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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234화 (234/850)

234화

제이콥은 맥주로 목을 축이며 중얼거렸다.

"후우. 결국, 자네 예상이 맞았네. 젠장."

제이콥은 맞은 편에서 맥주를 마시다 제이콥의 말을 듣고 맥주잔을 내려놓고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야."

잭 역시 본국에서 식민지를 포기한단 소문이 들리자 이를 예상하긴 했지만 실제로 본국이 식민지를 북미왕국에 팔아버리자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 총독부에서 정식으로 포고문을 내걸었는데 그 포고문에는 잉글랜드는 북미왕국과 협상 끝에 북아메리카의 모든 권리를 북미왕국에 매각했고 이에 따라 모든 식민지 역시 해체되며 이곳의 모든 권리와 땅은 북미왕국에 귀속된다고 적혀 있었다.

당연히 이 포고문을 보고 식민지 주민들은 이게 말이 되냐며 반발했지만, 총독부에서는 이미 본국에서 북미왕국과 조약을 체결했다면서 포고문 마지막에 쓰여 있듯 왕실에서 서인도 제도로 향하는 배편을 마련했으니 서인도 제도로 이주할 것을 권했다.

더불어 가을에 북미왕국의 군대가 이곳에 주둔하게 되면 잉글랜드를 비롯한 외국 선박은 더는 이곳에 정박하지 못하니 최대한 서두르라고 하자 식민지 주민들은 고함을 지르면서 무척이나 시끄러워졌다.

이에 잭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이콥을 데리고 단골 선술집으로 향했고.

"이제 좀 먹고 살만하다 싶었는데...하아."

북아메리카의 식민지로 이주하는 이주민들은 여러 분류로 나뉘는데 잭과 제이콥은 먹고 살기 위해 식민지로 이주했다.

제이콥도 그렇지만 잭 역시 가난한 농민이었고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해 공유지가 점차 사유화되면서 흉년이 들어도 예전처럼 공유지에서 구황 작물을 채취해 먹거나 나무를 베어 파는 것이 어려워졌고 결국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가지고 있던 조그마한 땅을 팔고 식민지로 이주한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열심히 일해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는데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셈이니 잭 역시 제이콥처럼 허탈한 심정이었고.

그때 제이콥이 쾅 소리 나게 맥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젠장. 상황을 보니 본국으로 돌아갈 배편은 구하기 어려울 것 같고...천상 서인도 제도로 가야 하나?"

제이콥이 생각하기에 본국으로 가는 배편은 구하기도 어려웠고 막상 구한다 한들 뱃삯도 엄청나게 비쌀 것이 뻔했기에 총독부가 말한 공짜로 탈 수 있는 서인도 제도로 향하는 배편이 유일한 해답이라 여겼다.

이에 제이콥은 잭이 고개를 끄덕여주기를 바라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잭의 반응은 제이콥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글쎄..."

잭의 반응에 제이콥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음? 뭐야. 설마 넌 이곳에 남을 생각이야?"

제이콥의 질문에 잭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제이콥은 그런 잭을 보며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포고문에 쓰여 있던 거 못 봤어? 이곳이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면 더는 잉글랜드의 배가 이 항구에 드나들 수 없다고 쓰여 있었잖아. 그런데도 남겠다고?"

이에 잭은 맥주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자네 말처럼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으니 천상 서인도 제도로 가야 하는데...그곳에서 쥐꼬리만 한 돈을 받으며 농장에서 일할 바에는...차라리 이곳에 남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여서 말이야."

"으음...?"

제이콥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잭은 설명을 시작했다.

"나도 북미왕국에 대해선 소문만 들었으니 어떤 나라인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생각해보라고. 분위기를 보면 이곳 사람들 대부분은 결국 서인도 제도로 떠날 거야. 돈 많은 놈이나 본국으로 귀환할 테고."

"그렇겠지."

제이콥이 고개를 끄덕이자 잭은 고개를 숙여 제이콥에게 가까이 붙어 살짝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

"북미왕국이 등장한 이후 본국에서는 이곳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고 여겨 이주민들을 서인도 제도로 보냈었어. 그들이 이미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이곳 사람들...아니지. 식민지 주민 대부분이 서인도 제도로 향할 텐데...과연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으음..."

잭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에 제이콥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잭은 그런 제이콥을 보며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아마 서인도 제도의 농장주들은 우리를 노예처럼 부려먹으려고 들걸?"

"젠장...그걸 누가 몰라? 알지만 어쩔 도리가 없잖아!"

잭의 말에 답답한 표정을 짓던 제이콥이 탁자를 치며 소리치자 잭은 진정하라는 듯 손짓하며 재빨리 말했다.

"왜 없어? 이곳에 남으면 되는 거지."

"뭐? 포고문에 쓰여 있었잖아. 모든 땅은 북미왕국에 귀속된다고. 이곳에 남아봐야 결국 저들의 농노가 되는 것뿐인데 그럴 바엔 서인도 제도로 가는 게 낫잖아?"

제이콥의 질문에 잭은 고개를 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제이콥. 생각해 봐. 식민지 땅은 꽤 넓어. 그리고 식민지 주민들은 대부분 서인도 제도로 향할 테고. 그럼 이곳의 농장은 텅 비겠지?"

그제야 제이콥은 잭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고 신음을 흘렸다.

"으음..."

제이콥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잭의 예측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지적하려는데 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물론 북미왕국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이곳의 빈 땅을 불하받아 농사를 지을 수도 있겠지만...그래도 텅 비어버린 식민지 땅을 모두 경작하진 못할걸? 그러니...서인도 제도보다는 상황이 낫지 않겠어?"

잭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기에 제이콥은 아무 말 없이 맥주잔을 툭툭 건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잭과 제이콥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가 잭과 제이콥의 이야기를 의도치 않게 엿들은 갈색 머리의 중년 남성이 끼어들었다.

"이봐. 자넨 북미왕국에 대해서는 잘 알아?"

잭은 맥주를 홀짝이다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 그저 이곳 사람들이라면 다들 아는 북미왕국의 소문 정도?"

"소문? 자네가 알고 있는 소문 좀 말해주지 않을래? 난 저 서쪽에 북미왕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 외엔 딱히 아는 게 없어서 말이야."

그러면서 중년 남성은 종업원이 가져다준 맥주가 가득 담긴 맥주잔을 받아 잭의 앞에 올려두며 중얼거렸다.

"헌데 갑자기 본국에서 이 식민지를 북미왕국에 팔아넘겼고 서인도 제도로 향하는 배를 타지 않으면 그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어야 하는 판이니 궁금해서 그래."

이에 잭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근 식민지에는 본국에서 식민지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꽤 돌곤 했었으니까.

그러니 당연히 예전엔 북미왕국의 존재를 모르던 식민지 주민들도 북미왕국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북미왕국을 모른다고? 최근에 이런저런 소문이 많았는데?"

이에 중년 사내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 농장은 외곽 지역에 있어서 말이야. 거기에 농장을 지켜야 하니 아무래도 그런 소문엔 어두울 수밖에 없어서. 그러다 마침 마을에 나왔는데 사람들이 모여있길래..."

중년 남성의 말에 잭은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남들도 다 아는 얘기로 맥주를 받기는 조금 미안한데...뭐 내가 아는 건 북미왕국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나라이고 에스파냐와 전쟁을 벌여 승리했고 그 에스파냐가 덤비지 못할 정도의 강국이라는 거? 아. 그리고 북미왕국의 도자기는 본국의 귀족들도 구하려고 애를 쓸 정도라고 하니...문화 수준도 나쁘진 않은 것 같고."

"으음..."

잭의 말에 중년 사내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겼을 때 근처에 앉아 있었기에 잭이 이곳에 남을 생각이라는 것을 듣게 된 왜소한 체구의 청년이 끼어들었다.

"아. 난 이곳에 남기는 좀 꺼려지던데. 북미왕국은 결국 인디언들의 나라이니...주변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를 핍박할 수도 있어 보이고."

왜소한 청년의 말에 그 일행들은 그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건 또 그렇네. 주변 인디언들은 북미왕국을 반길 것 아냐?"

"차라리 버지니아 식민지나 플리머스 식민지로 가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최근 본국에서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포기한다는 소문이 들려온 이후 식민지 내에 묘한 소문이 돌았다.

만약 본국이 식민지를 포기한다 하더라도 버지니아 식민지와 플리머스 식민지는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북미왕국과 맞서 싸울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북아메리카에 건설된 9개 식민지 중 가장 사람이 많은 지역인 버지니아 식민지와 종교의 자유를 위해 이주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플리머스 식민지였기에 이 소문에 다른 식민지 주민들은 일리가 있다 여겼었고.

이를 일행이 언급하자 왜소한 청년은 눈을 반짝이며 잭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아. 그래. 정말 소문처럼 그곳 주민들은 봉기해 북미왕국에 대항할까? 그럼 그곳으로 가서 한 손 보태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잭은 딱히 대답할 마음이 없었지만, 자신에게 맥주를 건네준 중년 남성도 관심을 보이자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왜소한 청년과 그 일행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글쎄...? 내 생각엔 그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해. 차라리 서인도 제도로 가는 게 낫지. 자네들은 알고 있잖아? 이 신대륙에서 세력이 가장 큰 에스파냐도 북미왕국을 못 버텼다고. 그리고 우리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을 본국에서도 지키지 못할 거라고 판단해 식민지를 팔아버린 거고. 헌데 그게 가능할까? 본국에서 아무런 지원 없이 북미왕국의 군대와 맞서겠다고? 화약도 많지 않을 테니 얼마 안 가 화약이 다 떨어질 텐데...화약 무기로 무장한 북미왕국 군대에 맞서 농기구로 맞설 생각이야?"

"으음..."

잭의 말에 왜소한 청년과 그 일행들은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잭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쐐기를 박았다.

"그게 가능해 보였다면 본국에서는 식민지를 북미왕국에 팔아치우기보단 우리에게 나누어 줄 머스킷과 화약을 왕창 가져왔겠지. 안 그래?"

잭의 말에 왜소한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그러니 이곳에 남기 꺼려지면 당장 술집을 나가서 짐을 싸라고. 그리고 내일 바로 저 배에 올라타서 서인도 제도로 가. 괜히 버지니아나 플리머스로 갈 생각하지 말고. 그거 개죽음이야. 그리고 이곳처럼 그 식민지에도 서인도 제도로 향하는 배편이 존재할 테니...그곳 주민들도 대부분은 배를 타고 떠날걸? 국가와 맞설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잭의 말에 왜소한 청년과 일행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잭에게 맥주를 건네주었던 중년 사내 역시 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언 고맙다며 일단 농장으로 돌아가야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렇게 주위가 그나마 조용해지며 잭이 다시 맥주를 마시려는데 제이콥이 오랜 고민을 끝낸 것인지 손뼉을 치며 선언했다.

"좋아. 결정했다."

"음?"

맥주잔을 들고 있는 잭을 향해 제이콥이 입을 열었다.

"나도 너처럼 이곳에 남겠어."

"어..."

제이콥의 선언에 잭은 조금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이콥은 서인도 제도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남겠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가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소리였으니까.

문제는 잭 역시 이곳에 남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잭은 그나마 무역선의 선원인 스미스와 친분이 있어 북미왕국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을 듣긴 했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이에 내심 불안했고 제이콥에게 한 이야기는 결국 자신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함이 컸다.

헌데 제이콥이 자신의 말을 듣고 남아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기로 했으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제이콥은 맥주잔을 들고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잭을 보며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어? 괜찮아. 분명 잭 네 말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이건 내가 판단해 내린 결정이니까. 나중에 잘못되더라도 널 원망하진 않을게.“

그 말에 잭의 안색이 조금 펴지자 제이콥이 다시 중얼거렸다.

”뭐 어차피 같이 이곳에 남기로 했으니 내가 잘못되면 너도 잘못될 확률도 높고."

그 말에 잭은 표정을 구기며 맥주를 마신 후 중얼거렸다.

"아주 악담을 해라. 악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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