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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53화 (253/850)

253화

김봉길은 지급 전선 갑판 위에서 망원경으로 제임스 강 근처 공터에 수천 명의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을 확인하고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건 뭐야. 쟤들이 왜 저기 있어?"

보고를 받고 김봉길과 함께 갑판으로 나와 그의 옆에서 망원경을 통해 몰려 있는 사람들을 확인한 이정운은 자신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손에 머스킷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저들이 바로 총독부의 무기고를 털어 우리 북미왕국과 맞설 생각을 한 그 용감하고도 살짝 모자란 친구들 같은데...왜 저곳에 몰려 있는 걸까요?"

이번 버지니아 사태에 북미왕국이 개입하기로 한 후 김봉길은 새진주에서 2함대 대부분을 이끌고 플로리다 지역으로 이동해 탐사대에도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북진할 것을 요청했다.

이정호 탐사대장 역시 상황을 파악한 후 곧바로 탐사대를 이동시켰고.

그런 탐사대의 보급을 책임지기 위해 2함대는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다 3일 전 버지니아 근처에서 서인도 제도로 돌아가 급히 잉글랜드의 선박을 끌고 온 클레멘트와 합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클레멘트가 전하기론 북미왕국에 대항하기로 마음먹은 주민들 대부분은 아마도 제임스타운 인근에 머물러 있을 거라고 했고.

이를 전해 듣고 김봉길은 탐사대에 마지막으로 보급을 해주면서 이정호에게 이를 알리며 저들이 제임스타운 안에서 북미왕국이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 가정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상의했었다.

헌데 저들이 저렇게 나와 있는 것을 보니 어제 논의한 것들은 이미 무용지물이 된 상황이라 김봉길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젠장...이러다 탐사대와 충돌하는 거 아니야?"

"어? 그러네요? 저곳은 도하 예상 지점과 가까우니..."

제임스타운 인근 제임스 강은 생각보다 폭이 넓었고 강도 꽤 긴 편이었기에 이를 우회하려면 생각보다 먼 거리를 우회해야 했다.

그 때문에 저 무장한 식민지 주민들이 뭉쳐있는 공터에 탐사대가 도착하면 2함대가 그들을 강 건너편으로 옮길 생각이었고.

"하...이거 일이 꼬이는데..."

북미왕국은 이번 사태를 최대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 때문에 버지니아 주민들이 함부로 대들지 못하도록 2함대와 탐사대를 전격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적당히 북미왕국의 무력을 과시해 저들의 저항 의사를 꺾기 위해서.

헌데 이대로는 저들과 탐사대가 만날 것 같아 김봉길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이정운이 과한 걱정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이정호 탐사대장도 현 상황을 알고 있고 미리 이야기도 해 두었으니 먼저 공격하진 않을 겁니다만..."

그런 이정운의 말에 김봉길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정호 탐사대장은 믿지. 저 머저리들을 믿기 힘들어서 그래. 탐사대를 보고 멋모르고 공격하기라도 하면..."

이정운은 다시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대고 저들을 자세히 살핀 후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글쎄요...저희 함대를 발견한 후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면 탐사대를 보고 덤비기보단 뒤도 안 보고 도망칠 것 같은데요..."

김봉길 역시 망원경을 통해 저들의 모습을 살핀 후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 그렇긴 한데..."

김봉길이 뭐라 말하기 전에 이정운이 소리쳤다.

"어? 이동합니다. 아. 저기 나룻배들이 잔뜩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니 제임스타운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봅니다.”

이에 김봉길은 다시 무장한 버지니아 주민들을 확인하고 그나마 안도하며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일단 함대를 저쪽으로 최대한 붙여 정선하도록 하지."

"아...혹시 탐사대와 조우할 것을 대비하시는 겁니까?"

김봉길은 찡그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저들이 탐사대를 만나 발포한다면 근처에 포탄이라도 몇 발 날려야지."

"알겠습니다. 준비해두도록 하지요."

* * *

버지니아 의용병들은 베이크 일당의 명령에 따라 제임스타운으로 복귀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예전에 들었던 북미왕국의 소문들.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저걸 보니 다른 소문들도 모두 사실 아닐까?"

"그럴 수도...그럼 이제 어쩌지?"

그때 한 사람이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들이 저렇게 함대를 끌고 온 거...혹시 우리를 토벌할 병력을 싣고 오는 거 아닐까?"

"뭐?"

"그렇잖아. 본국은 이 땅 전체를 이미 팔아넘겼잖아. 총독이 저들에게 알렸을 수도 있지."

"으음..."

그 말에 의용병들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처음엔 이 먼 외곽까지 나오는 것이 무척 귀찮았었지만 실제로 단체 사격을 해보니 지휘부가 왜 이런 훈련을 계획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의용병들은 단체로 사격을 하면서 폭음과 흑색화약의 연기와 냄새에 익숙해지면서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고.

다들 하루라도 빨리 북미왕국과 한판 붙길 바랐다.

그리고 다들 가뿐하게 북미왕국의 전사들을 물리칠 거라 여겼고 저들이 물러난 후 더 많은 땅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장밋빛 환상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훈련이 끝났을 때 갑자기 등장한 북미왕국의 함대를 보고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더불어 소문처럼 정말 북미왕국이 단순한 대부족이 아닌 제대로 된 인디언들의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적이 단순히 무장한 전사가 아닌 제대로 훈련받은 병사들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기에 의용병들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때 누군가가 강에 멈춰선 북미왕국의 함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강 건너는 것도 위험하지 않나? 저들이 공격하면...”

“그러게...”

베이크 일당 중 하나인 검은 머리의 중년 사내는 돌아다니면서 그런 의용병들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심각한 얼굴로 베이크에게 달려가 애써 목소리를 죽이면서 말했다.

"이봐. 베이크.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아. 의용병들이 동요하고 있어."

"그럴 테지.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북미왕국이 함대를 보낼 줄은 예상 못 했으니까."

베이크는 북미왕국의 배를 보고 무척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북미왕국은 미개한 인디언들에 불과하다고, 북미왕국의 소문은 단순히 소문일 뿐이라고 주장해왔었는데 실제 목격한 북미왕국의 커다란 배는 과연 북미왕국이 기껏해야 통나무 속을 파 타고 다니는 미개한 인디언과 같은 원주민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고 지휘부인 자신들이 동요하면 끝이었기에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저들이 저렇게 빠르게 함대를 움직였다는 뜻은 이곳 상황을 다 파악했다는 뜻일 거야. 총독이 알렸겠지."

"빌어먹을..."

"그러니 저들은 우리가 저들에게 대항할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왔을 확률이 높아. 마음 단단히 먹어. 의용병들에게도 전투가 벌어질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알리고."

베이크의 말에 검은 머리의 중년 사내는 긴장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으음..."

"모든 의용병이 강 건너편으로 이동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야. 그러니 의용병들이 너무 동요하지 않도록 관리하자고."

총독부를 너무 자극하는 것도 좋지 않았고 어차피 버지니아 주민들은 제임스 강을 따라 곳곳에 정착해 있었기에 훈련 장소를 이 강 건너 공터로 정했던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이 모두 강 건너편으로 건너는 데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 분명했고.

애초에 이들이 이곳에 모이기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기억하는 검은 머리의 중년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음?"

검은 머리의 중년 사내는 남쪽에서 올라오는 먼지구름을 보고 베이크에게 소리쳤다.

"저길 봐!"

"음?"

잡담하며 이동하던 의용병들 역시 남쪽에서 올라오는 먼지구름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멈추고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잠시 뒤 거침없이 말을 달리는 수천의 기마병을 확인하고 소리쳤다.

"뭐...뭐야! 저건!"

"헉! 기병인가?"

"맙소사! 북미왕국의 기병들이다!"

"으악!"

"이...이쪽으로 온다!"

북미왕국 소속으로 짐작되는 기병들이 자신들을 향해 거침없이 접근하기 시작하자 의용병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검은 머리의 중년 사내는 급히 베이크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어쩌지? 도망쳐야 하나?"

기병을 확인한 후 베이크의 곁으로 달려온 갈색 머리 청년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래. 베이크. 아직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못했다고. 거기에 평지에서 기병들과 싸울 수는 없잖아. 빨리 마을로 도망치자고.“

베이크 역시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기병들을 파악하고 잔뜩 당황했지만, 갈색 머리 청년의 말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에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기병을 상대로 도망치자고? 제정신이야? 거기에 의용병 전부를 단번에 태울 배도 없어! 저들에게 지레 겁먹고 죽자는 소리야?!"

"아...“

북미왕국 기병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잔뜩 얼어붙었던 베이크 일당과 의용병 지휘부는 베이크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듯 보였다.

이에 베이크는 다시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당장 의용병들에게 화약과 탄환을 나눠줘! 그리고 의용병들을 정렬시키고! 정신 차려! 아까 훈련받은 대로 사격하면 된다고! 말까지 탔으니 커다란 표적일 뿐이야! 알아들어?!“

"아...알았어!“

박력 넘치는 베이크의 외침에 베이크 일당과 의용병 지휘부뿐만 아니라 근처의 의용병들도 조용해지며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소리치는 베이크를 바라보았다.

이에 기회라고 느낀 베이크는 더욱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명심해! 제대로 준비하고 있다가 저들이 달려들 때 머스킷을 발사하기만 한다면 화약 무기에 익숙하지 못한 저들은 지레 겁먹고 도망칠 거야! 그게 유일한 살길이라고! 알았어?!”

베이크의 말을 듣고 희망이 생긴 베이크 주변의 사람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알아들었으면 뭐해! 빨리 움직여! 의용병들을 통제하라고!“

베이크의 명령에 주변에 있던 베이크 일당들과 의용병 지휘부들을 부리나케 움직이며 전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모습을 확인한 베이크는 시선을 돌려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수천의 기병 무리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 * *

집결지를 향해 빠르게 달리던 탐사대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우왕좌왕하는 움직임을 멈춘 무장한 주민들을 발견한 후 속도를 줄이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멈췄다.

선두에서 달리던 이정호는 품에서 망원경을 꺼내 저들을 관찰한 후 중얼거렸다.

"흐음...아무리봐도 저들이 우리 북미왕국에 맞서 싸우겠다는 그 얼간이들 같은데?"

이정호의 보좌관 역시 망원경을 통해 저들을 대충 훑어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모두 머스킷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하지만 저들이 우리 탐사대의 북진을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요?"

보좌관은 북미왕국에 대항하려는 잉글랜드인들이 탐사대의 북진을 파악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정호의 판단은 달랐다.

"글쎄...저 꼴을 보면 우리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방어하려고 나온 거 같진 않은데? 최소한 평지에서 강을 등지고 아무런 장해물도 없이 기병대를 상대하려는 머저리가 있을 리가 있나. 아무리 저들이 전문적인 군사 지식이 없다고 해도. 거기에 우왕좌왕하는 꼴을 보면 뭐..."

이정호의 보좌관은 다시 망원경을 통해 저들의 행동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저들이 탐사대를 막을 생각이었다면 탐사대를 발견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텐데 저들은 탐사대를 보고 전체적으로 당황했다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나마 지휘관으로 생각되는 몇몇이 이들을 통제해 어떻게든 사격 대형을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그건 또 그렇네요. 그럼 우연이라는 소린데...훈련이라도 하려는 생각이었을까요?"

이정호는 아직도 제대로 된 대열을 갖추지 못하는 무장한 주민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저 꼴을 보면 훈련이 절실하긴 해 보여."

이에 보좌관은 저들의 진형을 살피고 무척 아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쉽군요. 저 모습을 보면 일제히 말을 달리면 그냥 도망칠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이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씩 대열을 갖추고는 있지만, 이정호가 생각하기엔 저들이 제대로 대열을 정비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도망칠 곳이 있긴 한가? 강을 등진 형국인데. 죄다 물귀신이 되겠지. 저 강, 폭이 꽤 넓지 않아?"

"그것도 그렇군요. 그 보다 어쩌시겠습니까? 선제공격은 안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대로 대치하실 겁니까?"

"흐음..."

보좌관의 물음에 이정호는 잠시 고심했다.

3일 전 마지막 보급을 받으면서 김봉길과 의논한 계획은 먼저 2함대가 제임스타운으로 접근해 제임스타운의 주민들을 압박하는 사이 탐사대가 제임스타운 맞은편에 도착하면 2함대의 도움을 받아 저 넓은 제임스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그 후 저들을 압박한 후 무장을 해제하도록 설득할 생각이었고.

2함대와 탐사대를 목격하고도 고집을 피우면 훈련을 가장한 무력시위를 해서 저들이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저들은 탐사대가 2함대와 만나기로 한 지역에 나와 있었고 탐사대를 두고 강을 건널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사격 대열을 만들고 있는 만큼 순서를 바꿔 설득보단 무력시위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저들은 우리 북미왕국에 대한 소문이 모두 과장된 거짓말이라고 여겨 저렇게 우리에게 맞설 생각을 한 거랬지?"

"그랬죠."

이에 이정호는 씩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보여주자고. 저들이 들었던 북미왕국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소문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이정호의 말에 보좌관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재밌겠네요. 그럼 우리도 일자로 늘어설까요? 일제 돌격할 것처럼?“

보좌관의 말에 이정호는 대소하며 말했다.

"푸하하하. 그거 괜찮네. 지금은 우리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우니까...천천히 가까이 가자고. 대신 안전거리는 확보하고 저들을 향해 조준하지도 마. 딱 3발씩만 쏘자고."

"하늘을 향해 쏴야겠군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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