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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44화 (244/850)

244화

“새남포에서 말인가?”

“그렇습니다.”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것 참...”

정성국이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살짝 곤란한 표정으로 집무실을 급히 찾아왔기에 무슨 일이 있는가를 묻자 조용한 곰은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그 용건은 바로 새남포 주변의 부족들이 격렬하게 다툼을 벌인다는 보고였다.

이에 정성국은 혹시 새남포가 공격받은 것은 아닌가 싶어 급히 자세한 상황을 물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고개를 저으며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대답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예전의 새남포는 조그마한 항구에 불과했지만, 지속적인 발전과 북미왕국에서 제공하는 양질의 일자리 덕분에 새남포 인근의 수쿼미시 족, 스노호미시 족, 두와미시 족은 북미왕국에 합류했고 덕분에 새남포의 영역은 급격히 넓어졌다.

하지만 다른 지역과 새남포는 차이가 있었는데 다른 지역의 경우 북미왕국에서 건설된 도시를 기점으로 주변의 여러 원주민 부족을 외무청 관리들이 회유해 결국 북미왕국으로 끌어들였지만, 새남포의 경우는 새남포 인근의 세 부족을 끌어들인 후에는 외무청이 활동을 최소한으로 자제했다.

지금껏 북미왕국의 주 관심사는 남쪽, 그리고 에스파냐와 조약을 맺은 이후로는 동쪽이었기에 북쪽인 새남포의 영역 확장은 후순위로 미룬 것이다.

하지만 새남포 인근의 원주민들이 새남포를 드나들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새남포 인근의 북미왕국에서 파는 여러 물품에 매료되었고 이 물품들을 풍족하게 사용하려면 더 많은 가죽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새남포에서 파는 날카로운 철제 무기 덕분에 전사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사냥을 했지만, 영역은 한정되어 있었고 계속된 사냥 덕분에 얻을 수 있는 가죽의 수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가죽을 얻기 위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던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지속해서 발생하기 시작했고 결국 분쟁이 터진 것이다.

그러자 위네치라는 부족이 새남포에서 사들인 철제 무기로 전사들을 모두 무장시키고 주변 부족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들에게 공격받은 비교적 소규모 원주민 부족들은 철제 무기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무장한 전사 수에서 밀리자 감히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대신 새남포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 위네치라는 부족은 북미왕국에 합류한 부족은 아니지?”

“그렇습니다. 위네치 족도 그렇고 위네치 족에 공격받은 주변 여러 소규모 부족도 모두 북미왕국에 우호적인 편이었지만, 북미왕국에 합류한 부족은 아닙니다. 보고드린 것처럼 저들은 새남포 동쪽 내륙에 자리 잡은 부족들이라서요.”

물론 북미왕국의 상황이 상황이라 새남포의 외무청이 활동을 자제한 편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꾸준히 주변 원주민 부족들과 우호를 다지면서 몇몇 소규모 원주민 부족들은 북미왕국으로 합류시키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북미왕국에 합류한 원주민 부족들은 주로 해안가 근처에 자리 잡은 부족들이었고.

이번에 분쟁이 발생한 지역은 새남포 동쪽 내륙이라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매끈한 턱을 매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흐음...”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위네치 족에 공격받은 여러 부족은 모두 북미왕국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북미왕국으로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요. 그래서 새남포의 외무청 관리는 이 일에 개입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 일단 보고를 한 모양입니다.”

그런 조용한 곰의 보고에 정성국은 생각을 멈추고 살짝 놀란 표정으로 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만. 그럼 지금도 위네치 족이 주변을 공격하고 있다는 소리 아닌가?”

조용한 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위네치 족을 주변 부족들은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기에 이곳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위네치 족이 주변 부족을 점령해 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질문을 던지자 조용한 곰이 슬쩍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새남포의 외무청 관리가 위네치 족에 잠시만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에 위네치 족은 일단 주변을 공격하고 마을을 약탈하던 행동을 멈춘 상황이기는 합니다.”

“그래?”

조용한 곰의 말에 조금 의외란 표정을 짓자 조용한 곰은 위네치 족도 북미왕국과는 우호적인 관계였고 만약 외무청 관리의 요청을 무시했다가 북미왕국이 자신들이 공격하는 주변 부족을 돕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새남포의 출입을 막거나 거래를 거부하면 여러모로 곤란했기에 어쩔 수 없이 들어주었다고 첨언했다.

“아하. 흐음...이거 어쩐다...”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 사달이 난 것에 우리 책임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아. 우리가 철제 무기를 팔기도 했고 당장 남쪽의 확장이 급해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새남포 주변을 좀 방치한 경향이 있긴 하지.”

이에 조용한 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합니다. 다른 지역이었다면 꾸준히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권해 북미왕국의 영역을 넓혀서 이런 일이 없었을 테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해안가 인근의 부족들만 북미왕국에 합류시키고 외무청의 활동을 최대한 자제했으니까요.”

“그렇지. 그러니 개입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아. 만약 위네치 족에 공격받은 여러 부족을 모두 북미왕국에 합류시킨다면 위네치 족의 반응은 어떨까?”

정성국의 물음에 조용한 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위네치 족이 무척 반발할 것 같기는 합니다. 현재 북미왕국에 합류할 의사를 내비친 부족들을 모두 북미왕국으로 합류시키면 위네치 족의 영역 주변이 모두 북미왕국의 영역이 되어버리는지라...”

새남포 동쪽에 위네치 족이 있고 그 주변이 바로 위네치 족이 공격하는 소부족들의 영역이었다.

그러니 현재 북미왕국에 합류 의사를 밝힌 소부족들을 북미왕국에 합류시키면 위네치 족은 확장할 수 없어지는 것이고 말이다.

“흐음...그래?”

비록 위네치 족이 북미왕국에 우호적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극단적으로 반발할 수도 있겠다 싶어 어쩔까 고민하던 중에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위네치 족이 북미왕국을 공격하진 못할 겁니다. 새남포에 주둔해 있는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그럴까? 새남포에 배치된 경비대는 고작 500명 정도인데도?”

물론 전쟁이 벌어진다면야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경비대가 위네치 족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위네치 족 역시 북미왕국에 우호적인 부족인 만큼 그들과 싸우고 싶진 않았고 저들을 압박하기 위한 숫자로 500명의 경비대는 적지 않나 싶어 이야기하자 조용한 곰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숫자도 아니지요. 특히 새남포의 경비대는 꽤 오래 주둔하면서 북미왕국의 강력함을 보여줬을 테니까요.”

간간이 훈련도 하고 사냥도 하며 북미왕국의 힘을 과시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정성국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리고 합류할 의사를 내비친 주변 부족들을 받아들이면서 위네치 족도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권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위네치 족이 영역을 확장하려고 했던 것도 북미왕국의 물품을 더 많이 구하려는 이유 때문이었으니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거부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인 조용한 곰이었다.

이를 듣고 정성국은 시도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북미왕국으로의 합류를 권해보게.”

“알겠습니다.”

“그리고...새남포에 외무청 관리를 추가로 보내도록 하고.”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그럼?”

“그렇네. 제한을 풀어줄 테니 다른 지역처럼 주변 원주민 부족을 설득해 북미왕국의 영역을 확장하도록 하게.”

정성국의 대답에 조용한 곰은 살짝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개발청, 행정청, 교육청에서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면 좋은 일자리를 찾아 자연스럽게 새남포로 원주민들이 몰려들 텐데...”

이건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하는 현상이긴 했다.

아무래도 북미왕국이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지역에 괜찮은 일자리가 많았기에 비교적 젊은 원주민들은 호기심에 북미왕국의 도시를 방문했다가 눌러앉는 경우가 빈번했고.

결국, 북미왕국에서 이들의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특히 새남포는 지금까지 확장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발전시켰기에 북미왕국에 이미 합류한 원주민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여러모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한 곰이 이를 지적하자 정성국은 쓴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그렇다고 다른 원주민 부족은 내버려 두었다가 이번과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면 그게 더 곤란하지.”

“그렇긴 합니다만...”

새남포에 일찌감치 합류한 수쿼미시, 스노호미시, 두와미시 세 부족의 생활 환경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고 이를 알게 된 주변 원주민 부족들은 은근히 북미왕국의 합류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위네치 족과 주변 부족들이 북미왕국에 합류하고 북미왕국이 계속해 주변 원주민 부족을 받아들이는 것을 자제하면 분명히 이 사태를 목격한 다른 부족들도 북미왕국에 합류하기 위해 고의로 분쟁을 일으킬 우려가 있었다.

이를 지적하는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도 그 부분을 걱정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조선과의 교류가 시작되었으니 더 많은 선박을 건조해야 할 테니 당장 일자리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제재소와 조선소를 대폭 확장하면 되겠지.”

“그건 그렇군요.”

“거기에 개발청에 이야기해서 식량 생산도 늘리도록 하자고. 나중에 이곳을 개발할 때 새김포에서 물자를 운송하는 게 아니라 새남포에서 물자를 운송하는 게 거리상으로도 가깝고.”

그러면서 정성국은 자신 뒤편에 걸려있는 북미 대륙의 커다란 지도에서 알래스카 지역을 가리키자 조용한 곰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전하는 이 지역을 무척이나 신경 쓰시는군요. 탐사대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던 외무청 관리의 말을 들어보니 여름이 짧고 겨울 추위가 매서워 살기에 썩 좋은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미 탐사대와 함께 이 지역을 방문해 저들의 언어를 익히던 외무청 관리들이 수집한 정보를 파악한 조용한 곰이 굳이 그럴 가치가 있는 땅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자 정성국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신 자원이 많으니까. 그리고 이곳은 이 구대륙과 무척 가까워. 그래서 이곳을 비워두었다가 서양인들이 이곳을 통해 동진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려면 꾸준히 이곳을 지원해야 하고.”

정성국이 카무이 반도 위쪽을 가리키자 조용한 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흠...전하께서는 일전에 말씀하셨던 러시아라는 나라를 무척이나 경계하시는군요.”

그 말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들의 영토를 생각하면 당연히 경계해야 할 것 같지 않나?”

외무청에서는 에스파냐를 통해 유럽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고 에스파냐에서는 이 러시아 차르국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기에 조용한 곰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봐야 유럽 지역에 있는 수도 인근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도시도 없지 않습니까. 인구도 영토를 생각하면 적은 편이고. 거기에 그 수도를 위시한 지역도 제대로 발전된 편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런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이 시기의 러시아는 서유럽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16세기에 이반 4세가 러시아의 차르는 로마 황제의 계승국이라고 선언했지만, 서유럽에서는 단순히 모스크바 대공이라고 부를 정도였고 이반 4세가 죽고 혼란에 빠진 17세기 초에는 동유럽의 강대국이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 모스크바도 점령되었을 정도였으니.

그나마 17세기 중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침공해 동유럽에서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긴 했지만, 서유럽에선 아직도 러시아를 높이 평가하진 않았다.

정성국은 그렇게 낙후된 러시아를 급격하게 근대화시켜 결국 러시아 제국으로 만든 표트르 대제가 곧 태어난다는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지금이야 그렇지. 하지만 걸출한 지도자가 나온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

정성국의 예측과 통찰력은 비범한 부분이 있었기에 조용한 곰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를 새겨들었다.

“흐음...그렇습니까?”

“그리고 다른 곳들은 몰라도 카무이 반도 때문에 저들과 대치할 수도 있고. 그러니 그 전에 이 영역들을 확실히 장악해야 하고.”

다른 곳과는 달리 카무이 반도는 러시아가 육로로 이동할 수 있는 지역이었기에 정성국이 언급하자 조용한 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군요. 분쟁의 여지를 없애려면 이 지역의 원주민들을 하루빨리 북미왕국으로 합류시켜 이 지역을 실효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유럽에 알리는 게 낫겠군요.”

이에 정성국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뭐 투로시노가 나름 잘 해주고 있으니 이대로만 해도 충분하겠지만...”

정성국이 왜 말을 흐린 것인지 짐작한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허나 북미왕국이 아시아에 존재감을 알린 이상 투로시노는 조선과 청, 왜국에 집중해야 하지요. 그러니 투로시노를 지원하기 위해 외무청 관리를 더 보내야겠군요.”

정성국은 자기 생각을 정확히 읽어낸 조용한 곰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러면 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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