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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51화 (251/850)

251화

게으른 곰과 음흉한 여우는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라 탐사대에서 호위대로 보직을 이동하고 탐사대에서의 생활을 정리한 후 새한성으로 돌아왔다.

호위대에 배속되어 곧바로 업무에 투입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들에겐 휴가가 주어졌다.

에스파냐와의 전쟁 이후 북미왕국의 영역이 급격하게 넓어지면서 자연스레 기동력이 좋은 탐사대는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했기에 제대로 쉬지 못하기도 했고 곧 바빠지리라는 것을 아는 정성국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준 마지막 휴가였달까.

처음 휴가를 얻게 된 게으른 곰은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집에서 쉬는 동안 앞으로 맡을 일과 연관되어 있으니 한 번쯤은 읽어보라면서 호위대장이 건네준 책을 보고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호위대 소속이라고 해봐야 새한성과 정성국과 왕실 가족을 지키는 것이 다인데 이 두툼한 책을 준 이유가 대체 무언가 싶어서.

그렇다고 북미왕국의 예법이 무척 복잡한 것도 아니었고.

게으른 곰은 휴가를 받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잠을 자고 싶었지만 들고 있는 책이 묘하게 걸려 결국 이를 받자마자 읽어보는 음흉한 여우 옆에서 책을 펴고 빠르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후우..."

이에 음흉한 여우는 무척 흥미진진한 얼굴로 책을 읽다가 옆에서 한숨을 내쉬는 게으른 곰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한숨을?"

게으른 곰은 급격히 피곤한 얼굴로 음흉한 여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냐? 내가 처음 호위대로 보직을 옮기라는 명령을 반긴 건 오로지 이곳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고! 헌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호위대 일이 아니라 이 정보기관의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게으른 곰의 투덜거림에 음흉한 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자신과 게으른 곰이 호위대로 보직을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만 해도 단순히 호위대로 보직을 이동해 호위대의 일을 맡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에 게으른 곰은 몰라도 음흉한 여우는 조금 고민을 하긴 했다.

북미왕국 영역을 돌아다니면서 공을 세울 기회가 많은 탐사대와는 달리 호위대의 경우는 새한성에서 정성국과 왕실 가족들을 호위하는 것이 주 업무였기에 공을 세워 빠르게 진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으니까.

하지만 정성국을 호위한다는 것은 원주민 전사들에겐 대단한 명예였고 음흉한 여우는 자신들에게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정성국을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존경하고 있었기에 일단 보직 이동을 받아들였다.

헌데 상황을 보아하니 자신과 게으른 곰은 일단은 호위대 소속이었지만 실질적인 업무는 호위대 업무가 아닌 이 책에 적혀 있는 정보기관과 관련된 것 같았다.

그리고 음흉한 여우는 이 정보기관이 하는 일이 무척 흥미로웠기에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뭐 그렇긴 하지. 업무와 관련된 책이라면서 건네준 것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린 호위대 소속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전하를 호위하는 일보다는 이 정보기관의 일에 동원될 것 같으니까. 하지만 좋지 않아? 명목상으론 호위대장님이 우리의 직속 상관인데...호위대장님은 이 정보기관의 설립에는 관여하지 않는 눈치였단 말이지?"

게으른 곰은 음흉한 여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을 건네받으며 자신들이 여러 질문을 던졌을 때 느낀 바론 확실히 그랬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게 더 부담스러워. 그 말은 결국 전하께서 우리의 직속 상관이 된다는 소리잖아?"

게으른 곰의 말에 음흉한 여우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러니 영광이지! 내가 기필코 공을 세우고 승진해서 결국 군사청장이 되려는 이유가 바로 전하를 가까이서 보좌하기 위함이었다고!"

게으른 곰은 음흉한 여우가 정성국을 무척이나 존경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러려니 했다.

뭐 원주민들은 다들 정성국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편이었으니까.

특히 처음 조선 이주민들이 이 북미 대륙에 도착하면서 접촉한 네 부족 출신들은 더더욱 그랬다.

점점 생활이 바뀌며 풍요로워지는 것이 확실하게 체감되니까.

그리고 게으른 곰 역시 탐사대에 들어가 에스파냐의 지배하에 살았던 푸에블로 족이나 지금도 살고 있는 멕시코 원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의 영역에 유럽인이 아닌 정성국과 조선인이 방문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여겼고 정성국을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했고 외무청 관리들을 통해 유럽의 정보를 파악하며 정성국이 자신들의 국왕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정성국과 거리가 적당히 떨어져 있을 때의 평가였고 정성국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게으른 곰이 생각하는 정성국의 평가는 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성국이 측근 관리들에게 얼마나 막대한 업무를 맡기는지는 자신이 잘 알고 있으니까.

이에 게으른 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뭐 전하를 가까이서 보좌하는 것은 영광이긴 하지만...전하는 측근들을 엄청 굴리지 않나? 아버지도 그렇고."

하지만 음흉한 여우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게으른 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외무청장님이 그걸 싫어하셔? 아닐 텐데? 오히려 아버지는 북미왕국이 발전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신다고 하시면서 더 많은 일에 관여하려 하시고 그건 외무청장님도 비슷할걸?"

"음..."

확실히 조용한 곰도 업무에 불평하기는커녕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게으른 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거기에 전하께서 주신 이 책들을 읽어보면 볼수록 정보를 다루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고. 이 정보기관의 활약에 따라 국운이 갈릴 수도 있을 거란 생각마저 든단 말이지? 즉 우리의 손에 북미왕국과 북미왕국 백성들의 운명이 달렸다고! 정말 대단하지 않아?"

정성국도 정보기관에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전생에 있었던 정보 수집이나 거짓된 정보를 풀어 적 지휘부의 오판을 유도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여러 재미난 일화들은 꽤 많이 알고 있었기에 이를 적당히 각색해 책을 집필해서 정보기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게으른 곰과 음흉한 여우를 비롯한 정보기관에 소속될 관리들이 알기를 바랐다.

다만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정보기관의 역할은 무척이나 부각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음흉한 여우는 흥분하고 자신이 맡을 일에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게으른 곰은 그 때문에 암담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보기관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 느낄수록 부담감과 더불어 일에 치여 살 거란 확신만 들던데? 탐사대만 하더라도 꽤 빡빡하게 돌아가고 워낙 순찰이 많아 영 힘들었는데 이건 더 심해질 판이라고..."

그런 게으른 곰의 대답에 그의 성격을 잘 아는 음흉한 여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너야 농땡이 필 시간이 줄어드니 별로일진 몰라도 난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좋기만 한데 뭐. 거기에 정보기관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언젠간 정보청이 될 테고...흐흐흐."

그러면서 무슨 상상을 하는지 히죽거리는 음흉한 여우였고 그런 음흉한 여우를 보며 게으른 곰은 급격히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하아...탐사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 * *

정성국은 집무실로 들어오는 게으른 곰과 음흉한 여우를 보고 웃으며 티테이블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 왔나? 거기 앉게."

정성국은 보고서를 마저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려 그들에게 건네준 후 조심스럽게 커피를 마시는 게으른 곰을 보고 말을 걸었다.

"우리 구면이지?"

"그렇습니다."

게으른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서 살짝 긴장한 모습임에도 눈은 반짝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음흉한 여우를 보며 살짝 웃었다.

"음흉한 여우도 예전에 웅크린 늑대의 곁에 있는 것을 본 적은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또 처음이로군."

긴장해서 제대로 커피를 마시지도 못했던 음흉한 여우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영광입니다! 전하!"

보고서나 푸른 안개의 말을 통해 파악한 음흉한 여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에 정성국은 피식 웃고 긴장도 풀 겸 커피를 권하며 잠시 잡담을 나눴다.

그리고 커피를 다 마시고 분위기가 조금 풀릴 때쯤 정성국은 질문을 던졌다.

"그래. 오랜만에 새한성으로 복귀했을 텐데 푹 쉬었나?"

"그렇습니다."

"...예."

대답은 했지만 게으른 곰은 생각이 많은 눈치긴 했다.

하지만 정성국은 굳이 캐물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호위대장이 준 책이나 그 책 뒤편에 써둔 책들은 모두 읽어봤나?"

""그렇습니다.""

그 대답에 정성국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게으른 곰과 음흉한 여우를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내가 자네들을 호위대로 부른 이유. 짐작하지?"

본론으로 들어가자 게으른 곰과 음흉한 여우는 자세를 바로 하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정보기관 때문이 아닙니까?"

음흉한 여우의 질문에 정성국은 잘 물어봤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네. 자네들도 책을 읽어보았을 테니 정보기관이 얼마나 중요한 기관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는 대충 감을 잡았을 테고..."

이에 게으른 곰과 음흉한 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둘의 반응에 만족한 정성국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단 정보기관은 호위대 소속으로 둘 생각이네. 다만 커지면 자연스럽게 독립시킬 생각이고 훗날엔 정보청으로 만들 생각까지는 하고 있어."

"아..."

"역시."

게으른 곰의 절망하는 표정과 음흉한 여우의 환호하는 표정이 더욱 대비되어 정성국은 슬쩍 웃은 후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자네들은 호위대 소속이니 명목상의 상관은 호위대장이겠지만...호위대장은 정보기관에 개입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실질적으론 자네들이 정보기관의 총 책임자일세."

정성국의 말에 게으른 곰은 예상대로 업무가 넘쳐날 것으로 생각해 포기하듯 한숨을 내쉬었고 음흉한 여우는 책임자란 말에 이를 반겼다.

"후..."

"오!"

정성국은 게으른 곰의 반응을 슬쩍 무시하면서 말했다.

"그러니 자네들은 북미왕국을 위해서 조금 고생해줘야겠어. 알겠지?"

그 말에 음흉한 여우는 바로 대답했고 게으른 곰은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통감하고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옙."

대답을 듣고 정성국은 자세한 사항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호위대 소속의 병사 중 충성심이 강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 친구들을 미리 선별해두었네. 아. 물론 수가 많지는 않아. 자네들의 직급에 맞춰 200명이나 빼줄 수야 없는 노릇이고."

둘 다 선임 조장급이긴 하지만 호위대의 인원수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야 뭐..."

"괜찮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해해주니 고맙군. 대신 자금은 확실히 지원해 줄 테니 추가로 인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고용하도록 해. 다만 그 경우는...흐음. 고용된 사람을 호위대 소속으로 둘 수는 없고...대외적으로는 관리청 소속으로 하자고. 관리청장에게 이야기해둘 테니."

정성국의 대답은 돈을 줄 테니 필요한 사람을 고용해 정보원으로 사용하란 뜻이었기에 둘은 서로를 바라본 후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당장 정보기관을 설립하고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고민하는 건 하는 거고...당장 자네들이 해야 할 임무를 주지."

정성국의 말에 게으른 곰과 음흉한 여우는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말씀하시지요."

"지금 북미왕국에 필요한 것은 시간이야. 북미 동해안 지역에 병사들을 배치하고 동쪽에 배치된 2, 4함대가 성장할 때까지의 시간. 당장은 외무청 관리들이 잘 해주고는 있지만, 이들은 아무래도 새진도와 새진주의 외국인들에 한정될 수밖에 없지."

정성국의 설명에 게으른 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멕시코 원주민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이에 정성국은 만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지금까지야 저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아 큰 문제는 없었어. 통역들의 입만 조심하면 그만이었지.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저들도 우리말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게으른 곰 역시 새진주에서 멕시코 원주민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하죠."

"그래서 문제야. 물론 처음부터 멕시코 원주민들 앞에선 함부로 아국의 사정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해두긴 했네만...무의식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그 말에 음흉한 여우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허면 과장된 소문을 마구 흘려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게 만들어야겠군요."

음흉한 여우의 대답에 만족한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지만 너무 허황한 소문만 퍼트리진 말고. 믿지 않을 테니까. 누가 그러더군. 10할의 거짓보단 9할 9푼의 거짓에 단 1푼의 진실을 섞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오...“

”음...“

정성국은 예전 괴벨스의 말이 떠올라 슬쩍 언급하자 음흉한 여우는 감탄했고 게으른 곰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은 자네들에게 일임함세. 이들을 통해 에스파냐로 흘러가는 정보를 최대한 차단하게. 특히 증기기관의 정체를 최대한 숨기는 방향으로.“

북미왕국 남부 지역에 철도가 깔리고 있었고 이 철도를 통해 기차가 움직이는 것을 목격한다면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짐작한 게으른 곰과 음흉한 여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맡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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