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북미왕국에서 처음으로 포고문을 붙인 이후로 북미 동해안 지역에 남아있던 잉글랜드인들의 분위기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종교의 자유를 위해 이곳으로 이주한 자들에게 북미왕국이 내건 포고문의 내용은 썩 나쁘지 않았기에 최소한 종교 문제로 탄압받을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해 안도했다.
물론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닌데 북미왕국에서 내건 여러 제약이 모두 종교의 자유와 그 연장 선상에서 개인의 종교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라는 한 목사의 해석에 자신이 믿던 종교 때문에 탄압을 당하고 결국 고향을 떠나 대서양을 넘었던 이들은 북미왕국의 종교 정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이곳으로 이주한 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북미왕국의 자세한 포고문이 나오길 초조하게 기다리며 매일같이 광장을 배회했고.
하지만 새해가 지나고 한 달이 넘었는데도 북미왕국은 그저 병사들의 주둔지를 건설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 무렵.
마침에 북미왕국에서 새로운 포고문을 붙였다.
그리고 처음 포고문을 붙였을 때 워낙 많은 사람이 몰려 굉장히 혼잡했던 것을 기억하는지 광장뿐만 아니라 마을 벽 곳곳에.
그 소식을 듣고 잭과 제이콥은 급히 뛰어나가 포고문을 읽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어라? 매사추세츠, 플리머스,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지역을 통합한다?”
제이콥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자 잭은 그게 뭐 놀랄 일이냐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기존의 모든 식민지가 북미왕국 밑에 들어간 셈이니...굳이 자잘하게 영역을 나눌 필요야 없겠지.”
“그건 또 그렇네.”
잭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에 제이콥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역이 통합되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려는 순간 잭이 말했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아. 여기 있다. 매사추세츠 주민들에게는 개인당 최대 10헥타르의 땅을 보장한다? 10헥타르? 그게 어느 정도인 거지?”
생소한 단위에 잭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자 제이콥이 그 밑에 쓰여있는 문구를 보고 급히 입을 열었다.
“아. 요 밑에 쓰여 있네. 10헥타르는...25에이커의 면적과 비슷하다? 오! 25에이커라니! 잭!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어!”
결국, 북미왕국은 주민들에게 25에이커의 땅을 이용할 권리를 나눠준다는 의미나 다름없었기에 제이콥은 무척 기뻐하며 잭의 어깨를 흔들었다.
잭과 제이콥은 계약 노동자로 이 신대륙에 왔고 계약 기간 동안 농장주 밑에서 일해 뱃삯을 치른 후 계약이 끝나자 여러 일을 하며 돈을 모아 땅을 사들였다.
그렇게 사들인 땅이 10에이커 정도였고.
헌데 적당히 먹고살 만해질 때쯤 북미왕국이 등장하며 본국이 북미왕국에 이곳의 모든 권리를 팔아치우고 떠난다는 결정을 내리자 제이콥은 다시 서인도 제도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잭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잭의 말처럼 북미왕국은 사람들이 대거 빠져나가 비어버린 땅을 이곳에 남은 사람들에게 적당히 분배한 것이다.
비록 소유권까지 얻게 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무척 기뻐하는 제이콥이었지만 잭은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렇긴 한데...조금 아쉬운데. 꽤 많은 사람이 떠나서 더 많은 땅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척이나 기뻐하던 제이콥은 그런 잭의 말에 잭을 타박했다.
“야. 이 정도만 해도 어디야? 세금이 과하지만 않다면 먹고 사는 데는 크게 지장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이젠 노예도 없고 당분간은 본국...아. 이젠 아니지. 잉글랜드의 선박을 통해 계약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도 없으니 혼자 일해야 하잖아. 그런 것을 고려하면 뭐...”
잭은 내심 50에이커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꽤 많은 사람이 떠나 빈 땅이 무척 많아진 상황이라 이를 다 놀리지 않으려면 그 정도는 분배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이콥의 말처럼 혼자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 25에이커만으로도 충분하긴 했다.
그리고 북미왕국은 매사추세츠의 모든 주민에게 최대 25에이커를 분배한다고 했으니 농장일을 할 사람을 구할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아. 혼자 일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쁘진 않구나. 그럼 문제는 세금인가?”
잭의 중얼거림에 제이콥은 동의하며 시선을 포고문으로 돌렸다.
“그러게. 그럼 세금은 얼마나 내야 하는 거지?”
“음...”
제이콥은 포고문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음...어라? 이봐. 잭. 내 눈이 이상한 건가? 이상한 문구가 보이는데?”
이에 잭 역시 손을 들어 눈을 비비고 다시 포고문을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세금이 없다는 문구를 보고 하는 말이라면...내 눈도 맛이 간 모양인데?”
잭과 제이콥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맙소사...세금이 없다고?”
“아니...이게 말이 되나? 모든 땅은 북미왕국의 소유라며? 그리고 우리에게 주는 건 경작권뿐이고. 그럼 세금이든 소작료든 걷어가야 하는 것 아냐?”
“그러니까...이건 뭐 잘못 쓴 건가?”
이들의 상식으론 빌린 땅을 이용했으면 당연히 그 수확물 일부를 땅 주인에게 주어야 했다.
헌데 포고문에는 매사추세츠 주민들에게 배정한 10헥타르의 땅에서 나오는 수확물에 대한 세금은 없다고 적혀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잭의 시야에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 북미왕국의 병사가 있다.”
“물어보자. 이게 제대로 쓰여 있는 게 맞는지.”
잭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이콥과 함께 북미왕국 병사들에게 달려갔고 포고문을 붙이러 다니던 병사들은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잉글랜드인을 보고 경계하며 소총을 매만졌다.
“정지!”
그런 병사들의 반응에 잭과 제이콥은 급히 멈춰 공격할 뜻은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때 병사들과 함께 다니던 영어를 할 줄 아는 외무청 관리가 병사들을 진정시키며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인가?”
다행히 질문을 받아줄 것 같은 분위기에 잭은 급히 질문을 던졌다.
“저 포고문을 보고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말입니다.”
이에 외무청 관리는 피식 웃었다.
농민들로 보이는 저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뻔했으니까.
“정말 세금이 없는 게 맞냐고?”
외무청 관리의 말에 잭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아...예! 정말입니까?”
“그렇네. 그러니 포고문에 적어 둔 거지.”
북미왕국의 관리로 보이는 사람이 세금이 없다고 이야기하자 오히려 잭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아니...설마 북미왕국은 아예 세금을 걷지 않는 겁니까?”
이에 외무청 관리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 저기에도 적혀 있지만 저건 그저 자네들에게 배정한 땅에서 나온 소출에 한해서만 세금을 걷지 않는다는 걸세. 아. 참고로 북미왕국에도 땅에 매기는 세금도 존재하네. 그리고 왕도 인근의 농부들은 4할...그러니까 약 40프로의 세금을 내고 있고.”
이러한 대답에 잭과 제이콥은 오히려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는 것은 국가의 권리나 다름없었다.
헌데 국가에서 세금을 걷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들을 북미왕국 백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기에 이곳을 떠나지 않았던 잭과 제이콥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왜 우리는...”
외무청 관리는 그런 잭과 제이콥의 표정에 고개를 저었다.
“아. 왕도 인근의 농부들이 수확량의 40프로를 세금으로 내는 것은 나라에서 직접 개간하고 수리시설까지 완비한 비옥한 땅을 배정받았기 때문이네. 그러니 그러한 세금을 내는 거고. 허나 이곳은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물론 모든 땅은 원칙적으로 나라의 땅이긴 한데...실제로는 자네들이 일군 땅이기도 하고 수확량도 썩 좋은 편은 아니고. 그래서 국왕 전하께서는 당대에 한해서 배정한 땅에서 나오는 소출에 대해서만큼은 세금을 걷지 말라고 명령하셨네. 그러니 국왕 전하의 자비에 감사하게나.”
예상외의 대답에 잭과 제이콥은 말문이 턱 막혔다.
“아...”
“허...”
“그러니 혹시라도 북미왕국의 이름을 팔며 땅에 대한 세금을 내라는 작자가 있으면 바로 신고하게.”
하지만 외무청 관리는 그런 잭과 제이콥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할 말만 한 후 다시 병사들과 함께 떠났다.
그 뒷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한참 바라보던 잭과 제이콥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런 나라도 있구나...정말 이곳에 남길 잘한 것 같네. 세금이 없는 25에이커의 땅이라니...먹고 사는 데 충분함을 넘어 무척이나 부유하게 살 것 같은데?”
“확실히...세금이 없으니...정말 여유롭게 살 수 있겠지. 솔직히 이곳에 남는다는 결정을 내린 것...거의 도박에 가까웠는데...정말 다행이야.”
특히나 잭은 자신의 말을 듣고 제이콥도 결정을 바꾸었기에 내심 초조해했었는데 결국은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제이콥은 그런 잭을 보며 씩 웃었다.
“하하하. 덕분에 나도 이곳에서 굶주릴 걱정 없이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게 되었으니...참 고맙구만! 친구!”
그렇게 투덕대며 기쁨을 만끽하던 둘은 조금 진정되고 나서 방금 떠난 북미왕국 관리의 말을 상기하고 혀를 내둘렀다.
“헌데...이곳의 수확량이 좋지 않다고 평가할 정도라니...대체 왕도 인근은 얼마나 비옥한 땅이라는 거지?”
본토와 비교하면 나쁘지 않은 땅을 북미왕국은 척박한 땅이라고 판단했으니 둘은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왜 북미왕국이 부유하다는 소문이 자자한지를 알겠네. 이런 땅을 척박하다고 생각해 세금을 걷지 않을 정도이니...”
“뭐 관리의 말처럼 우리가 이곳에서 땅을 일군 것도 어느 정도 보상해주는 차원이긴 하겠지만...대단하네.”
잭과 제이콥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왕도를 한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포고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니까. 그보다 혹시나 해 땅을 산 사람들은 다시 한번 땅을 치고 후회하겠네.”
제이콥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젓자 잭은 그들을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그건 좀 도박이었지. 노예를 산 것하곤 좀 다르잖아? 이미 모든 땅은 북미왕국의 소유라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그렇긴 해.”
그러면서 포고문에 다가간 둘은 아직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아. 여기 그런 사람들을 위한 구제 방안도 있네. 10헥타르 이상의 땅을 소유한 자는 북미왕국에 신고하면 일정 금액을 보상해 주겠다라...”
이에 잭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노예 문제도 그렇고...의외로 북미왕국은 이런 부분에서 관대한 느낌인데? 특히 노예 문제야 북미왕국에서 미리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으니 이해라도 하지만...땅 문제는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 한 만큼 무시해버려도 될 텐데. 어차피 무척 싸게 사들였을 테니.”
잭의 말처럼 노예 문제와는 달리 땅은 이미 원칙적으로 북미왕국의 소유라고 알렸었기에 대지주들은 무척이나 헐값에 땅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실제 작년에 땅을 산 사람들도 인정해주면 좋고 아니면 조금 손해를 보고 말지 라는 생각으로 사들였기에 굳이 북미왕국이 이를 보상해주지 않아도 큰 불만은 없으리라고 생각했고.
그런 잭의 중얼거림에 제이콥은 북미왕국이 관대하면 자신들에게도 좋은 것 아니냐며 웃었다.
“북미왕국이 관대하면 우리도 좋은 거지 뭐. 그리고 흑인 노예들을 사들였을 때처럼 더 싸게 사들일 테니 저들도 아예 본전을 되찾지는 못할 테니...그보다 최대가 400헥타르라...그럼 대체 얼마야?”
이에 잭은 속으로 계산해보고 입을 열었다.
“흠...최대 1000에이커 정도까지는 보상해준다는 거네. 그럼 정말 대지주가 아닌 다음에야 큰 손해를 보지는 않겠네.”
“그렇군.”
그렇게 포고문을 읽던 둘은 마지막 부분에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담배가 금지라고?”
“담배는 독이라 담배를 재배하는 것도 피우는 것도 금지라...담배가 독이라고? 약이 아니고?”
이때까지 유럽에 담배는 약으로 알려져 있었다.
애초에 담배를 피우던 원주민들은 담배를 주술 의식에 사용하거나 약으로 사용했고 프랑스인인 장 니코가 이를 프랑스에 소개하면서 이 담배를 피우면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먹힌 것이다.
헌데 북미왕국의 주장은 반대였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기 설명이 있네. 담배의 연기는 건강에 무척 좋지 않고 정력이 감퇴하며 기형아가 태어날 확률이 늘어나는 것을 수십 차례의 동물 실험을 통해 파악하게 되었기에 전면 금지한다...고?”
“잠깐만. 정력 감퇴?”
그들은 지금껏 담배가 정력에 좋다고 알고 있었다.
담배가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담배는 성적 흥분을 유발할 수 있다며 악마의 도구라는 미명 하에 여성은 담배를 피우는 것을 금지했을 정도였으니까.
허나 북미왕국의 이야기는 정반대였기에 잭과 제이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포고문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어...이게 정말이면 끊어야겠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