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쌀쌀한 바람이 부는 10월 초.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이 새한성에 도착했다는 보고와 해군 탐사대장이 급히 보고할 사항이 있기에 알현을 청한다는 소식에 곧바로 해군 탐사대장을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오랜만일세. 해군 탐사대장.”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전하.”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이 급히 보고할 사항이 있다는 이야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집무실로 들어올 때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지만 초조한 기색보다는 오히려 살짝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기에 나쁜 일은 아니다 싶어 안도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보다 이번엔 평소보다 귀환이 꽤 빨랐군? 거기에 복귀하자마자 이렇게 알현을 청한 것을 보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그렇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질문에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은 해군 탐사대장은 작은 주머니를 품 안에서 꺼내 정성국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정성국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생각보다 묵직한 작은 주머니를 받아들고 열어보자 주머니 안에는 황금빛으로 가득했다.
“허. 이건 사금이잖아?”
정성국이 주머니 안에서 사금을 일부 꺼내 확인하고 있을 때 해군 탐사대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정성국은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사금의 양을 가늠해보고 질문했다.
“생각보다 양이 꽤 많네? 이거 탐사대가 찾은 건가?”
올해 해군 탐사대에서는 전생의 앵커리지 주변 지역을 탐사해 작년에 발견해 보고했던 석탄과 철광이 얼마나 매장되어 있는지, 그리고 주변에 다른 광물 자원은 없는지 확인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묻자 해군 탐사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그건 아닙니다. 탐사대가 내륙을 탐험하는 도중 만난 원주민 부족들에게 물품을 거래해 얻은 녀석들이지요.”
그 말에 정성국은 예상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이곳의 원주민들은 금의 가치를 아는 모양이군? 사금을 모을 정도라니. 설마 다른 서양 세력과 접촉하기라도 한 건가?”
정성국의 물음에 해군 탐사대장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음?”
“예전부터 사금의 존재는 알고 있었고 장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답니다. 헌데 우리가 이 지역 원주민과 접촉해 교류하면서 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내륙에도 알려진 모양입니다. 그때부터 원주민 일부가 사금을 채취해 모으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정성국은 그런 해군 탐사대장의 설명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래?”
“그렇습니다. 전하.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말입니다. 부족 전체가 나서서 사금을 채취한 것도 아닌데 이 정도의 사금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것을 고려해보면 분명 저 내륙 깊숙한 곳엔 거대한 금광이 있을 테니...”
이야기하면서 점차 흥분해 열을 올리는 해군 탐사대장의 행동에 정성국은 황금의 마력이 대단하긴 하다고 생각해 웃으며 손을 내저어 해군 탐사대장을 진정시켰다.
전생에 알래스카가 제대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알래스카 금광이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사람이 적은 북미왕국에서 사람을 알래스카까지 보내 내륙을 개발하고 금을 캘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하하하. 조금 진정하게. 뭐 이렇게 사금이 나는 것을 보면 금광이 있긴 하겠지만...당장 우리가 저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그제야 조금 진정한 해군 탐사대장은 자신이 정성국의 앞에서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쓱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그렇긴 합니다만...”
정성국은 그런 해군 탐사대장을 보고 웃으며 계속 이야기했다.
“뭐 사금이야 우리가 직접 사금을 채취할 생각보다는 아이누 섬처럼 저들이 채취한 사금을 거래를 통해 가져오면 그만이야. 우리에겐 저들이 원하는 철제 제품과 쌀, 밀 같은 식량이 풍부하니 말일세.”
직접 금을 캐겠다고 내륙의 원주민과 다투어봐야 오히려 손해였다.
차라리 저들이 원하는 물품을 내어주고 저들이 채취하는 사금을 모조리 가져오는 것이 더 낫다는 정성국의 말에 해군 탐사대장은 사금에 홀렸던 자신을 반성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그건 그렇지요.”
정성국은 그런 해군 탐사대장을 보고 피식 웃으며 사금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주머니 입구를 닫은 후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주변에서 다른 광물을 발견한 것은 없나?”
정성국의 질문에 해군 탐사대장은 고개를 들고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 선착장 근처에서 꽤 많은 양의 철과 석탄, 그리고 구리가 매장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해군 탐사대장은 품에서 앵커리지 주변을 확대한 지도를 꺼내 정성국에게 건네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의 자세한 보고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결정을 내렸다.
“그래? 그럼 자네의 말처럼 결국 이곳에 항구를 건설하고 원주민들을 끌어모아 광물을 캐는 것도 나쁠 것은 없겠군.”
“그렇습니다.”
해군 탐사대장이 동의하자 정성국은 잠시 턱을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어디보자...우리가 접촉한 이 지역의 소부족은 제대로 된 부족 이름조차 없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해군 탐사대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곤란한 표정으로 앵커리지를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끙...그럼 이 항구 이름을 뭐라고 붙여야 하나...탐사대가 따로 붙인 이름은 없나?”
이에 해군 탐사대장은 정성국이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깨닫고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딱히 없습니다. 단순히 거점 항구라고 부를 뿐이지요. 다만 처음 이들과 통역하던 자들이 땅을 알래스카라고 부르던데...알래스카라고 붙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허...알래스카라...”
정성국은 해군 탐사대장의 말에 고민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래스카라는 명칭을 고작 항구 이름으로 붙이기엔 조금 아까운데...그렇다고 앵커리지 라는 명칭은 미국이 이곳을 개발할 때 선착장 도면에 적힌 anchorage라는 단어의 a를 대문자로 오기해 명칭이라고 착각해 붙였으니 나야 익숙하지만, 앵커리지라고 할 수도 없고...뭐 어쩔 수 없나?’
그렇게 생각을 마친 정성국은 자신을 바라보는 해군 탐사대장을 보고 입을 열었다.
“알래스카가 땅이라는 의미라면 고작 이 조그만 항구에 알래스카라는 이름을 붙이긴 좀 아깝군. 차라리 이 지역 전체를 알래스카 지역이라고 하지.”
정성국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고 알래스카의 의미를 생각하면 차라리 그게 맞겠다고 생각한 해군 탐사대장이 수긍했다.
“아. 그것도 그렇군요. 그게 더 맞겠습니다. 허면 이곳의 이름은...?”
해군 탐사대장이 지도의 앵커리지를 가리키며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슬쩍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어...뭐 새의주로 하세.”
처음엔 자신에게 익숙한 신의주로 할까도 생각했었다.
아직 조선엔 신의주라는 명칭은 없었으니까.
다만 그동안 정성국이 붙인 명칭은 모두 새롭다는 단어의 앞글자를 딴 새를 붙였지 같은 의미의 한자인 신을 붙이지 않았기에 그냥 통일하기로 한 것이다.
정성국의 여전한 작명 실력에 해군 탐사대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새로운 의주라는 뜻이군요. 알겠습니다.”
정성국은 그런 해군 탐사대장의 반응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른 보고는 없는지 확인했다.
“그보다 다른 보고는 없고?”
“아. 물론 있습니다. 우선 봉길 해의 크고 작은 섬에 들러 돌탑을 세우고 동판을 붙였습니다.”
정성국은 굳이 봉길 해의 여러 섬까지 북미왕국의 영토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 섬들에 원주민이 산다는 소식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러시아가 이 지역에 진출한 후 원주민들을 가혹하게 다루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이를 명령했었다.
해서 정성국은 관심을 보였다.
“아. 그래? 어떻던가? 정말 원주민들이 있던가?”
“그렇습니다. 무인도는 2곳뿐이고 나머지 섬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더군요.”
“그래? 말은 통하고?”
“그렇습니다. 근처의 알래스카 서쪽 해안가에 거주하는 원주민들과 거의 비슷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말이 통했고요. 다만 딱히 거래할 것은 마땅히 없더군요. 기껏해야 바다표범의 가죽 정도랄까요?”
섬이 큰 편도 아니었기에 딱히 얻을 것은 없으리라 이미 예상했었던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겠지.”
그때 해군 탐사대장이 다시 품 안에서 지도를 꺼내 정성국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그리고 이건 올해 탐사한 영역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지도를 확인한 후 감탄사를 토했다.
탐사대는 봉길 해협을 넘어 그 북쪽 바다인 전생의 축치 해와 보퍼트 해의 초입까지 대략적으로나마 도달한 듯 보였기에.
“허. 알래스카 최북단까지는 도달했군?”
“그렇습니다. 다만...이 알래스카 북쪽의 바다는 최북단이라 그런지 여름에 탐사했는데도 꽤 많은 유빙이 보이더군요. 해서 배를 타고 해안가를 따라 계속 탐사하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현재로선 알래스카 북쪽의 바다를 제대로 탐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정성국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생에서야 그나마 온난화로 인해 북극 빙하가 꽤 많이 사라진 편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소빙하기인 만큼 북극 빙하의 영역이 더 넓을 테니 여름에 떠도는 유빙도 많을 테고.
“그렇겠지. 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니 알래스카 북쪽 해안가를 따라 동쪽으로 탐사하는 것은 이제 그만하도록 하게. 해군 탐사대원들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대답에 안도한 해군 탐사대장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이 지역의 탐사가 대략 끝났다고 해도 해군 탐사대에 배치된 탐사선들은 이 알래스카 주변 해역을 돌아다니며 자세한 해도를 그리고 원주민들과 교류하도록 하게.”
“물론입니다. 전하.”
씩씩하게 대답하는 해군 탐사대장을 보고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정성국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탐사선이 충원되는데 이 알래스카 인근 해역에서만 돌아다닐 생각은 아니지?”
정성국의 말에 해군 탐사대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질문했다.
“오. 드디어 남태평양을 탐사하는 겁니까?”
“그렇지. 음...그럼 해군 탐사대도 해군처럼 나눠야 하나?”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이미 이 문제를 생각해 둔 것인지 해군 탐사대장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담당 범위가 다른 만큼 그러는 편이 낫겠지요. 일단은 북태평양 탐사대와 남태평양 탐사대로 나누고 나중에 북대서양 탐사대를 신설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정성국은 북대서양 탐사대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않았기에 해군 탐사대장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북대서양 탐사대라...하긴. 북미 대륙 북쪽 지형을 확실히 파악하려면 필요하기는 하지.”
“그렇습니다. 알래스카 북쪽 해안가를 따라 동쪽으로 항해할 수 있다면야 모를까 여름에도 유빙이 꽤 많이 보였던 것을 보면 알래스카 지역에서 동쪽으로 갈 수는 없을 테니 북대서양 탐사대도 언젠간 신설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북미 동해안의 현 상황을 생각해보면 북대서양 탐사대의 신설은 꽤 오랜 시일이 걸릴 것 같습니다만...”
해군 탐사대장은 외지를 돌아다녔지만 그렇다고 현 북미왕국과 새진주의 상황을 모르지는 않았기에 말을 흐리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긴 해. 당장 2, 4함대의 증설과 수송선 건조에 집중하고 있는 판국이니. 하지만 자네 말마따나 북미 대륙 북쪽의 바다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과 탐사대가 돌아다니면서 해안가에 거주하는 원주민들과 접촉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이니 2함대의 증설이 어느 정도 끝나는 대로 탐사선을 한두 척 정도는 건조하라고 하겠네. 뭐 어차피 그 정도야 크게 부담스러운 일은 아닐 테니.”
정성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해군 탐사대장은 품 안에서 조그마한 세계지도를 꺼내 내려놓고 전생의 호주를 가리키며 물었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이번에 신설되는 남태평양 탐사대의 일차 목표는 역시 이 남반구의 거대한 대륙이겠지요?”
정성국은 전생의 호주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럽도 이 호주의 존재는 17세기 초부터 알고 있었다.
호주 바로 위쪽의 동남아 지역의 향신료 무역을 장악한 네덜란드의 탐험가들이 호주를 발견한 후 배를 타고 거대한 대륙이라는 것을 측량한 후 뉴 홀란드라는 이름을 붙였으니까.
다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땅에 정착하지 않았고 굳이 이 땅을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런 호주를 18세기 후반 제임스 쿡이 동쪽 해안가를 상세히 측량해 잉글랜드 본국에 보고하자 당시 미국이 독립해 식민지를 잃어버렸던 잉글랜드는 이곳에 식민지를 세우기로 하고 함대를 보냈고.
이러한 흐름을 기억하고 있던 정성국은 이미 북미왕국의 존재로 인해 북미 동해안에 건설 중이던 식민지를 잃어버린 잉글랜드가 전생보다 빠르게 호주에 관심을 보일까 걱정스럽긴 했다.
‘뭐 북미 대륙을 다 장악한 것도 아니고 이것만 해도 내가 죽기 전엔 어려울 것 같으니 호주에 신경 쓰는 것도 욕심이긴 한데...딴 놈들이 저 땅에 깃발을 꽂는 것을 볼 바엔 빠르게 원주민과 접촉하고 교류해서 원주민들의 세력을 키우는 것이 맞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당장 시급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조언했다.
“그렇긴 한데...거리도 멀고 시급한 일도 아니니 무조건 저 대륙을 발견하겠다는 생각으로 남서쪽으로 직진하기보단 일단 하와이 제도를 거점으로 남서쪽 방향 전체를 탐색해 보게. 아마 중간에 자잘한 섬들이 없지는 않을 테니.”
보급 기지를 우선해서 만들라는 정성국의 말에 해군 탐사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보급을 생각하면 그편이 낫겠군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