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전하. 이로쿼이 연맹과 접촉한 외무청 직원의 보고서입니다."
정성국은 갑작스럽게 집무실로 달려온 조용한 곰이 건네주는 보고서를 받아들며 반색했다.
"오. 그래? 무사히 돌아왔나 보군."
외무청 관리는 뉴욕 지역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이로쿼이 연맹의 부족 중 하나인 모호크 족과 접촉하기 위해 떠났다고 보고가 올라온 뒤로 꽤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이에 정성국은 내심 걱정하고 있었고.
이로쿼이 연맹이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내륙 깊숙한 곳에 사는 것도 아니었기에 며칠이면 도착했을 텐데 너무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던 탓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싶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웃으며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원하시는 것처럼 저들과 어느 정도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어? 그런가?"
정성국은 그 말에 반색하며 조용한 곰이 가져온 보고서를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외의 내용에 나직이 탄식했다.
"허...생각외로 많은 수의 머스킷을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라..."
정성국의 탄식에 조용한 곰도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 외무청 관리는 북미 동해안 지역의 원주민과는 달리 이로쿼이 연맹이 소유한 머스킷은 생각외로 많다고 보고했습니다. 처음에는 더 많은 모피를 얻기 위해, 그리고 최근에는 이로쿼이 연맹이 프랑스의 동맹 부족들과 전쟁을 벌였기에 잉글랜드는 이 북미 대륙에서 프랑스의 세력 축소를 노리고 이로쿼이 연맹을 지원해주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외무청 관리가 종합적으로 올린 오대호 인근의 원주민 세력 상황에 관해서 설명하자 정성국은 이를 듣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속으로 탄식했다.
'모피를 얻기 위한 전쟁이라...이게 그 비버 전쟁인가 보구나. 이 전쟁으로 원주민의 피해가 극심하다고 하더니만...그게 이 시기구나.'
정성국은 북미 대륙의 인구가 무척 적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로쿼이 연맹과 범 알곤킨 족의 전쟁으로 죽은 원주민들이 무척 안타까웠지만 어쩌겠는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퀘벡의 누벨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던 원주민 부족은 이미 박살 난 지 오래인데.
다만 정성국은 이로쿼이 연맹에게 머스킷과 화약을 제공이 사태를 키운 잉글랜드가 조금 괘씸해졌다.
더불어 이로쿼이 연맹이 머스킷을 믿고 북미왕국과 맞설 생각을 했다면 골치가 아팠을 테고 말이다.
"거 참...잉글랜드에서 이에 관해 이야기해준 것은 없었지?"
"그렇습니다."
정성국의 물음에 조용한 곰도 조금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로쿼이 연맹이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내기로 해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저들이 제공한 머스킷으로 인해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쯧...이 정도 양의 총기를 풀었으면 이야기를 좀 해주던가 하지...아. 그러고보면 잉글랜드는 떠났으니 이들은 화약을 어떻게 수급하나? 설마하니 잉글랜드인들이 화약 제조법을 알려준 건 아니겠지?"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에게 절대로 화약 제조법을 알려주려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정성국도 잘 알고 있었으나 잉글랜드는 북미 대륙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으니 또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잉글랜드가 북미왕국을 곤란하게 하려는 의도야 있겠느냐마는 프랑스를 생각하면 엿 먹어보라는 생각으로 알려줄 수도 있을 테고.
그런 정성국의 물음에 조용한 곰은 고개를 저었다.
"화약 제조법은 알려주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 때문에 이로쿼이 연맹은 화약 수급에 곤란을 겪고 있는 눈치였다고 합니다. 전염병이 돌아 일단 프랑스의 동맹 세력과의 전쟁은 소강상태였고 잉글랜드가 떠나기 전에도 많은 화약을 팔아치웠기에 당장 화약이 부족하진 않은 듯 보였지만...이로쿼이 연맹이 스스로 화약 제조를 할 수 없는 이상 어디선가 화약을 구해와야 하니까요. 그 때문인지 외무청 관리가 교역 이야기를 꺼내자 무척 관심을 보이면서 화약을 구할 수 있을지를 가장 먼저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조금은 안도한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이야기가 끝나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원주민들에게 화약을 팔 계획은 없지 않나. 거기에 저들이 원하는 화약은 흑색화약일 텐데..."
"그렇지요. 해서 화약을 거래하긴 어렵다고 이야기하자 저들은 무척 실망하는 눈치였다고 합니다. 다만 그 외의 물품은 북미왕국에서도 구해줄 수 있다고 알리자 이로쿼이 연맹은 아쉬워하면서도 교역에 적극적으로 응했다고 하더군요."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꽤 호전적이라고 알려진 이로쿼이 연맹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우리와 우호적으로 지낼 뜻을 내비친 것도 결국은 화약 부족의 문제가 없진 않겠군."
이번에 외무청 관리를 이로쿼이 연맹에 보낸 것은 단순히 북미왕국의 입장을 알리고 이로쿼이 연맹이 북미왕국을 적대하지만 않으면 족했다.
헌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로쿼이 연맹은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낼 뜻을 내비쳤기에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을 확인하니 이로쿼이 연맹의 행동이 이해가 간 것이다.
이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국의 의견에 동의했다.
"저도 보고서를 확인하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잉글랜드가 북미 대륙에서 떠난 이상 이로쿼이 연맹은 화약을 구할 길이 사라진 셈이니까요. 거기에 소강상태일 뿐이지 정식으로 프랑스와 휴전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웃이 된 우리 북미왕국에 날을 세울 수야 없었겠지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중얼거렸다.
"흠...이제라도 흑색화약을 생산해야 하나?"
이에 조용한 곰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로쿼이 연맹을 이용해 프랑스 세력을 내쫓을 생각이시라면 모를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잉글랜드가 했던 것처럼 이로쿼이 연맹을 지원해 프랑스 세력을 내쫓을 생각이라면야 흑색화약을 생산해 저들과 거래를 해도 되겠지만 조용한 곰이 아는 정성국이라면 절대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계속된 전쟁과 전염병에 인구가 줄어든 오대호 인근 원주민들의 수를 극단적으로 줄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정말 프랑스 세력이 거슬리면 북미왕국 병사를 보내는 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이에 정성국은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다면서 말했다.
"잉글랜드가 떠난 이상 이로쿼이 연맹이 화약 수급으로 곤란을 겪으리라는 것은 프랑스도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
그제야 정성국이 걱정하는 바를 파악한 조용한 곰이 바로 대답했다.
"아. 프랑스가 이로쿼이 연맹을 공격할까 걱정하시는 거군요. 하지만 우리 북미왕국이 뉴펀들랜드 섬에 진출하고 세인트존스 항을 기점으로 주변을 순찰하고 있으니...프랑스로서는 소강상태인 이로쿼이 연맹과의 전쟁을 재개하진 못할 겁니다. 어쩌면 이를 빌미로 저들과 정식으로 휴전을 제의할지도 모르겠군요."
그 말에 정성국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보고서로 눈길을 돌렸다.
"쓸데없이 피를 흘릴 바엔 차라리 그게 낫지. 허...이로쿼이 연맹의 추장들 앞에서 갑오 소총을 사용했다고?"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급히 입을 열어 외무청 관리의 행동을 변호했다.
"이로쿼이 연맹이 워낙 호전적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얕보여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러한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 조용한 곰의 반응에 정성국은 시선은 보고서에 고정하면서도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들어 올리고 입을 열었다.
"아. 뭐 결과가 좋게 풀렸으니 굳이 책할 생각은 없네. 그리고 저들의 요청에 응한 것뿐이었으니 우리가 무력을 과시하며 도발했다는 인상은 없었을 테고."
이에 조용한 곰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갑오 소총을 보고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유럽보다 우위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만약 프랑스가 나중에라도 이로쿼이 연맹을 끌어들이려 해도 이로쿼이 연맹이 이를 받아들이진 않을 겁니다."
"그건 그렇겠군. 음? 이로쿼이 연맹의 부족원을 데리고 왔다고?"
"이로쿼이 연맹과 북미왕국의 우호적인 교류를 위해 부족원 일부를 북미왕국으로 보낼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답니다. 당연히 외무청 관리는 이를 승낙했고요."
이에 정성국은 보고서를 확인하고 혀를 찼다.
"허...30명이라니. 많이도 보냈네."
물론 이로쿼이 연맹은 다섯 부족의 연맹이니 각 부족에서 사람들을 보냈으리라 짐작했지만 조금은 많지 않나 싶었던 정성국이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이 웃으며 대답했다.
"보고서는 지급으로 새한성으로 보내졌지만, 이들은 새진주에 도착 후 새진주를 둘러보고 휴식을 취한 후 천천히 새한성으로 이동할 예정이니 아마 1, 2주 후에나 이곳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성국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음? 새한성까지 데려오려고?"
메타코멧을 비롯해 북미 동해안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도 북미왕국을 궁금해하는 원주민들이 있었고 이들은 외무청을 통해 새나주를 방문하곤 했었기에 새나주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냐는 뜻이었다.
이에 조용한 곰이 새나주에서 보낸 보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들이 꼭 북미왕국의 국왕 전하께서 계시는 새한성까지 가보고 싶다고 강력히 요청했답니다. 그리고 이로쿼이 연맹은 생각보다 강성하기도 하고 외무청 관리를 따라 새진주까지 방문한 이로쿼이 연맹의 부족원들 가운데는 추장들의 자식들도 있고 이들이 훗날 이로쿼이 연맹을 이끌어 갈 것을 생각해보면 이들에게 북미왕국의 국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웅크린 늑대가 이를 허락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웅크린 늑대가 그러한 판단을 한 것도 충분히 이해되었기에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아. 그래? 자식들을 보냈다라...갑오 소총이 인상 깊긴 했나 보군."
이에 조용한 곰은 당연하다는 표정과 묘한 자부심이 뒤섞인 얼굴로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기존의 머스킷과는 차원이 다른 것을요. 그리고 저들이 이곳으로 오기 위해 기차를 타는 순간 북미왕국의 대단함을 확실히 깨달을 테고요."
정성국은 그런 조용한 곰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고 입을 열었다.
"알겠네. 그럼 저들이 새한성에 도착하면 외무청에서 신경 써서 안내해 주게. 아. 그리고 저들에게도 우두는 접종해 주고."
오대호 인근은 아직 전염병이 돈다고 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성국이 덧붙이자 조용한 곰은 곧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아. 그리고 여전히 프랑스 측에선 접촉이 없고?"
이에 조용한 곰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군사청장에게 듣기론 뉴펀들랜드 섬의 분함대가 의도적으로 세인트로렌스 만을 집중적으로 순찰하고 있고 그 모습을 지나가던 프랑스의 선박들이 보았다고 합니다만...아직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분함대의 함장이 이야기하길 프랑스인들은 세인트로렌스 만에서 활동하는 분함대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고 평하더군요."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대답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세인트로렌스 만은 뉴펀들랜드 섬 서쪽의 바다로 이곳은 세인트로렌스 강과 연결되어 있고 이 세인트로렌스 강은 오대호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강이자 누벨 프랑스의 수도인 퀘백과 연결된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러한 곳에 타국의 군함이 드나드는 중인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은 분함대 함장의 보고처럼 북미왕국과의 접촉을 피하고자 애써 무시하는 것과 같았고.
이는 누벨 프랑스의 세력이 약하다는 방증이었으며 아직 프랑스 본국에서 제대로 된 지침이나 지원이 없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정성국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로쿼이 연맹 덕분에 현재 누벨 프랑스는 세력이 굉장히 위축된 상태 같은데...이 기회에 힘으로 저들을 몰아내야 하나? 하...애매한데.'
정성국은 나쁘지 않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고민했지만, 아직 북미 동해안 지역에 진출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곳에 배치한 경비대를 빼내는 것은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과 먼저 북미왕국이 유럽의 국가인 프랑스를 공격한다면 과연 다른 유럽 국가들이 어떻게 나올지 판단하기 어려울뿐더러 잘못하면 프랑스의 동맹 부족들이 참전할 것을 우려해 이를 포기하고 차선책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세인트로렌스 만까지 드나드는데도 제대로 된 반응이 없다면 어쩔 수 없군. 외무청에서 나서줘야겠어."
생각을 끝낸 정성국이 입을 열자 내심 긴장하고 있던 조용한 곰은 급히 정성국의 진의를 확인했다.
"퀘벡으로 사절을 보내볼까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프랑스의 식민지인 누벨 프랑스는 원주민 동맹들이 많다지? 그리고 그들은 범 알곤킨 족이고...지금은 이로쿼이 연맹에 의해 꽤 약화된 상태고?"
그제야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의도를 알아채고 탄성을 내질렀다.
"아! 프랑스가 아니라 프랑스의 동맹 세력인 범 알곤킨 족들을 북미왕국으로 끌어들이라는 뜻이군요!"
"그렇네. 북미왕국엔 일손이 부족하니...북미왕국에 합류한다면 굳이 모피 사냥에 열을 올리지 않더라도 필요한 물품을 얻는 데 지장이 없다고 알린다면..."
조용한 곰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정성국의 말을 받았다.
"굳이 이로쿼이 연맹과 전쟁을 할 이유가 없겠지요. 알겠습니다. 바로 매사추세츠 지역에 외무청 관리에게 명령을 내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