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클레멘트는 런던에서 자메이카의 킹스턴에 도착한 후 곧바로 킹스턴의 총독부를 찾아갔다.
북미왕국과 정식으로 조약을 맺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머물러야 했기에 총독에게 인사라도 할 겸 방문한 것이다.
이에 자메이카의 총독은 클레멘트를 반갑게 맞이했다.
자메이카 총독으로서는 클레멘트가 무척 이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본국이 북아메리카에서 철수하면서 서인도 제도에 집중하게 되었고 거기에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주민들이 서인도 제도로 이주하면서 이곳 자메이카도 한층 발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자메이카 총독은 본국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바탕에 클레멘트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인물이었기에 클레멘트를 무척이나 반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한참을 런던의 최신 정보와 가십거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총독부 집무실로 보좌관이 들어와 자메이카 총독에게 편지를 건넸다.
한창 즐겁게 나누던 대화가 끊겨 살짝 인상을 쓴 자메이카 총독은 편지를 뜯어 내용을 확인하고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며 뚫어지게 편지를 정독한 후 중얼거렸다.
"하...이게 무슨..."
자메이카 총독의 반응에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클레멘트는 무슨 일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러십니까?"
이에 자메이카 총독은 클레멘트도 알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버지니아 총독이 보낸 편지를 흔들면서 말했다.
"버지니아 총독부에서 급하게 연락을 보냈는데...버지니아 식민지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는군요."
그 말에 클레멘트는 놀란 표정으로 급히 되물었다.
"예? 그럼 버지니아에서 반란이 일어난 겁니까?"
이에 버지니아 총독은 쓴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반란...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딱히 충돌이 일어나진 않았으니...시위를 벌였고 버지니아의 윌리엄 총독이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어 시위대가 자체적으로 해산했으니까요."
"으음..."
"다만 버지니아 주민들이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던 머스킷과 화약을 가져간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그 말에 클레멘트는 버지니아 식민지 주민들의 요구와 속셈을 파악하고 기겁했다.
"맙소사. 버지니아 주민들은 북미왕국에 대항할 생각이로군요?!"
이에 자메이카 총독 역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뭐 일단 주민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안전을 위해서 무장할 필요가 있다면서 무기고를 열어달라고 했다는데..."
"허. 안전은 무슨..."
클레멘트가 콧방귀를 뀌자 자메이카 총독도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윌리엄 총독도 저들의 속셈을 눈치채고 저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저들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고 당장 반란이 일어나 총독부가 불타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답니다."
이에 클레멘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으음...이것 참. 만약을 대비해 병사들을 준비했을 때는 조용하더니만..."
처음 찰스 2세가 북아메리카의 모든 권리를 북미왕국에 넘기기로 조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알리자 혹시 식민지 주민들이 분노로 총독부를 공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북아메리카 식민지로 보낼 병사들과 해군을 준비해 두었었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식민지 주민들은 본국의 결정에 분노를 토했을지언정 그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고 본국에서 마련해 준 배편을 통해 서인도 제도로 이주하는 것을 택했고.
해서 안도하며 준비해 둔 해군과 병사들을 다시 원상복귀 시켰는데 뒤늦게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으니 클레멘트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자메이카 총독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클레멘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게요. 어쩌시겠습니까?"
원칙적으로는 자메이카 총독인 자신이 결정해야 할 문제였으나 이미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북미왕국에 넘기기로 되어 있는 만큼 북미왕국과의 협상을 전담하는 클레멘트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클레멘트는 자메이카 총독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개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군대를 보내 버지니아 식민지 주민들을 제압해야 합니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갔다가 문제가 터지면 북미왕국과의 우호적인 관계가 어그러질 겁니다. 에스파냐도 우리가 북미왕국과 접촉한 이후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카풀코 조약으로 북미왕국을 속였다가 자신들이 북미왕국과 접촉한 이후 북미왕국이 에스파냐에 분노해 에스파냐에서 추가로 몇몇 이권들을 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클레멘트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자메이카 총독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습니까?"
"예. 그리고 본국에서는 북아메리카를 포기하는 대신 서인도 제도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려고 하는 만큼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주민들을 최대한 많이 서인도 제도로 이주시켜야 합니다. 헌데 가장 큰 버지니아 식민지의 주민들이 북미왕국에 대항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아니 환상을 가지고 있다면..."
클레멘트가 말을 흐리자 자메이카 총독은 자신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현재 남아있는 버지니아 식민지의 주민들은 이주하지 않겠지요. 거기에 저들의 주장에 동조해 아직 현지에 남아있는 다른 식민지의 주민들도 눌러앉을 공산이 크고."
"예. 그러니 군대를 보내 확실히 제압해야 합니다. 헌데...3개월 안으로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에 자메이카 총독은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장 자메이카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잉글랜드군은 많지 않았던 탓이다.
서인도 제도 곳곳에 배치된 만큼 이 소식을 알리고 버지니아로 향하려면 3개월 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글쎄요...다시 병사들을 소집하고 출정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이곳 킹스턴에 주둔한 병사들로는 쉽지 않을 거예요."
클레멘트는 자메이카 총독의 대답에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까?"
"예. 버지니아 식민지의 경우 그동안 본국에서 마련한 배로 이주한 사람도 꽤 많지만 남아 있는 주민들의 수도 꽤 많은 편이니까요. 거기에 총독부의 무기고도 털려 무장도 충실해졌으니 병사들을 보내려면 꽤 대규모로 파견해야 할 겁니다. 그래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테지요."
버지니아의 윌리엄 총독은 총독부에서 시위한 인원은 5천 명 정도로 추산했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현재 버지니아에 남아 있는 주민 모두가 이들에게 동조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런 만큼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꽤 많은 병사를 동원해야 한다는 자메이카 총독의 말에 클레멘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끙...그럼 하는 수 없군요. 허면 총독님께서는 일단 군대를 준비해주시지요. 전 새진주로 가서 북미왕국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정식 조약은 좀 미루자고 제안해야겠군요."
착잡한 표정을 짓는 클레멘트를 보고 자메이카 총독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코트렐 경께서 새진주에서 도착할 때쯤 출병 준비를 끝내두도록 하지요."
* * *
웅크린 늑대는 아직 정식 조약을 체결하기까지 시간이 남았는데도 새진주를 방문한 클레멘트를 의아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클레멘트가 꺼낸 용건에 웅크린 늑대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조약을 뒤로 미루자니?"
이에 클레멘트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사정이 좀 생겼습니다."
"무슨 사정이요?"
웅크린 늑대가 매서운 눈초리로 클레멘트를 바라보자 클레멘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버지니아 식민지의 사정을 모두 털어놓았다.
어차피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북미왕국에 넘길 땅이고 그곳에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반란을 잉글랜드가 군대까지 동원해서 식민지 주민들을 제압하려는 이유는 북미왕국이 훗날 이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확실히 생색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웅크린 늑대는 클레멘트의 이야기를 다 듣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하아? 그게 무슨..."
이미 북미왕국의 국력은 실제 국력보다 대단하다고 유럽에 알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고작 식민지 주민들이 북미왕국에 맞설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던 웅크린 늑대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클레멘트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사실입니다. 북미왕국에 관한 이야기가 유럽에까지 알려졌지만, 식민지 주민들은 그동안 북아메리카 동해안의 인디언, 아니 원주민들과 지냈던 탓에 선입견을 품고 있어 북미왕국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거기에 버지니아 식민지의 경우는 이미 총독부의 무기고가 털린 상황이고요."
그 말에 웅크린 늑대는 눈을 꿈틀거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이 무장했다는 말씀이군요."
이에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클레멘트는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정대로 조약을 맺고 북미왕국의 관리들이 북아메리카 동해안 지역에 방문했다 사고라도 발생하면 피차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해서 아국에서 식민지 주민들을 강제로 소개할 생각입니다만...그러자면 시간이 걸리는지라 조약을 잠시 뒤로 미뤘으면 합니다."
그 말에 웅크린 늑대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귀국에서 해결해주겠다는 겁니까?"
이에 클레멘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편이 여러모로 낫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웅크린 늑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판단하기에 잉글랜드가 직접 식민지 주민들을 제압하는 것은 북미왕국에 있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굳이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고 만약 이들에게 넘겨받은 후 북미 동해안에 남아 있던 잉글랜드인들이 봉기하게 되면 이들을 제압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북미왕국에 원한을 가질 수도 있었기에 저들에게 맡기는 것이 깔끔하긴 했다.
정식 조약이 미뤄지는 것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잉글랜드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조약을 파기할 일도 없고 북미왕국에 넘기기로 한 권리를 다른 나라에 넘길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유럽에 북미왕국의 국력이 무척 고평가되어 알려져 있기에 다른 나라들도 굳이 북미왕국과 대립하고 잉글랜드에 막대한 재물을 주어가며 북아메리카의 권리를 살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
다만 클레멘트의 말에서 한 가지 걸리는 점이라면 바로 강제로 식민지 주민들을 소개하겠다는 것이었다.
북미왕국은 영토에 비해 인구가 적었고 기존의 새한성-새나주 철도를 따라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었을뿐더러 최근 새나주-새진주 철도 부설 공사가 진행되고 도로와 마을을 정비하는 터라 고향을 떠나더라도 이 지역들로 이주하면 이주했지 저 먼 북미 동해안으로 이주할 사람은 없을 것이 확실했다.
그렇기에 당분간은 북미 동해안은 이곳에 남게 되는 소수의 잉글랜드인과 주변의 원주민들을 북미왕국으로 합류시킬 생각이었고.
하지만 버지니아 식민지의 주민들이 북미왕국에 대항할 뜻을 밝히면서 북미왕국 땅에 남는 주민들이 문제를 일으킬 것을 우려해 모든 잉글랜드인을 강제 이주시킬 것처럼 이야기했기에 이 부분을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웅크린 늑대가 질문을 던졌다.
"그래요? 그럼 어느 정도나 걸리겠습니까?"
"이번에 문제가 발생한 버지니아 식민지에는 아직 주민들이 많이 남아 있기에 이들을 제압하고 강제로 이주시키려면 못해도 1년은 걸리지 않겠습니까?"
클레멘트의 대답으로 미루어볼 때 잉글랜드에서 최소한 버지니아 주민들을 모두 이주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은 웅크린 늑대는 속으로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흐음...물론 귀국과의 협상은 제가 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만...이번 문제는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 같습니다. 허니 내일 다시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클레멘트는 이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자신의 제안은 북미왕국에도 유리한 편이었기에 사정을 다 이야기하면 곧바로 조약을 미루자고 동의할 줄 알았기에.
하지만 일단 자신들의 문제로 인해 조약을 미루게 된 터라 클레멘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