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268화 (268/850)

268화

조그마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주변을 살피던 외무청 관리는 강가 근처에 나무로 만든 롱하우스를 여럿 발견하고 앞쪽에 앉아있는 길잡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곳인가? 저기 원주민들의 집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아. 저기 저들이 바로...”

길잡이가 강가 근처의 원주민을 가리키며 무어라 이야기하기 전에 외무청 관리는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를 살피고 살짝 놀란 표정으로 급히 물었다.

“잠깐. 저거 머스킷 아닌가?”

이에 길잡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예전 뉴욕 지역에 드나들던 네덜란드인들이 모호크 족에게 모피의 대가로 넘긴 무기들입니다. 그리고 잉글랜드인들도 은근슬쩍 머스킷과 화약을 넘긴 것으로 알고 있고요.”

길잡이의 말에 외무청 관리는 눈을 찡그리며 다시 확인했다.

“유럽인들이 머스킷과 화약을 넘겼다고?”

그런 외무청 관리의 반응에 오히려 길잡이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저희 왐파노아그 족도 머스킷이 몇 자루 있는걸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한데...몇 자루 없었잖나. 저들은...”

왐파노아그 족의 경우는 추장을 비롯해 한때 잉글랜드인들과 우호적으로 지냈던 인물 몇 명만이 머스킷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저들은 아무리 봐도 일반 전사 같은데 절반 정도는 머스킷을 들고 있었으니 차이가 컸다.

외무청 관리의 말에 길잡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잉글랜드인들은 당장은 우호적이더라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안전을 위해 가까이 있는 원주민들에겐 머스킷을 넘기는 것을 금지한 겁니다.”

“아. 저들은 당장 위협이 될 것 같지 않으니 머스킷을 비싸게 팔아치웠다?”

“뭐 그렇습니다. 그리고 모호크 족을 비롯한 이로쿼이 연맹은 영역 확장과 모피 무역의 독점을 위해 프랑스와 그들의 동맹을 맺고 있는 원주민과 전쟁을 치렀습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같은 유럽 세력이라 하더라도 모피 무역에 있어서는 경쟁자나 다름없으니...”

그러면서 길잡이는 약 30년 전 있었던 이 지역 모피를 둘러싸고 이로쿼이 연맹과 프랑스 동맹 세력 간의 전쟁을 대략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이 나타나면서 그때까지 큰 가치가 없었던 모피를 내어주고 저들에게 받은 상품들은 이 지역 원주민들의 삶을 뒤바꿔놓았다.

각종 철제 제품과 더 많은 비버를 잡아 가죽을 가져오라며 내어준 화약 무기, 의류, 그리고 술까지.

처음으로 술을 접한 원주민들은 술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화약 무기로 인해 사냥이 더욱 쉬워지면서 보이는 족족 비버를 잡아 유럽인들과 교역을 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원주민 대다수가 손쉽게 비버를 잡아대기 시작하자 비버의 개체 수는 급감했고 자연스럽게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다른 부족과 충돌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쿼이 연맹은 비버들이 많은 오대호 인근 지역을 모두 장악하려 했고 당연히 오대호 북쪽을 장악하고 있던 휴런 족과 이 휴런 족과 거래를 하며 모피를 얻고 있던 프랑스 세력은 이에 반발해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쯧. 결국, 욕심으로 비버를 멸종시키고 자신들의 영역에선 더는 비버를 구할 길이 없으니 전쟁을 벌였단 말이군.”

길잡이의 설명을 듣고 외무청 관리가 혀를 차자 길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허나 저들의 전투력은 대단했고 덕분에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던 여러 원주민 부족들을 하나씩 박살 내고 내쫓았습니다.”

길잡이의 말에 외무청 관리는 내심 놀랐다.

비록 이 지역의 프랑스가 그렇게 강대하진 못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잉글랜드 식민지인들에 밀려 점차 쇠퇴해가던 북미 동해안 지역의 원주민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대단했으니까.

그리고 이로쿼이 연맹에 밀려 자신들의 영역에서 쫓겨났다는 원주민들에게도 관심이 갔다.

“허...그럼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아는가?”

“저 내륙 서쪽으로 쫓겨났다고 들었습니다.”

“끙...그거 아쉽군.”

길잡이는 외무청 관리가 이를 아쉬워하자 왜 그러는지를 짐작하고 입을 열었다.

“모호크 족은 생각보다 잔인합니다. 사람을 먹는다는 소문도 있고요. 덕분에 쫓겨난 원주민의 수는 얼마 되지 않으니 그리 아쉬워할 것은 없습니다.”

그 말에 외무청 관리는 무척 놀란 표정으로 급히 되물었다.

“사람을 먹는다고? 설마 식인종이란 말인가?”

“우리 알곤킨 어로 모호크는 바로 사람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예전부터 우리 알곤킨 어를 쓰는 부족들은 저들을 모호크라고 불렀으니...”

그러면서 길잡이는 모호크 족과 이로쿼이 연맹에 대해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듣고 외무청 관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으음...”

북미왕국에서 식인 풍습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모호크 족이 사람을 먹는다는 소리에 기겁했었지만, 길잡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알곤킨 족들이 이로쿼이 연맹을 두려워해 나온 소문 같았다.

메타코멧에게 듣기로도 이로쿼이 연맹과 자신들을 비롯한 알곤킨 족들은 꽤 오래전부터 싸워왔다고도 들었으니.

이에 일단은 넘겨듣기로 생각하고 길잡이의 말에 적당히 대꾸하며 점차 가까워지는 원주민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점차 가까워지는 배 여러 척과 배 위에 사람들 일부가 통일된 복장을 하고 머스킷으로 무장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적당히 가까워졌을 때 소리쳤다.

“정지! 당신들은 누군가!”

이에 길잡이가 무어라 대꾸하려는 것을 제재한 외무청 관리가 소리쳤다.

“잠시. 혹시 영어를 할 줄 압니까?”

외무청 관리의 물음에 머스킷을 든 한 전사가 영어로 대답했다.

“그렇다. 헌데 당신들은 뭐지?”

“아. 말이 통해서 다행이군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린 우호 증진을 위해 파견된 북미왕국 소속의 사절단입니다.”

외무청 관리의 말에 원주민들도 영어를 할 줄 아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무청 관리에게 말을 했던 머스킷을 든 원주민 전사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다 말했다.

“북미왕국이라...당신들이 바로 그...”

이에 외무청 관리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잉글랜드인들과 교역을 하곤 했다니 우리 북미왕국에 대해 아예 모르지는 않겠군요. 다행입니다.”

그런 외무청 관리의 반응에 조금 진정한 원주민 전사가 어느덧 강가 근처로 접근한 이 북미왕국의 사절단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음...우호 증진을 위해 왔다고?”

“그렇습니다. 우리 북미왕국은 잉글랜드가 장악하고 있던 북미 동해안 지역의 모든 영역을 넘겨받게 되었으니 당신들 부족과는 이웃이 된 셈 아닙니까. 다만 서로 간에 교류가 없었으니 잘못하면 다툼이 생길 수 있다고 여겨 국왕 전하께서 사절단을 보내셨습니다.”

이에 원주민 전사는 잠시 난감한 표정으로 외무청 관리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흐음...잠시만 기다려라. 일단 추장에게 물어볼 테니.”

“알겠습니다.”

* * *

“북미왕국이 사절을 보내왔다고요?”

갑자기 모호크 족 추장이 대의회를 소집했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던 세네카 족 추장은 모호크 족 추장이 롱하우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꺼낸 이야기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이에 모호크 족 추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잉글랜드가 장악하고 있던 영역을 넘겨받았으니 우리와는 이웃이 된 셈이라면서 우리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왔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오논다가 족 추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요? 의외로군요. 잉글랜드인들에게 듣기로는 이 모든 땅의 주인이라고 주장했다면서요?”

잉글랜드인들은 북미왕국이 이 땅 전체를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때문에 이들은 저 북미왕국이 잉글랜드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영역에 들어온다면 저들과 전쟁을 치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오논다가 족 추장의 의문에 모호크 족 추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아. 그건 이 땅을 탐내는 유럽인들을 막기 위해 하는 주장일 뿐이라고 하더군요. 유럽에서는 이 땅의 원주민 세력을 거의 인정하지 않기에 마음대로 이 땅을 방문해 자신들이 발견하고 탐사했으니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그런 만큼 원칙적으로 이 모든 땅은 북미왕국의 땅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을 내쫓을 의사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으음...”

이들도 유럽인들 사이에 퍼진 북미왕국의 소문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기에 내심 북미왕국과의 전쟁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런 만큼 모호크 족 추장의 이야기에 내심 안도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 카유가 족 추장이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모호크 족 추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절을 직접 만나보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모호크 족 추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유가 족 추장은 바로 질문을 던졌다.

“정말 저들이 원주민 맞습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원주민인지 의심스럽던데...아무리 멀리 있는 부족이라고 해도 그동안 전혀 이름을 듣지 못한 것도 그렇고...”

다른 추장들도 카유가 족 추장의 생각과 비슷했기에 모호크 족 추장의 답변을 기다리자 모호크 족 추장은 곧바로 대답했다.

“소문대로 복식이나 머리 모양은 다를지언정 우리와 같은 원주민이 맞더군요.”

“허...우리와 같은 원주민인데 그렇게 발전했다라...”

카유가 족 추장의 부러움 섞인 탄식에 다른 추장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호크 족 추장에게 사절단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고.

그러다 세네카 족 추장이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북미왕국은 정말 화약을 만들어낼 줄 아는 겁니까?”

이들이 가장 탐내는 기술이 바로 화약 제조법이었지만 유럽인들은 화약 제조법만큼은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세네카 족 추장은 원주민 국가라는 북미왕국이 정말 화약을 제조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고.

이에 모호크 족 추장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그걸 모르겠습니다.”

“음?”

여러 추장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모호크 족 추장을 바라보자 모호크 족 추장은 입을 열었다.

“일단 사절을 호위하는 병사들은 모두 머스킷으로 무장하고 있더군요.”

“으음...”

“그리고 사절과 이야기하면서 교역을 통해 화약을 구할 수 있을지 물어보니 화약은 팔 수 없다더군요.”

모호크 족 추장의 말에 추장들은 토론을 나누기 시작했다.

“흐음...화약이 풍족하지 않거나 아니면 우리를 경계하기 때문에 그런가 보군요.”

“화약이 풍족하지 않다면 저들도 화약을 만들기보다는 유럽인들에게 사들이는 것일 수도 있고요.”

“아마 후자 아니겠습니까. 듣기로는 동쪽 해안가 근처에 사는 알곤킨 족들은 북미왕국 밑으로 들어갔다고 하니 그들이 좋은 이야기를 했을 리 없겠지요.”

“동맹이 아니라 북미왕국 밑으로 들어갔다?”

이에 이로쿼이 연맹이 차지한 영역 중 가장 동쪽에 자리해 그나마 주변 알곤킨 족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던 모호크 족 추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합니다. 왐파노아그 족의 추장이 저들의 배를 타고 본거지에 다녀온 후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하루빨리 북미왕국에 합류해 저들의 밑에서 발전하는 것이 낫다면서 주변의 알곤킨 족들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으음...”

모호크 족 추장의 대답에 다른 추장들은 생각이 많은 눈치였다.

그렇게 잠시 침묵만이 감돌았을 때 카유가 족 추장이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화약 말고 다른 물품들은 교역을 통해 모두 구할 수 있는 겁니까?”

“질 좋은 철제 제품들과 술, 천, 식량 등 화약 무기를 제외하면 어지간한 것은 교역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건 다행이군요. 프랑스와 교역을 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이들은 예전에 교역하던 네덜란드 세력이 잉글랜드에 축출되면서 잉글랜드와 교역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북미왕국이 잉글랜드를 대신해 동해안 지역을 장악하면서 교역할 대상이 사라진 셈이었고.

군사적으로도 북쪽은 프랑스가, 동쪽은 북미왕국에 둘러싸인 셈이었기에 추장들의 고민은 컸었다.

그리고 이미 프랑스의 세력을 많이 꺾은 상태이니 일단 프랑스와 화해하고 저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교역을 통해 얻으면서 북미왕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었고.

헌데 다행스럽게도 북미왕국은 이로쿼이 연맹과 다툴 생각이 없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자도 교역을 통해 제공할 수 있다고 하니 카유가 족 추장은 안도했다.

이에 다른 추장들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모호크 족 추장은 다른 추장들을 한번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저들은 우리와 우호적으로 지내고 싶다면서 분쟁을 막기 위해 제대로 영역을 정하고 교역을 하자는데 그럼 저들의 뜻대로 따라줄까요?”

이에 서로를 쳐다보던 추장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우호적으로 지내면서 북미왕국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정말 저들이 소문처럼 강력하다면...저들마저 적으로 돌리긴 아무래도 부담스럽지요.”

“확실히...저들이 원주민들로 이루어진 나라라면 원주민들의 전투 방식에도 익숙할 터이고.”

그렇게 추장들이 한마디씩 하며 동의하자 모호크 족 추장은 상황을 정리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하도록 하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