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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45화 (245/850)

245화

버지니아 식민지의 총독인 윌리엄 버클리는 총독부 집무실까지 들려오는 소음에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이것 참...앞으로 몇 달 안 남았는데 이런 문제가 발생하다니...”

잉글랜드의 식민지가 해체되고 이 지역 전체가 북미왕국으로 넘어가게 되는 정식 조약이 곧 맺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윌리엄은 본국의 명령대로 최대한 많은 식민지 주민들을 서인도 제도로 이주시키려 노력했다.

버지니아 식민지는 잉글랜드 식민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식민지였고 그만큼 식민지 주민의 수가 많은 편이었기에 본국으로 지원해 준 배편으론 부족한 감이 있어 윌리엄 본인이 따로 아는 연줄을 이용해 배를 구해 서인도 제도로 오가는 항로에 투입할 만큼.

물론 이는 순수한 의도라기보다는 적당한 이득을 챙기기 위함이었다.

윌리엄은 이 버지니아에서 오랫동안 총독으로 지냈고 그런 만큼 식민지 주민들의 성향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 지역의 식민지 주민들은 예전에 인디언들과 충돌했던 일 때문에 인디언들을 꺼리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렇기에 이곳에 남아 원주민들이 세운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기를 꺼릴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본국에서 식민지 주민을 서인도 제도로 이주시키라면서 지원해 준 배편으로는 3만이 넘는 버지니아 식민지 주민들을 단기간에 실어나르기는 어려웠기에 본국에 있는 자신의 지인에게 이러한 사정을 알리며 최대한 빠르게 배를 임대해 보내라고 한 것이다.

윌리엄의 지인들은 그런 상황이라면 배를 임대하는 비용 이상으로 식민지 주민들에게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 급히 배를 보낸 것이고.

그리고 윌리엄의 예상대로 본국에서 지원해 준 배가 만석이 되어 항구를 떠나자 식민지 주민들은 국가에서 지원해 준 배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비싼 뱃삯을 내어가며 다른 배에 올라타 버지니아 식민지를 떠났다.

덕분에 윌리엄도 쏠쏠하게 이득을 챙겼고.

그리고 이것이 끝이 아니라 북미왕국에 이 지역이 넘어가기 전까지 배가 서너 번은 더 왕복할 수 있었기에 앞으로의 이득과 본국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웃으면서 고민하던 월리엄은 기겁한 표정으로 집무실로 들어온 보좌관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보좌관에게 무슨 일인가 묻기도 전에 밖에서 소음이 들려 윌리엄이 창가로 이동해 바깥 풍경을 확인하자 윌리엄도 기겁할 수밖에 없었는데 식민지 주민들이 아침부터 총독부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윌리엄은 급히 병사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에게 저들이 총독부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으라는 명령을 내리며 보좌관에게는 식민지 주민들이 왜 저렇게 모여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명령했고.

윌리엄의 명령에 보좌관은 울상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 총독부를 둘러싼 식민지 주민들과 접촉했다.

다행히 총독부로 몰려든 식민지 주민들은 일부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보좌관의 질문에 이번 시위의 주동자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나서서 자신들의 요구를 이야기했다.

이를 듣고 보좌관은 저들을 설득하려 몇 번을 시도했지만, 저들은 보좌관의 설득에도 요지부동이었기에 알겠다며 총독에게 전하겠다며 돌아왔고.

윌리엄은 보좌관이 집무실로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던졌다.

“그래. 총독부 앞에서 대놓고 시위하는 저들의 요구가 대체 뭔가? 설마 국가에서 지원하는 서인도 제도로 향하는 수송선을 늘려달라는 요구인가?”

괜히 제 발이 저린 윌리엄의 물음에 보좌관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총독 각하. 저들의 요구는...북미왕국이 이곳을 장악한 후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머스킷과 화약을 비축해둘 필요가 있다며 총독부의 무기고에 비축되어있는 머스킷과 화약을 꺼내달라고...”

보좌관의 말에 윌리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를 냈다.

“뭐라고?! 이게 누굴 바보로 아나!”

윌리엄은 지금 총독부 주변을 둘러싼 식민지 주민들의 뜻을 곧바로 눈치챘다.

저들은 북미왕국에 대항하려는 속셈이라는 것을.

그렇지 않다면 굳이 총독부를 위협하면서 머스킷과 화약을 얻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에 윌리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그러니까 지금 저기서 목소리를 높이는 저들이 모두 북미왕국과 한판 붙어보겠다고 나선 머저리들이란 소린가?”

어차피 보좌관 역시 이번 시위의 주동자로 보이는 젊은 사내에게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들의 속셈을 눈치챘었기에 윌리엄의 말에 답했다.

“그렇습니다. 총독 각하.”

“하아...이것 참...”

처음에는 대놓고 속이려 들었던 식민지 주민들에게 분노했던 윌리엄이었지만 곧 창밖에서 웅성거리는 저들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윌리엄은 본국의 이번 결정에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는 윌리엄이 단순히 열렬한 왕당파여서 맹목적으로 찰스 2세의 결정에 동의한 것이 아니라 총독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여러 정보를 접할 수 있었기에 본국이 이 북아메리카를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북미왕국에 맞서 이를 지키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동의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저기서 시위하고 있는 식민지 주민들은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북미왕국을 마치 예전 식민지 주민들과 전쟁을 벌였던 포우하탄 족처럼 생각하는 듯했기에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윌리엄은 중얼거렸다.

“어리석은 것도 정도가 있지...에스파냐도, 그리고 본국도 결국 북미왕국의 군사력을 감당할 수 없어서 철수하는 판에 고작 식민지 주민 일부가 봉기해서 북미왕국과 맞서 보겠다? 허...”

윌리엄의 중얼거림에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에 윌리엄은 보좌관을 바라보며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가 북미왕국의 정보를 극비 정보로 숨긴 것도 아니고 총독부에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북미왕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을 테고 갑작스러운 북미왕국의 등장으로 이런저런 소문이 퍼졌을 텐데 저들의 반응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던 탓이다.

“아니. 저들은 북미왕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도 듣지 않은 건가?”

이에 보좌관은 곤란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듣긴 했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소문이라 믿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인디언들이 그 정도로 강력하겠느냐면서요.”

“하아...”

보좌관의 답변에 한숨을 쉬는 윌리엄을 보고 보좌관은 설명했다.

현재 저 밖에서 총독부를 둘러싸고 있는 식민지 주민들은 북미왕국을 조금 더 커다란 인디언 부족처럼 생각한다면서.

이를 듣고 혀를 찰 수밖에 없는 윌리엄이었고 그런 윌리엄을 향해 보좌관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그 주장에 동조하는 식민지 주민들도 무척 많은 상황이고요.”

그 말에 표정을 구긴 윌리엄은 보좌관에게 물었다.

“젠장...설득은 해보았나?”

“물론 몇 번이고 북미왕국의 정보를 알려주었지만, 저들은 제가 이야기하는 북미왕국의 정보를 과장된 소문이라 일축하면서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망할...”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인 와중에 보좌관이 말했다.

“문제는 생각보다 많은 식민지 주민들이 저들의 주장에 동조해 총독부로 몰려왔다는 점입니다.”

이에 윌리엄은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헤아려봐도 4, 5천은 되어 보이는 규모였기에.

“후우...많긴 하군. 저들을 제압하는 건 어렵겠지?”

윌리엄이 별 기대하지 않고 묻자 집무실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휘관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총독 각하.”

아쉽게도 식민지에 배치된 병사는 총독부를 경비하는 병사들이 전부였다.

본국에서는 식민지를 느슨하게 통제하는 편이었기에 굳이 많은 병사를 배치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탓이다.

“끙...”

지휘관의 답변에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윌리엄을 보고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냥 무기고를 열어주는 것이 어떠십니까?”

이에 윌리엄은 인상을 쓰며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지금 저들이 북미왕국에 대항해 봉기하는 것을 도와주란 소린가?”

윌리엄의 반응에 보좌관을 움츠러들었지만 끝내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하지만...저들의 분위기를 볼 때 총독 각하께서 저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힘으로 무기고를 열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피가 흐르겠지요.”

그 불필요한 피가 누구의 피인지는 바로 짐작한 윌리엄이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리고 저들이 괘씸하기는 하지만...정말 북미왕국의 군사력이 정보대로라면 무기고에 비축되어있는 머스킷과 화약으로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잖습니까. 그러니 북미왕국이 저들을 응징하겠지요.”

보좌관의 말에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지휘관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윌리엄은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끙...뭐 그 부분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저들이 무장한다 한들 북미왕국의 군대에 쓸려나가겠지.”

윌리엄의 대답에 보좌관은 표정이 밝아졌다.

“허면...”

“하지만 본국과 북미왕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좀 곤란한 부분이 있네.”

“예?”

의아해하는 보좌관과 지휘관을 보고 윌리엄이 현 상황을 설명했다.

본국이 북아메리카의 모든 권리를 북미왕국에 매각한 것은 북미왕국을 막지 못하겠다는 현실적인 판단과 급격히 영역을 확장하는 북미왕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고.

헌데 총독부에서 식민지 주민들에게 무장을 지원해준다는 사실이 훗날 알려진다면 북미왕국은 본국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었고.

이에 보좌관은 그 부분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기에 탄식했다.

“아...그건 그렇군요. 그럼 어쩌죠?”

보좌관과 지휘관이 윌리엄을 바라보자 윌리엄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젠장. 하는 수 없지. 일단 무기고를 개방하게. 그리고 바로 본국과 서인도 제도에 이를 알리자고.”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잖나. 막을 수도 없고...그렇다고 무기고를 불태웠다간 저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니...”

그 말에 보좌관과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이미 행동에 나선 만큼 무기고를 불태운다면 분노해 총독부를 공격할지도 몰랐기에 윌리엄의 대응은 상황을 고려하면 최선이었다.

그때 윌리엄이 창밖을 바라보며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만 저 무기로 겨누는 것이 북미왕국이 아니라 본국의 군대일까 봐 그게 걱정되는군.”

* * *

정성국은 집무실에서 관리청장의 보고에 감탄했다.

“허어...벌써 3만 명이 넘게 이주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전하.”

관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와...수송 선단이야 돌아온 것으로 끝난 셈이지만 이주 선단은 올해 한 번 더 도착하잖아? 그럼 이주민이 더 늘어나겠네?”

이에 관리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번처럼 이주 선단에 가득 이주민을 태워온다면 올 한해 북미왕국으로 유입된 조선 이주민의 수는 5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평소에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던 인원이 1만 명인 것을 생각해보면 5배가 넘었고 현재 북미왕국 백성 가운데 조선 출신 이주민이 10만 남짓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했기에 정성국은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와...많긴 많네. 이대로 계속 조선 유민들이 북미왕국으로 와줬으면 좋겠는데...”

정성국은 조선 출신이었고 전생의 기억이 있는 만큼 아무래도 조선인들에게 애착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조선인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삶과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고.

하지만 이를 듣고 관리청장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야 조선 상황이 워낙 좋지 않으니 인구 유출을 눈감아주고 있지만, 상황이 좋아진다면 어느 정도 제약을 걸겠지요.”

“쩝...”

“그리고 상황이 상황이라 기회라 생각하고 최대한 많은 유민을 태우고 오긴 했습니다만...덕분에 매년 가져오던 물자 대부분이 포로나이에 묶인 상황입니다.”

관리청장의 지적에 정성국은 정신이 번쩍 들어 급히 질문을 던졌다.

“아...그렇고 보니 그렇네? 어라? 딴 건 크게 상관없지만 강철은?”

“강철 대부분이 포로나이에 묶인 상황입니다.”

“이런...”

관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주 선단의 적재량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동안은 조선의 눈치를 봐야 하는지라 유민들을 적당히 태우고 나머지 공간에는 조선과 청나라에서 수입하는 물자를 가득 싣고 왔었다.

헌데 올해는 개항장과 포로나이에 워낙 많은 유민이 몰려들었고 이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북미왕국의 인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개항장과 포로나이에서 최대한 많은 인원을 받아들였기에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나마 본국의 강철 생산량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새나주-새진주 구간 철도 부설 공사에 최우선으로 강철을 공급하고 있는지라 당장 철도 부설 공사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닙니다만...”

정성국은 관리청장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건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아무래도 조선과 조약을 맺고 유민들의 이주가 공식적으로 허용된 만큼 예전보다야 이주민이 많겠지?”

“아무래도...그렇지 않겠습니까?”

관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주 선단의 규모를 더욱 늘리긴 해야겠네.”

“그렇지요. 공식적으로 조선과 교류하게 된 만큼 운송할 물자도 더욱 많아질 테니까요.”

이에 정성국은 이미 새남포의 조선소를 확장하기로 한 것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휴...그나마 새남포의 제재소와 조선소를 대폭 확장하기로 했으니...당분간은 북미왕국 연해를 오가는 수송선보다는 이주 선단에 배치될 정도의 커다란 선박들을 건조하면 되겠네.”

“계속해서 북미왕국의 물동량이 늘어나는 추세긴 합니다만 당장은 이주 선단을 늘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관리청장도 이에 동의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끙...알겠네. 이야기해 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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