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어느덧 베이크 일당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버지니아의 한 선술집에서 베이크는 갈색 머리 청년의 보고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야?"
이에 갈색 머리 청년은 선술집 안에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게 소리쳤다.
"그렇다고! 무려 5천 명에 가깝다니까?"
시위를 계획해 비교적 평화롭게 버지니아 총독부를 굴복시키고 무기고를 열어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머스킷과 화약을 확보한 것을 계기로 베이크와 일당들은 의용병을 모집했다.
그러자 아직 버지니아에 남아있던 식민지 주민 중 대다수가 의용병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식민지 주민 대다수는 그동안 자신들이 힘들게 개간한 이 버지니아에서 떠나야 하는 사실이 불만스러웠지만, 북미왕국의 소문이 워낙 대단해 함부로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베이크와 일당들이 열심히 돌아다니며 떠들어 댄 끝에 여론 자체를 바꾸어 버렸고 그 덕분에 버지니아 식민지 주민들은 정말 북미왕국이 소문대로 대단한지 의심스러워하면서 정말 이곳을 떠나야 하는 건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베이크와 일당들이 선동하자 자연스럽게 시위에 가담했고 그 결과 총독부를 굴복시키고 무기고에서 무기와 화약을 확보하자 자연스럽게 북미왕국과도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또한, 이미 서인도 제도로 떠난 식민지 주민들도 꽤 있었기에 그들이 경작했던 땅들은 비어버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왕국을 물리친다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주인 없는 땅들은 자신들이 획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식민지 주민들은 너도나도 의용병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주민들이 무려 5천 명에 가깝다는 말에 고무된 베이크는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으하하하. 머스킷으로 무장한 의용병이 5천이라니! 그 정도면 북미왕국 놈들이 이곳 버지니아에 발을 들이는 즉시 내쫓을 수 있겠는데?"
이에 갈색 머리 청년이 선술집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물론이지! 우리 의용병이 일제 사격 하는 순간 북미왕국 놈들은 화들짝 놀라서 오줌을 지리며 벌벌 떨거나 도망칠걸?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그 말에 선술집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으면서 화답했다.
"하하하! 그럼! 그렇고말고!"
"암! 저들이 덩치가 크다고 해 봐야 미개한 원주민들이 뭉친 것에 불과하다고."
베이크는 그러한 분위기를 만족스럽게 쳐다보다 자리에 앉아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며 다른 의용병들과 떠들고 있는 갈색 머리 청년을 붙잡고 구석에 앉히며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총독부의 반응은 어때?"
갈색 머리 청년은 목이 타는지 단숨에 맥주를 들이켠 후 말했다.
"푸하. 다행히 별다른 반응은 없어. 총독부의 병사들은 총독부를 경비하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이야."
"그래? 그건 다행이군."
베이크는 갈색 머리 청년의 대답에 안도했다.
물론 이미 식민지 주민들이 자신들의 뜻에 동조한 만큼 함부로 총독부가 움직이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이번 일로 자신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총독이 허튼짓할 수도 있었기에.
갈색 머리 청년은 그런 베이크의 반응에 가소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총독도 우리 의용병이 두려울 테니 어쩌겠어."
이에 근처에 앉아 있던 베이크 일당들은 웃었다.
"그럼. 그럼."
"겁쟁이 총독은 그저 총독부에 콕 틀어박혀 떠는 것 밖엔 못 하겠지."
"으하하하."
갈색 머리 청년은 연거푸 맥주를 들이켜 얼굴이 불콰해진 상태에서 베이크를 보고 말했다.
"다만 계속해서 철수 준비와 짐을 싸는 것으로 봐선...아마 총독과 병사들은 예정대로 10월이 되면 이곳을 떠날 것 같아."
총독부가 해체되고 총독과 병사들이 이곳을 떠난다면 본국과의 교역이 끊어질 우려가 있었다.
이에 다른 일행들은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 정말?"
"그럼 이곳은 어떻게 되는 거지?"
베이크는 이들이 동요가 퍼질 것을 우려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흠...차라리 잘 됐어."
"뭐?"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베이크를 쳐다보는 베이크 일당들이었고 베이크는 손을 내저었다.
"아. 오해하진 마. 나 역시 본국과 아예 연을 끊을 생각은 아니니까. 하지만 본국과 총독부는 북미왕국의 과장된 소문을 철석같이 믿고 저들과 맞서길 꺼리고 있잖아? 그러니 지금은 이곳에 저들이 남아봐야 좋을 것 없어."
그러면서 총독부 하인들이 북미왕국의 국력이 정말 대단하다면서 식민지 주민들에게 서인도 제도로 이주하는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을 상기시키자 베이크 일당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한데...이곳의 주 수입원인 담배를 팔려면..."
이에 베이크는 걱정 말라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우리가 북미왕국을 물리치고 본국과 총독부에서도 북미왕국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면 다시 돌아올 거야. 그때 협상을 하면 되겠지."
"하긴..."
정말 자신들이 북미왕국을 물리치고 이 땅을 지켜낸다면 본국에서도 다시 이곳을 장악하려 들 것이라는 베이크의 예측도 일리는 있었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베이크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의용병에 많이들 합류했는데...훈련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훈련?"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싶어 베이크를 쳐다보는 일당들을 보고 베이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머스킷에 익숙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아...그건 그렇지."
의용병에 참여한 사람 중 절반 정도는 집에 있던 머스킷을 들고 왔고 남은 절반은 의용병에 참여해 머스킷을 받아갔다.
그런 만큼 모든 사람이 머스킷을 잘 다루지는 못할 것이라는 베이크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총성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고."
"음? 총성에?"
갈색 머리 청년이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되묻자 베이크가 말했다.
"나도 그렇고 너희들도 사냥하면서 머스킷을 쏴 본 적이 있긴 하지만...그건 한 발씩 사격할 때의 총성이잖아. 수천 정의 머스킷이 일제히 발사되는 것은 또 다르단 말이지. 그러니 총성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
베이크의 말이 끝나자 검은 머리 중년 사내가 조금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흐음...그것도 일리는 있는데...우리가 화약이 풍족한 건 아니잖아? 그걸 고려하면 좀..."
확실히 개인이 보유한 화약도 많지 않고 무기고에 비축되어 있는 화약 역시 많은 편은 아니었다.
거기에 자신들은 본국과 총독부의 결정에 반대했으니 추가로 화약을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 뻔했고.
이에 베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함부로 화약을 낭비할 수는 없지. 당분간 화약의 보급도 쉽지 않을 테니. 하지만 생각해 보라고. 절반 정도는 머스킷을 다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인디언들 앞에서 제대로 머스킷을 발사할 수 있을까?"
제대로 머스킷을 발사할 줄은 알아야 북미왕국의 전사들을 물리칠 수 있지 않겠냐는 베이크의 말에 검은 머리 중년 사내는 수긍하며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흠...알겠어. 문제는 훈련하려면 의용병을 모아야 하는데 그러면 총독부에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베이크는 갈색 머리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에이. 그거야 뭐...미리 알리면 되지. 총독부의 병사들과 안면은 있잖아?"
갈색 머리 청년은 살짝 곤란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다가 물었다.
"그렇긴 한데...그럼 훈련한다고 말해야 할까?"
"그건 좀 그렇고...뭐 사냥 대회라도 연다고 알려."
"알았어."
* * *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탕!'
귀가 먹먹할 정도의 폭음이 잦아들자 검은 머리 중년 사내가 베이크의 옆에서 소리치듯 말했다.
"확실히...베이크 네 말이 맞았어. 아마 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인디언들 앞에서 추태를 보일 수도 있었을 거 같아."
"그러게. 고작 100명씩 묶어 사격하는 데도 이렇게 다를 줄은..."
처음 베이크 일당이 의용병들을 제임스타운 인근의 공터에 소집했을 때만 하더라도 분위기는 무척 흥겨웠다.
총독부에 이야기한 것처럼 마치 사냥 대회라도 연 것 같았달까.
하지만 사람들을 분류해 사격 경험이 없는 자들부터 사격을 시작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귀가 먹먹할 정도의 총성과 시야를 가리는 연기에 당황한 것이다.
이는 총을 처음 사용해본 자들은 물론이고 사냥 경험이 있어 총을 사용해본 사람들조차 비슷했다.
그 후 머스킷을 발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나 당황해 발사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머스킷을 발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나왔고.
하지만 계속해서 100명씩 조를 짜서 사격하기 시작하자 슬슬 폭음과 앞을 가리는 연기에도 적응하기 시작한 의용병들이었다.
"그나마 이젠 총성에는 다들 익숙해진 것 같은데? 저길 보라고."
처음 총성이 들리자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사격하는 조를 유심히 바라보던 의용병들은 어느덧 다시 군기가 빠진 모습으로 총성이 들려도 개의치 않고 옆 사람과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이를 보고 베이크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하하하. 그렇네. 처음엔 많이 긴장한 표정들이었는데 말이지."
이에 검은 머리의 중년 사내는 베이크에게 이제 사격 훈련은 그만하자고 말했다.
"어때? 베이크?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머스킷을 다뤄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한 발씩은 사격해 본거지?"
베이크가 확인하자 중년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저들이 마지막 조였어."
"좋아. 그럼 이걸로 마무리하고 북미왕국 놈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베이크가 사격 훈련 종료를 선언하자 검은 머리의 중년 사내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하하하. 빨리 좀 왔으면 좋겠는데?"
그때 갈색 머리의 청년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음? 저건 뭐지?"
이에 베이크와 일당들은 갈색 머리 청년이 바라보는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점차 제임스타운으로 다가오는 일단의 함대를 보고 당혹성을 내뱉었다.
"어?"
"함대...잖아? 본국의 함대인가?"
거의 20척에 가까운 대규모의 함대가 본국의 함대가 아니냐는 말에 베이크의 일당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설마 총독이 우리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본국에 알린 건가?"
"어?"
"맙소사."
"이거...어쩌지?"
그때 갈색 머리 청년이 점차 다가오는 함대를 유심히 바라보다 의문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잠깐만. 본국의 배는 아닌 것 같은데? 자세히 보라고. 대부분은 범선이 아니잖아."
이에 베이크 일당들은 함대를 자세히 관찰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 그렇네? 뭐야. 갤리인 건가?"
그리고 점차 함대가 다가오면서 의용병들은 다들 해안가 쪽을 바라보면서 저 함대의 정체를 토론하기 시작했다.
"배가 좀 기묘하게 생겼는데?"
"그러게. 저 앞쪽의 배들은 우리 잉글랜드의 선박 같은데...뒤따라 오는 저 배들은 대체 뭐지?"
그때 검은 머리의 중년 사내가 예전에 돌던 북미왕국의 소문을 떠올리고 소리쳤다.
"아! 설마 마법으로 움직인다는 북미왕국의 배가 아닐까?"
"응?"
"어?"
북미왕국의 소문 중 가장 신빙성 없던 소문을 거론하자 베이크 일당들은 뒤쪽의 독특한 생김새를 자랑하는 배를 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돛도 노도 없으니 마법으로 움직인다는 이야기가 도는 것도 이해는 가는데?“
”배의 모양이 좀 독특하긴 한데...저게 북미왕국의 배인가?"
"저 기묘한 문양이 북미왕국의 깃발이야?"
"돛 때문에 몰랐는데 북미왕국의 배가 갤리온보다 큰 거 같은데?"
한 사내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배의 크기를 비교해보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 정말이네? 몇 척은 갤리온보다 큰데?"
"고작 인디언들이 저런 배를 만든다고?"
"뭐야. 북미왕국의 소문은 모두 거짓 아니었어?"
어느덧 북미왕국의 소문을 모두 거짓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의용병들은 눈앞에 보이는 북미왕국의 배를 보고 혼란에 빠졌다.
고작 미개한 인디언들이 잉글랜드 해군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갤리온보다 커다란 선박을 건조해 운용한다니.
그때 한 노인이 이 상황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보다 왜 본국의 배와 북미왕국의 배가 함께 오는 거야?"
"그러게."
의용병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떠들어대기 시작하자 검은 머리의 중년 사내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베이크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쩌지? 베이크?"
베이크도 갑작스러운 북미왕국 함대의 등장에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일단...의용병들과 함께 제임스타운으로 가자고. 저들도 제임스타운으로 향하는 것 같으니. 상황부터 파악해야겠어."
"알겠어.“
베이크의 말에 검은 머리 중년 사내를 비롯해 주변의 베이크 일당들이 움직이려는 데 베이크가 덧붙였다.
”그리고 저게 정말 북미왕국의 배라면 저 배에 북미왕국 전사들이 타고 있을 수도 있어.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해.“
베이크의 말에 곧 저들과 전투를 벌일 수도 있다는 현실을 자각한 베이크 일당들은 다들 얼굴이 굳어졌다.
”음...알았어. 이동하면서 알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