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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58화 (258/850)

258화

김봉길은 작은 배를 타고 원주민과 접촉한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외무청 관리는 원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원주민을 자신의 배에 태워 함께 돌아왔기에.

외무청 관리가 사다리를 타고 배에 올라오자 김봉길이 곧바로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그래. 말이 통하던가?”

“예. 영어를 유창히 하더군요.”

외무청 관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김봉길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뭐라고 하길래 여기까지 데려온 건가?”

김봉길의 질문에 외무청 관리는 배에 올라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원주민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자신은 왐파노아그 부족의 추장인데 이 함대의 책임자를 만나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그래? 그럼 통역하게.”

김봉길은 연신 두리번거리며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는 원주민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반갑습니다. 나는 북미왕국 2함대 사령관인 김봉길입니다.”

김봉길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신을 차린 메타코멧은 통역을 통해 눈앞에 보이는 이 사내가 이 함대의 책임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우리 부족의 은인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나는 왐파노아그 부족의 추장인 메타코멧이라고 합니다.”

이에 김봉길은 살짝 당황해서 옆에서 통역해 주던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았다.

“엥? 은인? 제대로 통역한 거 맞아?”

“맞습니다.”

외무청 관리도 조금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메타코멧은 이들이 왜 당황한 표정을 지은 것인지 파악하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은 우리 부족뿐만 아니라 이 근처 원주민들의 은인이나 다름없지요.”

김봉길은 일단 대화에 집중하기로 하고 외무청 관리에게 눈짓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김봉길의 질문에 메타코멧은 과거를 회상하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만 하더라도 우리 부족과 서양인들의 관계는 참으로 좋았습니다. 이곳에 정착하려던 서양인들은 아무런 능력이 없었기에 결국 정착에 실패할뻔한 것을 당시 추장이었던 제 아버지가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작물을 재배할 방법을 알려주어 결국 서양인들이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으니까요.”

갑자기 과거 이야기가 나오자 김봉길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은 맞장구쳤다.

“그랬습니까? 그런데요?”

메타코멧은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헌데 서양인들의 이주가 점차 늘어나면서 저들은 더 많은 땅이 필요했고 영역 확장을 시도했습니다. 무력을 동원해 토지를 헐값에 팔라고 협박한 거죠.”

“아...”

“그나마 우리 부족은 피해가 덜했습니다만 이런 방식으로 몰살당한 부족들도 꽤 있었습니다. 잠자다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몰살당한 와핑거 족도 있었고,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학살당한 피쿼트 족도 있었지요.”

그러면서 메타코멧은 잉글랜드인에게 학살당한 주변 부족들의 이야기를 상세히 해 주었고 이를 듣던 북미왕국인들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김봉길이나 이정운 역시 북미 동해안 지역의 원주민들은 이미 잉글랜드 이주민들에 의해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상세하고 적나라한 이야기는 처음 들었기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거참...”

그런 북미왕국인들의 반응에 메타코멧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이러한 대립을 막기 위해 전대 추장이자 제 형인 왐수타가 원주민과 서양인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서양인들에 의해 독살당했고요.”

물론 서양인들은 이를 부정했지만, 메타코멧은 진심으로 자신의 형인 왐수타가 독살당했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건강한 형이 갑작스럽게 의문사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런 메타코멧의 말에 김봉길은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허...”

“그 후 제가 추장이 되었지만, 다음은 우리 차례였습니다. 저들은 계속해서 우리의 땅을 무력으로 겁박해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저는 조만간 저들과 커다란 충돌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지요. 헌데 어느 날 갑자기 저들은 확장을 멈추더군요. 해서 상황을 알아보니 잉글랜드는 저 남쪽의 원주민들로 구성된 나라인 북미왕국을 자극할까 두려워 이주민을 당분간 보내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제야 김봉길은 처음 메타코멧이 자신들을 보고 은인이라고 부른 것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래서 은인이라고 한 거군요.”

이에 메타코멧은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만약 북미왕국이 아니었다면 분명 우리 부족은 다른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저들에게 땅을 뺏기고 모든 부족원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팔려나갔겠지요. 저들과의 싸움에서 진 다른 부족들처럼요.”

그 말을 끝으로 메타코멧의 분위기는 너무 무거웠기에 김봉길은 섣불리 말을 걸기 어려워 잠시 침묵에 잠겼다.

“음...”

그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메타코멧은 애써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고 또 북미왕국에 궁금한 것도 있어서 이렇게 만남을 청한 겁니다.”

메타코멧이 입을 열며 분위기를 바꾸자 이것이 반가웠던 김봉길은 곧바로 이에 대꾸했다.

“궁금한 것이요?”

이에 메타코멧은 무척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잉글랜드인들이 이야기하기론 이 땅의 모든 권리를 북미왕국에 팔았다고 이야기하던데...”

그제야 메타코멧이 왜 자신들과 이야기하고 싶어했는지 이해한 김봉길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 그렇습니다. 저들은 이 북미 동해안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이 지역 전체가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에 메타코멧은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분명 잉글랜드인들에 의해 자신들이 점차 밀려나고 있었지만, 아직 이 땅의 주인은 자신들이었기에.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 메타코멧의 반응에 진정하라는 듯 손짓하며 김봉길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예. 그렇지요.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은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의 것이지요. 하지만 잉글랜드는 이곳에 살던 원주민의 소유권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이 해안가 지역 전체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잉글랜드 세력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싶었지만, 그것을 사실이 아니라고 선언하며 전쟁을 벌이기보단 이를 일단 인정하고 협상을 통해 그 권리를 사들여 저들을 몰아내기로 한 겁니다. 굳이 무의미한 피를 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김봉길의 말을 듣고 조금 진정한 메타코멧이 김봉길을 바라보았다.

“으음...그럼...”

김봉길은 메타코멧을 보고 살짝 미소지으며 선언했다.

“이 지역뿐만 아니라 이 대륙 전체가 북미왕국의 땅입니다만...뭐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원칙적으로. 그래야 서양인들이 함부로 이 땅에 정착해서 세력을 넓히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요. 우린 서양인들처럼 이곳에 이주민을 마구 보내지도 않을 것이고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을 내쫓을 마음도 전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면서 김봉길은 북미왕국에서 왜 이런 식으로 선언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더불어 현 유럽이 어떤 눈으로 이 북미대륙을 바라보는지도.

메타코멧은 처음 김봉길의 말에는 이들도 서양인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좌절했지만, 김봉길의 자세한 설명에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안도했다.

그렇게 메타코멧이 조금 진정한 듯 보이자 김봉길은 다시 한번 절대로 북미왕국이 이곳의 원주민들을 함부로 내쫓는 일은 없을 거라 확언해주면서 자신들의 보호 아래 걱정 없이 살아가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메타코멧이 김봉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그렇군요. 정말...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서도 메타코멧은 서양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부족을 발전시켜나가려고 했던 아버지나 원주민과 서양인들의 분쟁을 중재하려다가 죽은 형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런 메타코멧의 반응에 김봉길은 슬쩍 시선을 돌리며 모른척했고.

잠시 후 메타코멧이 조금 진정한 후 자신의 추태를 파악하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뒤 입을 열었다.

“크흠.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메타코멧은 조금 홀가분한 표정으로 배 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김봉길을 보고 요청했다.

“그보다 원주민이라면 내심 경멸하고 무시하던 서양인들도 북미왕국은 부담스러워한다고 들었습니다. 북미왕국은 저 에스파냐와 전쟁을 벌여 승리한 적도 있다고 들었고요. 그래서 북미왕국에 대해서 조금 알고 싶은데...혹시 저도 이 배를 타고 북미왕국의 도시에 갈 수 있습니까?”

메타코멧의 요청에 김봉길은 손을 들어 잠시 시간을 달라는 손짓을 한 뒤 통역을 해주던 외무청 관리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음...난 상관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해?”

이에 외무청 관리는 물어 무엇하느냐는 표정으로 재빨리 대답했다.

“북미왕국에 우호적으로 보이니 저희야 환영이지요.”

그런 외무청 관리의 반응에 김봉길은 피식 웃고 말했다.

“그래. 그럼. 동행해도 된다고 말해줘. 저 추장을 데리고 새진주에 가면 웅크린 늑대가 알아서 잘 구슬려 저들 부족을 북미왕국에 합류시키겠지.”

“하하하. 그렇겠죠.”

* * *

메타코멧은 함장실에서 김봉길이 건네주는 찻잔을 보고 살짝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건...도자기군요?”

외무청 관리가 통역하자 이를 전해 들은 김봉길이 살짝 이채를 띠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아시는군요?”

“예. 제가 만난 잉글랜드인 중 몇몇은 이런 도자기를 무척 귀하게 여기며 장식용으로 쓰더군요. 헌데 이건 제가 본 도자기보다 더 화려하고 귀해보이는데...”

그러면서 메타코멧은 자신 앞에 놓인 찻잔을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돌려보았다.

솔직히 그가 예전에 보았던 도자기들은 잉글랜드인들이 자랑하는 것처럼 그렇게 귀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런 메타코멧의 반응에 열심히 도자기를 자랑하던 잉글랜드인들은 역시 인디언들은 아직 문명화가 덜 되어서 이런 예술품을 알아보지 못한다며 비웃었고.

하지만 지금 자신 앞에 놓인 찻잔은 자신이 보기에도 무척 아름답고 화려해 보였다.

그런 메타코멧의 반응에 이정운이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겁니다. 우리 북미왕국에서 생산한 도자기는 무척 수준이 높으니까요.”

이에 메타코멧은 화들짝 놀랐다.

그에게 도자기를 자랑하던 잉글랜드인들은 도자기를 저 멀리 아시아에서 구해온다고 했었기에.

“예? 그럼 이 도자기를 북미왕국에서 만든 겁니까?”

“그렇습니다.”

“허어...”

메타코멧은 감탄과 탄식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이 배에 올라탄 이후 자신의 곁에서 통역을 해주는 외무청 관리의 안내 하에 이 배를 돌아다니며 살펴볼 수 있었다.

물론 제한 구역에는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배를 둘러보고 난 소감은 이들의 기술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자신들이 가장 부러워하고 서양인들에게 배우고자 했지만, 서양인들은 결코 알려주려 하지 않았던 화약도 제조해 사용한다고 했었고.

이에 서양인들이 왜 북미왕국을 부담스러워하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고.

헌데 이들은 기술뿐만 아니라 문화도 발달한 것 같아 이들도 자신들과 같은 이 땅에 사는 원주민인데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는가 싶어 자신도 모르게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함장실에 있던 김봉길이나 이정운, 그리고 외무청 관리는 그런 메타코멧의 한숨에 섞인 감정을 눈치챘지만, 그저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김봉길은 커피를 찻잔에 따라주며 메타코멧에게 권했다.

“드시지요. 차의 일종인 커피라고 합니다. 쓴맛이 강하면 여기 설탕을 적당히 타드시고요.”

메타코멧은 조심스럽게 잔을 들어 커피를 마신 후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급히 설탕을 추가해 다시 마셨다.

“으음...조금 낫군요.”

이에 김봉길은 슬쩍 웃으며 물었다.

“하하하. 그보다 저희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더 있다면서요?”

“음...”

메타코멧이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눈치였기에 김봉길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지요.”

그러자 메타코멧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잉글랜드 본국이 북미왕국에 모든 권리를 팔아넘겼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많은 잉글랜드인이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만...우리 왐파노아그 부족의 영역과 가까운 플리머스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꽤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이 배를 타기 전까지의 상황입니다만...”

“그런데요?”

메타코멧은 김봉길을 바라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디 그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독실한 기독교인들이고 그렇기에 같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무척이나 배타적입니다. 물론 북미왕국이 이처럼 대단하니 함부로 적대하진 않을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러면서 메타코멧은 자신들 주변의 잉글랜드인들의 성향과 정보를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이에 특히 이정운과 외무청 관리는 무척 집중하며 주의 깊게 메타코멧의 이야기를 들었고.

꽤 긴 이야기가 끝이 나자 김봉길은 웃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렇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한참을 이야기했기에 목이 탄 듯 적당히 식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마신 메타코멧은 웃으며 대꾸했다.

“이 정보가 부디 북미왕국에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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