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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73화 (273/850)

273화

“어째 다들 복잡한 얼굴이로군요.”

모호크 족 추장이 마지막으로 롱하우스에 들어와 다른 추장들의 안색을 살피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오네이다 족 추장이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들이 사용하는 머스킷은 우리가 유럽인들에게 얻은 머스킷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말입니다.”

이미 이로쿼이 연맹은 일단은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내기로 결정을 내렸지만, 북미왕국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던 다른 추장들은 북미왕국의 사절이 아직 모호크 족의 영역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기에 다들 모호크 족 추장을 따라 북미왕국의 사절을 만났다.

그리고 여러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던 중 세네카 족 추장이 북미왕국 사절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온 북미왕국 병사들의 사격 실력을 궁금해하며 때마침 강가에 있던 오리들을 가리키며 저 오리들을 맞출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북미왕국 병사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았고 외무청 관리는 이로쿼이 연맹을 구성하는 각 부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질적인 대추장에 해당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이미 파악한 이후였고, 이로쿼이 연맹이 생각보다 호전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이들에게 얕잡아 보이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왕이면 이들이 북미왕국을 얕보지 못하게 제대로 충격을 주라고 덧붙였다.

이에 북미왕국의 병사 중 한 병사가 앞으로 나와 들고 있던 갑오 소총을 들고 오리를 조준했고.

처음 이를 보고 세네카 족 추장을 비롯한 다른 추장들과 모호크 족 전사들은 내심 비웃었다.

긴장한 모양인지 장전조차 하지 않은 빈 머스킷으로 오리를 조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소리가 들리자 놀랄 수밖에 없었고, 곧 그 놀람은 몇 배가 되었다.

북미왕국의 병사는 빠르게 재장전하며 총소리에 놀라 강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오리들을 향해 계속 방아쇠를 당겼고 그렇게 오리들이 모두 도망치기 전까지 3마리의 오리를 추가로 맞췄기에.

이들에게는 후장식 소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북미왕국의 머스킷은 충격 그 자체였다.

더불어 하늘을 나는 오리를 3마리나 맞출 정도로 뛰어난 사격술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사격이 끝난 후 외무청 관리와 북미왕국 병사들은 이들의 질문 세례에 시달려야 했다.

“확실히...북미왕국이 직접 개발했다는 그 머스킷은 충격이었지요. 쉽게 장전할 수 있도록 탄환을 뒤로 장전하게 되어 있으니...”

카유가 족 추장이 조금 전 기억을 떠올리며 대꾸하자 오논다가 족 추장이 이를 받았다.

“거기에 그 탄환이라는 것도 사실 총알과 화약을 합쳐 둔 것이라 따로 화약을 다룰 필요 없이 탄환만 장전하면 그만이고...아무리 생각해도 북미왕국의 기술력은 유럽보다 한 수 위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오논다가 족 추장의 말에 다른 추장들도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알기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머스킷은 나름 유럽에서 최신식 무기로 알고 있었는데 북미왕국의 후장식 소총과 비교해보니 너무나도 떨어져 보였으니까.

그때 세네카 족 추장이 입을 열었다.

“그뿐입니까? 전 말입니다. 그런 무기도 놀라웠지만, 사격했던 그 절도 있던 병사가 더 인상 깊었습니다. 사격이 끝나고 그 병사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북미왕국의 병사들은 북미왕국에 합류한 부족들의 전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만 선발해 다시 훈련소에 들어가 군사 훈련을 받고 이를 버텨내야만 비로소 병사가 될 수 있다더군요. 그래서 나와 대화했던 병사는 웃으며 그러더이다. 전사는 아무나 될 수 있지만, 병사는 훈련을 통해 태어난다고.”

그러면서 세네카 족 추장은 병사를 통해 알게 된 북미왕국 군사체계를 말하기 시작했고 북미왕국에선 오로지 전투만 하기 위해 따로 전사를 훈련 시켜 병사를 만든다는 소리에 카유가 족 추장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허. 그렇습니까? 은근히 풍기는 분위기가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훈련을 통해 태어난 병사라...”

이에 오네이다 족 추장이 모호크 족 추장을 바라보고 다른 추장들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 조금 전 기억이 생생하니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지요. 더불어 우리 이로쿼이 연맹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자연스럽게 복잡한 얼굴이 될 수밖에 없고요.”

오네이다 족 추장의 말에 다른 추장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호크 족 추장은 조금 전 광경을 다시 떠올리고 조금 위축된 표정을 짓고 있는 추장들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으음...그럼 우리도 범 알곤킨 족들처럼 북미왕국에 합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이미 동부 해안가에서 잉글랜드의 세력에 밀리던 범 알곤킨 족들은 왐파노아그 족의 추장인 메타코멧의 설득 때문에 하나둘 북미왕국에 합류하고 있었다.

그처럼 자신들 역시 북미왕국에 합류해야 하겠느냐는 질문에 카유가 족 추장이 북미왕국 사절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저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면...이대로 우리끼리 살아가다 천천히 몰락하는 것보다야 북미왕국에 합류하는 것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카유가 족 추장의 말에 세네카 족 추장은 고개를 저었다.

“난 북미왕국이 유럽의 힘을 너무 과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래야만 원주민들이 유럽을 두려워하며 자연스럽게 북미왕국에 합류할 테니 이해는 하는데...솔직히 프랑스만 하더라도 그렇게 두려운 상대는 아니었잖습니까.”

그 말에 몇몇 추장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카유가 족 추장이 반론했다.

“하지만...동부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던 범 알곤킨 족들이 잉글랜드의 이주민에 밀려 쫓겨난 것을 생각해보면...북미왕국의 말도 틀리진 않아요.”

이에 오논다가 족 추장이 덧붙여 말했다.

“음...사실 우리가 상대한 것도 프랑스 본국에서 병력을 보낸 것이 아니라 프랑스 식민지인 누벨 프랑스의 동맹 세력일 뿐이고 우리가 모피를 장악해야 이득을 볼 수 있던 잉글랜드가 뒤에서 화약을 제공해주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테니...”

오논다가 족 추장의 말에 세나카 족 추장이 발끈해 무어라 이야기하려는 찰나 오네이다 족 추장이 그런 세네카 족 추장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엔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일단 우리가 파악한 북미왕국의 정보는 편향되었으며 일부에 가까울 테니까요. 그리고 이로쿼이 연맹 후손들의 미래가 담긴 결정이니만큼 우리끼리 결정하는 것이 아닌 다른 추장들과도 논의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네이다 족 추장의 말에 세네카 족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건 그렇지요.”

이번 결정이 이로쿼이 연맹의 후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다른 추장들도 짐작했다.

그렇기에 이로쿼이 연맹 전통대로 범 이로쿼이 연맹 소속 부족의 추장들과도 충분히 논의한 후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오네이다 족 추장의 말에는 다들 수긍한 것이다.

이에 오논다가 족 추장이 다른 추장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은 각 부족으로 돌아가서 다른 추장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지요.”

그렇게 회의를 마무리하려는 찰나 모호크 족 추장이 입을 열었다.

“그렇지요. 그게 맞겠지요.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일단은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내기로 한 만큼...북미왕국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보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에 세네카 족 추장이 흥미를 나타냈다.

“설마 동부 해안가로 보낸다는 뜻이 아니지요?”

“물론입니다. 저들의 본거지를 이야기하는 거지요.”

모호크 족 추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네카 족 추장이 나쁠 것 없다는 표정으로 동의했다.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유럽이야 워낙 멀고 뱃길이 험하기에 함부로 사람을 보내기 어려웠지만, 북미왕국은 그나마 가까운 편이니까요.”

이에 오네이다 족 추장도 바로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나도 찬성입니다. 잘 되었군요. 자식 놈을 데리고 왔으니 그 녀석을 보내면 되겠군요.”

그 말에 세네카 족 추장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오네이다 족 추장을 바라보았다.

“장남을 보내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훗날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결정에 영향을 받는 것은 내가 아닌 내 자식과 그 후손일 테니...내 자식을 북미왕국에 보내 저들에게 합류한다면 우리 부족에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직접 판단을 내려보게 할 생각입니다.”

오네이다 족 추장의 말에 모호크 족 추장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저하고 생각이 같군요. 저 역시 아직 어린 막내만 제외하고 자식놈들을 모두 보낼 생각이었는데요.”

“허...그건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카유가 족 추장이 살짝 우려를 나타냈지만 모호크 족 추장을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긴 여행인 만큼 위험할 수야 있겠지만...그 외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어차피 북미왕국이 정말 우리의 땅을 노린다면 힘으로도 충분할 테니까요.”

그 말에는 일리가 있었기에 다른 추장들도 비슷한 쓴웃음을 머금었고 곧 다른 추장들도 함께 왔던 자식을 보내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모호크 족 추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북미왕국 사절에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 *

“누벨 프랑스의 총독이 사람을 보내왔다고요?”

“그렇습니다.”

모호크 족 추장의 대답에 오네이다 족 추장이 묘한 감탄사를 토해냈다.

“허...시기가 참으로 절묘하군요.”

이에 카유가 족 추장이 동의하듯 고래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지요. 어제 북미왕국의 사절은 배를 타고 떠났으니.”

그동안 모호크 족 영역에서 머물던 북미왕국 사절단은 북미왕국의 뜻은 잘 알겠으며 일단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이로쿼이 연맹의 대답에 만족해하며 떠났다.

북미왕국의 본거지를 방문하고 싶어하는 이로쿼이 연맹 사람들을 잔뜩 태우고 말이다.

그렇게 북미왕국의 사절단이 떠난 후 다른 추장들도 슬슬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누벨 프랑스의 총독이 사람을 보내왔다는 소리에 다시 롱하우스로 모였고.

“그래. 갑자기 누벨 프랑스의 총독이 보낸 사람이 뭐라던가요.”

이에 모호크 족 추장이 자신이 들었던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를 듣던 카유가 족 추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허...휴전이야 어차피 아직 북쪽은 전염병이 간간이 발생하기도 하고...당장 북미왕국에서도 교역 대상에서 화약은 제외했기에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이에 오네이다 족 추장이 고개를 저었다.

“사절이란 사람이 북미왕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하며 우리를 충동질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리고 교역하자는 말과 함께 화약을 대량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말은 결국 누벨 프랑스의 총독은 우리가 북미왕국과 싸우길 바라는 모양이고요.”

그런 오네이다 족 추장의 의견에 오논다가 족 추장이 동의했다.

“잉글랜드는 이미 이 땅을 떠났고 누벨 프랑스의 동맹 부족은 세가 약해진 상태에서 북미왕국을 혼자 상대하긴 부담스럽다는 거겠죠. 그러니 우리를 이용해서 북미왕국과 맞서겠다는 속셈일 테고.”

이에 다른 추장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호크 족 추장이 한 이야기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러한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였으니까.

이에 세네카 족 추장이 으르렁거렸다.

“이거 너무 노골적이라 영 괘씸한데...”

“그러게 말입니다. 다만 북미왕국의 사절이 먼저 도착하지 않았다면...아마도 우리는 저 제안에 응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사실이 슬프군요.”

“으음...”

오네이다 족 추장의 말처럼 잉글랜드가 떠나며 교역이 막힌 상황이었기에 만약 북미왕국이 먼저 접촉해 예전처럼 이로쿼이 연맹이 필요로 하는 물자 대부분을 교역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알리지 않았다면 이로쿼이 연맹은 무조건 프랑스의 뜻대로 움직여야 했다.

이에 다른 추장들도 확실히 이대로는 장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신음을 흘렸고.

그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 같자 모호크 족 추장은 바로 주제를 돌렸다.

“그보다 저들에게 무어라 대답할까요?”

이에 카유가 족 추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흐음...저들의 속내가 괘씸하기는 한데...일단은 휴전은 받아들이고 그 외엔 생각해보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적당히 넘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화약의 수급이 어렵고 아직 전염병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저들의 행태가 괘씸하다는 이유로 전쟁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논다가 추장이 덧붙인 말에 다른 추장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이자 세네카 족 추장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긍했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저들의 상황을 이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사냥을 쉽게 하려면 머스킷에 사용할 화약이 필요한데 북미왕국에선 화약만큼은 팔기 어렵다고 했으니...저들과 교역하면서 화약을 구하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저들과 화약을 거래한다고 꼭 북미왕국을 공격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아...그거 괜찮군요. 화약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니...”

이에 모호크 족 추장도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휴전을 받아들이고 화약을 대량으로 구한다고 하지요. 그렇게만 이야기해도 저들은 우리가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인다고 착각할 테니까요. 그리고 화약을 충분히 비축하고 나면 북미왕국에 이 사실을 슬쩍 알려주면 되겠지요.”

이에 세네카 족 추장이 박장대소했다.

“하하하. 프랑스놈들의 뒤통수를 때린다니 그거 좋군요. 그렇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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