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정성국은 윤휴와 윤의제와 꽤 많은 시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윤의제는 몰라도 윤휴는 개척촌을 떠나면서 다시는 얼굴을 보기 어렵겠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북미왕국을 방문한 윤휴를 무척 환대했고.
하지만 정성국도 무척이나 바쁜 몸이었고 윤휴와 윤의제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는 그의 시간을 뺏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북미왕국에 온 이상 이 북미왕국을 돌아보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아쉽지만, 이를 승낙하고 대신 외무청 관리를 붙여주었다.
그 후 정성국이 집무실에 틀어박혀 밀린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던 중에 박기동이 정성국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스승님. 백호 어르신께서 오셨다면서요?"
정성국은 태평한 박기동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응. 지금쯤이면 의제 형이랑 기차를 타고 새나주에 도착하셨을걸?"
정성국의 대답에 박기동인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헤에...백호 어르신이 기차를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네요."
빠르게 서류를 훑어보고 서명을 하던 정성국은 그런 박기동의 대답에 혀를 차며 아침부터 자신을 찾아온 박기동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무슨 일이냐? 이 아침부터?"
그제야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아직 이야기하지 않을 것을 깨달은 박기동은 어깨를 펴고 활짝 웃으며 보고했다.
"아. 새로운 증기기관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놀란 표정으로 박기동을 바라보았다.
"응? 벌써?"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박기동은 민망한 듯 웃었다.
"하하하."
정성국은 별말 없이 웃는 박기동을 보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정말로? 이렇게 빨리 개발했다고?"
250마력의 증기기관을 개발한 이후 꽤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650마력 증기기관을 개발한 것을 생각해보면 당장 새로운 증기기관의 개발은 어렵지 않나 생각했다.
더불어 박기동이 맡은 일은 워낙 많기도 했고.
헌데 이렇게 빠르게 새로운 증기기관을 개발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시선에 박기동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나름대로 경험이 많이 쌓였으니까요. 저를 비롯한 연구원들도 그렇고 장인들도 그렇고요. 앞으로도 쭉쭉 새로운 증기기관을 개발할 생각이니 너무 놀라지 마시죠."
그 대답에 정성국은 활짝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번에는 몇 마력짜리야?"
"650마력짜리 증기기관을 만든 이후로도 여러 증기기관을 만들긴 했습니다만...이번에 스승님께 보고하려는 증기기관은 대충 1천 마력이 조금 못 미칩니다."
"허어..."
자신에게 자신 있게 보고하러 왔을 정도라 내심 예상했지만, 박기동이 실제로 1천 마력에 가까운 증기기관을 만들었다는 보고에 정성국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북미왕국에서 가장 큰 선박이 바로 천급 함선이고 이번에 새로 개발된 증기기관 2개를 장착하면 드디어 천급 함선 역시 기선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박기동은 뿌듯해하면서 말했다.
"조금 더 붙잡고 개량하고 싶긴 한데...당장 조선과 조약을 맺고 개척촌이 개항장이 되어 교역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많은 거대한 선박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정성국은 그런 박기동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렇지. 그렇지. 잘 생각했다."
"하하하."
박기동이 조금 멋쩍은 듯 웃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해군에 배속될 전선의 경우 지급 전선으로도 충분했기에 굳이 천급 전선을 건조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크기나 상징성을 생각해서 각 함대의 기함으로 한 척 정도씩 건조하는 것은 고려해볼 만했지만, 그것도 나중에 고려할 문제고 당장은 이주 선단에 배속시킬 천급 함선의 건조가 시급했다.
특히 조선과의 교역이 열리면서 이주 선단의 확장할 필요가 있어 지급 함선을 대량 건조하라고 명령을 내렸기에 이를 적당히 조정해야 했고.
"그럼 드디어 천급 함선도 기선으로 만들 수 있겠구나."
"그렇지요. 속도는 조금 떨어지겠지만...“
박기동이 툴툴거렸지만,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속도가 느린 건 좀 아쉽긴 하지만 안정적으로 북방 항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더 매력적이지. 뭐...현 상황을 생각하면 기존의 천급 함선을 개조하기보다는 새로 건조하는 천급 함선을 기선으로 건조해야 하겠지만..."
하와이 제도를 지나면 마땅히 정박할 항구가 없었기에 기존의 천급 함선을 개조하고 싶긴 했지만, 워낙 배가 부족한 판국이라 차라리 새로 건조하는 것이 나았다.
이에 박기동은 상황을 짐작한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역시 그 정도로 배가 부족한 거군요."
"그렇지. 그나마 철도가 깔리기 시작했으니 다행이지 않았다면 끔찍했을걸?“
그나마 내륙 운송 상당수가 강이 아닌 철도로 대체되면서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긴 것이 다행이었다.
그리고 기관차 제조에 관여했던 박기동 역시 얼마나 많은 물류가 기차로 운송되는지 짐작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요."
정성국은 문득 이런 보고에 박기동이 혼자 온 것이 이상해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주명이는 어디 있어? 보통 이런 경우는 함께 오더니?"
그 질문에 박기동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새로운 선박의 시험 운항 때문에 선착장에 나가 있을걸요?"
"새로운 선박? 뭔데?"
"철선이요."
정성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지만, 박기동의 대답에는 기겁해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뭐? 철선?"
* * *
새한성 선착장에 장인들과 함께 강을 누비는 조그마한 선박을 보고 있던 최주명은 갑자기 뒤쪽이 소란스러워지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왕실의 상징인 독수리 깃발을 단 마차를 호위한 호위병들과 그 마차에서 내리는 정성국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마차 쪽으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어라? 스승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이에 정성국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쩐 일이긴. 철선의 시험 운항이라길래 바로 달려온 거지. 어떻게 그걸 말 안 할 수가 있냐."
정성국의 마차에서 뒤늦게 내리는 박기동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최주명은 자신을 보고 손을 흔드는 박기동을 슬쩍 째려보며 말했다.
"아...저 녀석이 말한 모양이군요. 쯧. 굳이 스승님께서 이곳에 오실 필요는 없었는데..."
정성국은 개의치 않고 선착장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강을 누비는 빈약해 보이는 전생의 어선 같은 느낌의 작은 배를 보고 조금은 기운이 빠진 듯 중얼거렸다.
"어...저거야?"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최주명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그래서 굳이 알리지 않은 겁니다. 고작 50톤급의 작은 배라...크게 의미를 둘 이유가 없어서요. 실험용으로 건조한 거고 적당히 운용해보고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찾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최주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정성국은 계속해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철선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꽤 빠르다?"
이에 최주명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100마력짜리 증기기관을 달았으니 무척 빠르기야 하지요. 딱히 의미는 없습니다만..."
"아하."
생각보다 작은 편이었고 배의 외형도 볼품없기에 조금은 실망하기도 했지만 일단 철선 건조의 첫발은 뗀 셈이었고 북미왕국의 기술력이라면 빠르게 철선의 크기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옆에 서 있던 최주명의 하소연이 들려왔다.
"당분간은 안전성과 경제성을 생각해 저런 작은 철선 위주로 건조하면서 자료를 축적한 후 크기를 키울 생각이기는 한데...철선의 경우 기존의 선박보다 훨씬 많은 강철이 들어가는지라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올해는 강철의 여유분이 거의 없어 저 녀석으로 끝이고요."
최주명의 말에 현실을 자각한 정성국은 시무룩해지며 중얼거렸다.
"아...올해는 어쩔 수 없지 뭐...그래도 내년부턴 좀 나아지지 않겠어?
이에 최주명은 회의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철로를 부설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강철이 들어가는 상황이라...철도 부설 공사가 끝나기 전까진 계속 이럴 것 같긴 한데..."
그 말에 정성국은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생각해보니 최주명의 말처럼 철도 부설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강철에 여유는 거의 없을 듯싶었기에.
"하하하. 그것도 그런가."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최주명은 불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헌데 스승님. 설마 이번 새나주-새진주 구간 철도 부설 공사가 끝나고 곧바로 다른 철도 부설 공사를 시작하진 않으실 거죠? 새진주에서 북미 동해안까지 연결한다던가..."
최주명의 질문에 주변에 있던 조선 장인들도 슬쩍 정성국을 바라보며 귀를 쫑긋 세웠다.
이런 분위기에 정성국은 어리둥절했다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음? 하하하. 설마. 당장 그럴 생각 없어. 북미 동해안 철도라...무척 끌리기는 하지만 거리를 생각하면 섣불리 덤비긴 어렵지. 거기에 아직 텍사스와 플로리다 지역이 육로로 연결되지도 못한 상황이잖아?"
"휴."
정성국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최주명과 장인들이었고 그런 반응에 왜 사서 걱정을 하느냐는 표정을 지은 정성국이었다.
"뭐야. 그걸 걱정하고 있었어?"
이에 최주명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생각보다 철도의 효용성이 좋으니까요. 그리고 북미 동해안을 확실히 장악하는 것이 현 북미왕국의 최우선 목표인데 아직 새진주에서는 수송선보다는 전선을 건조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니...계속해서 철로를 깔고 새로운 선박의 연구는 밀릴 줄 알았거든요."
확실히 새진주의 조선소에서는 새나주-새진주 철도 부설이 끝나는 시기까지 전선을 건조하느라 수송선을 건조할 여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2함대에서 순찰 겸 물자를 운송하는 일까지 담당하고 있었으니.
그리고 정성국이 유럽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2, 4함대를 키울 것이라는 계획까지 알고 있었으니 최주명은 정성국이 이른 시일 내에 새진주에서 북미 동해안까지 철도를 부설할 거라고 예상한 것도 일리는 있었다.
"그렇긴 해. 물자 운송 문제로 인해 당장 북미 동해안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발전시키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철도를 하루아침에 깔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정성국도 언젠간 새진주에서 북미 동해안 지역까지 철도를 깔 생각을 하고 있긴 했다.
다만 그때는 정말 철저히 준비하고 물자를 비축해서 구역을 최대한 나누어 단기간에 부설할 생각인 만큼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일 것이고.
그러면서 정성국은 최주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관리청에 이야기해서 최대한 지원을 해 줄 테니 철선 연구를 계속 진행해봐. 목재로는 천급 함선 이상의 크기를 건조하긴 쉽지 않잖아? 비용도 엄청나고. 내가 생각할 땐 철선이 답이라고 생각하거든."
북미왕국에서 천급 함선 이상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잘하면 천급 함선보다 조금 더 큰 함선의 건조가 가능할 것 같긴 한데 경제성을 따져보면 의미가 없는 수준까지 비용이 올라가는 상황이라 차라리 천급 2척을 만드는 게 나았다.
그렇기에 정성국은 철선에 목메고 있었고.
철선의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는 정성국이었기에 누구보다 철선을 기대하는 정성국이었다.
하지만 이를 듣고 최주명은 질린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어...천급 함선보다 더 큰 철선을 건조해야 하는 겁니까?"
"당연한 소릴. 내가 철선에 목메는 이유가 뭔데. 당연히 천급 함선 이상의 선박을 건조하려고 그러는 거지."
정성국의 대답에 최주명은 불안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음...그럼 어느 정도를?"
이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목표는 한...5천톤 급 철선까지는 계속 도전해 보라고. 그리고 일단은 수송선으로 사용할 생각이니 포탄을 막을 정도의 내구력까지는 필요 없고. 딱 파도에 선체가 뒤틀리거나 동강 나지만 않으면 된달까?"
하지만 정성국의 대답에 실제로 그 배를 만들어야 하는 최주명과 그 배를 움직일 기관을 만들어야 하는 박기동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헐..."
"어휴..."
정성국은 그런 제자들을 보고 피식 웃으며 강물을 유유히 거슬러 올라가는 북미왕국 최초의 철선을 바라보며 기원했다.
‘쭉쭉 커다오. 내가 죽기 전에 못해도 1만 톤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