면서 10헥타르 이상의 땅을 가지고 있어 헐값에 땅을 넘겨야 하는 주민들조차 세금이 없다는 것에 별다른 불만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안도하며 물었다.

"그렇긴 하지. 그럼 날이 완전히 풀리기 전에 땅을 회수하고 배정할 수 있어 보이나?"

이에 행정청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인력이 부족하긴 하지만...외무청 관리들과 경비대들이 도와주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다행이군. 아. 헌데 담배 금지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이 질문에는 행정청장이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담배 재배를 전면 금지하자 처음에는 무척 당혹해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들은 담배를 재배해 큰돈을 벌었으니까요. 거기에 이들은 북미왕국의 인구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북미왕국 본토에도 담배를 팔 수 있을 거라 여긴 모양입니다."

자신들의 예상과는 달리 담배를 북미왕국 본토에 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에는 정성국이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쯧쯧..."

"그렇기에 당분간 북미 동해안 지역에 유럽의 선박이 오지 못하더라도 판로엔 문제없다고 여긴 건데...북미왕국에선 담배의 유해함을 들어 전면 금지했기에 주민 일부는 무척 당혹해하며 행정청 관리에게 찾아가 담배가 약이라고 주장한 모양입니다."

종교 문제는 그냥 넘어갔지만, 자신들의 이득과 직결된 담배 재배 문제가 걸리자 곧바로 행정청 관리를 찾아갔다는 말에 정성국은 급히 물었다.

"그래서?"

"북미왕국에서 연구한 담배에 유해성에 관한 자료를 보여주며 잘 설득한 관리도 있었고 극단적으로 담배를 물에 개어 닭이나 개에게 먹여 동물이 죽는 것을 보여주며 담배는 절대 약이 아닌 독초라고 알린 관리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담배를 재배하다 걸리면 큰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알리니 담배를 재배할 뜻은 접은 듯 보인다고 합니다. 물론 자신들이 몰래 피울 담배를 재배하는 것까지야 막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만..."

그러면서 행정청장이 말을 흐리자 정성국은 현실적으로 그런 부분까지 완벽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인정하고 있었기에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 그거야 어쩔 수 없겠지. 그건 강제로 막기보단 정말 담배가 유해하다는 걸 본인이 느끼고 담배를 끊어야 가능하니까. 그리고 그건 시간이 흐른 뒤에 결판이 나겠지."

조만간 교육청에서 북미 동해안 지역에 담배의 유해성을 알리는 교육 시설들을 건설할 예정이었기에 정성국이 이를 떠올리며 말하자 행정청장도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무튼, 덕분에 담배 농사는 금지된 상황이라 지금껏 담배 농사에 주력하던 주민들은 다른 작물을 알아보느라 바쁘다는 보고입니다. 덕분에 잉글랜드인과 원주민 간의 갈등이 조금은 봉합된 듯 보인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행정청장의 보고는 조금 의외였기에 정성국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음? 아. 원주민들이 여러 작물을 키워봤을 테니까?"

원주민들은 수렵 민족처럼 생각되긴 했지만 의외로 북미 동해안 지역의 원주민 부족 가운데는 농사를 짓는 부족도 있었다.

애초에 잉글랜드인이 담배 재배에 성공한 원인도 바로 원주민들의 도움 때문이었고.

"그렇습니다."

"그거 나쁘지 않네. 아예 농사에 밝은 원주민들을 농업 연구소에 합류시키는 것도 괜찮을 듯싶고."

이미 북미 동해안 지역에 4개 지역으로 재편된 만큼 각 지역에 농업 연구소와 어업 연구소의 분소가 들어서기로 되어 있었기에 정성국이 이를 거론하자 행정청장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렇게 대략적인 북미 동해안 지역의 분위기를 파악한 정성국은 나쁘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행정청장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 외에 따로 보고할 것은 없나?"

이에 행정청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보고는 아니고 슬슬 총기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행정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 북미 동해안 지역에 북미왕국이 진출한 이후 총기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잉글랜드인과 원주민 중 일부는 머스킷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잉글랜드인이 머스킷으로 무장한 것을 행정청이나 군사청에서는 꽤 우려하고 있었다.

다만 정성국은 상황을 봐서 북미왕국 백성들에게 총기를 허용할 생각이었기에 일단 이 문제를 보류하고 있었다.

북미왕국 전역에 경비대를 보내 확실히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외곽 지역의 경우는 해수의 위험성도 존재했기에 외곽 지역에 사는 북미왕국 백성들의 집에는 제대로 된 철제 무기가 하나쯤은 존재했으니까.

물론 총기와 철제 무기를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볼 수야 없지만, 정성국이 북미왕국 백성들에게 총기를 허용하려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철제 무기보다는 총기가 더 낫긴 했다.

어지간한 자가 아니라면 철제 무기로 곰이나 늑대를 물리치긴 어려울 테니 말이다.

"형평성을 생각하면 전면적으로 허용을 하거나 북미 동해안에 깔린 머스킷을 회수해야겠는데..."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행정청장은 곧바로 지적했다.

"하지만 전하. 당장 이를 허용한다 해도 민간에 풀 총기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현재 북미왕국은 군 규모를 급격히 키우고 있어 무기 제조 공방에서 만들어지는 소총은 전량 군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아이누 경비대는 아직도 신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런 만큼 당장은 풀 총기가 없어 이를 허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행정청장의 지적에는 정성국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새남포 인근에서 벌어졌던 일을 생각해보면 시기상조 같습니다만..."

행정청장은 새남포 인근의 위네치 족이 철제 무기를 사서 주변을 장악하려 했던 사건을 상기시키며 만약 민간에 총기를 풀게 되면 당연히 이 총기가 주변으로 흘러나가 여러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 걱정했다.

이에 정성국은 턱을 매만지다 행정청장을 바라보았다.

"결국, 자네는 머스킷을 회수해야 한다고 보는군?"

"그렇습니다. 북미 동해안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도 그게 낫다고 생각하고요."

행정청장의 즉답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다행히 북미 동해안 지역의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지만...머스킷을 회수하겠다고 하면 저들이 오해할 여지가 있어. 저들이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겠다며 우리의 요구를 따라주고 있는데도 우리가 저들을 믿지 못하겠다며 머스킷을 뺏는 모양새 아닌가. 거기에 그곳의 치안을 완벽히 장악한 상태라고 보기도 어렵고."

이에 행정청장은 정성국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파악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렇긴 합니다만 북미왕국에서 화약 무기의 민간 소유는 금지라는 명분을 내세운다면 저들도 그렇게 반발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렇게 이야기하고 몇 년 후에 다시 총기를 허용하라고? 오히려 나중에 저들이 반발할 수도 있어."

정성국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행정청장은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빠르게 민간에 총기를 풀 생각이십니까?"

이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2, 3년이면 어느 정도 여유가 날 거라고 보는데...그리고 외곽 지역은 간간이 해수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 않나. 그리고 북미 대륙은 워낙 넓어서 전 지역에 경비대를 배치해 철저하게 치안을 유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정성국의 말도 일리는 있었기에 총기 허용에 부정적인 태도였던 행정청장은 조금은 힘이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기야...합니다만 제2의 위네치 족이 등장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최대한 통제를 할 생각이야. 당연히 북미왕국 백성들에게만 팔 생각이고 북미왕국의 백성은 평생 딱 한 정의 소총을 살 수 있으며 1년에 한 번씩 등록된 총기를 행정청에 가져와 검사받게 할 생각이고. 그러면 섣불리 총을 팔아넘기진 않겠지. 거기에 총알 가격도 무척 비싸게 책정해 방아쇠를 당기기전에 총알 가격 때문에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들 생각이고."

정성국도 전생에서 미국의 총기 사고 등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차라리 처음부터 민간에 총기를 허용하지 말까도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완벽히 치안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지킬 방도가 필요하다고 보았기에 일단 허용을 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행정청장은 정성국의 대답에서 정성국이 결국 총기를 허용하기로 결정을 내렸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사사로이 총기를 빼돌리지야 못하겠군요. 그리고 총기 관리를 허술하게 해도 자신에게 피해가 올 테니 총기를 사는 것도 한 번 더 고민할 테고. 전하의 뜻은 알겠습니다. 그럼 북미 동해안 지역의 행정청 관리에게 머스킷을 회수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알리도록 하지요."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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