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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71화 (271/850)

271화

“세인트존스 항에 상시 2척 이상의 배가 머물고 있다라...”

누벨 프랑스의 총독이 퀘벡의 자신의 집무실에서 방금 올라온 보고서를 훑어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다 고개를 들어 이 보고서를 가지고 온 행정관 장 툴롱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이보게. 장.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세인트존스 항에 머문다는 북미왕국의 배가 과연 군함일까?”

이에 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우리의 판단이 틀렸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수송선이었다면 굳이 세인트존스 항에 항상 머무르게 둘 이유가 없겠지요.”

프랑스인들은 처음 뉴펀들랜드 섬에 배치된 선박들을 단순한 수송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군함치고는 포문 수가 적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북미왕국이 매사추세츠 지역까지 진출했다는 소문에 매사추세츠 북쪽에 위치한 누벨 프랑스의 영역인 아카디아에서 병사들을 매사추세츠 인근으로 보내 정보를 수집했었는데 병사들이 보고하기로는 예전 뉴펀들랜드 섬에 방문했었던 대규모 함대가 군함이 아닌 수송선 위주의 함대였다는 보고를 올렸다.

이들이 보기엔 마치 수송선처럼 보스턴 항에 물자를 가득 하역하고 흑인 노예들을 싣고 떠났으니 말이다.

헌데 이번에 세인트존스 항구에 북미왕국의 배가 마치 항구를 지키듯 항상 머물러있다는 보고에 자신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배들이 군함이라...그럼 북미왕국 해군의 소문이 부풀려진 걸까?”

이에 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태평양 방면의 에스파냐 함대가 박살 난 거야 기습공격 때문이라고 쳐도 북미왕국이 멕시코만에 진출한 이후 해적들이 줄줄이 박살 나 최근 플로리다 지역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실제로 북미왕국 해군에 의해 프랑스 국적의 해적들도 많이 침몰했고 덕분에 최근엔 서인도 제도 서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를 언급하자 총독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기껏해야 포문이 10개 내외라고 했는데 그렇게 강력하다고? 정말 저들의 대포는 정확성이 대단한 건가?”

이에 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실제 해적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아니면 소문처럼 북미왕국이 폭발하는 포탄을 개발했거나.”

총독은 장의 말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매사추세츠 지역을 정찰한 병사들의 보고가 잘못되었다는 소리군.”

“북미왕국이 잉글랜드에 넘겨받은 북아메리카 동해안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막대한 물자를 실어날라야 하는데 북미왕국이 멕시코만에 진출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수송선이 부족했을 테고 그 때문에 군함이 물자를 나르는 상황이었던 것을 병사들이 오해한 모양입니다.”

장의 말에 그럴싸했기에 총독은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현실을 떠올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끔찍한 현실이로군. 그럼 전에 아카디아를 지나 뉴펀들랜드 섬까지 오갔던 그 함대가 모두 군함이라는 소리나 다름없으니.”

“그렇긴 하지요. 특히 매사추세츠 지역은 몰라도...뉴펀들랜드 섬에는 세인트존스 항에 배치된 2척과 주변을 정찰하는 2척이 있으니...솔직히 조금 부담스럽죠.”

북미왕국의 해군이 강력한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그보다 더 부담스러운 것은 바로 북미왕국의 육군이었다.

그리고 이 북미왕국의 육군이 아카디아 남쪽의 매사추세츠 지역과 동쪽의 뉴펀들랜드 섬에 배치된 것 같다는 보고를 떠올린 총독이 중얼거렸다.

“거기에 병사들도 많다면서?”

이에 장은 씁쓸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매사추세츠 지역에도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가득하다고 들었고...이번에 세인트존스 항을 조심히 살핀 선원들도 세인트존스 항에 꽤 많은 북미왕국인이 득실거린다고 알렸습니다. 그들은 통일된 복장을 하고 있었다고 하니...아무래도 병사들이겠지요.”

“하. 원주민들의 나라라더니만...병사수가 꽤 많은 모양이군.”

총독이 막막한 심정으로 한탄하듯 중얼거리자 장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로쿼이 연맹과의 전쟁도 골치였는데...거기에 더해 북미왕국이라니...미개한 인디언들 따위에 이렇게 골치가 아플 줄은...”

프랑스는 잉글랜드와는 달리 땅이 아닌 이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나오는 모피에 관심을 두었다.

그렇기에 주변 원주민 부족들과 동맹을 맺고 그들이 가져오는 모피를 싸게 사들여 본국으로 보내 돈을 벌었고.

허나 자신들의 영역에서 더는 모피를 구하지 못하게 된 이로쿼이 연맹이 프랑스의 동맹 부족의 영역을 탐내 전쟁을 벌였고 처음 프랑스는 가소롭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로쿼이 연맹은 생각보다 강했고 동맹 부족들은 프랑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박살이 나버렸다.

그러다 최근 다시 전염병이 발생해 전쟁은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그런 상황에서 북미왕국이 세력을 확장해 자신들 근처에 자리하게 되었으니 적이 늘어난 셈이라 총독은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이에 장이 그런 총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마 이로쿼이 연맹과의 전쟁은 당분간 소강상태니 괜찮지만...문제는 북미왕국입니다. 저들은 에스파냐와 맺은 조약을 빌미로 이 북아메리카 전체가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까요.”

이로쿼이 연맹과의 전쟁이 결국 모피 무역의 주도권 싸움이었다면 북미왕국은 아예 이 북아메리카에서 유럽인들이 세운 식민지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강했기에 더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잉글랜드 놈들도 떠났으니 더 기고만장하겠고...이거 정말 골치 아프군.”

이에 장은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조금 아쉽습니다. 북미왕국이 등장했을 때 바로 식민지에서만큼은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었다면 북미왕국에 대항하기 수월했을 텐데요.”

같은 유럽 세력이었지만 이곳에서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경쟁자였다.

특히나 이로쿼이 연맹의 뒤에는 잉글랜드가 있었으니.

당연히 북미왕국의 등장과 북미왕국이 플로리다 지역까지 진출해 잉글랜드가 잔뜩 긴장했다는 소문에는 오히려 축배를 들었고.

북미왕국과 잉글랜드가 한 판 붙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헌데 잉글랜드는 얍삽하게도 오히려 북미왕국에 식민지를 팔아버리고 떠나버렸고 덕분에 북미왕국은 빠르게 영역을 확장해 결국 아카디아 코앞까지 도달했으니 장은 어떻게든 잉글랜드를 붙잡았어야 했다며 아쉬워했고 총독은 이를 갈았다.

“흥.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지레 겁먹고 도망친 놈들인데 아쉬울 게 뭐 있어! 동맹을 맺었다 하더라도 별반 도움 안 됐을 놈들이야.”

장은 그런 총독을 보고 음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이대로라면 이로쿼이 연맹과 북미왕국을 둘 다 상대해야 할 판입니다. 문제는...본국에선 아직도 별다른 답을 주고 있지 않잖습니까.”

잉글랜드를 욕하며 잔뜩 씩씩거렸던 총독은 장의 말에 기운이 빠진 듯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건 그렇지.”

작년에 잉글랜드가 북아메리카의 모든 권리를 북미왕국에 넘긴다는 소문이 들려온 후 총독은 본국에 계속해서 지원을 요청했다.

정말 소문처럼 잉글랜드가 철수한다면 북미왕국이 영역을 넓혀 이 북아메리카 식민지인 누벨 프랑스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아직 본국에선 별다른 답변이 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총독도 불안한 표정이었고.

“솔직히 전 조금 걱정입니다.”

“뭐가 말인가?”

“잉글랜드는 북아메리카의 권리를 북미왕국에 비싸게 팔아넘겼다는 소문이 자자하지 않습니까. 자연히 본국에서도 이를 고려하겠지요.”

“끙...”

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잉글랜드와는 달리 프랑스는 북아메리카 땅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신대륙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서인도 제도나 남미 지역에 심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프랑스 본국이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유지하는 이유는 오로지 모피 때문인데 최근 이로쿼이 연맹과의 전쟁에서 밀리기 시작하면서 모피의 수급이 줄어든 상태였다.

즉, 본국 입장에선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가치가 더 줄어든 셈이다.

헌데 이로쿼이 연맹에 더해 북미왕국이 등장했으니 이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선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잉글랜드는 지키기보단 이를 북미왕국에 팔아 짭짤한 이득을 챙겼으니 본국에서도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이에 침울한 안색을 한 총독은 이렇게 밀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 허리를 펴고 앉아 말했다.

“일단은...본국에 다시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도록 하겠네.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귀족들에게도 편지를 써서 절대로 이 누벨 프랑스를 포기하지 말자고 설득해보겠네.”

총독의 말에 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단은 이로쿼이 연맹에 사절을 보내 정식으로 휴전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휴전이라...”

현 상황에서 이로쿼이 연맹과 정식으로 휴전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모피를 수급할 수 있는 영역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총독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고 이를 눈치챈 장이 총독을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이 아무것도 없는 세인트존스 항에 군함과 병사들을 보냈다는 의미는 뉴펀들랜드 섬을 장악하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누벨 프랑스를 압박하겠다는 뜻이고요. 이를 좌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장의 말처럼 매사추세츠 지역까지만 장악하려 들었다면 모를까 뉴펀들랜드 섬에도 군사와 병사들을 보낸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북아메리카는 자신들의 땅이며 결국 프랑스 세력을 북아메리카 땅에서 몰아내려는 포석처럼 느껴졌기에 총독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게. 그리고 말이지...병사들의 보고로는 매사추세츠에 꽤 많은 잉글랜드인이 남아있다고 하지 않았나?”

장은 총독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 어떨까?”

장은 총독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고 그 뜻을 눈치챈 듯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설마 잉글랜드인들을 선동하자는 뜻입니까?”

“그렇지. 분명 불만이 많을 거야. 땅 문제든, 종교 문제든. 그러니 사람을 보내 저들을 충동질한다면...”

이에 장은 조금 회의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요...잉글랜드인을 선동해서 북미왕국을 몰아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화약이나 무기야 우리 쪽에서 지원해준다고 해도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다수 배치된 상황 아닙니까. 거기에 버지니아 식민지 주민들이 북미왕국에 대항하려 했다가 북미왕국의 무력시위에 질려 자진 해산했다는 소문까지 있으니...”

하지만 총독은 장의 말에 피식 웃었다.

“성공이든 실패든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건 잉글랜드인들이 불만을 표출한다는 점이고...자연스럽게 북미왕국은 우리보다는 북아메리카 동해안 지역의 장악에 더 관심을 둘 테니 최소한 시간은 벌 수 있을 것 아닌가.”

총독의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장은 확실히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그렇기도 하군요. 알겠습니다. 머리 회전이 빠른 몇몇 병사들을 매사추세츠로 잠입시키도록 하지요.”

“그러게.”

“그리고...그런 생각이라면 이로쿼이 연맹과 휴전을 하고 저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 보겠습니다.”

장의 말에 총독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았다.

“음?”

이에 장은 조금 전 총독이 짓던 표정과 흡사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들과 교역하던 잉글랜드 세력이 사라진 상황 아닙니까.”

장의 말에 총독은 손뼉을 치며 자신이 놓친 부분을 상기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 저들이 모피를 원한 건 오로지 유럽 세력과 교역할 물품이 필요해서였으니까.”

“예. 그런 만큼 휴전을 제의하면서 교역 문제도 논의하고...겸사겸사 북미왕국은 이 북아메리카 전체를 원한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면...”

총독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로쿼이 연맹도 끌어들일 수 있겠군!”

이에 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가능성은 반반입니다만...이로쿼이 연맹은 워낙 호전적이니만큼 잘만 충동질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그래. 어떻게든 이로쿼이 연맹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 보게. 나는 동맹 부족들을 다독일 테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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