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웅크린 늑대는 클레멘트와의 회의를 끝내고 곧바로 김봉길을 찾아갔다.
김봉길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아온 웅크린 늑대에게 현 북미 동해안 지역의 상황을 듣고 황당한 표정으로 웅크린 늑대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북미 동해안 지역에 지내던 잉글랜드인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 같다는 소린가?"
에스파냐도 잉글랜드도 과장된 북미왕국의 국력에 대한 소문에 싸우기보다는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판에 고작 민병대 따위가 북미왕국과 맞서려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표정을 하는 김봉길이었다.
이에 웅크린 늑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는데 어쩌겠습니까. 믿기 어려워도 이미 문제가 발생했으니 믿어야지요."
이미 벌어진 일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에 김봉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저들이 사주한 건 아니고?"
웅크린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클레멘트에게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북미왕국의 군사력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잉글랜드가 의도적으로 이런 문제를 일으킨 건가 하는 의심을 하긴 했다.
하지만 잉글랜드에서 이 문제를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적당히 생색내려 드는 클레멘트의 반응을 볼 때 잉글랜드가 의도한 것은 확실히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번에 온 사절은 자신들이 잉글랜드인들을 제압해 강제 이주시킬 테니 조약을 미루자고 한 것을 보면..."
"흐음...그래?"
"헌데 저들에게 맡기자니 이를 빌미로 버지니아의 주민들을 모조리 강제 이주시키는 것도 모자라 다른 지역에 남아있는 주민들도 강제 이주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웅크린 늑대의 말에 김봉길은 그게 뭐가 문제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나쁘진 않잖아?"
이에 웅크린 늑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북미 동해안이 텅 비어버릴 텐데요? 북미왕국 백성 중 누가 저 먼 오지로 이주하겠습니까?"
물론 김봉길 역시 기존의 북미왕국 백성들이 북미 동해안 지역으로 이주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미 동해안에 잉글랜드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싶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곳에서 예전부터 살던 원주민들이 있을 거 아닌가? 잉글랜드인들에게 밀려서 쫓겨났다는 원주민들. 그들을 다시 불러오면 되잖나?"
김봉길의 말에 웅크린 늑대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가능하다면야 굳이 웅크린 늑대도 이번 일에 개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니까.
"외무청에서 파악하기로는 기존의 원주민들 태반은 잉글랜드인들에 의해 거의 멸족한 상태라서요...쫓겨난 원주민은 극히 일부라더군요. 자신들이 공격받을 수도 있기에 철저하게 학살했다고 하던데요?"
그러면서 웅크린 늑대는 외무청에서 파악한 저들의 개척사를 김봉길에게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개척 초기엔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생존했던 식민지로 이주한 잉글랜드인들은 원주민들이 재배하던 담배를 본국에 팔아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자 많은 사람이 식민지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기존의 땅이 부족해지면서 원주민들과 마찰이 일어나기 시작해 전쟁과 평화를 반복하며 결국 원주민들 대부분을 죽이고 그들의 땅을 차지했다는 것을 말이다.
더불어 저들과 접촉하면서 여러 전염병이 퍼지기도 했고.
그런 역사 때문에 살아남은 원주민들의 수는 무척 적다는 이야기에 김봉길은 인상을 확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끙...그런 놈들을 북미왕국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자고? 난 영 별론데...“
김봉길의 반응에 웅크린 늑대는 슬쩍 입가에 미소를 띤 후 입을 열었다.
"저도 저들의 소행이 썩 마음에 들진 않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잉글랜드인들이 다 빠져나가면 텅 비어버릴 텐데요. 그리고 전하께선 상황이 안정되면 유럽에서도 이주민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하셨으니 모든 잉글랜드인을 내쫓는 건 현명한 선택은 아니라고 봅니다."
김봉길은 웅크린 늑대의 말에 탐탁지는 않았지만, 곧 수긍했다.
이런 사안에선 군사청 소속인 자신의 판단보다야 외무청 소속의 웅크린 늑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맞았기에.
"쩝...자네의 생각이 그렇다면야. 자네가 이곳에 온 건 군사청에서 나서달란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웅크린 늑대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봉길은 잠시 턱을 매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저들이 북미왕국에 대항하려는 뜻을 품은 건 유럽에 알려진 우리의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거지? 우리를 북미 동해안 지역의 원주민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저들에게 북미왕국의 힘을 확실히 보여 줘라? 2함대를 버지니아로 이동시켜 화포라도 몇 발 쏴주면 되려나?"
그 정도면 되겠느냐는 김봉길의 질문에 웅크린 늑대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정도면 정신을 차리겠지요. 더불어 버지니아 주민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자들이 더 있을지 모르니 2함대를 끌고 버지니아까지 올라간 김에 북미 동해안을 따라 뉴펀들랜드 섬까지 다녀오시지요. 틈틈이 보이는 선착장에도 들르시고요. 제가 잉글랜드 측에 이야기해두겠습니다."
가까운 버지니아뿐만 아니라 뉴펀들랜드 섬까지 다녀오라는 웅크린 늑대의 말에 김봉길은 혀를 찼다.
"허. 거기까지? 거긴 잉글랜드 주민도 없다고 하지 않았어?"
이에 웅크린 늑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신 유럽의 어부들이 있지요. 이들은 무척 거칠다고 하니 미리 기선 제압한다는 느낌으로 방문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봉길은 그런 웅크린 늑대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어부들이 거칠어 봐야 북미왕국의 함대를 목격하는 순간 순한 양이 될 것이 뻔한데 무슨 어부들에게 기선제압이란 말인가.
웅크린 늑대는 뉴펀들랜드 섬에 드나드는 유럽의 어부들을 통해 북미왕국 함대의 위용을 알려 유럽에 퍼진 북미왕국의 소문을 더욱 키울 속셈이라는 것을 눈치챈 김봉길이었다.
더불어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지금껏 아무런 접촉도 하지 않았던 프랑스를 압박해 협상장에 앉히려는 속셈도 있을 것이 분명했고 말이다.
"어부들 따위에게 기선제압은 무슨...알았어. 무슨 속셈인지 짐작하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 아. 그리고 어차피 몇 달 안 남았으니 탐사대도 함께 움직이는 것은 어떨까?"
"탐사대를요?"
웅크린 늑대는 버지니아 주민들과의 충돌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육군이 아닌 해군을 움직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에 탐사대를 움직이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기에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어 되묻자 김봉길이 입을 열었다.
"버지니아면 플로리다 지역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이지 않나. 이미 탐사대는 플로리다 지역으로 이동한 상태고."
이미 텍사스 지역은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추가로 경비대가 배치되었기에 탐사대는 이미 새진주에서 플로리다의 산 아구스틴으로 이동해 조약이 체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러니 탐사대는 육로로 북진시키고 2함대에는 탐사대가 사용할 보급 물자를 가득 싣고 가서 내려놓으면 되지 않겠어? 함대 움직이는 것도 다 돈이잖아. 안 그래?"
이왕 움직이는 김에 효율적으로 움직이자는 김봉길의 말에 웅크린 늑대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올라간 김에 탐사대를 버지니아에 배치하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물론 아직은 조약 전이었기에 그러려면 잉글랜드와의 협상이 필요했기에 김봉길이 웅크린 늑대를 쳐다보았다.
웅크린 늑대는 잠시 고민해보다가 탐사대가 모두 움직인다면 잉글랜드인들도 섣불리 공격하진 못할 거로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그거 괜찮군요. 한번 이야기를 해 보지요."
* * *
"예? 북미왕국에서 도와주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어..."
아침부터 웅크린 늑대가 자신을 찾아왔길래 클레멘트는 당연히 조약을 미루자는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오자 잠시 멍한 표정으로 웅크린 늑대만 바라보는 클레멘트였다.
이에 웅크린 늑대는 속으로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버지니아 주민들은 아직 반란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단순히 총독부에 시위하며 요구 사항을 전했을 뿐이지요."
웅크린 늑대의 말에 정신을 차린 클레멘트였지만 왜 이 일에 북미왕국이 개입하려는지 이유를 알지 못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긴 합니다만...버지니아 총독이 위협을 느껴서 결국 무기고를 개방한 것을 보면 반란을 일으켰다고 봐도 될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귀국은 반란을 일으킨 버지니아 주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겠지요."
"이미 예상했던 부분입니다만..."
오히려 클레멘트는 북미왕국이 돕겠다면서 군대를 보내면 더 많은 잉글랜드인의 피가 흐를까 걱정해 말을 흐렸다.
그런 클레멘트의 대답에 웅크린 늑대는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피를 흘리지 않고 제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예? 피를 흘리지 않고요?"
그 말에 클레멘트는 그게 가능하냐는 표정으로 되묻자 웅크린 늑대는 슬쩍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들은 우리 북미왕국의 소문을 믿지 못하고 있으니...실제 북미왕국의 군대를 목격한다면 생각이 바뀌지 않겠습니까?"
웅크린 늑대의 대답에 클레멘트는 과연 그럴까 싶어 고개를 갸웃하면서 중얼거렸다.
"어...그건 그렇긴 한데...저들은 귀국에 대항하기 위해 총독부도 위협한 자들입니다. 잘못하면 오히려 사태가 커질 수도 있을 텐데요?"
이에 웅크린 늑대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미 조약 후 북미 동해안 지역으로 이동시킬 부대 일부가 플로리다 지역에 대기하고 있으니 이들을 북진시키고 이곳에 주둔해 있는 해군도 버지니아로 향한다면 고작 민병대들이 함부로 덤빌 생각은 못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클레멘트는 웅크린 늑대의 호언장담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어...일부라면 어느 정도의 병력입니까?"
웅크린 늑대는 그 질문만을 기다렸다는 듯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당장 병력을 움직여야 하고 거리가 거리인 만큼 북미 동해안 지역에 배치하기로 한 병력 중 일단 기병 5천을 육로로 이동시킬 생각입니다."
"허어..."
"그리고 이들의 보급을 책임질 해군도 10척가량 움직일 생각이고요."
그 말에 클레멘트는 북미왕국의 군사력에 살짝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웅크린 늑대가 이야기 한 기병 5천은 전에 용기병일 것이 분명했다.
그게 북아메리카 동해안 지역에 배치될 병력 일부라니.
거기에 플로리다 연안의 해적이란 해적은 모조리 침몰시킨 악명높은 북미왕국의 군함이 10척이나 함께 움직이고.
"확...확실히 그 정도면 버지니아 주민들도 함부로 덤비진 못하겠군요."
웅크린 늑대는 그런 클레멘트의 반응에 만족한 표정으로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우리 북미왕국의 군대를 본다면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도 인정하겠지요."
확실히 현재 버지니아 식민지 주민들은 북미왕국과 인디언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용기병 5천과 잉글랜드의 군함보다 큰 북미왕국의 군함이 함대를 이루어 나타난다면 버지니아 식민지 주민들도 자신들이 오판한 것을 깨달을 것으로 생각해 클레멘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것 같기는 합니다만..."
"저들이 아무리 무모하다고는 하나 잘 훈련된 군대를 상대로 배짱을 부리진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연히 북미왕국에 대항하려 마음먹었던 자들은 식민지를 벗어나려 하겠지요. 그러니 귀국은 해군과 병사보다는 수송선을 준비하는 것이 어떠십니까?"
"으음..."
웅크린 늑대의 말에 클레멘트는 어찌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이에 웅크린 늑대는 웃으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저들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아국이 먼저 식민지 주민들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하겠습니다. 더불어 식민지 주민들이 오해할 수 있을 테니 귀국의 해군도 함께 움직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웅크린 늑대의 말에 클레멘트는 결정을 내렸다.
조약 전에 북미왕국의 군대가 식민지로 이동하는 것이 조금 걸렸지만, 북미왕국의 군대를 움직여 피를 흘리지 않고 일을 수습할 수 있다면 나쁠 것이 없었다.
더불어 본국에서는 하루빨리 조약을 맺고 북미왕국의 사치품을 런던으로 가져오기만을 바라고 있는 만큼.
"그렇다면야...알겠습니다."
클레멘트가 동의하자 웅크린 늑대는 활짝 웃으며 지나가듯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이동시킨 육군은 버지니아 인근에서 주둔해도 되겠습니까? 물론 조약 전 이긴 합니다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니 말이지요. 그리고 다시 플로리다 지역까지 회군했다가 조약 이후 다시 군대를 이동시키는 것도 낭비고요."
그 말에 클레멘트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겠지요. 다만 식민지 주민들의 마을과는 조금 거리를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씩 웃으며 흔쾌히 대답하는 웅크린 늑대였다.
"물론입니다. 공터에 주둔하고 조약 이전까진 마을 근처로 접근할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