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정성국이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박기동이 무언가를 들고 들어왔다.
정성국은 갑작스레 방문한 박기동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음? 그건...웬 면포냐? 아. 설마?”
이에 박기동은 씩 웃고 슬쩍 가슴을 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올해 수확한 북미왕국 산 목화로 만든 면포입니다.”
“오. 그래?”
정성국은 박기동의 대답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기동에게 다가갔다.
박기동은 들고 왔던 면포를 정성국에게 건넸고 정성국은 면포를 풀어 세심하게 살피고 손으로 면포를 만져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어째 면포의 품질이 전에 연구소에서 봤던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정성국의 의문에 박기동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요? 생각외로 이 북미 대륙에서 자생하는 원주민들이 재배하는 목화가 조선에서 가져오는 목화보다 방적용으로는 더 적합하더라고요.”
“아. 그래? 기계를 개량한 것이 아니라 원료가 더 좋아서라고?”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살짝 놀라며 되묻자 박기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설명을 했다.
“예. 연구소에서 방적기와 직조기를 만들 때는 조선에서 가져온 목화만 사용했기에 몰랐는데 조선에서 가져온 목화와 비교해보니 원주민들이 재배하던 목화는 섬유가 길고 잘 꼬여져서 방적용으로는 훨씬 낫더라고요. 거기에 색깔도 예쁘고요. 덕분에 훨씬 좋은 품질의 천이 짜인 셈이죠.”
“그거 다행이군.”
정성국도 이미 이곳의 육지면이 조선의 아시아면보다 방적용으로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본격적으로 재배할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차이가 나는 지는 몰랐기에 박기동의 설명을 듣고 그렇구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조면기의 연구는 어떻게 되어가냐?”
정성국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박기동은 히죽 웃으며 곧바로 대답했다.
“이미 만들었지요.”
“어? 그래? 벌써?”
정성국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박기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뭐 그렇게 어렵진 않더라고요. 증기기관의 동력을 이용해 투입구에 목화를 넣으면 솜과 씨앗이 분리되어 나오게 만들었고요. 아. 그러고 보니 조선에서 가져온 목화보다 북미 대륙에서 자생하는 목화는 솜과 씨앗도 쉽게 분리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개발한 조면기는 북미 대륙에서 자생하는 목화를 사용해야 잘 작동합니다.”
그런 박기동의 설명에 정성국은 혀를 찼다.
“쯧...그것 참.”
결국, 아시아면은 탄력이 좋아 이불솜이나 옷 솜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면직물을 만드는 데는 썩 적합한 목화는 아니라는 뜻이었기에 그동안 아시아면으로 천을 짜왔던 조선인들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리고 이 육지면을 원상을 통해 조선에도 한 번 재배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내 기억에 식민지 시절 일제의 강요로 아마 조선 남부 지역에서는 육지면을 재배하긴 했을 텐데 결국 한국에서 목화 농사를 거의 포기하고 전량 수입한 것을 보면 경제성은 없다고 봐야겠지만...시대가 다르고 당장 조선에 북미왕국산 면직물을 팔 생각은 없으니...’
겨우 조선과 조약을 맺고 교류를 하게 된 상황에서 조선과 척을 질 필요는 없었기에 시간이 흘러 면직물의 생산량이 넘친다 하더라도 조선에 이를 대량으로 수출해 면포 가격을 박살 낼 생각은 없었다.
조선은 이 면포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박기동의 말처럼 이 육지면이 아시아면보다 품질이 좋다면 원상을 통해 조선에 이런 품종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다.
박기동은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고 정성국이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젓자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지금 그 천이 원주민들이 수확한 목화를 조면기를 사용해 씨앗을 제거하고 방적기로 실을 뽑아 직조기로 짠 천입니다. 그래서 가져온 거지요.”
평소보다 가슴을 쭉 펴고 어깨는 더 올라간 박기동을 보고 정성국은 손안에 든 면포를 매만지며 웃었다.
“하하하. 그래. 수고했다. 그럼 인력은 거의 들지 않았겠구나?”
면직물을 만드는 데는 워낙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과정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한 만큼 인력의 소모가 확실히 줄었을 것으로 생각해 질문한 정성국이었다.
그리고 정성국의 칭찬에 한없이 올라갔던 박기동의 어깨는 정성국의 물음에 힘없이 내려앉았다.
“아...뭐...그렇지요. 목화를 수확하는 문제만 뺀다면야...”
그런 박기동의 행동에 정성국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아. 아직 목화를 수확하는 기계를 만들진 못한 모양이지?”
“목화만 수확하는 기계를 만드는 게 영 쉽지가 않네요.”
박기동이 듣기로는 내년부터 대규모로 목화를 재배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북미왕국 남부 지역에 목화를 심을 밭을 개간하고 있었고.
그런 만큼 정성국이 재촉할까 두려워 시선을 슬쩍 피하는 박기동이었고 정성국은 그런 박기동을 보며 피식 웃고 입을 열었다.
“부담 갖지 말고 천천히 연구해 봐. 이미 목화 농사를 지을 멕시코 원주민들을 대량으로 고용한 상태니까. 당분간은 그들에게 수확을 맡기면 되겠지.”
그런 정성국의 말에 박기동은 화색이 만면한 얼굴로 안도했다.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건. 알겠습니다. 스승님.”
정성국은 그런 박기동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다른 건?”
정성국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던 박기동은 정성국이 무엇을 묻는지를 깨닫고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모직물의 수요는 적은 편이라는 생각에 이번에 축산 연구소에서 가져다준 양모로 생산한 모직물은 딱히 가져오진 않았습니다만...”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화색이 만면해져서 급히 물었다.
“오! 그래? 모직물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단 소리지?”
“그렇습니다. 뭐 공장과 원료만 받쳐준다면야...”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공장이야 지으면 그만이고 양모도 이미 축산 연구소에서 양을 치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았으니...”
축산 연구소에서는 북미왕국 남부의 고원지대가 양을 방목하기에 적합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이곳이 바로 정성국이 기억하는 뉴멕시코 지역이었고.
그러한 정성국의 대답에 박기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요? 그러면야 뭐...”
“그리고 비단은?”
아무래도 가장 돈이 되는 직물은 비단이었기에 정성국이 묻자 박기동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음...비단도 대량 생산은 가능해요. 모직물과 마찬가지로 전용 기계도 만든 상황이니. 다만 상돈이가 가져다준 실로 생산한 비단이 아직 청나라의 비단에는 못 미쳐서 말이죠. 조선의 비단과 같다고 해야 할까요?”
누에고치는 표면에는 세라신이라는 고무와 비슷한 성분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보통은 광택이 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를 녹여 광택이 나도록 처리해야 했고.
이를 견 정련이라고 부르는데 이 부분에서 막혔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상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예. 그나마 이번에 북미왕국으로 이주한 조선인 중에 비단을 짤 줄 아는 사람이 있고 원상에서도 비단을 짤 줄 아는 사람 몇을 유민으로 위장해 보내서 상돈이가 그들을 고용해 연구 중이니 결과가 나오면 보고할 겁니다.”
“흐음...알겠다.”
* * *
“부르셨습니까. 전하.”
박기동이 집무실을 나간 후 호위대장을 통해 부른 행정청장이 집무실로 찾아오자 정성국은 티테이블을 가리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게. 차나 한잔 마시며 이야기하지.”
“하하. 영광입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잠시 잡담을 나누던 정성국은 행정청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아까 박기동이 이번에 조성한 목화밭에서 나온 면포를 가지고 왔더군.”
아직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한 행정청장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아. 그렇습니까? 어떻던가요?”
이에 정성국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품질이 무척 좋더군. 조선산 면포보다도. 박기동의 말로는 이 북미 대륙에 자생하는 목화가 조선산 목화보다 면포를 짜는 데는 더 낫다던데?”
“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어차피 이곳에 자생하는 목화를 심을 생각이었는데 말입니다.”
행정청장이 밝게 웃으며 대답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게 말일세. 그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해 수확한 목화의 양은 그리 많지는 않더군.”
“그렇습니다만 내년은 다를 겁니다. 꽤 넓은 지역을 개간해 두었으니까요.”
행정청장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올해야 정성국이 목화 재배를 이야기한 시점이 목화 파종기에 가까웠고 이에 배치할 인력도 많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올해 내내 개척단과 멕시코 원주민을 대량으로 고용해 목화밭을 조성하는 중이었으니까.
정성국은 그런 행정청장의 대답에 살짝 기대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그럼 내년엔 북미왕국에서 필요로 하는 양의 어느 정도까지 생산할 수 있겠나?”
정성국의 질문은 이미 행정청에서도 고려했던 질문인지 행정청장은 곧바로 대답했다.
“행정청에서는 대략 5할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허. 그래?”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대답에 무척 놀랐다.
물론 빠르게 밭을 개간하기 위해 개척단과 추가로 멕시코 원주민을 대량으로 고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고작 1년 만에 북미왕국에서 필요로 하는 양의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물량을 생산하다니.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내년까지면 더는 조선에서 면포를 수입해올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행정청장은 급히 입을 열었다.
“예. 다만 목화는 지력의 소모가 심한 작물이고 어차피 땅은 넓기에 계속해서 한 곳에 목화를 재배하기보다는 적당히 땅을 쉬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북미왕국의 영역이 확장되어 인구가 늘어나는 것과 북미왕국의 백성들이 점차 기존의 복식보다는 북미왕국의 복식을 따라 하느라 수요량이 급증하는 것까지 고려해보면 아마 북미왕국에서 필요로 하는 면포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기까지는 대략 4, 5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정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그 정도만 해도 오래 걸리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군. 그래도 목화밭은 계속 늘려나가도록 하게.”
이에 행정청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도자기 같은 사치품보다 이 면직물이 돈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겠지.”
조선이야 면포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는 만큼 함부로 면직물을 풀 생각은 없었고 청나라나 일본은 아직 제대로 교류를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
다만 굳이 바다를 건널 필요 없이 남쪽에도 꽤 커다란 시장이 존재했다.
‘적당한 가격에 멕시코 원주민들에게만 팔아도 생각보다 돈이 될 거야. 그리고 에스파냐 역시 직물 산업이 제대로 발전한 편은 아니라 에스파냐 본국도 노려볼 만하고. 에스파냐와의 관계가 썩 나쁘지도 않고 에스파냐 역시 우리와의 교역으로 짭짤하게 재미를 보고 있으니 굳이 이를 막을 것 같지도 않고.’
직물 산업의 경우는 이 시기엔 무척 중요한 산업이었기에 왕실이나 국가에서 개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잉글랜드의 모직 산업이 대표적인 경우였고.
하지만 에스파냐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달랐는데 17세기 초 필리페 3세가 에스파냐에 사는 모리스코들을 대부분 추방해 버렸고 덕분에 이들이 담당하고 있던 산업들이 초토화되어 버렸다.
그중에는 직물 산업도 있었고.
그렇기에 물량만 받쳐준다면 에스파냐의 직물 산업을 충분히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다.
정성국이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행정청장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그리고 모직물의 수요도 꽤 많을 것 같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정성국은 행정청장과의 말에 대꾸했다.
“그럴 거야. 특히 겨울에 추운 곳들이 꽤 있지 않나.”
“예. 서쪽의 아이누 섬부터 동쪽의 뉴펀들랜드 섬까지 겨울엔 무척 추운 편이라...해서 축산 연구소와 이야기해본 결과 모직물 역시 북미왕국에서 필요로 하는 물량을 생산하기까지 대략 4, 5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모직물의 수요는 순전히 행정청의 예상이라 오차는 무척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하지만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말에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래? 그래도 그 정도면 충분하군. 앞으로 5년만 기다리면 직물을 대량으로 수입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니까.”
“그렇지요.”
이미 원료는 어느 정도 확보했고 계속 증가할 예정이라는 보고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했다.
“그럼 슬슬 공장들을 짓자고. 지금부터 공장 건물을 올리고 기계를 만들어 놔야 내년에 수확한 물량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이 섬유 산업은 생각보다 규모가 커질 것 같으니 부지를 충분히 확보해 두고.”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