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매사추세츠 식민지의 한 선술집에서 잭이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제이콥이 선술집으로 들어와 주변을 둘러보다가 잭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이봐! 잭! 나와봐!"
"응?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제이콥은 태평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잭을 보고 답답한 듯 잭에게 다가가 잭의 팔을 잡아끌면서 소리쳤다.
"빨리 나와봐!"
그런 제이콥의 반응에 잭은 무척 당황하며 들고 있던 맥주잔을 부여잡으며 물었다.
"어? 야. 아직 맥주 남았다고. 대체 무슨 일인데?"
"밖에 북미왕국의 배, 아니 북미왕국의 함대가 보여!"
"뭐?!"
제이콥의 말에 잭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들고 있던 맥주잔을 놓고 제이콥을 따라 밖으로 나갔고 그건 대낮부터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다른 주당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선착장 근처까지 뛰어갔고 이미 북미왕국의 함대가 왔다는 소식에 이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나온 인파를 간신히 헤쳐나간 후에야 잭은 비로소 천천히 다가오는 북미왕국의 함대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허어..."
북미왕국의 함대를 처음 본 순간 잭은 감탄사를 토해냈다.
크고 작은 동일한 모양의 배들이 일제히 거리를 두고 접근하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점차 가까워지며 배의 모습을 살펴본 잭은 묘한 표정으로 턱수염을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뭐랄까. 좀 기묘한 배네."
잭의 평가에 제이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돛이 없기도 하고 선체의 모양도 기존의 배와는 다르고 해서...좀 특이하더라고."
분명 제이콥의 말처럼 선체의 모양도 기존의 범선들과는 달리 V자로 뾰족한 형태라 특이했고 갑판 위에 돛이 아닌 정체불명의 구조물이 있어 더욱 특이했지만, 그보다는 점차 다가오는 배의 모습에 무척 기묘하다는 느낌을 받은 잭이었다.
"그보다 왜 마법으로 움직인다는 소리가 나왔는지 알겠다. 저거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까. 처음엔 유령선인 줄 알았다니까?"
잭의 말에 맞장구친 제이콥은 잠시 북미왕국의 함대를 구경하다가 잭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아직 시간이 좀 남지 않았어? 왜 북미왕국의 함대가 여길 온 걸까?"
제이콥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긴 잭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흐음...내 생각엔...아마 버지니아의 멍청이들 때문이 아닐까 싶어."
"응?"
이미 이 매사추세츠 식민지에도 버지니아에 관한 소식이 알려진 후였다.
버지니아 식민지 주민들이 북미왕국의 소문에 의구심을 표하며 북미왕국에 대항하기 위해 무장하겠다며 무려 총독부의 무기고를 털었다는 소식을 말이다.
그러한 소식에 매사추세츠 식민지 주민들의 의견은 반으로 엇갈렸다.
누구는 버지니아 식민지 주민들의 주장대로 북미왕국은 소문만 무성할 뿐이지 실제로 이를 본 사람이 있느냐며 버지니아 식민지 주민들을 응원했고 누구는 본국이 괜히 북미왕국에 식민지 전체를 넘겼겠느냐며 오히려 저들 때문에 자신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경계했다.
잭과 제이콥은 후자였고.
"생각해 봐. 북미왕국의 영역은 남쪽이잖아. 그건 저 함대가 이미 버지니아를 들렸다는 소릴테고."
그 말에 제이콥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북미왕국과 버지니아 식민지 주민들이 정말 충돌했다면 훗날 북미왕국인들이 이곳에 남아있는 자신들을 경시하지 않을까 싶어서.
"어? 그럼...버지니아의 주민들을 토벌하고 올라오는 거란 소리야?"
이에 잭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그건 모르지. 버지니아가 어떤 상황인지는. 다만 저들이 이곳에 예정된 날짜보다 이르게 온 것은 분명 버지니아의 소식을 듣고 움직인 게 아닐까 싶어. 버지니아 주민들은 북미왕국의 소문을 모두 거짓으로 생각한다면서? 헌데 저 북미왕국의 함대를 본다면 생각이 조금 바뀌지 않겠어?"
잭의 말에 제이콥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확실히 저 함대를 본다면 버지니아의 주민들도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겠지."
"그리고 버지니아에서 들려오는 소문에 혹시나 했던 다른 식민지 주민들에게 경고하는 의미이기도 할 테고. 그게 아니라면 굳이 여기까지 올라올 이유가 없잖아?"
"아..."
제이콥은 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이곳에 남아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려고 결정 내렸지만 서인도 제도로 이주하려던 사람들 가운데 버지니아 식민지의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직 남아 눈치를 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하지만 저 북미왕국의 함대는 마치 그런 이들에게 확실하게 마음을 정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때 잭이 덧붙여 말했다.
"뭐 북미왕국의 함대가 이곳까지 올라온 덕분에 요 밑이 시끄러워지진 않을 테니 다행이지. 그리고 그 광신도들은 곧 이곳을 떠날테니..."
버지니아 식민지의 소식이 전해진 후 이곳 매사추세츠 식민지는 단순히 의견만 나뉘었을 뿐이었지만 바로 남쪽의 플리머스 식민지의 경우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행동하려 했었다.
예정된 날짜가 지나면 분명 북미왕국의 군대가 올라올 테니 그 전에 버지니아 식민지에 지원을 갈 의용병을 모집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북미왕국의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플리머스 식민지도 북미왕국에 대항해 의용병을 모집한다면서 이곳까지 시끄럽게 만들진 못할 것으로 생각해 잭이 비아냥거리자 제이콥은 혹시 주변 사람이 이를 들었을까 걱정해 잭의 옆구리를 찔렀다.
"야."
이곳은 플리머스 식민지와 가까웠기에 꽤 엄격한 청교도인들이 많았고 이들은 북미왕국을 좋게 보지 않았기에 괜히 시비가 붙을 우려가 있었다.
그런 제이콥의 행동에 잭은 옆구리를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조용히 할게."
북미왕국의 함대는 선착장에 입항하진 않고 작은 배들을 내려 주변을 측량한 후 측량이 끝나자 일제히 선회해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 광경을 계속해서 바라본 제이콥이 중얼거렸다.
"저걸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드네."
"무슨 생각?"
제이콥은 조금씩 작아지는 북미왕국의 함대를 보면서 말했다.
"이곳에 남아있기로 한 결정을 후회할 것 같지는 않다고. 저걸 보면 북미왕국은 소문은 대부분이 사실일 테니 소문처럼 부유하다는 뜻 아니겠어?"
북미왕국의 소문 중에는 분명 그런 소문들도 있었고 자신들은 이곳에 남아있기로 결정을 내렸기에 북미왕국이 정말 소문처럼 강국이자 부국이었으면 했다.
이에 잭도 이젠 점으로 보이는 북미왕국의 함대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 * *
2함대는 적당히 해안가를 측량하면서 계속해 북진했고, 결국 뉴펀들랜드 섬까지 도착했다.
김봉길은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뉴펀들랜드 섬에 도착했다는 보고에 갑판 밖으로 나갔다가 싸늘한 바람에 잔뜩 움츠러들면서 탄식했다.
"와...여긴 정말 싸늘한데?"
이에 이정운은 과연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그렇네요."
"어휴. 이곳에 배치될 친구들은 날씨 때문에 고생 좀 하겠는데? 여기 어째 포로나이보다 더 추운 거 같아."
"그러게요. 아직 가을인데도 이렇게 쌀쌀하면...겨울엔 정말 힘들겠는데요? 보급을 제대로 해 줘야겠어요."
그렇게 날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곧 눈앞에 보이는 허름한 선착장과 그 선착장에 정박해있는 여러 어선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생각외로 어선들이 꽤 많네? 얼마 안 될 줄 알았더니."
김봉길의 말에 이정운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으음...좀 의외인데요? 설마 이곳에서 겨울을 나는 건가?"
이에 김봉길은 어깨를 으쓱하며 명령을 내렸다.
"일단 접근해보자고. 근데 저 선착장에 지급 전선이 정박할 수는 있나?"
"흠...혹시 모르니 측량부터 하지요."
"그래. 그러자고. 에취. 어휴. 그동안 따뜻한 새진주에서만 지내서 그런가...겉옷을 입었는데도 춥네. 옷을 몇 개 더 껴입어야겠다."
새진주는 따뜻한 것을 넘어 더운 지역이었기에 이곳에서 최근 시간을 보냈던 김봉길은 북쪽의 추위에 발을 동동거렸다.
그런 김봉길을 보고 이정운이 웃으며 말했다.
"바람이 계속 불어서 그렇죠. 측량이 끝날 때까진 들어가 계세요."
"그래야겠다."
* * *
측량 결과 지급 전선은 선착장에 정박하기 어렵다는 보고에 김봉길은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작을 배를 타고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선착장에는 이미 여러 서양인이 나와 있었다.
이들은 항구에서 쉬고 있다가 특이한 함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북미왕국의 함대가 아닌가 싶어 곧바로 나온 것이다.
김봉길은 선착장에 올라 서양인들을 바라보자 서양인 중 대표로 보이는 한 덩치 큰 사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김봉길은 함께 온 외무청 직원에게 통역을 부탁한 후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잉글랜드인인가?"
"그렇습니다."
덩치 큰 사내는 잔뜩 주눅이 든 채로 꽤 공손하게 대답했고 그런 반응에 김봉길은 피식 웃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곳의 주민은 아니지?"
"그렇습니다. 본국에서 고기를 잡기 위해 이곳까지 온 어부일 뿐이지요."
김봉길은 뒤편에 서서 이쪽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는 사내들을 가리키며 불었다.
"저기 있는 다른 자들도 모두 어부인가?"
"그렇습니다. 이곳은 워낙 척박한 곳이라...주민들은 없고 그저 고기를 잡기 위해 이곳까지 온 어부들의 휴식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대답에 김봉길은 이 허름한 선착장과 저들이 쉬고 있었던 허름한 목제 건물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이곳에서 거주하며 이 항구를 관리하는 사람도 없고?"
"그렇습니다."
덩치 큰 사내의 대답에 적당히 이곳 사정을 파악한 김봉길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으음...그래. 그보다 슬슬 겨울이 다가오는데 설마 이곳에서 겨울을 나는 건가?"
"그렇습니다. 보통은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잡은 대구를 잘 말렸다가 봄이 되면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김봉길은 덩치 큰 사내의 대답에 웃음을 머금었다.
"호오. 그래?"
김봉길도 조선에서 잡히는 말린 대구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었다.
헌데 이 서양인들도 자신들처럼 말린 대구를 먹는다는 소리에 이들은 어떻게 조리해서 먹는지 궁금해졌고.
그때 덩치 큰 사내는 김봉길이 웃자 기회다 싶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음?"
"혹시 북미왕국에서 오신 겁니까?"
그제야 자신들의 정체를 아직 말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김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네. 북미왕국 해군 소속이지."
김봉길이 순순히 대답해주자 덩치 큰 사내는 속으로 안도하면서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저기...저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본국에선 기존처럼 이곳에서 대구를 잡아도 된다고 이야기하긴 했습니다만..."
덩치 큰 사내의 질문에 김봉길은 웃음을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이 섬도 북미왕국의 영토가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자네들이 이 섬에 머무르는 것도 이 근해에서 어업을 하는 것도 우리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금지해야 하지."
김봉길의 말이 통역을 통해 전해지자 덩치 큰 사내뿐만 아니라 이 대화에 무척 집중하고 있던 뒤쪽의 선원들도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탄식했다.
이 대구잡이는 자신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였으니까.
"아아..."
김봉길은 그런 어부들의 반응에 피식 웃고 입을 열었다.
"원칙적으로야 그런데...뭐 자네들의 생계를 끊어버릴 수야 없는 법 아닌가. 그러니 지금처럼 이곳에서 고기를 잡아도 되네. 자네들이 늙어 죽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조업하며 먹고 살 수 있을 거야."
김봉길의 말이 전해지자 뒤쪽의 어부들은 환호하기 시작했고 덩치 큰 사내는 김봉길에게 연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봉길은 웃으며 저들이 조금 진정되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단 이 조치는 그동안 이곳까지 와서 어업에 종사했던 자들을 대상으로만 허락한 거야. 그 외의 어부들이 이곳에서 조업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어. 그러니 우리가 발부한 조업 허가장을 잘 보관하고 있게. 그 조업 허가장이 없이 이곳에서 조업하다 걸리면...어떻게 될지는 짐작하지?"
김봉길은 싱글싱글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이를 듣고 덩치 큰 사내와 어부들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요. 물론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이를 주변에도 꼭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반응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김봉길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외에는...아. 올해는 그냥 넘어가겠지만 내년부턴 이곳을 이용하려면 항구 이용료 등을 내야 할 거야."
이 섬도 이 항구도 북미왕국의 소유가 되었으니 내년부턴 이를 이용하려면 합당한 수준의 이용료를 내는 것은 당연했기에 덩치 큰 사내는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 덩치 큰 사내의 대답에 김봉길은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이 북미 대륙에서 자네들이 접근할 수 있는 항구는 오로지 이곳뿐일세. 다른 북미 동해안 지역의 항구에는 입항이 불가능하다는 뜻일세. 뭐 피치 못할 사정으로 표류한 경우라면야 어쩔 수 없지만...그 외에는 가차 없이 공격할 테니 이 점 명심하게."
김봉길의 말은 함부로 북미왕국 해안에 드나들며 밀무역하지 말라는 소리로 알아듣고 덩치 큰 사내는 자신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우렁차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주변에도 그렇게 알리겠습니다!”
김봉길은 이 정도면 전할 것은 다 전했다고 생각해 이 섬을 한번 둘러볼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뒤쪽의 병사들에게 조업 허가장을 신청하도록 하게.”
이에 덩치 큰 사내는 허리를 깊숙이 굽히며 소리쳤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