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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59화 (259/850)

259화

메타코멧은 이야기를 마친 후 외무청 관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봉길은 메타코멧과 외무청 관리가 함장실에서 나간 후 머릿속에서 메타코멧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정리하며 커피를 마시다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이정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해?”

이정운은 김봉길이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를 짐작하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메타코멧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와 왐파노아그 족이 기독교인들, 특히 목사에게 악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목사의 한마디에 돌변해버렸으니까요.”

“그렇지.”

메타코멧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대충 이랬다.

정성국과는 달리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않고 대서양을 건너 정착을 시도했다 굶어 죽어가던 이주민들에게 접근해 식량을 지원해주고 농사법까지 전수해 주어 결국 새로운 땅에서 정착할 수 있게 도와준 왐파노아그 족을 목사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돕기 위해 예비한 자들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우호적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주민들이 정착할 땅이 부족해지자 목사들은 슬쩍 말을 바꿨고, 왐파노아그 족은 자신들을 돕기 위해 하나님이 예비한 자들에서 어느덧 기독교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탄의 종자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목사들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자 처음에는 왐파노아그 족을 비롯한 주변 부족을 친절한 이웃쯤으로 생각하던 이주민들도 자연스럽게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러한 감정 때문에 우리를 이용해 저들에 보복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설명하는 내내 오히려 저들 때문에 우리 북미왕국이 곤란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지요. 아니. 정확히는 우리가 저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자신들이 피해를 볼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달까요?”

함대가 남하해 산 아구스틴 항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산 아구스틴 항을 둘러보았던 메타코멧은 배로 돌아와서도 생각이 무척 많은 눈치였다.

외무청 관리는 이 플로리다 지역을 최근 북미왕국이 장악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는데 메타코멧이 배를 둘러보며 파악했던 북미왕국 특유의 복식과 단발을 한 북미왕국인들은 거의 없었고 자신들과 비슷해 보이는 원주민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에 저들의 정체를 물어보니 외무청 관리는 웃으며 저들도 공식적으로는 북미왕국의 백성이라는 소리에 혼란스러워했고.

그런 메타코멧을 보고 외무청 관리가 설명했다.

일단 이 북미대륙 전체는 북미왕국의 땅이기에 이 대륙의 모든 원주민은 다 북미왕국의 백성이라는 것이 북미왕국의 공식 입장이라고.

그리고 이렇게 주장해야 서양인들이 함부로 이 대륙에 정착해 세력을 넓히거나 원주민들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하지 않겠느냐면서.

그 말에 메타코멧은 전에 김봉길이 설명해 준 이야기를 떠올리며 북미왕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메타코멧이 상황을 이해한 듯 하자 외무청 관리는 계속 설명했다.

공식적으로는 그런데 실제로는 조금 다르고 그렇기에 원주민 부족들은 선택할 수 있다고.

지금껏 자신들이 살아온 대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북미왕국에 합류해 정말 북미왕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거나를 말이다.

메타코멧이 둘의 차이점을 묻자 전자의 경우는 북미왕국에서 따로 개입하지 않지만, 후자의 경우는 북미왕국에서 여러 지원을 해 준다며 그 지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북미왕국에 합류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려던 부족들도 북미왕국에 합류한 부족들이 여러 지원을 받으며 자신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확인하고 뒤늦게 북미왕국에 합류한다고 덧붙였고.

더불어 북미왕국에 합류했다고 해도 꼭 자신들처럼 이런 복식과 단발을 할 필요는 없다면서 메타코멧이 본 사람 중에는 북미왕국에 합류한 부족의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북미왕국의 교육을 받다 보면 청결과 위생 때문에 자연스럽게 단발을 하게 될 거라고 슬쩍 이야기했고.

그러한 설명에 메타코멧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외무청 관리는 저 북쪽의 북미 동해안 지역도 시간이 흐르면 산 아구스틴 항처럼 발전할 거라고 대답했다.

다만 산 아구스틴은 수많은 원주민 부족들이 드나들지만, 저 북미 동해안 지역의 경우는 잉글랜드인도 있기에 아마 잉글랜드인과 원주민들이 함께 살아가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하면서 잉글랜드인의 경우는 원주민과는 달리 독립적으로 사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모두 북미왕국의 백성으로 살아갈 거라는 이야기에 메타코멧은 생각이 꽤 많은 눈치였다.

이에 외무청 관리는 메타코멧이 그들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김봉길과 이정운에게 보고했었고.

그 후,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함장실로 찾아와 독실한 기독교인들, 특히 목사들이 북미왕국에 위협이 될 것처럼 이야기했기에 처음에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메타코멧은 그보다는 이미 떠나지 않고 남게 되는 잉글랜드인들이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우려하는 듯 보였다.

그 말에 김봉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역시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이것 참..말만 목사지 실제로는 왕이나 다름 없다라...”

메타코멧이 이야기하기를 다른 지역과는 달리 플리머스 식민지를 비롯해 근처의 몇몇 식민지들은 목사들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고 알려줬다.

말이 목사일 뿐이지 자신이 보기엔 왕이나 다름없을 정도라면서 그 때문에 본국에서 식민지를 관리하기 위해 보낸 총독조차 이들에겐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고 했고.

문제는 목사들은 누누이 이 땅은 자신들을 위해 신이 예비한 땅이라고 이야기해왔었기에 잉글랜드 본국에서 북미왕국에 모든 땅과 권리를 매각했다는 소식에 분개하며 북미왕국에 맞선다던 남쪽의 다른 식민지와 연계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었다고 했다.

물론 북미왕국의 함대를 목격한 이후로는 잠잠해졌지만 말이다.

“설마 덤비진 않겠지? 특히 북미왕국의 종교 정책이 좀...

김봉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이정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메타코멧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들은 오히려 북미왕국의 종교 정책에 환영할 것 같은데요? 일단 저들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이곳으로 이주했다는데 우리 북미왕국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잖습니까.”

이정운의 말에 김봉길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대신 국가의 방침에 따라야 하고 여러 제한이 있잖아? 과연 저들이 그 제한들을 받아들이겠어? 그동안 왕처럼 지내왔는데? 그리고 에스파냐의 신부들도 그 문제 때문에 아직도 북미왕국에 들어오지 않고 있잖아?”

북미왕국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

이는 전생의 기억이 있는 정성국으로서는 당연한 처사였다.

다만 국가에서 종교를 어느 정도 관리할 필요는 있다고 보았다.

전생의 기억을 통해 이 시기 종교의 폐해도 알고 있었을뿐더러 훗날 수많은 사이비 종교가 판치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해서 정성국은 국가에 등록한 종교만 활동할 수 있게 하고 등록된 종교는 종교 활동을 할 수 있게 국가에서 지원해 줄 생각이었고.

국가에서 종교 활동을 위한 시설과 종교인들이 활동하는 데 불편이 없을 정도의 자금을 지원할 테니 종교인들은 국가의 방침에 따라 종교 활동에만 전념하라는 뜻이었다.

처음 이것을 알리긴 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애초에 북미왕국엔 제대로 체계를 갖춘 종교가 없었으니 당연했다.

원주민들이 믿는 자연을 경외하는 전통 신앙이나 조선인 출신들이 믿는 민간 신앙은 체계적인 종교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그리고 제대로 된 종교인도 없었고.

조선인 출신 이민자 중에 무당이나 스님은 당연히 없었고 그나마 샤먼들 대부분은 이미 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부족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고 이것에 만족해했으니까.

다만 몇몇 나이 든 샤먼들만이 이에 관심을 보였기에 정성국은 이들에게 번역된 서양의 신학 서적들을 던져주며 이를 참고해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고 교리를 만들어 종교로 등록하라고 조언해줬고.

그러다 북미왕국이 에스파냐와 전쟁을 벌이며 그 존재가 알려지자 신대륙에서 한창 멕시코 원주민들에게 선교하던 신부들은 북미왕국에도 관심을 보였다.

북미왕국은 원주민들로 구성된 국가인 만큼 제대로 된 종교는 없을 것이 뻔했고 또 원주민들로 구성된 국가인 만큼 인구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더불어 북미왕국의 국력은 생각보다 대단했고 에스파냐에서도 북아메리카의 모든 권리를 넘긴 만큼, 그리고 북미왕국도 영역을 확장할 뜻을 밝힌 만큼 북미왕국에 북아메리카 전역을 장악할 것이라 예상되었기에 북미왕국에 진출한다면 북아메리카 전역의 원주민들에게 선교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누에바 에스파냐 귀족의 도움을 받아 북미왕국에 접촉했고 처음 북미왕국에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면서 나라에서 정한 법만 지킨다면 상관없다는 이야기엔 무척이나 기뻐했지만, 막상 북미왕국의 외무청 관리가 북미왕국에서 종교에 관련된 법과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자 난색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북미왕국은 국가가 직접 종교를 관리하려 들었던 것이다.

더불어 선교에도 생각보다 제한이 많았고.

이에 신부들은 북미왕국 백성에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면서 왜 선교에 이렇게 제약이 많은 것인지 따졌지만 외무청 관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북미왕국의 법이니 이를 따르기 싫다면 북미왕국에 들어오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면서.

선교에 제한이 많은 것은 정성국이 의도한 바가 컸다.

아직 원주민들의 전통 신앙은 제대로 된 체계와 교리를 만들지 못한 상황이었고 스님을 모셔오려면 아무래도 이야기가 돌 수밖에 없기에 조선과 제대로 교류한 이후에나 스님을 모셔올 생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선교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마치 군대 같은 체계를 갖추고 수많은 경험을 축적한 선교사들로 무장한 기독교가 빠르게 퍼질 것은 뻔해 보였기에.

정성국은 이 북미왕국을 훗날 전생의 대한민국처럼 밤이 되면 시내 곳곳마다 붉은 네온사인의 십자가가 보이는 곳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더불어 전생에 주말마다 벨을 누르며 교회에 나오라는 사람들이나 지하철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피켓을 들고 설치는 사람들을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기에 북미왕국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종교를 믿을 자유가 있는 만큼 적극적인 선교는 이러한 자유를 침해한다고 해석해 철저하게 선교를 제한해 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 건물 안에서만 선교활동을 벌일 수 있었고 특히 성인이 되기 전의 아이는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서 선교를 철저하게 금지했다.

성인이 된 북미왕국인이 자신의 판단으로 종교 건물에 방문해야만 선교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신부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소속도 기존의 소속이 아닌 북미왕국의 소속이 되어야 했고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기에 로마에 연락하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이는 정성국이 이 시기 종교가 제국주의의 첨병이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또 북미왕국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통제해 이득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선 당연한 조치였지만 말이다.

이 때문에 예수회 신부들은 교황청에 이를 보고하고 협상하느라 아직도 북미왕국에 들어오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김봉길이 이를 언급하자 이정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들이 믿는 종교는 에스파냐인들이 믿는 것과는 또 다르다니 뭐라고 하긴 어렵습니다만...뭐 불만이 있더라도 치안 유지라는 명목으로 각 지역에 배치되는 경비대의 수를 생각하면 감히 나대지는 못하겠지요. 그리고 2년간 계속 증원되지 않습니까.”

북미왕국은 처음 9천의 경비대를 이 지역에 배치하고 2년간 계속 증원해 결국 3만에 가까운 경비대를 이 지역에만 배치할 예정이었다.

이 경비대들이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것을 생각한다면 감히 저들이 덤벼들진 못할 것이라는 이정운의 말에 김봉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거 처음엔 서양에 우리 북미왕국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라지만 너무 많은 병력을 북미 동해안 지역에 묶어두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사정을 파악해 보니 꼭 필요한 조치였어. 초기에 저들을 제대로 장악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골치 아파질 것 같아.”

그 말에 이정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죠. 그리고 병력 배치 문제뿐만 아니라 종교 문제도 그렇죠. 저들이 북미왕국의 법에 따르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잃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전하께선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이에 정성국을 떠올린 김봉길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정성국이 북미 동해안 지역에 과도하게 많은 병력을 배치한 것은 북미왕국의 실체가 유럽에 알려지더라도 저들이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게 하려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다.

종교에 수많은 제약을 가하고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려는 뜻은 고려처럼 너무 종교에 심취해봐야 좋을 것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헌데 덕분에 북미 동해안 지역의 장악이 쉬워질 것 같았기에 김봉길은 속으로 생각했다.

‘전하의 통찰력이 대단하긴 한데...정말 이것까지 예측해서 그랬을까? 에이...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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