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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43화 (243/850)

243화

투로시노가 개항장을 떠나면서 유철도 한양으로 돌아갔다.

도중에 개항장으로 이동하는 선전관을 만나 협상이 끝나는 즉시 한양으로 빠르게 돌아오라는 어명을 받기도 했고.

이에 유철을 최대한 빠르게 한양으로 돌아왔고 한양에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궁으로 입궐해 금상과 조정 대신들에게 자신이 들었던 북미왕국에 대한 정보를 모두 풀어놓았다.

금상과 조정 대신들뿐만 아니라 사관들도 무척 흥미진진하게 북미왕국의 건국에 관한 이야기와 유철이 투로시노를 통해 파악한 수많은 북미왕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마침내 유철이 입을 다물자 감탄과 탄식으로 소란스러워졌다.

“맙소사...정말 조선인 출신이라니...”

“혹시 양반 출신이랍니까?”

예조 판서의 질문에 편전은 다시 조용해졌고 유철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라고 하더군요.”

유철의 대답에 다시 편전은 헛기침과 탄식으로 가득해졌다.

“허어...”

“으음...”

“거 참...조그마한 배로 저 넓은 바다를 건넌 것도 용하고 그곳에서 나라를 세운 것도 용하고.”

병조 판서의 말에 병조 참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나라를 세운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저 거대한 영토를 장악하다니...걸물은 걸물이군요. 물론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긴 합니다만...”

병조 참판의 말에 조정 대신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이조 판서가 입을 열었다.

“예조 참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아요. 다른 원주민들은 부족별로 나뉘어 서로 다투고 있었으니...걸물이 나타나 주변 지역을 통합하자 다른 지역의 원주민 부족들은 감당하기 어려웠겠지요. 북미왕국이 내건 명분도 나쁘지 않았고. 우리는 비슷한 경우를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이조 판서의 말이 끝나자 다른 조정 대신들도 무의식적으로 예전 청의 건국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 그렇군요. 청도 그렇게 건국되었으니.”

처음 유철의 장계를 들었을 때만 해도 북미왕국이 자신의 영토를 과장되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했고, 유철의 설명이 끝나자 고작 10년 만에 그 넓은 땅을 장악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었던 조정 대신들이었다.

하지만 이조 판서의 말대로 청나라도 조그마한 부족에서 시작해 점차 다른 부족을 끌어들이며 급격히 세력을 키웠고 결국 중원을 장악한 것 아니겠나.

오히려 북미왕국은 주변에 이를 방해하는 타국도 없었으니 더 손쉬웠을 테고 그렇게 규모를 늘린 이후에 에스파냐라는 서양의 나라와 전쟁을 벌여 승리해 저들이 장악하고 있던 영토를 넘겨받은 셈이니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곤란한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기에 조정 대신들이 서로 눈치를 보는 가운데 정태화가 입을 열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기는 하나...오히려 북미왕국의 국왕이 조선 출신이기에 조선에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니 나쁠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정태화가 물꼬를 트자 형조 판서가 동의했다.

“흐음...그렇긴 하지요. 사사로이 배를 타고 먼바다를 나간 것은 중죄이기는 한데...이미 조선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형조 판서의 말에 이조 판서가 동의했다.

“그렇지요. 북미왕국인이나 다름이 없으니.”

다른 대신들도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굳이 이 문제를 물고 넘어질 필요는 없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조선은 북미왕국에 무척이나 커다란 도움을 받았다.

작년에 60만석, 그리고 올해 60만석, 총 120만 석의 식량을 식량이 몹시 부족한 대기근이 닥쳤을 때 지원받은 것이다.

덕분에 전무후무한 대기근이 닥쳤음에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북미왕국 국왕이 조선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비를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에 북미왕국의 국력이 만만하지도 않아 보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북미왕국이 조선에 보낸 예물 중 하나인 단총을 통해 저들의 무장이 어느 수준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거기에 북미왕국의 수군도 무척 대단해 보였다.

직접 목격한 북미왕국의 선박은 하나같이 크고 튼튼해 보였으며 이 선박 일부를 동원해 아이누인들을 도와 그 막부를 이긴 것 아니겠는가.

그런 북미왕국의 국왕이 조선 출신이었기에 오히려 북미왕국은 조선에 우호적이었으니 차라리 저들의 호의를 받아들여 교류하면서 저들에게 배울 것은 배우는 것이 낫다고 다들 판단한 것이다.

그때 우의정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아. 혹시 북미왕국 국왕의 가족이 조선에 남아 있습니까?”

우의정의 질문에 다른 조정 대신들은 내심 긴장했다.

북미왕국 국왕의 핏줄이 조선에 남아 있다면 여러모로 곤란했으니까.

그들이 조선에서 잘 지낸다 해도 대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골머리를 쌓아야 했고 잘 못 지낸다면 도리상 어떻게든 도와야 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타국의 왕이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겠지만 북미왕국의 국왕은 조선 출신이었기에 혹시나 하였던 조정 대신들이었다.

이에 유철은 그런 조정 대신들의 걱정을 읽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도 그 부분은 거듭 투로시노 공에게 확인해보았는데 조선에 남아 있는 가족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상의 묘도 떠나기 전에 먼 친척에게 관리해달라고 부탁했기에 북미왕국의 국왕이 직접 조선에 올 일은 없을 거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렇다면야 뭐...”

유철의 대답에 조정 대신들은 안도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이 문제를 더는 논의하지 않기로 무언의 합의를 했다.

북미왕국의 국왕이 법도를 어긴 것은 사실이나 이미 오래전의 일이고 다시 조선에 돌아올 일도 없는데 이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기도 했고.

그리고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정말 저들이 조선말과 언문을 사용한단 말입니까?”

처음 유철의 장계를 통해 북미왕국이 조선말과 언문을 사용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다른 조정 대신들도 이것에 과연 진실인가 궁금해했었기에 다시 편전이 조용해졌다.

이에 유철은 살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다고 합니다. 투로시노 공의 이야기에 따르면 북미왕국에서는 최소한 모든 백성이 조선말과 언문을 알도록 교육시킨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모든 백성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행정력이 필요한 일인지를 짐작한 호조 판서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모든 백성을 말입니까?”

“그렇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북미왕국에서는 교육청을 따로 세워 교육의 일을 전담시킨다고 들었습니다. 곳곳에 아이들을 교육하는 학교를 세우기도 하고요.”

유철의 대답이 북미왕국도 백성을 교화하는데 집중하는 것처럼 들렸기에 조정 대신들은 미소를 지었다.

“호오...”

“하긴...언문이야 쉽게 배울 수 있으니 백성들에게 보급하기 나쁘진 않지요.”

“흐음...그렇긴 하군요.”

그때 병조 판서가 유철에게 질문을 던졌다.

“헌데 저들의 수도는 어디랍니까?”

이미 조선은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내기로 결정을 내린 만큼 언젠간 조선도 북미왕국에 사절단을 보내야 했다.

그렇기에 질문을 던지자 유철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조금 당황스러운데...”

유철이 머뭇거리자 조정 대신들은 다시 관심을 보였다.

“음?”

“저들의 수도는 새한성이라고 하더군요.”

유철의 말이 끝나자 편전은 조용해졌다가 무척 시끄러워졌다.

새한성이라니.

새로운 한성부라는 의미 아닌가.

“허?”

“아니...그게 무슨...”

“그게 정말인가?”

조정 대신들의 물음에 유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철 역시 처음 이 사실을 투로시노에게 듣고 무척 당황했기에.

“그렇다고 합니다. 북미왕국이 건국되면서 기존의 백성들이 사는 지역이 아닌 텅 빈 땅에 수도를 건설하면서 이름이 필요했고 그래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조선 출신 선원들이 장난스럽게 붙인 이름이었는데 그곳 백성들이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조정 대신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허허허.”

“허어...그것 참...”

그런 조정 대신들을 보고 유철이 덧붙여 말했다.

“북미왕국에는 의외로 조선 지명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북미왕국이 건국된 후 붙인 새김포, 새나주, 새진주, 새남포 등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에 병조 판서가 황당한 표정으로 유철에게 확인했다.

“허어...그게 정말이오? 농이 아니라?”

“그렇다고 합니다. 저 지명이 붙은 지역은 모두 북미왕국 건국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기존의 이름이 없었기에 그렇게 지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조정 대신들은 고개를 저었고 병조 참판이 중얼거렸다.

“그래도...너무 무성의한 것 같은데...”

이에 유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투로시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새로운 곳을 개척할 때는 서양의 다른 나라들도 다 비슷한 방식으로 이름을 짓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예. 원래 지명 앞에 새롭다는 의미가 담긴 단어를 앞에 붙이는 것이 관례라고 하더군요.”

“허어...”

그때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예조 판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의 이야기가 신기하기는 하나 당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일단 접어두도록 하지요.”

“음?”

그 말에 조정 대신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예조 판서는 딱딱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북미왕국과 교류하는 것을 청에서 불편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음? 아...”

그 말에 어수선했던 편전의 분위기가 깊게 가라앉고 다른 조정 대신들도 신중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예조 판서의 의견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조선과 청의 관계는 청이 입관한 이후 청의 관심이 중원으로 향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서로 간의 경계나 적대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이 자신들과 비슷한 영토를 가진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교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청에서는 조선을 다시 경계할 수도 있었다.

하물며 이 북미왕국의 국왕이 조선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진다면 그 경계심은 더욱 올라갈 테고.

청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이 이 북미왕국과 연합에 자신들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고.

여기까지 떠올리자 호란을 직접 경험했었던 신료들은 다들 안색이 어두워졌다.

“확실히 그건 좀 우려스럽긴 하군요. 지도만 보자면...북미왕국은 청과 비견될 정도의 대국이에요. 그리고 그 북미왕국의 국왕은 조선 출신이고 우리 조선이 북미왕국과 이미 교류하고 있으니 나중에 청에서 이를 알게 되면 꽤...”

이조 판서가 그렇게 말을 흐리자 유철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북미왕국에서 청에 먼저 굽히고 들어간다면 큰 문제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에 편전은 다시 조용해졌고 정태화가 급히 질문을 던졌다.

“음? 뭐 들은 것이라도 있는가?”

유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답했다.

“저도 북미왕국의 실제 영토가 청나라와 비견될 정도인지라 혹시 둘이 충돌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투로시노 공에게 이를 물어보았는데 의외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필요하다면야 청에 굽히지 못할 것은 무어냐면서요.”

그 말에 조정 대신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병조 참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요? 북미왕국이 건국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나 서양의 나라를 물리친 강국 같은데 먼저 청에 굽힌다? 국가의 체면이 있을 터인데...”

이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유철이 바로 입을 열어 투로시노에게 들었던 북미왕국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도 그렇게 여겨 물어보았지만, 북미왕국은 이 아시아 지역에 큰 관심은 없다더군요. 조선의 사정이나 파악하려고 보낸 선박이 때마침 왜국에 독립하려는 아이누인들과 접촉했고 저들의 사정이 딱하고 북미왕국의 국왕 역시 왜국에 좋은 감정이 없어 살짝 개입했을 뿐이라면서요.”

그 말에 조정 대신들은 자신도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달리 해석하면 살짝 개입한 것으로 막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셈이었으니.

“허어...”

“그리고 이야기하기를 저 북미 땅의 원주민들을 잘 다스려 다툼을 멈추고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것과 북미 대륙을 탐내는 승냥이 같은 무리에게 북미 땅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만약 북미왕국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아 청과 분쟁이 생길 것 같다면 기꺼이 고개를 숙이라고 북미왕국의 국왕이 직접 훈령을 내렸답니다.”

유철의 말에 조정 대신들뿐만 아니라 이연조차 북미왕국 국왕의 결정에 감탄사와 탄식을 내뱉었다.

꼭 청에 고개를 숙인 작금의 조선 상황과도 비슷해 보였으니까.

“으음...”

“허어...”

하지만 유철은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청에게 고개를 숙인다고 실제적인 국력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면서 말이지요.”

그 말에서 이연과 조정 대신들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북미왕국의 사상과 더불어 북미왕국은 청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도 엿볼 수 있었기에 다들 묘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허어...”

“그러니 북미왕국이 청에 적당히 고개를 숙인다면 청도 우리와 북미왕국을 압박하진 않으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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