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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40화 (240/850)

240화

유철은 방금 투로시노에게 들었던 북미왕국 건국에 관한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겸연쩍게 웃는 투로시노를 보고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진지한 유철의 표정에 투로시노는 웃음을 멈추고 자세를 바로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지요.”

“먼저...왜 이 사실을 처음에 알리지 않은 겁니까?”

이에 투로시노는 외무청에서 보내준 명령서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흐음...본국에서는 귀국과의 접촉을 피하라는 훈령을 내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 임의로 귀국과 접촉한 상황이다 보니 아국의 국왕 전하께서 조선 출신이라는 정보도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요. 이 부분은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투로시노가 고개를 숙이자 유철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투로시노는 조선의 은인과도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유철이었기에.

“아...아닙니다. 공의 사정도 이해할 수 있고 자국의 정보를 모두 이야기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귀국에서 아국과의 접촉을 피하라는 훈령을 내렸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유철이 말을 흐리자 투로시노는 애써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느낌을 내비친 후 입을 열었다.

“아. 귀국은 함부로 배를 타고 먼바다를 나가거나 사사로이 국경을 넘는 것은 법도에 어긋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되물으며 유철을 바라보고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슬쩍 웃는 투로시노를 보고 유철은 왜 북미왕국에서 함부로 접촉을 피하고자 했는지 짐작했다.

그리고 유철 역시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 조선은 이미 북미왕국의 도움을 받았고 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였기에 북미왕국의 국왕이 조선의 법도를 어겼다는 말이 나오자 곤혹스러웠다.

“아...그렇긴...하지요.”

그런 유철의 표정에 투로시노는 슬쩍 미소지으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니 아국의 국왕 전하께서는 귀국의 법도를 어긴 셈이지요. 그렇기에 함부로 귀국과 접촉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양국이 난처할 수 있었기에 접촉을 피하라는 훈령을 내린 겁니다. 아마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귀국과 접촉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투로시노가 직접 북미왕국의 계획을 알려주자 유철은 완벽하게 북미왕국의 사정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렇군요.”

“헌데 원상이 아이누 섬까지 찾아왔고...처음 이 문제로 본국에 급히 연락하긴 했습니다만 밀무역 정도는 크게 상관없을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오히려 원상과의 밀무역을 지속하면서 조선의 동향을 파악해 만약 조선에 큰일이 닥치면 이를 알리라는 훈령도 내려졌고요. 그래야 도울 수 있으니까요. 물론 본국에서는 이렇게 빠르게 조선에 큰일이 닥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러면서 투로시노가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흐리자 유철은 그저 헛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허허허. 음...그래도 우리 조선에 큰일이 닥치면 귀국은 우리를 도울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물론입니다. 일단 아국의 국왕 전하께서는 조선 출신이다 보니 조선에 관심이 없진 않으십니다. 아. 이건 어디까지나 고향이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일 뿐입니다.”

투로시노는 대답한 후 혹시라도 조선에서 오해할까 급히 덧붙여 말했지만, 유철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어 보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귀국이 건국된 지는 얼마 안 된 겁니까?”

“그렇습니다. 건국된 지는 10년가량 되었지요.”

투로시노의 말에 유철은 그나마 안도했다.

이미 10년 전의 일이니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더라도 이런저런 말은 나올지언정 큰 풍파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아. 그래도 최근은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투로시노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철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음...허면 전에 원상을 통해 파악한 귀국의 영토는 거짓입니까? 원상이 이야기하길 바다 건너 거대한 대륙의 절반이 귀국의 영토라고 들었는데...”

유철이 생각하기엔 건국한 지 고작 10년밖에 되지 않은 북미왕국인 만큼 어느 정도 과장했으리라 생각하고 질문을 던졌지만, 투로시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저번에 와서 한 이야기 중에 거짓은 없습니다. 숨긴 것은 있긴 합니다만...”

그러면서 슬쩍 입에 침을 바르는 투로시노였지만 유철은 그런 투로시노의 행동엔 신경 쓰지 못하고 무척이나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정말 그 거대한 대륙이 모두 귀국의 영토란 말입니까? 고작 10년 사이에?”

이에 투로시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는 서양의 여러 나라도 인정했고요.”

실제로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에스파냐와 잉글랜드 두 나라에 불과했지만, 투로시노는 대답하는데 떳떳했다.

“허어...”

투로시노의 대답에 유철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과 허탈함이 뒤섞인 표정을 짓자 투로시노가 입을 열어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처음 아국이 건국된 후 그동안 수많은 부족으로 나뉘어 살아가던 북미 대륙 원주민들은 북미 대륙을 침략하려는 서양인의 존재와 북미 대륙의 원주민들을 보호하겠다는 아국의 대의에 공감해 하나둘 아국의 품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급격하게 아국이 성장하자 이미 아국 남쪽에서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던 에스파냐와 부딪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면서 투로시노는 품 안에서 무척 간략하게 그려진 미 대륙 전도를 펼치며 이해를 도왔다.

“이게 에스파냐와 부딪치기 전 북미왕국의 영토입니다.”

당시 북미왕국이 제대로 장악하고 있던 영역은 북미 서해안 일부, 즉 캘리포니아 지역 정도였지만 투로시노는 외무청의 명령서에 적힌 대로 북미 대륙 서쪽 절반 정도였다는 듯 커다랗게 손으로 원을 그렸다.

“으음...”

“해서 아국은 서양의 강력한 제국인 에스파냐와 전쟁을 치렀고...그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싶었던 유철은 전에 북미왕국의 사절단이 조선에서 떠나기 전에 금상에게 전한 예물을 떠올리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긴...”

정태화가 이야기하길 서양의 여러 나라는 아직 조총을 주요 무장으로 사용한다고 들었고 이들 북미왕국의 무장은 후장식 소총이었으니 병력만 충분하다면 승리하는 것도 가능했겠다고 이해한 유철이었다.

더불어 북미왕국의 대의는 원주민들에게 먹힐 만했고 이들은 조선을 도와줄 정도로 식량도 풍족하고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했으니 영역 확장도 쉬웠으리라고 생각했고.

그런 유철의 반응에 투로시노는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에스파냐는 아국의 강력한 군사력에 놀라 협상을 요청했고 아국의 국왕 전하께서도 피를 많이 흘려봐야 좋을 것은 없다면서 협상을 승인해 아국과 에스파냐는 협상을 진행했지요.”

먼 나라의 이야기에 유철은 호기심을 나타냈다.

“그렇습니까?”

“결국, 에스파냐가 가지고 있던 북미 대륙에 대한 권리를 모두 넘겨받아 아국의 영토는 순식간에 두 배로 불어난 셈입니다.”

그러면서 투로시노는 북미 대륙 전체를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헌데 넘겨받은 지역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이건 전에도 대략이나마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만...”

“아. 전염병이 돌았고 그래서 유민들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게 이곳인 겁니까?”

“그렇습니다.”

투로시노의 대답에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유철은 질문할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기에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으음...혹시 공께서 의도적으로 숨긴 내용은 또 없습니까?”

그 말에 투로시노는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살짝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대충 말한 것 같은...아!”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친 투로시노가 급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제물포에서 처음 만났을 때 예조 참판께서는 제 조선말이 무척이나 유창하다고 놀라셨었지요?”

이에 유철은 예전 제물포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공께선 외무청 관리의 소양일 뿐이라고 하셨지요.”

그 말에 투로시노는 조금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외무청 관리의 소양은 맞습니다. 다만...모든 관리의 소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국에서는 공용어로 조선말을 개량한 북미왕국어를 지정했고 공용문자로는 한글을 사용하니까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유철은 다시 당황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조선말과 언문을 사용한다고요?”

그런 유철의 반응에 투로시노는 슬쩍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아까 이야기했다시피 북미 대륙은 무척 넓고 정말 수많은 부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어도 다르고 말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현재 아국에서 실생활에 사용되는 언어의 가짓수는 20개가 넘습니다.”

이것도 자신이 북미왕국에서 교육받을 때의 상황이었고 점점 영역을 확장하는 이상 최소한 그 배는 되지 않을까 생각한 투로시노였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설명했다.

“허허허.”

그런 투로시노의 대답에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은 유철이었다.

하지만 투로시노가 가리킨 지도를 보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워낙 넓은 땅덩어리였으니까.

“하지만 모든 백성이 그 많은 언어를 다 익힐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가교 언어가 될 공용어가 필요했고 공용문자도 필요했습니다. 그러자 아국의 국왕 전하께서 공용어로 조선말을 사용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허어...”

저 먼 이국의 땅에서 조선말이 퍼졌다는 이야기에 유철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냈다.

“특정 부족의 언어를 사용하면 곤란한 부분도 있고 전하께서 알려주신 한글이라는 문자는 어렵지 않고 빠르게 배울 수 있었기에 나쁘지 않다고 여겨 결국 북미왕국의 공식 언어와 문자가 되었지요.”

설명을 끝낸 투로시노를 멍하니 바라보던 유철은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던졌다.

“그럼...귀국의 백성들은 모두 조선말과 언문을 사용하는 겁니까?”

이에 투로시노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북미왕국어와 한글을 알아듣고 사용할 수는 있지요. 지금도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으니까요. 물론 공식적인 언어가 그럴 뿐이지 집에서야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투로시노의 대답에 유철은 조정으로 알려야 할 것이 참으로 많다고 생각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투로시노를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그 외엔 또 없습니까?”

이에 투로시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흐음...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습니다. 차라리 예조 참판께서 궁금하신 것이 있다면 질문하시지요.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야기할 테니 말입니다.”

이에 유철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하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긴 한데 당장 제 궁금증을 푸는 것보다는 식량 지원에 관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식량 지원은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유철이 먼저 주제를 돌리자 투로시노는 반색하며 곧바로 대답했다.

“아. 그렇긴 하지요. 아마 지금쯤이면 본국에서 식량을 가득 실은 수송 선단이 열심히 바다를 건너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늦어도 10일 안에는 이곳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국에서 보낸 연락에 따르면 날이 풀리자마자 천급 함선으로 구성된 이주 선단을 식량을 가득 실어 출항시켰다고 하니 곧 개척촌에 도착할 때가 되었다.

해서 이를 언급하자 유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그렇습니까?”

그런 유철을 보고 투로시노는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다만 이번에 수송되는 식량이 60만석 전부는 아닙니다. 워낙 먼 거리이다 보니 아국에서 동원할 수 있는 선박도 한정되어 있어서요.”

“그럼...?”

이에 투로시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처음 운송되는 식량은 대략 10만 석 내외일 겁니다. 다만 그 이후로도 곧바로 16만석 정도가 추가로 도착할 예정이고 그 후엔 꾸준히 식량이 운송될 겁니다.”

이주 선단과 수송 선단이 차례대로 도착할 예정이었기에 이를 이야기하자 유철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60만 석을 한 번에 받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현 조선 상황에서 26만 석이 단번에 생기는 셈이니 그게 어디인가 싶었다.

“그럼 26만 석은 보리 수확 이전에 지원받을 수 있는 겁니까?”

이에 투로시노는 확실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 다만 저번처럼 아국이 조선 팔도에 운송하긴 어려울 듯싶습니다.”

그러면서 대부분 선박은 다시 본국으로 가서 식량을 가져와야 한다고 양해를 구하자 유철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동원할 수 있는 조운선부터 개항장으로 이동시켜야겠군요.”

“그래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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